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비 브라이언트

 

'''코비 브라이언트의 수상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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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2000'''
'''2001'''
'''2002'''
'''2009'''
'''2010'''











[image]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영구결번'''
No. 8 & 24[42]
'''댈러스 매버릭스 영구결번'''
No. 24[43]

''' 역대 아카데미 시상식 '''
[image]
'''단편 애니메이션 상'''
'''제89회
(2017년)'''

'''제90회
(2018년) '''

''' 제91회
(2019년) '''
파이퍼

디어 바스켓볼
(글렌 킨, '''코비 브라이언트''')

바오
(도미 시)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No.8 & No.24'''
'''댈러스 매버릭스 No.24'''
'''코비 빈 브라이언트
(Kobe Bean Bryant)
'''
'''출생'''
1978년 8월 23일
'''사망'''
2020년 1월 26일 (향년 41세)
'''국적'''
[image] 미국
'''출신지'''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
'''출신학교'''
로워 메리언 고등학교
'''신장'''
198cm (6' 6")[1]
'''체중'''
96kg (212 lbs)
'''윙스팬'''
211cm (6' 11")
'''포지션'''
'''슈팅 가드'''
'''후원사'''
'''나이키'''[2]
'''드래프트'''
'''1996년 NBA 드래프트 1라운드 13순위
샬럿 호네츠 지명'''[3]
'''소속 구단'''
[image]'''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1996-2016)'''
'''등번호'''
'''8번''' [4] '''/ 24번'''[5] '''- 레이커스'''
'''10번 - 미국농구 국가대표팀'''
'''수상내역'''
'''[image] NBA 챔피언 5회 (2000-2002, 2009-2010)'''
'''[image] NBA 파이널 MVP 2회 (2009-2010)'''
'''[image] NBA 정규시즌 MVP (2008)'''
'''[image] 올-NBA 퍼스트 팀 11회 (2002-2004, 2006-2013)'''
'''[image] NBA 올스타전 MVP 4회 (2002, 2007, 2009, 2011)'''
[image]NBA 올스타 18회 (1998, 2000-2016[6])
[image] 올-NBA 세컨드 팀 2회 (2000-2001)
[image] 올-NBA 서드 팀 2회 (1999, 2005)
'''[image] NBA-올 디펜시브 퍼스트 팀 9회 (2000, 2003-2004, 2006-2011)'''
[image] NBA-올 디펜시브 세컨드 팀 3회 (2001-2002, 2012)
[image] NBA 올-루키 세컨드 팀 (1997)
[image] NBA 올해의 득점왕 2회 (2006-2007)
[image] NBA 슬램덩크 콘테스트 우승 (1997)
[image] 네이스미스협회 선정 올해의 선수상 (1996)[7]
[image] '''아카데미 단편 애니메이션상 (2018)'''
'''[image] 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 헌액 (2020) '''
''' [image]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image] 2012 런던 올림픽 금메달'''
1. 개요
3. 플레이 스타일
4. 이야깃거리
4.1. 신발
4.2. 맘바 멘탈리티 (Mamba Mentality)
6. 말말말
7.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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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BLACK MAMBA'''
NBA의 농구선수. 20년 동안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한 팀에서만 슈팅 가드로 활약했으며 수 많은 팬과 안티를 같이 보유했던 프랜차이즈 선수이자 농구계의 전설이었다. '''마이클 조던 이후 최고의 슈팅 가드이자''',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역대 최고의 슈팅 가드로 평가받았던 선수였으며, 실력과 명성이 조화를 이뤄 NBA를 잘 모르는 사람들조차 그의 이름만으로 누군지 아는 몇 안 되는 선수였다.
2016년 4월 13일 선수 은퇴 후 제2의 인생을 살다가, 안타깝게도 2020년 1월 26일 둘째딸인 지아나 브라이언트(13세)와 함께 헬리콥터 추락사고로 향년 41세에 세상을 떠났다.#

2. 생애




3. 플레이 스타일


[image]
하필 비교된 대상이 그 '''마이클 조던'''인지라 평가절하를 당하는 측면이 있었다. 기본적으로 조던과 같은 포지션에 스타일도 비슷한데다 테크닉적인 측면 딱 하나만 빼고 보면 모든 면에서 조던에게 밀리는 하위호환 쯤으로 여겨지기 때문. 다만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조던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역대 최고의 선수'이고 조던과 비교되는 선수 자체가 몇 안 된다는 것. 조던과 비교된다는 자체로 그냥 역대급 선수라는 방증이었다. 그리고 코비는 코비 그 자체로도 NBA를 통틀어 '''역대급 레전드 선수였다.''' 코비가 말년에 기량이 크게 떨어져 공격 효율이 조던보다 못하다고 하더라도 조던 외 다른 슈팅가드들에 비하면 오히려 상당히 늦은 나이까지(만34세) 정상급 기량을 유지했고, 효율도 그렇게까지 나쁘진 않은 편이었다. 다만 비슷해서 비교되던 마이클 조던이 모든 면에서 완벽에 가까웠고 더군다나 바로 전 세대였기 때문에 코비는 뭘 해도 조던과 비교된 것. 코비의 커리어가 다 끝난 지금와서도 역대 선수들 중에 손에 꼽힐 커리어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코비를 설명할 때면 ‘조던에 가장 근접한 선수’라는 타이틀이 자주 따라다녔다. 괜히 코비가 조던과의 비교에 치를 떨며 싫어한 것이 아니었다.
물론 조던에 가장 근접했다는 표현만으로 끝낼 선수는 아니었다. 1 on 1으로 눈을 돌리면, 포스트업 - 훅 슛과 페이드어웨이 점프슛을 주로 이용했던 조던과 달리 미끄러지듯 베이스라인으로 빠지는 스윙을 선호했다. 이 외에도 수비를 달고도 3점슛을 곧잘 날렸는데, 이게 터지는 날에는 아무도 못 막았다. 일단 조던에 비해서 운동능력과 프레임이 부족했기 때문에 조던이 간결하게 수비수를 제친다면 코비는 상대적으로 잔기술을 많이 섞은 편이었다. 또한, 역대급으로 평가받은 유연성을 활용해 조던에 비해 5% 부족한 운동능력을 메웠다. 블랙 맘바라는 별명에 걸맞게 리버스 덩크, 더블 클러치 상황에서 몸을 마치 뱀처럼 뒤트는 모습은 탄성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8]
스윙맨 포지션에서 조던 다음으로 역대급 포스트업을 구사한 선수였다. 근래 NBA에서 포스트업 사관학교의 위상으로 떠오른 하킴스쿨의 초창기 수료자. 조던이 파워 포워드조차 밀어낼 수 있는 힘에다가 스킬셋, 풋워크를 모두 겸비했다면, 코비는 좀 더 다양한 기술을 이용하며 효과를 본 편.
물론 2번 포지션에서 포스트업으로 수비수를 압살하던 조던이 힘만으로 밀어내는 것은 당연히 아니었으며, 그의 스킬셋은 다양하기보다는 간결하고 효율적인 쪽이라 스킬만 따져도 우열을 매길 순 없다. 다만 스킬의 다양함에서 코비가 우위임은 필 잭슨도 인정한 사실. 야투율 차이만 봐도 조던이 더 효율적인 득점원임은 자명했다. 실제로 필 잭슨은 레이커스를 감독할 당시 두 선수를 비교해달라고 하면 "코비는 조던보다 스킬이 다양했다," "조던과 피펜의 역할을 둘 다 했다"는 식으로 애매하면서도 자기 팀의 스타를 띄우는 평가를 했다. 그러나 은퇴 이후 내놓은 자서전에서 두 선수를 직접적으로 비교하면서 마이클 조던이 더 훌륭한(superior) 리더에 더 카리스마적이고 활발한 인물이었으며, 수비력도 단연(no question) 더 뛰어나며 득점원으로서도 더 뛰어났다고 밝혔다. 또한 슛이 안 들어갈 때 조던은 무리해서 공격하지 않고 다른 방식(수비/패스/스크린 등)으로 팀에 공헌하는데 코비는 슛감이 돌아올 때까지 계속해서 슛을 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당연하다는 평을 내렸으며, 코비빠로 유명한 스티븐 A 스미스도 이를 인정했으나 그만큼 조던에 접근했다는 것만으로도 높게 평가했다. 조던빠인 스킵 베일리스는 그야말로 무한찬양 모드... 반면 코비는 서로 스타일이 다른 선수들의 비교라며, "MJ가 샤크와 함께 뛰었다면 어땠을까?"라고 언급했다. 사실 자신이 뛴 2012올림픽팀이 1992년 드림팀을 이긴다는 발언을 할 만큼 자존심이 강한 코비가 상대가 조던이라도 자신이 떨어진다는 걸 순순히 인정할리는 없었다. 이에 필 잭슨은 "두 선수를 감독한게 큰 행운이었다"며 수습... 그러나 최근 인터뷰에서 ‘노력(work ethic)’에 관해서는 코비가 조던조차 능가한다고 밝힌 바 있었다. "마이클은 동의 안하겠지만요"라고 덧붙이면서... [9]
턴어라운드 페이드어웨이 샷도 매우 좋았다.[10] 특히 볼핸들링은 조던보다도 위로 평가받을 정도로 역대의 반열에 올라섰지만 손이 작아서였는지[11] 중요한 순간에 잔기술로 수비를 다 속여놓고도 잔실수를 종종 저질러 팬들의 아쉬움을 자아내기도 했다. 리핏 시절 손부상 이후로는 노쇠화와 맞물리며 더 빈도가 늘어났고.
[image]

'''다시는 패스하란 소리 하지마'''

이기적인 플레이를 한다는 평이 커리어 내내 따라다녔고, '패스 안하는 코비'는 으로 자리잡았다.[12] 이는 앞선 주특기 포스트업과도 연관이 있는데, 트라이앵글 포지션에서 실질적으로는 포워드처럼 플레이하면서 3점 라인 안쪽에서 프레쉬한 포지션을 잡은 다음 간결하게 포스트업으로 밀고들어가는 조던의 베이스라인 공략과 달리, 코비는 베이스라인에서 자신이 플레이메이커처럼 활동하면서 하킴에게 배운 드림 쉐이크를 자기 스타일로 어레인지하여 상대 수비수를 흔든 뒤 점퍼로 마무리하는 스타일을 즐긴다. 조던 못지 않게 코비도 이 모든 플레이에 상대 수비를 벗기기 위한 훼이크를 마구 섞기 때문에 플레이도 상대적으로 느리고, 다른 선수들보다 시간도 많이 잡아먹는다. 다만 조던과의 차이점은 조던은 작은 페이크를 정말 순식간에 넣고 수비수가 잠깐 반응하는 사이 돌파하거나 슛을 던지는데, 코비는 이것저것 시도를 하느라 시간을 많이 끈다. 1대1 플레이에서는 두 선수가 별 차이가 없을 수 있으나, 팀플레이는 다르다. 조던은 기본기를 잘 가르치기로 유명한 노스 캐롤라이나 대학의 딘 스미스의 제자답게 플레이가 매우 간결하지만, 코비는 그렇지 못한데 이 점이 조던과 코비의 효율성 차이에 한몫하기도 했다. 또한 조던의 공격이 더 위력적이기 때문에 조던이 페이크나 방향전환 한번에 수비를 무너뜨릴 것도, 코비는 페이크->크로스오버->슛 페이크로 자꾸 공격이 길어지기도 한다.
결정적으로 마인드를 패스나 돌파 선택지보다는 슛 우선으로 정하기 때문에 경기가 꼬이면 꼬일수록 난사에 들어간다. 조던 이후 현시대 베이스라인에서 가장 창의적인 플레이를 하는 선수라는 평가도 있지만, 이게 기승전슛으로 결론이 나니 볼호그라는 소리가 나올 수밖에. 대표적인 플레이가 페이크가 안 먹혔을때 후속 플레이인데, "결론은 슛"으로 정해놓고 하다보니 페이크를 네번 다섯번씩 집요하게 하다 억지로 우겨넣는 경우가 많고, 그러다 보니 "코비는 죽어도 패스 안한다"는 인식이 강한 것. 어시스트 수치만 보면 괜찮은 편인데 슛하려고 맘먹었으면 죽어도 슛하고야 마는 고집이 볼호그란 인식에 한몫했다. 실제로 마음먹고 패스에 집중하는 경기에서는 르브론 못지 않은 패스를 보여주지만, 한두 경기씩 보여주기식으로 패스를 뿌린 뒤에는 다시 본인의 슛에 집착하는 모습으로 돌아가니 더 문제.
실제로 코비는 패스도 잘하고 시야도 넓은 선수다. 그러나 특유의 고집이 있어 한번 득점하려고 마음먹으면 슛감이 똥망이라도 뚫릴때까지 집요하게 공격을 하는 성향이 있다. 사실 에이스 득점원들이면 공격 욕심이 어느 정도 있고 조던도 이런 고집이 어느 정도 있지만, 조던은 슛감이 헬이면 돌파로 자유투를 얻어내거나 수비/리바운드에 더 치중하는 경향이 많은데 코비는 한번 안된걸 집요하게 하는 성향이 있다. 물론 코비라고 "들어갈 때까지 쏠테다!"라고 똥고집만 부리는 건 아니지만 전반적인 성향이 그렇다는 것. 그의 말년 수치가 유독 처참했던 것도 이런 이유가 크다. 2014-15시즌 초반에는 실제로 득점왕 시절만큼 슛을 많이 던졌다.
코비와 조던의 차이점 중 하나도 바로 이 슛셀렉션인데, 조던도 야투율이 망할 때가 있었지만 그럴때는 골밑돌파의 비중을 늘리면서 자유투를 얻어내 이를 커버했다. 팀동료들의 부진으로 상대 수비가 조던에게 몰리면서 조던이 야투율 부진에 시달렸던 97-98 플레이오프(35세)의 기록을 보면, 몇 경기 예외는 있지만 야투율이 저조할 때는 자유투 시도가 많고, 야투가 잘 들어갈 때는 자유투 시도가 적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때 조던은 야투율 45%이하일 때는 자유투가 평균 12.2개, 그 이상일 때는 9.2개의 자유투를 시도했다. 이떄 조던과 가장 비슷한 시즌은 09-10정도인데(득점와 야투율이 코비가 약간 낮지만 그나마 비슷하고 우승+나이도 1년반 차이), 이때는 공격력이 뛰어난 파우 가솔의 존재로 수비가 조던만큼 몰리지 않았음에도 야투율이 45% 미만일 때는 자유투가 평균 8개, 그 이상일 때는 9.6개로 오히려 야투율이 저조할 때 자유투 수가 더 적다.
이때 야투율이 부진할때 야투 시도는 28.3개로 야투율이 높을때(21개)보다 더 많은데 자유투 시도는 오히려 적다는 건, 슛이 안 들어가는데도 돌파로 자유투를 얻어내기보다는 오히려 외곽에서 슛을 더 많이 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점은 실제 경기를 봐도 확인되는 부분으로, 이 점 때문에 체감 위력에 비해 야투율이 낮을 때가 많다. 코비는 자주 비교되는 조던과 비슷하게 포지션 대비 좋은 체격, 뛰어난 운동능력, 만렙수준의 기술을 겸비한 선수였는데도 커리어하이 야투율이 46.7%에 불과했다. 이는 당대 최고이자 역대 수준의 스코어러였던 그의 명성에 비해 현저히 부족한 수치인데, 슛이 안 들어갈때도 막 던져대는 슛이 평균적인 야투율을 푹푹 깎아먹은 것이다. 이 때문에 슛감이 좋을 때의 코비의 공헌도는 조던 못지 않았지만, 부진할 때의 공헌도는 현저하게 떨어졌다.[13] 만약 코비가 슛을 더 신중하게 쏘는 선수였다면 평균 야투율이 현재보다 확연히 더 올라갔을 확률이 높다.
그래서 한 경기에 40개 이상의 야투를 시도한 게임이 열 번이나 될 정도라 별명이 '''코난사'''. 참고로 조던은 네번이다. 실제로 코비는 슛을 굉장히 많이 쏘는 선수였고, 그가 최고령 60점 기록을 낸 생애 마지막 경기에서 야투율을 50개나 쐈는데, 이는 1962년 이후 최다 야투시도였다. 그 전까지 이 부문에서 1위는 49개를 쏜 조던이었는데, 이 때 조던의 야투율은 55.1%, 코비가 50개를 쏜 경기에서 야투율은 44%였다. 위에서 언급된 단점(야투율이 부진할때도 무지막지하게 쏜다)과도 관련이 있는데, 사실 은퇴 직전의 코비가 60점을 쏴서 감동적인 경기였지만 순수 경기력 측면에선 필드골 50개 중 3점슛을 21개나 쏘는 동안 자유투는 고작 12개였다. 물론 스탯과 별개로 이 날 코비는 20년차 노장이 망가진 몸을 이끌고 위닝샷까지 집어넣는 등 맹활약하면서 팬들에게 큰 선물을 준 경기가 맞다. 한 마디로 생애 마지막 경기에서 코비의 모든 장점과 단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모든 면에서 코비답게 마무리한 셈.
다만 코비의 통산 야투율은 45%, eFG는 48% 수준인데 이는 동시대 유명한 슈팅가드였던 앨런 아이버슨, 트레이시 맥그레이디, 빈스 카터등보다 못하지는 않는 수준이다. 하지만 코비의 샷 셀렉션은 6성슈가는 물론이고 최고의 효율을 자랑하는 듀란트, 조던에 비해 무모하고 객기를 부린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성공시키는 게 정상이 아닌 변태 같은 터프샷의 비중이 높다. 반대로 말하면 항상 상대 에이스 스톱퍼가 기를 쓰고 죽자고 틀어 막고 있는, 들어가는 게 억지같은 샷들을 코비는 어떻게든 45%의 야투율로 때려넣고 있는 것이다. 최선을 다해서 수비하여 도저히 못 넣는다고 생각되는 샷들을 유도하여도, 이를 체감상 반반의 확률로 때려 넣는 선수를 상대하는 것은 상대에게는 상당히 무섭고 진 빠지는 일이다.
다만 또 하나 고려해볼 면이 있는데, 동시대의 슈팅가드 중 동료복이 많았던 것도 코비다. 특히 아이버슨은 한때 수비왕과 함께 뛸 때조차 공격에선 원맨팀에 가까웠으며 레이 알렌은 12년차가 되어서야 우승후보팀에서 뛰게 되었다. 피어스는 10년차. 데뷔하자마자 수비를 끌어오는 오닐이란 존재가 있었고, 3시즌 정도 원맨팀에서 뛰다가 가솔이란 훌륭한 득점원이 합류한 코비와는 차원이 다르다. 르브론의 히트시절 야투율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원래 야투율은 팀 동료들의 수준이 높을수록 수비가 분산되어 올라간다. 간단히 말해 오닐이 있는데 코비에게 더블팀을 갈 수가 있겠는가? 반대로 오닐을 더블팀하면 그만큼 코비가 오픈된다. 그리고 그때 오닐은 '''반드시 더블팀해야하는 선수였다.''' 이 차이가 잘 드러난 게 바로 오닐을 거의 싱글 커버리지로 막은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와의 2004 파이널이다. 당시 플레이오프에서 브라이언트는 서부 1,2,3라운드를 통틀어 25.1점, 42.4%의 필드골 성공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오닐에게 몰린 수비의 효과를 못 본 파이널에선 22.6점, 38.1%의 성공률을 기록했다. 물론 그를 막은 테이션 프린스가 훌륭한 수비수란 점도 크지만, 성공률 측면에서 오닐의 덕을 많이 본 건 확실하다.
초창기에는 우수한 락다운 디펜더이기도 했으나 샤크가 나가고 홀로서기 때부턴 공수 모두 집중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수비에선 종종 집중력을 잃고 본인이 필요한 순간에만 집중하는 선택과 집중식 디펜스를 선보였으며, 나이가 많아진 후에는 대인 수비에 기울이는 노력을 아예 없애버렸다.[14] 스스로의 기술은 날카롭지만 시스템에 적응하는 속도는 다소 느린 편인지 로테이션 수비를 헤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때문에 대인수비는 전성기 기준 조던과도 비견됐지만 팀 수비는 많이 차이가 난다고 평가받는다. 흔히들 전성기 코비의 대인수비에 웨이드의 운동능력과 헬핑, 블락능력을 합치면 조던일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Kobe Doin Work라는 영상에 코비가 플레이하면서 대화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 코비가 팀 디펜스에 영향이 적다고는 절대 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상에서 코비는 코트 위에서 동료들의 수비 위치를 일일이 지정하고,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해 동료들에게 이를 지적한 뒤에 본인이 움직인다.[15] 이런 식으로 팀의 수비 전체를 총괄하려는 것이 본인의 수비 위치에 대응에 늦어지는 것으로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동료들의 문제에 대해 일일이 경기 중에 다 지적하지 않고 자신이 해야 할 일만 한다면 말년의 스탯은 훨씬 나아졌을 가능성도 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는 조던도 비슷한데, 자신의 앞에서 한 명만 마음만 먹고 막으면 조던도 코비도 언제든 상대를 지워버릴 자신은 있었을 테지만 농구는 개인경기가 아닌만큼, 자신의 넓은 시야를 팀 전체의 수비에 활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허나 이것도 왕년의 이야기고 판타스틱 4를 구축한 시점부터는 본인의 역량이 여건이 안되는지 아예 수비는 신경을 끊고 공격에만 신경쓰고 있다. 수비 실력으로 조던과의 비교는 좀 엄한 것이, 물론 코비도 뛰어난 수비력을 가진 선수였지만, 조던은 맨투맨이던 팀수비던 수비도 역대급으로 잘하던 선수였고 '''35세의 나이까지도 리그 최고수준의 수비력을 선보인''' 선수였다. 당장 98년도만 해도 인디애나의 레지 밀러에게 플레이오프 7차전 4쿼터에게 붙어서 그를 무득점으로 묶은 적이 있다. 그리고 중요한 건 조던은 코비와 달리 가끔 수비를 잘한게 아니라 그 나이에도 매 경기 훌륭한 수비력을 보였다. 애초에 코비는 나이가 들면서 수비를 어느 정도 포기했지만 조던은 2차 은퇴 전인 만35세의 나이에도 수비까지 신경을 쓰던 선수이다.[16] 전성기 시절의 둘의 수비력을 굳이 비교했을때 조던이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면, 30대 이후의 수비력은 코비가 비교대상조차 되지 못한다.
또한 위와 같은 "커맨더형 수비수" 중 코비보다 더 뛰어난 선수가 케빈 가넷이다. 코비와 다르게 어린 시절부터 동료들과 활발히 커뮤니케이션을 하는데 능한데다가 코비와 다르게 빅맨이라 더 넓은 시야를 갖는 (가드는 1선 수비라 등 뒤의 상황을 파악하는데 한계가 있다) 선수였기 때문. 이런 성향은 말년까지 계속되었는데, 가넷은 정상급 수비력을 잃자 이러한 수비지휘력에도 불구하고 다시는 디펜스팀에 선정되지 못했다. 반면 코비는 계속해서 선정되니 디펜시브 팀에 관하여 논란이 일었다. 아무리 수비지휘력이 뛰어나도 실제 경기에서 수비력이 떨어지면 디펜스팀에는 선정되지 못해야 하는데, 코비는 실제 수비력이 리그 정상급에서 떨어진 후에도 몇번이나 선정이 된 것이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코비의 오프 더 볼 무브먼트는 절대 나쁜 편이 아니라는건다. 코비가 오프 더 볼 무브먼트를 마치 신경쓰지 않는것처럼 느낄 수 있겠지만 볼 호그 기질이 심해서 눈에 띄지 않았을 뿐.

4. 이야깃거리


  • 사실 코비가 세계적인 선수가 되어서 멋있고 특이한 이름으로 받아들여지는 거지, 따지고 보면 괴랄한 이름이다. 먼저 코비(Kobe)의 경우 코비의 아버지가 일본에서 고베 와규 스테이크를 먹고 감격받아 지었다고 하며,# 미들네임인 빈은 아버지의 별명인 젤리빈에서 따온 걸로 말 그대로 콩을 뜻한다. [17]
  • 코비가 신인이던 시절, 경기 중에 마이클 조던에게 가서 조언을 구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조던은 당시 이미 역대 최고 선수로 칭송받던 시절인데다 성질이 지랄맞은 것도 충분히 유명해서 신인들이 함부로 말을 걸 정도의 선수가 아니었는데 코비는 주저하지 않고 먼저 다가섰다고. 본인도 코비의 서슴없고 당당한 행동에 깜짝 놀랐고 그 덕에 유심히 지켜보게 되었다고 한다.
  • 아내인 바네사는 1982년 5월생인데 처음 만났을 때 둘은 만 20세와 17세였다고 한다. 바네사는 Tha Eastsidaz[18]라는 그룹의 백댄서로 활동했던 것 같다. 이 둘은 결혼해서 두 딸을 두고 있다. 그후 잘 사나 싶더니... 2011년 12월 결국 아내가 이혼을 신청했다. CNN에서는 이래서 고등학생 끝나자마자 결혼을 하면 안된다는 뉴스를 내보내기도. 그러나 2013년 01월 11일에 SNS를 통해 이혼소송은 취하할 것이며 다시 재결합할 것이라는 발표를 했다. 이후 2016년 12월과 2019년 1월 딸 두명이 더 태어났고 총 네 딸을 두고 있다. 헬기 추락 사고에서 코비와 함께 목숨을 잃은 아이는 둘째 딸이었다.
  • 한국에는 3번 방문했다. 98년도에 한창 젊을 때 방문해서 당시 아디다스 주간의 3 대 3 농구대회를 방문해 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태권도 도복을 입고 자세도 잡아보고 방문기간에 자신의 생일파티도 하기도 했다. 두번째 방문 때는 대스타가 되어서 농구 클리닉을 하기도 했는데, 정말 자세하나 꼼꼼하게 체크하면서 당시 클리닉에 참석했던 어린 선수들을 지도해줬다.
세번째 방문에서는 한국 중고교생들을 대상으로 클리닉을 개최했다. 기자회견에서 댈러스에게 패배한 후의 근황을 묻는 질문에 "7일 쉬고 바로 다음날에 훈련 시작했어요."라고 대답하며 진성 농덕후임을 다시 한번 인증했다. "나는 지는게 너무 싫다"라는 말까지 더하면서, 직장폐쇄로 인해 오히려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이 더 길어졌다고 하면서 철저하게 준비하겠다고 했다. 최고의 선수는 오직 연습뿐 직장폐쇄기간 동안 KBL에서 뛸 생각이 없냐는 질문에 "고려해보겠다"라는 립서비스도 잊지 않았다. 사실 말이 좋아 고려해보겠다지, KBL 구단 전부를 매각해도 코비 1년 연봉이 안된다(...).[19]
  • 중국에서 인기가 엄청나다. 때문에 중국에서도 여러번 광고에 나왔는데 물론 돈은 두둑이 받았다. 중국에는 한국보다 훨씬 더 많이 여러번 가서 시범경기에서도 뛰기도 하고 유소년 농구팀을 보러가는데 일절 소식없이 어느 학교 농구부에 잠깐 들렀는데 7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금새 모여들었다고. 르브론 제임스나 여러 NBA 유명선수들과 같이 중국에 간 적도 있는데 압도적으로 코비에게 사람들이 모여들어 사인을 받는다든지 여러모로 너무 차이가 나서 르브론 제임스가 웃으면서 중국에서는 아주 황제라고 말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 NBA 데뷔할 때만 해도 건방진 신인의 이미지가 강했다. 가능성은 보였으나 많기도 많고 실속이 적은 포스트 조던(Post Jordan) 중 하나로 여겨졌다. 플레이오프에서도 막판 클러치 에어볼을 날리는 플레이로 안티팬을 모았다. 또한 제스쳐나 플레이 스타일, 언론 플레이 등을 통해 의도적으로 조던을 따라하는 듯한 모습을 자주 보이면서 비판을 받기도 했다. 실제로 NBA 데뷔 당시 신장을 201cm로 발표했으나, 이후 조던이 은퇴를 번복하고 복귀한 뒤에 신장 프로필을 조던의 신장과 같은 198cm로 바꾸기까지 했을 정도.
  • 놀랍게도 무려 아카데미상 수상자다. 2018년 자신의 농구 인생을 담은 단편 애니메이션 "Dear Basketball"을 제작하여 호평을 받았는데, 이 작품이 오스카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에 후보로 오르더니 덜컥 수상까지 했다. 프로 농구인으로서 오스카 트로피를 받은 유일무이한 사람이다.

  •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이야기로, 마이클 잭슨과도 인연이 있다. 데뷔 초기의 마이클 잭슨이 코비를 네버랜드로 초청해 이런저런 조언들을 해 주었으며, 이후로도 계속 연락을 했다고 한다. 이런 인연으로, 2009년 마이클 잭슨의 장례식에 뮤비에 출연했던 매직 존슨과 함께 참석하기도했다.
  • NBA 한 경기 득점 2위 기록을 가지고 있다. 81점. 저거보다도 그 날 득점이 적은 팀들이 있는 마당에...[20]
  • 나름 힘든 기간을 거치면서 나름 독실한 천주교 신앙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이혼 역시 이러한 이유에서 결사적으로 피했다고...
  • 출퇴근을 헬리콥터로 한다고 한다. 소화불량이 있는지라 그 지옥같은 LA 고속도로에서 2시간 동안 차안에 앉아 있을 수가 없기 때문. 그런데 이후 헬기 추락사고로 요절할 줄 누가 알았으랴...
  • 한 인터뷰에서 뜬금없이 2012년 런던올림픽 농구대표팀이 1992년 원조 드림팀보다 낫다는 주장을 했다. 2012년 드림팀에 자신감을 주려는 발언인 줄 알았으나, 원조 드림팀은 유잉과 로빈슨등 센터진은 우리팀보다 낫지만 나이가 많은 선수들 중심이라 단판승부로 이길 수 있다는 논지. 그러자 찰스 바클리를 비롯한 당시 현역들이 돌아가면서 코비의 개드립을 맞받아치기 시작했다.[21][22] [23][24]
  • 사실상 시대와 룰이 다르다보니 실제 매치업을 비교해보는 것은 애매한 가정일 뿐더러, 애초에 농구는 각 포지션간의 단순비교로 승패가 정해지는 스포츠가 결코 아니다. 그 대표적인 예시가 미국을 꺾고 금메달을 차지한 아르헨티나. 드림팀1과 2012년팀은 어쨌건 NBA 슈퍼스타들을 모아둔 최강급 전력의 팀끼리 비교가 되는거지만, 아르헨티나는 지노빌리 외엔 NBA 선수조차 없는, 즉 드림팀에 비해 전력면에서 절대적 열세에 있는 팀이었다. 그런데도 던컨-아이버슨이 이끄는 압도적 오버롤의 미국을 꺾고 우승을 해냈다. 즉, 둘 중 어느팀이 이길지는 당연하게도 매우 어렵고 예측불가한 주제인게 사실이다. 다만 시대가 달라 직접적으로 맞붙여놓을 수 없는 팀끼리 비교할 땐 선수레벨의 총합을 우선적으로 따져보기 마련이고, 적어도 선수 재능과 기량의 합에 있어선 드림팀 1은 그야말로 역사상 최강의 농구팀 그 자체였기에 뜨거운주제가 된 것.[25][26]
  • 데뷔 이후 처음 몇 년은 아프로 헤어스타일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빡빡 밀고 다녔다.
  • 코비가 신던 신발인 하이퍼덩크 광고영상인데 코비가 하이퍼덩크를 신고 애스턴 마틴을 뛰어넘는 모습이 화제가 되었다(그것도 달려오는 차를!). 이 영상을 두고 조작이냐 아니냐라는 얘기가 나왔는데 당사자인 코비는 간접적으로 조작을 시인했다.[27](영상에서 코비가 차를 뛰어넘자 같이 좋아하는 남자는 당시 팀 동료였던 로니 튜리아프) 여기까지는 별문제 없었는데...
  • 2008년 Inside the NBA라는 프로그램[28]에서 코비를 인터뷰 하던 중 패널로 등장하는 케니 스미스가 자기도 저 영상을 따라해보겠다고(...) 직접 신발도 신고 시도했으나 실패(물론 웃기려고 만든것이고 실제로 치인 건 아니다). 스미스가 차에 치이는(...) 순간 진행자인 어니 존슨과 패널인 찰스 바클리, 그리고 코비까지 그야말로 정신줄을 놓고 웃었다. 참고로 저 영상에도 나오지만 스미스를 친 범인은 저 프로그램 진행자인 어니 존슨. 그후에 잭애스에 출연해서(...) 뱀을 풀어놓은 튜브욕조(...)를 뛰어넘어 덩크를 성공시켰다. 애스턴 마틴을 뛰어넘을 때와는 다르게 이번에는 제대로 성공했다.
  • FC 바르셀로나리오넬 메시의 팬으로도 유명하다. 터키 항공의 광고를 메시와 함께 찍기도 했다. 이와 관련된 일화가 있는데, 메시가 10대이던 시절 코비와 친분이 있던 호나우지뉴가 코비에게 언젠가 세계 최고가 될 선수라며 메시를 소개해줬다. 당시 호나우지뉴의 실력은 독보적인 세계 최고였고, 코비는 당연히 코웃음치며 호나우지뉴가 농담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호나우지뉴의 말 그대로 메시가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가 된 지금은 코비 역시 호나우지뉴 못지 않게 메시의 광팬이자 친구가 되었다.
  • LA 의회에서 Aug. 24. 2016을 "Kobe Bryant Day"로 의결 하였다. 20년 동안 LA Lakers 한 팀만을 위해서 뛴 프렌차이즈 스타이기 때문에. 날짜를 8월 24일로 한 이유는 코비가 8, 24 두개의 백넘버를 썼기 때문에 해당 일자로 정했다고 한다.
  • 조지 칼이 약물 이야기를 했을 때 언급한 내용 중 하나가 오프시즌 독일로 가던 선수라 언급을 했는데 조지 칼이 언급한 내용 전체를 대입하면 그 대상이 진짜 독일인인 노비츠키를 제외하면 코비 뿐이다. 코비는 실제로 오프시즌에 무릎 치료를 위해 독일로 자주 가곤 했다.
  • 농구 게임인 2K시리즈의 최신판인 2K8의 마이플레이어에서 레이커스를 상대하다보면 게스트 해설자로 코비가 나오는데, 이때 코비가 자신의 은퇴후 행보에 대해 언급한다(물론 게임이지만 음성 파일 자체는 실제 인물이 녹음한 것이므로 당연히 코비 본인의 얘기가 맞다). 해설자인 케빈 할런이 감독할 계획이 있냐고 하자 딱 잘라 전혀 없다고 하며, 어느 팀에서 기술 자문으로라도 일할 생각이 있다고 묻자 그럴 계획도 없다고 얘기한다. 현재처럼 후배들이 가끔 물어보고[29] 자기가 도와주는 식이 좋다고. 또한 우승을 할 당시에 아기였던 딸들이 이제 컸는데, 딸들을 돌볼 수 없었던것이 아쉬웠다며 가족들과 더 시간을 보내겠다고 했다. 조던처럼 감독할 생각은 전혀 없는듯. 근데 딸 농구팀을 감독하며 트라이앵글 오펜스를 썼다고 한다(...) [30]
  • 하도 장거리 슈팅이 유명해서인지 FPS에서 장거리 수류탄 킬을 내면 KOBE로 도배하는 게 불문율이 되었다.
  • 신발에 대한 일화를 이야기 하자면 아디다스와 계약 만료후나이키로 넘어오려는 순간 그당시에는 사건 사고 혹은 흑역사도 있었고 져지도 아디다스 였는데 아디다스 측에서는 8번 백넘버를 이용하여 투자도 해서 스타를 만들어주었는데 타브랜드로 갈아탄다는 소식을 듣자 아디다스 측에서는 배신감을 느껴 원래 백넘버 8번을 떼고 24번으로 바꿈 결국 8번보다 24번이 상징적인 번호로 각인되었다.
  • 마이클 조던의 마지막 시즌 백 스테이지 영상이 남아 마이클 조던 - 더 라스트 댄스를 만들 수 있던 것처럼 브라이언트 역시 은퇴를 앞두고 있던 2015~2016 시즌 ESPN 팀과 영상을 찍은 상태라고 한다. #
  • 페라리를 좋아했던 걸로도 잘 알려져있다. 유명한 일화중에 오토기어 일화가 있는데, 코비 브라이언트는 자동차 운전을 할때 수동기어보다 오토기어를 더 편하게 생각하고 좋아해서 페라리 구입할때 페라리 측에 이이대해서 문의를 했다고 한다. 페라리측에서 코비를 위해 특별히 오토기어 기능이 있는 페라리 제작했다고 한다.
  • 사후에 레딧의 한 유저가 부검서를 뿌렸는데,[31] 팔 절단, 뇌 손실, 하체 절단[32] 등 크게 손상을 입은 모습에 여러 팬들이 충격을 받았다.
  • 유명한 얘기지만 NBA 선수 2세대다. 아버지 조 "젤리빈" 브라이언트는 54년생으로 75년에 데뷔해 8시즌간 필라델피아 76ers, 샌디에이고 클리퍼스(현 LA클리퍼스), 휴스턴 로키츠에서 뛰다가 이탈리아 리그로 이적해 8시즌 더 뛰고 은퇴했다. 이탈리아에서 뛸 때 조의 상대팀 선수로 뛰고 있던게 당시 대학을 갓 졸업한 브라이언 쇼로, 어린 꼬마였던 코비와 재밌는 인연이 있는데 코비 브라이언트/생애 참고. 코비가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나고 이탈리아에서 자란 건 이 때문[33] 빌 월튼의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가 필라델피아를 업셋하며 화룡정점을 찍은 77년 파이널에서도 뛰었다. 조 브라이언트는 커리어 통산 8.7점, 커리어 하이가 11.6점일 정도로 평범 그 자체인 선수로 파워포워드 겸 스몰포워드로 뛰었으나, 당시로선 상당히 개인기가 좋고 무엇보다 운동능력이 어마어마했던 선수였다. 클리퍼스 소속이던 79-80시즌 개막전 당시 LA 레이커스와의 경기에서 리그 최강의 센터 카림 압둘 자바 위로 꽂은 슬램덩크가 유명한데, 50초부터 볼 수 있다. 리플레이로 보면 카림과 부딪히고도 계속 올라가는데 거의 머리가 림 높이만큼 올라간다. 아들이 비교불가로 실력은 앞서지만, 206cm에 장신, 괴물같은 점프력 등 신체조건만큼은 조가 더 뛰어나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 이도 여담이지만 코비의 외삼촌, 조에게는 처남이 되는 John Arthur "Chubby" Cox도 NBA에서 잠깐 뛰었다. 7경기, 총 78분 뛰면서 평균 4.1점 기록했으니 정말 잠깐(...) 뛰었다.

4.1. 신발


조던처럼 신발로 유명한 선수중 한명이었는데, 초창기에는 아디다스의 전속 모델이었으나 나이키로 바꿨다.[34] 나이키의 수석 디자이너 Eric Avar와 긴 상의 끝에 Nike Zoom Kobe IV를 내놓자 모든 농구계가 술렁였다. 그 당시 대부분의 농구화는 하이탑의 육중한 느낌의 모델이였는데 [35] 코비가 축구화처럼 얇고 날렵해 보이는 농구화를 원한다고 말한 것이 반영된 디자인이였다. 런닝화처럼 생긴 신발로 어떻게 발목 부상을 안입고 82경기를 뛸 수 있냐는 말이 나왔으나, 그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엄청난 활약을 하고 우승도 거머쥐면서 그 이후 코비 시그내쳐 신발 라인은 (아킬레스건을 다치고 난 뒤 돌아온 뒤 나온 신발 Kobe IX를 제외하면) 다 로우탑으로 제작되었으며, 메시나 Flyknit처럼 가벼운 소재를 중심으로 만들어지게 되었다.[36] 가장 먼저 런닝화나 크로스 트레이닝 신발에 많이 쓰는 나이키 Flyknit 테크놀로지를 농구화에 접목한 것도 코비였다. 코비 은퇴 이후 폴 조지나 존 월이 16/17시즌 까지 코비 10을 착용했고, 토마스와 드로잔은 코비 AD를 신고 뛰었다. 최근 론조 볼과 데빈 부커도 코비를 자주 신고 뛴다. 현재 NBA에서 가장 자주 보이는 신발들이 바로 코비 라인업이다.

4.2. 맘바 멘탈리티 (Mamba Mentality)


많은 사람들이 그는 농구를 좋아하다 못해 사랑했다고 말한다. 고등학교 때 여자친구랑 집에서 마이클 조던 경기를 보면서 데이트했다니 뭐(...). 그의 아내 바네사는 다른 여자가 아니라 농구를 최고의 연적으로 여겨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 이렇게 농구를 사랑했기 때문에 코트위에서 완벽하고자 했고, 코비하면 뺼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맘바 멘탈리티라고 불리는 그의 근성이다.
그는 항상 코트 위에서 완벽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했으며, 그 중 하나로 카메라 플래시 때문에 슛을 놓치자 6시간 동안 태양 아래서 햇빛을 보면서 슛을 하는 연습을 한 일화도 있다. 코비 브라이언트는 이처럼 승부근성이 어마어마하였기 때문에 엄청난 훈련을 하였으며 그위 정교한 슛들이 쉽게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그의 이러한 모습 때문에 국내에선 농구 오타쿠라 하여 '농덕후'라 불리고 있다. 그의 '하루' 연습 메뉴는 다음과 같다.
>아침 4시에 기상. 가볍게 몸을 풀고 5시 30분에 개인 체육관에서 훈련 시작. 각각 5개의 스팟에서 200개씩 던지며, 들어가는 것만 카운트.[37] 완료 후 같은 5개의 스팟에서 페이더웨이로 100개씩 카운트. 이후 팀훈련 종료 후 또다시 개인 훈련 시작. 이때 웨이트도 병행하는데 그 종류는 다음과 같다.
>
>Day 1 & Day 4
>Bench press
>Lat pull-downs
>Incline press
>Military press
>Abdominal crunches
>
>Day 2 & Day 5
>
>Lateral dumbbell raises
>Bar dips
>Tricep press-downs
>Bicep curls
>Abdominal crunches
>
>Day 3 & Day 6
>Back squats/Front squats
>Leg curls
>Leg extensions
>Calf raises
>Abdominal crunches
그게 어느정도였냐면 자신을 발전시키기 위해 한참 후배인 크리스 폴에게 스크린을 타는 법을 배웠고, 하킴 올라주원에게 포스트업과 드림 쉐이크를 배웠다. 조던에게도 이런저런 조언을 받았으나 무슨 소리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38]
이처럼 워낙 투지가 강하고 농구덕후라서 가벼운 부상에도 불구하고 경기에 출전하는 선수로 유명했다. 근데 그 정도가 점점 심해져서 09-10 시즌에는 '''손가락 인대가 끊어졌는데''' 경기에 출전하였다. 그런데도 시즌내내, 그리고 파이널에서까지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며 우승을 거머쥔 적도 있다. 그 부상입은 손으로 얻어낸 자유투를 끝까지 마무리하고 벤치로 스스로 걸어서 들어가는 장면은 NBA 팬들에게 두고두고 회자되는 명장면.
마이클 조던은 전성기 컨디션으로 지금 NBA 선수들과 1 on 1을 하면 이길 것 같냐는 질문에 "다른 선수들은 다 내가 이길 수 있다. 하지만 코비만큼은 승패를 장담할수 없다."라는 발언을 하며 "그는 나의 모든 기술을 훔치기 때문이다.("He steals all of my moves.")"라는 이유를 댄 적이 있다. 이에 대해 코비는 "옛날엔 모두 당신의 플레이를 따라하고 나도 당신을 따라했지만, 지금은 다들 나를 따라한다."라는 패기로운 답문을 한 것도 유명하다. 조던은 그냥 본인이 다 바를 수 있다고 말하더라도 아무 문제가 없는' 위치이며 애초에 그쪽이 조던의 성격 및 이미지와도 훨씬 잘 어울리는데, 자신만을 오롯이 치켜세워도 아무도 뭐라 할 수 없는 위치인 조던이 굳이 코비라는 단 하나의 예외를 '''스스로''' 언급했다는 것 자체가 파격적인 일인 것. 그 외에도 르브론vs코비를 논하는 주제에서 "게임을 지배하는 능력은 르브론의 우위, 우승하는 능력은 코비의 우위"라고 평가하며[39] ''''코비는 자신과 같은 저주받은[40] 사람''''이라고 말한 바도 있다. 앞서 말했지만 코비의 맘바 멘탈리티를 그 콧대높은 조던이 인정한 것이다...!
이렇듯 조던은 후배 레전드 중 '''유독 코비를 의식하고 인정하는 모습'''을 수차례 보여주었는데, 샤크나 던컨, 르브론 등 코비와 동급이거나 그 이상의 커리어를 쌓은 선수들에게도 이렇게까지 유별난 관심과 애정을 두지는 않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코비에게 굉장히 우호적인 셈이다. 자신의 아성에 근접하지는 못했을지언정, 자신을 닮은 플레이스타일과 맘바 멘탈리티로 대표되는 승부욕을 기반으로 단순 포스트 조던을 넘어 또다른 레전드가 되어 리그를 호령한 점이 조던의 시각에서 보기에도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조던은 그렇게 아끼던 후배였던 코비의 추모식에서 추모 연설을 하며 가슴 아프게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성격은 스스로를 믿고 항상 근성있게 한게 지나쳐서 커리어 말년에 '코난사'라고 불리며 양날의 검이 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맘바 멘탈리티는 카이리 어빙, 빅터 올라디포 등 많은 선수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 뿐 아니라 종목을 넘어 역시 만만찮은 근성맨인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 GOAT를 노리고 싶지만 대표팀 우승이 없는 선수인 '''리오넬 메시(!)''' 등 다른 스포츠 선수들에게도 귀감이 되었고 코비의 맘바 멘탈리티를 존경한다고 말했다..

5. 사건사고 및 논란




6. 말말말


'''What can I say, Mamba out'''.

"내가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맘바 아웃(맘바는 떠난다.)."

코트에서의 마지막 작별 인사[41]


7. 관련 문서


[1] 코비는 드래프트 전 신체검사와 정보공개가 공식적으로 이뤄지기 전 시대의 선수라 그의 정확한 신장에 대해 말이 많은데, 부인 바네사 브라이언트는 2017년에 인스타그램을 통해 밝힌 바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내 키가 몇이나 되냐는 질문이 많은데 나는 5피트4인치이고 코비는 정확히 6피트 4랑 3/4인치에요. 내가 이걸 어떻게 아냐면 아나운서들이 얘기하는 키(198cm)만큼 크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맨발 키를 직접 재봤거든요. 물론 나이키 신발을 신으면 6피트 6인치(198cm)죠". 현재 해당 포스팅을 삭제한 상태이나, 여러 팬사이트에서 인용되고 있다. https://fansided.com/2017/03/27/kobe-bryant-height-6-foot-4-lakers/ 코비 본인이 직접 언급한 것도 있는데, 2006년 경에 불우한 아동을 위한 자선행사로 대니얼이란 아이를 만난 코비는 "다들 내가 6피트7인치라고 아는데, 우리끼리만 살짝 얘기하는 거지만 난 사실 6피트4인치야"라고 언급했다. 사실 미국 사회에서도 키 얘기를 하면 맨발신장을 얘기하지만 보통 NBA공식 신장은 신발신은 키를 얘기하고, 만약 코비가 6피트 4.75 인치라면 일상생활에서 자기가 6'4"라고 언급하고 다니는 것도 말이 되고(키가 185.7인 사람이 "키 높여 말한다" 소리를 듣기 싫어서 그냥 185라고 할수도 있다), 농구화를 신으면 실제로 6'6"이 되기 때문에 바네사가 언급한 키가 딱 앞뒤가 맞는다. 굳이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기도 하고, 실제로 농구화 굽은 낮은 건 1인치 정도, 높으면 그 이상이기 때문에 저 키라면 NBA기준으로 키를 전혀 속이지 않은 케이스가 된다.[2] 원래는 아디다스였다. 요절한 지금도 시그니쳐 슈즈는 계속 나오고 있지만 코비의 요절 이후 코비 시리즈의 전매가가 폭등하자 2020년 1월 28일에 나이키에서 코비 시리즈의 생산을 잠정 중단하기로 결정했다.[3] 명문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에서만 20년 선수 생활을 한 자랑스러운 프랜차이즈 스타이지만, 이때 트레이드가 드래프트 당일에 이뤄지는 바람에 드래프트 행사에선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가 아닌 샬럿 호네츠의 모자를 쓰고 참가했다. 이미 트레이드하기로 얘기가 끝난 상황이라 해설자들도 "샬럿의 선택이지만, 레이커스 선수입니다"라고 언급하였고 조금만 더 일찍 트레이드가 이뤄졌다면 정식으로 레이커스 모자를 쓸 수 있었다는 것. 실제로 2004년 2번 픽 에메카 오카포 역시 샬럿이 지명권을 트레이드해서 (4번픽 +알파를 주고 사옴) 뽑았는데 드래프트 날 이전에 이뤄져서 정식으로 샬럿 모자를 썼다.[4] 루키 시즌부터 2005-06 시즌까지 사용하였다.[5] "하루가 24시간이고 공격제한 시간 또한 24초이니 난 매일 매순간 최선을 다하겠다" 라는 의미로 등번호를 바꾸었고, 2006-07 시즌부터 은퇴 시즌까지 사용하였다.[6] 2014, 2015년 올스타전은 부상으로 불참[7]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수여.[8] 빈스 카터르브론 제임스 같은 조던 못지 않은 점프력을 지닌 선수들이 조던이나 코비에 비해 부족한 면이 바로 이 유연성이었다. 이들은 조던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점프할 수 있었지만 조던만큼 유연하거나 공중에서 균형감각이 뛰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일단 뛰고 나서 공중에서 수비를 제끼고 더블 클러치로 점프슛을 던지는 것처럼 고도의 유연성이 필요한 동작을 조던만큼 완성도 있게 하진 못했다. 그러나 코비는 이 두 부분에서 조던만큼 뛰어났기 때문에 조던이 하던 것처럼 공중에서 온갖 동작을 할 수 있었다(여기서 말하는 조던은 2차 3연패 때 벌크업한 조던이 아닌 몸이 더 슬림하고 유연했던 20대의 조던이다. 사람들이 보통 조던과 코비를 비교할 때 20대의 코비와 30대의 조던을 비교하는 경우가 많아 코비가 더 유연했다고 생각하곤 하는데, 같은 나이 대비 조던은 코비 못지 않게 유연했다.). 공중동작 관련해 코비가 조던보다 부족한 것은 파워와 점프력이었고 여기서 공중동작의 빈도수나 수비를 제끼는 능력이 차이가 났지만, 동작의 완성도 면에서 조던을 완벽하게 따라할 수 있던 것은 코비가 유일했다.[9] 사실 잭슨의 멘트는 실제로 조던이 누가봐도 더 뛰어나니까 이를 인정하지 않는게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한 것이지, 코비를 칭찬하는 뉘앙스에 가까웠다. 조던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노력파인데 그 조던보다도 더욱 노력한다는 건 초인의 영역이다. 아이버슨과 비교는 엄한 것이 그는 조던이나 코비처럼 한 시대를 풍미한 선수들에 비해 명확히 클래스가 떨어지는 선수이기 때문. 아이버슨보다도 훨씬 게을렀는데도 순수 재능빨로 NBA에서 버티던 자말 크로포드의 케이스처럼, 재능이 천재적인데도 노력이 부족해서 톱급이 못 됐다면 아쉬운 것이지 대단한게 아니다. 조던과 코비가 대단한 건 조던은 그 이상 하기 힘들다고 여겨질 정도로 노력을 많이 했는데, 코비는 그보다도 더했기 때문에 대단한 것이다.[10] 1대1 상황에서 펌프 페이크로 수비수를 속이고 한바퀴 돌아 쏘는 점퍼는 코비의 전매특허였다.11초부터[11] 코비 본인의 표현에 따르면 "I can palm a basketball, but I can't palm palm a basketball."라고 한다. palm은 한 손으로 공을 잡는다는 의미인데, 잡을 순 있지만 확실히 잡을 순 없단 소리. 분명 코비는 공을 한 손으로 잡는 건 가능하다. 경기 중에도 공을 한 손으로 잡고 쭉 뻗어 수비수로부터 공을 보호하는 장면도 여럿 있고. 그러나 줄리어스 어빙이나 마이클 조던처럼 공을 공중에서 한손으로 휙 잡아버릴 정도로 쉽게 잡지는 못한다. 사소한 차이지만 톱클래스 선수들 사이에선 큰 차이가 있는데, 조던이나 어빙의 경우 공이 손에서 빠져나갈 염려가 없다보니 한손으로 공을 크게 휘두르면서 수비수의 주의를 흐뜨러놓은 다음 바로 돌파를 하거나 슛을 하는 식의 플레이, 조던이나 케빈 가넷처럼 공중에서 hang time으로 수비를 떨군 뒤 착지 직전에 한 손 슛, 어빙이 카림 압둘 자바를 농락한 플레이처럼 한손으로 공을 잡은 상태에서 몸은 밀려나서 라인 밖으로 나가는데 팔만 쭉 뻗어 레이업을 올려놓는 등 고난도 플레이가 가능했는데 이런게 코비는 모두 불가능하다. 저 상황에서 한 손으로 잡는다면 공을 흘릴 확률이 높기 때문. 기술의 완성도와 상관없이 순수 신체조건 차이라 아쉬운 부분.[12] 2019년에 코비가 한 인터뷰에서 샤크의 워크에틱(work ethic)을 깐 일이 있었는데, 이에 샤크는 트윗으로 코비가 패스를 더했더라면(특히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와의 2004 NBA 파이널에서) 반지를 더 얻었을 것이라고 반격을 날렸다(...).[13] 과거 일부 팬들은 이 점을 두고 "폭발력이 조던보다 뛰어나다"고 표현했는데, 이건 사실 기복이 심한 것이다. 당연히 한 선수의 경기력이 실제로 "폭발"하지는 않는다. 어떤 득점원이고 슛감이 좋을때 많은 슛을 쏘는 것은 당연하고, 코비가 조던보다 3점을 훨씬 많이 쏘는 선수기에 60점을 넘긴 초고득점 경기가 더 많은 것이다. (6번 vs 4번) 사실 60점 이상 두번 더 넣은데 반해 50점 이상 경기는 31대25로, 40점 이상은 173대 134, 30점 이상은 563 대 431로 조던이 전부 더 높다는 걸 생각하면 "폭발력"이란 정체불명의 분야에서 코비가 얼마나 앞서는지도 의문이다.. 추가로 브라이언트가 60점을 넘긴 경기는 모두 2004년 핸드체킹룰 규제 강화 이후에 나왔다.[14] 그럼에도 NBA 올 디펜시브 팀은 연금받듯이 타버려서 디펜시브 팀의 권위에 의문을 품는 사람이 많아졌다.[15] 불스에서는 이 역할을 스카티 피펜이 주로 맡았다.[16] 물론 이건 조던이 비정상적으로 뛰어난 거지 코비가 못하는게 '''결코''' 아니다. 코비 나이 때면 이렇게 에너지가 떨어지는게 정상이다. 포인트는 애초에 수비력 차이가 큰 두 선수를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는게 적절치 못하다는 것.[17] 고베에 대한 인지도가 낮은 대다수 미국인들에게 "Kobe"는 고급 쇠고기 정도의 느낌이다(미국에서 유통되는 고베산 쇠고기는 대부분 수출용 고급육이다). 그나마 스펠링은 같지만 발음은 "코우비"라고 해서 그렇지 발음까지 "코우베"라고 했으면 영락없는 쇠고기.[18] 스눕독이 이 그룹의 멤버인데, 아무래도 프로젝트형 그룹인듯 하다.[19] 게다가 원래 수준이 현저히 떨어지는 리그에서 더 뛰어난 리그의 슈퍼스타를 영입하려면 그 가치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줘서 꼬셔와야 한다. LA 갤럭시 시절 데이비드 베컴이 말도 안되는 수준의 연봉을 받은 것처럼. 게다가 미국과 영국/스페인의 축구 수준 차이보다 미국과 한국의 농구 수준 차이가 훨씬 크다는 것, 또 NBA 연봉의 최소 두 배 이상은 줘야 고려해볼만하다.[20] 그런데, 저 기록은 2위다. 1위는 윌트 체임벌린이 기록한 100점. 그런데 더더욱 무서운 사실은 코비가 저 기록을 달성하기 전에 윌트 체임벌린이 각각 78점, 73점으로 2위와 공동 3위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21] 가장 먼저 바클리가 "나이 얘기 하니까 웃긴다. 지금 말한 코비는 34살이지만 92년 자신이나 조던은 29세의 최전성기였거든 ?" 그리고 "92년 드림팀에 뽑힐만한 지금 미국 국대선수는 코비, 르브론, 듀란트 뿐임. 즐" 하고 받아쳤다. 바클리에 이어 쪼잔하기로 유명한 그 분도 "absolutely laughed", 그리고 우리 팀엔 명예의 전당 헌액 선수가 나 포함해 11명임. 니들도 11명 헌액되고 나서 비교 ㄱㄱ, 우리가 니들에게 배운게 아님. 니들이 우리보고 배운거임. 코비가 날 웃겼음. 덕분에 실컷 웃었음 ㅋㅋㅋ라고 받아쳤고, 래리 버드는 "걔네들이 이길거야. 난 뛰어본지 20년 됐고 우린 늙었거든"이라고 래리 버드 특유의 디스를 작렬하고, 스카티 피펜은 "우리가 25점차로 이긴다"라고 받아쳤다.[22] 만약 실제로 붙으면 코비는 전성기의 마이클 조던과 매치업되어 공수 양면에서 밀릴게 뻔하다. 둘 다 전성기라도 코비가 딸리는데, 29살의 조던과 34세가 다 되어가는 코비라면 객관적인 우열이 확실한 건 사실이다.[23] 굳이 비교할 경우 2012년 팀이 그나마 우세를 점할만한 포지션은 1번과 3번 슬롯 뿐이며라인업을 통틀어 190이하가 존 스탁턴 한 명 뿐이었던 드림팀 1은 빠른 가드에게 약하다는게 거의 유일한 약점이었고, 이 때문에 대학선발팀과의 경기에서 듀크의 바비 헐리에게 털린 바가 있었다. 물론 특급 1번 디펜더인 스탁턴이 있었지만, 아무리 스탁턴이라도 본인보다 2인치 이상 크고 힘과 운동능력은 월등히 앞서는 웨스트브룩을 감당하는건 어렵다. 물론 이는 정석적인 조합을 상정했을때의 얘기이고, 조던-드렉슬러-피펜의 라인업을 세우고 조던을 웨스트브룩에게 붙이는 것도 가능하기에 꼭 웨스트브룩vs스탁턴의 구도를 염두에 둘 필요는 없다. 웨스트브룩은 착화 193은 되는 사이즈이며, 엄연히 장신 포가의 범주에 들어가기에 딱히 조던이 막기 부담스러울 정도로 작은 선수가 아니기 때문. 오히려 조던이 사이즈, 힘, 운동능력 등 신체적인 부분으로는 거의 전 부문에서 우위를 점하기에, 투박하고 피지컬 의존도가 높은 웨스트브룩은 조던의 수비에 고전할 여지가 많다.(반대로 웨스트브룩은 조던을 절대 막을 수 없다.) 2번 드렉슬러-코비를 비교할 경우 전성기나 커리어로는 코비가 훨씬 위이지만, 34세인 당시 코비가 최전성기인 드렉슬러보다 위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부분.[24] 그래도 3번 슬롯은 2012팀의 명백한 우세이다. 버드는 르브론에 필적하는 스몰포워드이지만 드림팀 합류 당시 노쇠화와 부상으로 인해 제기량이 아니었고, 피펜은 드림팀 합류 당시엔 슈퍼스타급은 아니었다. 바클리-말론이 버티는 4번 자리에서는 드림팀의 우위이지만, 2012팀에서는 리바운드 열세를 각오하고서라도 르브론-듀란트의 동시출전으로 맞불을 놓을테니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즉, 포워드진만 따진다면 릅듀가 버티는 2012팀을 결코 만만하게 볼 수 없다는 것.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5번으로, 그 역대급 센터진을 감당할 수 있는 빅맨이 2012팀에는 담백하게 없다.[25] 사실 04대표팀의 경우 센터는 사실상 팀 던컨 하나밖에 없고, 포워드가 지나치게 많은데다가 있는 포인트가드도 전부 리딩보단 득점을 즐기는 선수들이라 팀조합이 개판이었다. 훈련시간도 부족하고 대부분 선수들이 첫 대표팀 출전이라 어렸을때부터 자주 같이 출전해 조직력이 좋은 아르헨티나와 비교불가한 환경이었던 것. 스페인 대표팀 등 유럽 정상급 팀들이 미국 대표팀을 상대로 선전할 수 있는 것 또한 이러한 차이에너 기인한다. 즉, 능력 총합은 좋지만 조직력과 팀구성이 개판인 팀과, 능력 총합은 떨어지지만 찰떡궁합 팀의 비교인 셈. 그런데 92와 12팀의 경우 포지션별 밸런스는 둘 다 괜찮고, 조직력도 큰 차이가 나지 않으니 이 경우는 능력치의 총합이 꽤나 객관적인 기준으로 적용할 수 있다. 비유하자면 이런 경우 04년 아르헨티나와 미국이 아니라, 조직력/조합 수준은 비슷한 환경에서 출발하는 NBA내 팀들 사이에서 우열을 비교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 경우 승리를 장담하진 못해도 더 쎈놈들이 모인 팀의 승리가 더 쉽게 그려지는게 사실이다.[26] 1992년 대표팀은 조던의 말처럼 선수 12명 중 11명이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 있는 레전드들이다. 래리 버드매직 존슨이 커리어를 마치는 시점이지만 마이클 조던스코티 피펜 등 주축선수 대부분은 20대 후반의 전성기였다. 게다가 패트릭 유잉, 데이비드 로빈슨, 칼 말론, 찰스 바클리로 구성된 원조 드림팀의 막강한 포스트는 센터기근을 맞고 있는 2012년 타이슨 챈들러, 케빈 러브 등의 골밑과는 비교불가 수준이라는 데에 이견이 없다.[27] 당연한게 저건 조작을 하지 않고 직접 스턴트를 하는게 멍청한 짓이다. NBA 슈퍼스타들은 어마어마한 연봉을 받는 만큼 몸이 재산이고, 어쩌다 다치면 팀에게도 엄청난 손해를 끼친다. 실제로 마이클 조던이 은퇴 후 오프라 윈프리쇼에 나와서 한 말에 따르면 이들의 계약서에는 오토바이를 못 타는 건 물론이고 스키도 못 타도록 되어 있다고 한다(만약 금지조항에 있는 행위를 하다 다치면 팀은 연봉지급의 의무가 없다). 돈도 문제지만 저런 스타들이 다치면 팀 전력에도 크나큰 지장을 주고 그들을 보기 위해 비싼 돈 주고 오는 팬들에게도 민폐다. 그런데 코비가 전문 스턴트맨도 아닌데 저런 위험한 짓을 굳이 할 이유가 1도 없다. 아무리 코비가 운동능력이 뛰어나도 막말로 순간 삐끗하면 크게 다쳐서 장기결장하거나, 잘못하면 은퇴, 혹은 죽을지도 모르는데 그런 바보짓을 광고 하나 찍자고 굳이 할리가 있는가?[28] TNT에서 NBA 경기 방송 직전이나 하프타임때 방송하는 일종의 프리게임쇼. 찰스 바클리, 케니 스미스, 그리고 샤킬 오닐이 패널로 출연하고 어니 존슨이 진행을 맡고 있다. 주로 NBA에서 일어난 사건, 사고나 팀 동향, 리그 동향, 또는 중계 중인 경기에 대한 평가를 소개하고 패널들이 이를 해설해 주는 프로. 가끔 가다 찰스 바클리의 개그 본능으로 시청자의 배꼽을 떨구는 일도 많아 재미를 더한다.[29] 이 때 아이재아 토마스가 자신에게 전화해 물어본 걸 언급하고 그를 극찬한다.[30] http://bleacherreport.com/articles/2748354-kobe-bryant-coaches-daughters-basketball-team-runs-triangle-offense[31] 캘리포니아에서는 부검서를 공개하는 것이 원칙이라 한다.[32] 생전 키가 6' 6" 였는데 시체는 5' 5"(약 165cm)였다고.[33] 이 때문에 코비는 이탈리아어와 스페인어를 유창하게 하고, 축구도 좋아한다. 좋아하는 팀은 AC밀란. 조가 은퇴하고 난 뒤에 코비가 13세 때 브라이언트 가족은 영구적으로 필라델피아로 이사하게 된다.[34] 아디다스와 계약 만료후 자신에게 딱맞는 농구화를 찾기 위해 리복, 에어 조던등 여러가지 브랜드를 신기도 하였다.[35] 코비의 아디다스 시절 농구화만 봐도 알 수 있다.[36] 디자이너 Eric Avar는 코비가 신발을 제작하는 과정에 점점 더 많이 참여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코비는 항상 "나는 가장 가벼운 농구화를 원한다"는 어필을 해왔다. 사적으로도 많이 친했는데, 서로의 취미 생활이나 즐겨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등이 비슷해서 디자인 작업할 때 큰 도움이 되었다고.[37] 코비 본인 말로는 한번 훈련할 때마다 약 1,500여개를 던진다고 한다.[38] 경기 도중 상대팀인 불스의 조던으로부터 '어이 애송이 그런 식으로 하면 안되지'라는 둥으로 맞붙을 때마다 플레이에 대해서 이것저것 충고를 받았다는 모양이다. 암만 생각해도 조던의 트래쉬 토크였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코비에게는 순수한 조언으로 들렸던 모양(…).[39] 단, 릅이 19-20시즌 4번째 우승과 파엠을 거머쥐며 우승하는 능력 역시 꿇리지 않음을 증명했다.[40] 이기지 않고는 못배기고, 이길때까지 성장하지 않고는 못배길 정도로 승부욕에 미쳐있다는 점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41] 이후 이 멘트는 버락 오바마임기 마지막 백악관 만찬때 밝힌 발언으로 써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