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넬슨
1. 개요
미국의 농구인으로, 역대 NBA 명장 중 한 명이자 NBA 최고의 유능한 단장이기도 했다. 통산 승수 1,335승으로 NBA 감독 역대 1위. 덧붙이자면 '''공격농구의 대명사'''.
2. 선수 시절
1963년 드래프트 3라운드 17번으로 시카고 제퍼스에 입단, 제피어스 시절과 레이커스 시절에는 눈에 띄는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다가, 1965년에 보스턴 셀틱스로 입단 이후 1976년에 은퇴할 때까지 이곳에서 11년 동안 뛰면서 총 NBA 파이널 우승컵을 5번이나 드는 등 화려한 시즌을 보냈다.
선수 시절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69년 파이널 7차전으로, 당시 11점 정도를 기록하는 식스맨이었던 넬슨은 3쿼터에만 12점을 퍼부으며 점수차를 벌리는데 큰 공헌을 했다. 하지만 4쿼터 종료 1분여을 남겨두고 역사에 남는 플레이를 했는데, 1점차 리드를 간신히 지키고 있던 보스턴의 존 하블리첵이 공을 놓친 것이 자유투라인 부근에 있던 넬슨에게 흘러갔고, 넬슨이 쏘아올린 슛은 림 뒤쪽에 맞고 한번 높이 튕겨 올라갔다가 그대로 그물에 빨려들어갔다. 이것이 사실상 우승을 결정지은 슛이 되었고, 이 플레이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업셋 중 하나인 69년 파이널을 논할때마다 하일라잇으로 빠지지 않고 나오는 장면이 되었다.
올스타 선정도 없고 경기당 30분 이상 뛰어본 적도 없는 비교적 펑범한 선수였지만, 건실한 플레이로 팬들의 사랑을 받는 뛰어난 롤플레이어로, 이런 그의 공헌을 높게 산 셀틱스는 그의 등번호를 영구결번시킨다.
3. 감독 시절
3.1. 밀워키 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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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에 은퇴하자마자 밀워키 벅스의 어시스턴트 코치로 부임했고, 11월에 초대 감독인 래리 코스텔로가 물러나자 감독 겸 선수 인사부장으로 승진하였다. 이후 1977년부터는 부사장으로 승진한 웨인 엠브리의 뒤를 이어 단장을 겸한 뒤 1985년에는 부사장까지 전부 겸해 1인 3역을 맡았다.
초반 세 시즌은 성적이 부진했지만 1977년부터 영입된 전 보스턴 셀틱스 코치 존 킬릴리(1928~1996)의 보좌를 받으며 1979년부터 시드니 몽클리프, 폴 프레시, 마이크 던리비 Sr., 주니어 브리지맨, 테리 커밍스, 리키 피어스 등을 영입하여 동부 컨퍼런스의 강호로 만들어 1981년부터 1986년까지 6년 연속 지구 1위를 차지하였지만, 래리 버드가 이끄는 동부의 최강팀 보스턴 셀틱스에 막혀 우승을 못 했다.
3.2.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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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에 밀워키에서 물러난 이후에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부사장 겸 단장으로 취임했고, 1988년에는 감독직도 겸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팀 하더웨이-미치 리치몬드-크리스 멀린을 축으로 한 '''RUN TMC''' 라인업을 주축으로 한 공격농구로 다시금 강호로 올라섰지만, 1991년에 미치 리치몬드가 새크라멘토 킹스로 떠나자 삼인방이 해체됐다. 대신 그는 라트렐 스프리웰, 크리스 웨버, 조 스미스 등 젊은 유망주들을 드래프트에서 뽑아 키워내는 데 주력했으나 1993/94 시즌을 끝으로 플옵에 나가지 못했고, 1995/96 시즌 도중에 해임됐다.
3.3. 뉴욕 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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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에 전임 감독인 팻 라일리를 대신해 뉴욕 닉스의 감독으로 부임, 재임 기간 동안의 성적은 34승 25패로 그다지 나쁘지 않았으나 패트릭 유잉-샤킬 오닐 트레이드 요구로 결국 구단 내에서 반발이 심해져 시즌 도중에 해임당했다.
3.4. 댈러스 매버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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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부터 단장 겸 감독으로 2년만에 현장으로 복귀, 그 해에 숀 브래들리, 1998년에 더크 노비츠키를 영입함으로써 리빌딩을 가속화시켰고, 1999-2000시즌 대표적인 서부 컨퍼런스의 약체였던 팀을 40승에 도달케 하였으며, 다음 시즌인 2000-01시즌에는 무려 12년만에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키는 등으로 댈러스를 LA 레이커스,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대항마로 만들어 주었다.
게다가 그는 샤크를 방어하는 작전인 핵-어-샤크(Hack-a-Shaq) 예찬론을 펼치기도 했었는데, 2004-05시즌 도중에 에이버리 존슨에게 감독직을 물려주고 사임했고, 시즌이 끝나자 아들인 도니 넬슨에게 단장직까지 물려주고 팀을 떠났다.
3.5. 다시 워리어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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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애제자였던 크리스 멀린 (당시 단장)과 함께.
2005~06시즌에 34승 48패라는 최악을 성적을 남기고 경질당한 마이크 몽고메리 감독 후임으로 복귀, 이곳에서 '배산적' 배런 데이비스를 축으로 하여 2006~07시즌에 42승 40패(컨퍼런스 8위, 지구 3위)로 13년만에 플레이오프에 복귀, 상대는 1라운드에서 시드 1으로 진출한 댈러스 매버릭스. 그는 자신이 지휘했던 댈러스의 모든 것을 꿰고 있었기 때문에 6차전만에 2라운드에 진출했으나, 결국 유타 재즈에게 5차전 만에 탈락했다.
그 다음 시즌인 2007~08시즌에도 절치부심해서 48승을 기록했지만, 49승을 거둔 덴버 너기츠에게 밀려 플레이오프 진출이 좌절되었고, 마지막 2시즌 동안 팀은 또 다시 하위권을 전전했다.
결국 돈 넬슨은 2009~10 시즌을 끝으로 경질, 34년 동안의 지도자 생활은 이것으로 끝을 고했다.
4. 감독 스타일
기본적으로 돈 넬슨은 선수들을 거의 터치하지 않는 타입이다. 전술적으로 복잡한 것을 요구하지도 않고 선수에게 훈련량이나 전술적 움직임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NBA라는 세계 최고의 농구무대에서 보기 힘든 자율농구.
그대신 넬슨은 주로 주어진 환경에서 가장 공격적으로, 파격적으로 플레이한다. 선수들이 자기 맘대로 플레이해서 무리수를 던지건 딱히 신경쓰지 않다보니 선수들은 대담하게 속공 3점 던지는 걸 주저하지 않고 턴오버에 이은 역습 상황에선 일단 달린뒤 덩크부터 노리는 극한의 공격형 스타일. 돈 넬슨의 팀은 항상 1,2,3번부터 시원하게 달리면서 찬스나면 일단 던지고 보고 하프코트에서 2대2, 3대3같은 정교한 패싱전술보다는 개인기 자신있는 선수가 코트 벌린뒤 시원한 1대1 돌파로 득점한다. 닉스에서 실패한 것도, 사진에서 나와있듯 패트릭 유잉, 찰스 오클리, 데릭 하퍼같은 하프코트 경기에 익숙한 선수들로만 런앤건을 하려다 실패한 것.[2]
이것이 가장 돋보였던 시기가 바로 노비 MVP 택배[3] 사건을 남긴 06~07 골스. 이 시기 골스는 한국에선 골스파르타라고 불릴만큼 묻지마 닥공, 묻지마 속공, 묻지마 3점등 선수들 공격력을 그냥 후리하게 살려주는 타입으로 한번 들어가기 시작하면 배런 데이비스, 스티브 잭슨, 몬타 엘리스, 제이슨 리차드슨 등이 거침없이 분위기 타고 밀어붙이는 닥공팀으로 유명했다. 그리고 이때 이후로 부진하긴 했지만 중복자원이라는 평가를 무시하고 지명했던 넬슨 최후의 유산인 스테판 커리까지. 어떤 의미에선 현시대 NBA의 흐름인 스몰 라인업 및 빠른 공수전환에 이은 전원 3점 슈터화 같은 스피드와 하이페이스,슛 거리를 왕창 끌어올린 공격농구의 선구자격 인물이기도 하다.
보통 업템포 하이페이스 다득점을 노리는 팀 치고는 딱히 정교하게 세팅하여 점수를 짜내기보단 던지고 던지고 또 던져서 왕창 점수를 쌓아놓는 농구다 보니 같은 런앤건이라고 불리더라도 이쪽이 무작전 농구로 보이기도 쉽고[4] , 클러치 상황에서 기복도 엄청나게 심한 편. 그 때문에 단 한 번도 파이널엔 진출해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는 선수들과도 가족처럼 지내는 온화한 모습을 보여 선수들 사이에서 신망이 두텁다고 한다.
그의 코칭 트리에 속한 인물로는 게리 세인트진 전 새크라멘토 킹스 감독, 마이크 던리비 전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 감독 등이 있다.
5. 은퇴 이후
2012년 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6. 역대 성적
6.1. 선수 시절
6.2. 감독 시절
7. 여담
- NBA 선수들과 현지 기자들 사이엔 '워스트 드레서'로 자주 손꼽히는데, 그는 주로 양복 자켓 안에 터틀넥을 즐겨 입지만 옷 색상이랑 몸매가 맞지 않는다는 평을 들었다고 한다.
- 아들인 도니 넬슨(현 댈러스 매버릭스 단장)은 아버지와는 달리 지도자보다 구단 운영과 스카우팅에서 엄청나게 성공한 케이스이며, 1989년 사루나스 마르셜오니스 극비 스카우트 작전 일화로도 알려져 있다.
8. 관련 문서
[1] 영구결번[2] 특히 이 시기의 유잉은 30대 중반이 가까워진데다 고질적인 무릎문제가 점점 심해지는 상황이었다. 20대 중후반이던 89,90년 즈음에는 유잉도 달리는 농구를 한 적이 있지만, 안 그래도 공격부담이 높고 프로커리어 내내 무릎보호대를 달고다닌 유잉에게 달리라는 건 무리한 요구.[3] 참고로 정말 mvp를 택배로 받은것이 아니다! 그럴듯한 농담이 퍼지게 된 것뿐[4] 마이크 댄토니식 7 second or less 오펜스가 지향하는 런앤건은 경기 페이스를 올리더라도 철저하게 코트를 벌리고 벌려서 공간을 만든 뒤 빠르게 3점 슛 찬스를 만들어낸다는 목표의식이 뚜렷한 런앤건이지만 넬리볼은 그런 거 없는 매우 즉흥적인 닥공 스타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