미치 리치몬드
1. 개요
미국의 전직 농구선수. 꾸준한 기술을 선보이며 엄청난 득점력을 과시했고, 내외곽슛과 상관없이 뛰어나면서도 공격과 수비 양쪽에서 견고한 위력을 뽐내며 감독들은 물론 마이클 조던도 인정했던 선수였다.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리그를 대표했던 슈팅 가드 선수들에게 가려져서 인지도가 약간 떨어진 선수였지만 탄탄한 체격을 바탕으로 디펜스에서는 곤혹스러운 매치업 상대를 이끌며 정확한 3점슛과 준수한 돌파력으로 가볍게 성공시킨 팀의 스코어러였다. 레지 밀러, 글렌 라이스와 함께 리그에서 가장 위력적인 슈터로 꼽히기도 했다.
2. 대학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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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벌리 에어리어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당시 농구의 인기가 낮아졌던 캔자스 주립대학교로 전학을 간 후, 론 크루거 감독에게 지도를 받으며 30경기에 출전해 평균 32.1분을 소화하며 필드골 성공률 44.7%, 3점슛 성공률 36.1%, 평균 18.6득점, 5.7리바운드, 2.7스틸을 기록하며 팀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았다. 게다가 위력적으로 높아진 기량을 발휘하며 34경기에 출전하며 평균 35.3분, 필드골 성공률 51.4%, 3점슛 성공률 46.9%, 평균 22.6득점, 6.3리바운드, 3.7어시스트로 맹활약을 펼쳤다.
3. 선수 시절
3.1.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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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드래프트 1라운드 5순위로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 지명된 이후, 주전으로 기용되어 정규시즌 79경기를 모두 선발로 뛰었으며 평균 22득점, 5.9리바운드, 4.2어시스트, 필드골 성공률 46.8%를 기록하며 크리스 멀린과 함께 팀을 플레이오프 순위권에 진출시키며 신인왕을 수상했다. 1년 뒤에는 신인 팀 하더웨이가 합류하면서 Run TMC 트리오[2] 를 결성해 빠르고 화려하지만 때로는 자비없는 공격력을 가진 런앤건 팀으로 자리를 잡으며 공격 주도의 서막을 알리게 되었다.
그러나 1990-91 시즌 뒤, 돈 넬슨 감독은 공격과 수비 밸런스를 바꾸려고 제대로 된 빅맨을 보강하기 위해 1991 NBA 드래프트에서 3순위로 빌리 오웬스를 뽑은 뒤, 맞교환 트레이드로 새크라멘토 킹스로 옮기면서 결성한지 2년만에 Run TMC 트리오는 해체되고 말았다.
3.2. 새크라멘토 킹스
새크라멘토 킹스로 온 첫해부터 평균 38.7분을 출전하며 팀의 핵심 요원으로 자리를 잡았지만, 공격과 수비 밸런스가 전혀 맞지 않아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면서 처참하게 무너지고 말았지만 다음 시즌 데뷔 이후 처음으로 부상을 당해 시즌 아웃된 것이 너무나 아쉬웠음에도 평균 21.9득점, 3.4리바운드, 4.9어시스트 등을 기록하였다. 같은 포지션을 지닌 선수들에 비해 기량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자신만의 힘으로 팀을 플레이오프에 끌어올리는데 무리가 있었다.
1993-94 시즌에는 홀로 팀을 이끌며 78경기에 출전한 가운데 평균 23.4득점, 3.7리바운드, 4.0어시스트 등을 기록하며 데뷔 이후 단 한번도 평균 21득점 이하로 내려간 적이 없었다. 1994-95 시즌에는 처음으로 정규리그 82경기를 모두 선발로 뛰며 평균 22.8득점, 4.4리바운드, 3.8어시스트, 1.1스틸을 기록했으며 비록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했어도 작년 시즌보다 더 나아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여기에 같은 해에는 생애 처음으로 올스타 MVP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리고 1995-96 시즌 평균 23.1득점, 3.3리바운드, 3.1어시스트, 1.5스틸, 필드골 성공률 44.8%, 3점슛 성공률 43.7%를 기록하였고 지난 시즌과 마찬가지로 39승 43패였지만 1985-86 시즌 이후 11년만에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다. 하지만 1라운드에서 게리 페이튼과 숀 켐프 듀오가 버틴 시애틀 슈퍼소닉스를 상대로 열심히 최선을 다해 싸웠지만 팀은 1승 3패로 탈락했다. 그래도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드림팀 일원으로 출전하며 동메달을 얻었던 1988 서울 올림픽 이후 드디어 금메달 획득에 성공하며 한을 풀기까지도 했다.
1996-97 시즌 81경기에 출장하여 평균 25.9득점, 3.9리바운드, 4.2어시스트, 1.5스틸을 기록하였고, 1997-98 시즌에도 70경기를 출전해 평균 23.2득점, 3.3리바운드, 4.0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엘리트다운 면모를 나름대로 잘 갖추었다.
그러나 대대적인 전력 강화에 나선 킹스는 리그 최고의 4번 중 한명이었던 크리스 웨버를 받아오겠다는 조건으로 팀 메이트였던 오티스 소프와 함께 워싱턴 위저즈로 트레이드 되었다.
3.3. 워싱턴 위저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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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으로 트레이드 된 뒤에는 당시 최약체 팀이었는지라 처음으로 20득점 이상을 기록하지 못했으며 체력 감소는 물론 새크라멘토 때 보였던 슛 감각이 떨어졌고, 구단과의 연봉 문제 등으로 하락세를 겪기까지 했다.
3.4.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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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재계약을 거부한 뒤, 아이제아 라이더가 지난 시즌 부진으로 생긴 백코트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로 이적해 코비 브라이언트의 백업 멤버로 출장하였다. 그러나 불과 11분을 뛰어 평균 4.1득점을 기록한 것이 전부인데다 플레이오프에서는 2경기(서부 컨퍼런스 결승 5차전, 파이널 4차전)에만 나가는데 그쳐 버렸으며 팀은 쓰리핏을 달성함과 동시에 생애 처음으로 우승 반지를 얻고 선수 생활을 접었다.
[1] 바위덩어리를 뜻하는 별명으로, 우리가 아는 그 인물의 예명과는 전혀 관계없다.[2] 당시 유명 힙합그룹이었던 Run-D.M.C.에 빗대어 3인방의 이름 첫 글자(Tim, Mitch, Chris)를 따서 붙인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