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남

 




閔泳南
1907년 7월 4일 ~ 1986년 1월 8일
1. 개요
2. 생애


1. 개요


대한민국의 전 공무원, 정치인이다. 본관은 여흥(驪興)[1].

2. 생애


1907년 전라남도 해남군 마산면 화내리[2]#에서 1882년 무과에 급제하여 구한 말 참서관(參書官)과 비서감승(祕書監丞) 등을 지낸 아버지 민직호(閔稷鎬)와 3남 8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일본 교토제국대학 농학부 임학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해남군 미산면장, 해남경찰서장, 광주경찰서장, 농림부(현 농림축산식품부) 임산과장, 임정과장, 조림과장 등을 지냈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전라남도 해남군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자유당 박기배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1955년 통합야당 민주당에 입당하였다. 이후 계보상으로는 구파에 속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김석진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4.19 혁명 이후인 1960년 5월 관선 전라남도지사에 임명되어 같은 해 10월까지 역임하였다. 이후 같은 해 연말 치러진 1960년 지방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전라남도지사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어 다시 전라남도지사를 역임하였다. 그러나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경질되었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당 후보로 전라남도 해남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민주공화당에 해당 선거구로 공천을 신청하였으나 대한민국 합동참모의장 출신의 임충식에 밀려 탈락하였다.
[1] 충정공파 28세 영(泳) 항렬.[2] 인근의 노하리, 학의리와 함께 여흥 민씨 집성촌이다. 민병초 전 국회의원과 민형배 21대 국회의원도 이 마을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