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더 마인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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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e Rote Armee Fraktion
Baader-Meinhof-Gruppe
1. 개요
2. 상세
3. 관련 매체
4. 관련 문서


1. 개요


냉전 당시 서독에 존재했던 '''극좌 테러리스트 단체.'''
정식 명칭은 Rote Armee Fraktion(로테 아르메 프락치온; RAF/적군파). 1967년 이란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 국왕의 서독 방문 반대 데모 진압 중에 학생인 베노 오네조르크(Benno Ohnesorg)가 서독 경찰 카를하인츠 쿠라스(Karl-Heinz Kurras)의 총에 살해된 것을 계기로 결성되었다. 당시 독일을 비롯한 서구 사회는 상당히 보수적이었고 독일에선 베노 오네조르크의 피살을 계기로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사회 분위기에 저항하는 68운동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름은 리더인 '안드레아스 바더(Andreas Baader: 1943 ~ 1977)'와 '울리케 마인호프(Ulrike Meinhof: 1934 ~ 1976)'의 이름에서 따왔다.
울리케 마인호프의 남편이었던 클라우스 라이너 뢸(Klaus Rainer Röhl)은 서독의 좌파 성향 잡지인 '콩크레트(Konkret)'의 설립자이자 출판인이었으며 마인호프는 여기서 편집장으로 일했다. 둘 사이에는 자식으로 딸이 두 명 있었는데 작은딸인 베티네(Bettine Röhl)는 훗날 독일의 유명 작가가 되어 어머니의 일대기를 쓰기도 한다. 마인호프가 점점 극좌파 쪽으로 기운 것과 달리 뢸은 좌파 사상에 회의적으로 변하면서 부부 간의 다툼이 심해져 1967년 별거에 들어간 후 1968년 이혼했다. 이후 뢸에게 앙심을 품은 마인호프는 1970년 적군파 동료들과 함께 뢸의 집을 습격해 자신의 두 딸의 납치를 기도하기도 했으나, 납치는 마인호프의 여동생인 빈케가 아이들을 숨기면서 실패했다. 이 사건 이후 뢸은 완전히 전향하여 서독 경찰의 보호를 받으면서 적군파 체포에 협조하였으며 자식들 또한 어머니의 행동과 사상에 비판적이게 되었다.
2009년 쿠라스가 동독의 집권당인 독일 사회주의통일당 소속 당원이자 슈타지 요원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으며 2012년에는 오네조르크를 사살한 동기가 당초 쿠라스가 주장한 정당방위가 아닌 고의적 동기[1]였다는 사실 또한 드러나면서 쿠라스를 다시 재판에 회부하라는 여론이 거세졌다. 그러나 쿠라스의 간첩 활동과 오네조르크의 사살 사이의 확실한 연관점이 발견되지 않았고 당사자인 쿠라스는 2014년 12월 16일 베를린에서 사망하면서 사건은 영구 미제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2. 상세



▲ 영화 <바더 마인호프 콤플렉스>에 등장한 이란 팔레비 국왕(모하마드 레자 팔라비, 통칭 샤)의 서독 방문 반대 시위 장면
서유럽이 극좌 모험주의로 몸살을 앓는 중에서도 특히 바더 마인호프의 활약은 특기할 만하다. 체 게바라식 반제국주의마오주의를 기치로 내걸고 은행강도, 폭탄 테러, 납치 처단, 영리 목적 유괴를 '''혁명'''의 이름으로 무자비하게 감행했다. 팔레스타인해방기구의 급진파인 팔레스타인인민해방전선(PFLP)과 제휴해 각종 기술과 장비를 공급받았고 나중에는 일본적군파와 연대해 RAF로 개칭했다. 그런데 RAF는 '''Royal Air Force'''. 즉 '''영국 공군'''의 약자이기도 해서 이것이 의도된 작명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세계대전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시점에서 독일인들에게 밤마다 융단폭격을 쏟아붓던 영국 공군은 공포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이 단체가 일으킨 일련의 사건들은 독일 언론이 '''독일의 가을(Deutscher Herbst)'''이라고 불렀다. 대표적 사건으로 "위르겐 폰토와 지그프리트 부박 암살사건", "한스마르틴 슐라이어(Hanns-Martin Schleyer) 유괴사건", "루프트한자 181편 납치사건(일명: 란츠후트호 사건)"[2], "RAF 멤버의 옥사(獄死)" 및 "한스마르틴 슐라이어의 보복살해"로 꼽는다. 워낙 유명한 데다가 활동이 두드러진 탓에 서독 경찰과 방첩 기관의 우선 표적이 되어 바더 마인호프를 지도한 두 사람이 체포된 후 이전보다 과격해져 이념에서 약간 멀어진 테러 조직으로 표류하기도 한다. 1977년의 루프트한자 비행기 납치(란츠후트(Landshut)호 사건)가 실패하고 수뇌부가 옥중에서 자살을 택한 뒤에는 동독 비밀경찰 슈타지(Stasi)의 현지 하수인으로 전락한다.
1980년대까지도 끈질기게 테러를 감행했으나 동유럽권 몰락 후 기반을 상실하고 동독에 잠복하던 주요한 조직원들도 대부분 체포당해 재판을 거쳐 교도소에 차례로 보내져 와해되었다. 극소수 잔여 세력이 프랑스벨기에에 잔류했으나 그 조직원들도 1998년 언론을 이용해 해체를 정식으로 선언한다.
울리케 마인호프는 1976년 감방에서 목을 매 자살했고 안드레아스 바더는 루프트한자 여객기 납치 사건이 GSG-9에 의해 진압당했다는 보도를 라디오로 들은 직후 '''권총'''으로 자살했다. 또한 바더가 자살한 바로 그날 구드룬 엔슬린(Gudrun Ensslin), 얀카를 라스페(Jan-Carl Raspe) 등 서독 당국에게 체포된 수뇌부 인사들 등도 감방에서 자살했다. 엔슬린은 마인호프와 마찬가지로 목을 매어 자살했고 라스페는 바더와 마찬가지로 '''권총'''으로 자살했다. " 죽음의 밤 " 이라고 불리는 이 집단 자살 사건은 너무나 부자연스럽고 말이 안되는 점이 많아서 사형을 집행할 수 없었던 독일 연방헌법수호청이 자살이라는 형태로 수뇌부 인사들을 살해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있다. 부자연스러운 점은 다음과 같다.
  • 슈탐하임 교도소는 독일에서 가장 경비가 삼엄한 교도소다! 게다가 바더 마인호프 수뇌부 인사들이 수감된 구역은 1급 보안 구역이었다. 그런 곳에 흉기를 반입해 자살한 것이다.
  • 슈탐하임 교도소에 투옥시키면서 외부와의 연락을 막기 위해 철저한 배경조사를 거친 교도관들로 교체해놨는데 독일 정부는 연줄이 있는 교도관을 통하여 흉기를 반입해 자살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 자살 사건 이후 바더 마인호프에 협력한 교도관을 찾아내어 처벌하려는 수사 또한 거의 이뤄지지 않았고 협력자를 찾지도 못했다. 교도소에 테러범과 협력한 교도관이 근무한다는 사실 자체가 엄청난 문제인데도 대충 넘어간 것, 용의자가 많은 것도 아니고 한정된 인원이 근무하는 교도소. 그것도 고위험 인물이 수감된 1급 보안구역은 정말 한정된 인원만 근무하는데도 결국 찾지 못했다.
실제로 자살한 동지들과 마찬가지로 감방에서 '''칼'''로 자살을 시도했으나 가까스로 생존한 수뇌부인 이름가르트 묄러(Irmgard Möller)가 수뇌부의 죽음은 자살이 아니며 독일 정부가 자신들을 죽이려 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묄러의 증언에 의하면 " 죽음의 밤 " 11시경 갑자기 졸음이 쏟아져서 잠이 들었는데 다시 깼을 때는 중환자실에 누워 있었다고....묄러의 가슴에는 4곳의 깊게 찔린 상처가 있었다. 물론 독일 정부 및 연방헌법수호청은 이 의혹을 부정하고 있다.
바더 마인호프에게 처단된 서독의 명사로는 서독 굴지의 은행이었던 드레스덴 은행(후에 코메르츠방크에 인수 됨) 은행장인 위르겐 폰토(Jürgen Ponto), 독일 연방'''검찰총장''' 지크프리트 부바크(Siegfried Buback), 서독 '''경제인 연합회장''' 한스마르틴 슐라이어 등이 있고 후일 미합중국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지낸 북대서양조약기구 연합군 사령관인 미합중국 육군 대장 알렉산더 헤이그도 바더 마인호프에게 살해당할 뻔했다.
극좌 테러리스트일뿐이라는 견해에서 부터 권위주의적 사회에 저항한 이상주의자라는 시각까지 후세의 평가는 평가자의 사상적 진영에 따라 다양하다. 물론 바더 마인호프가 자신들 입장에서 가장 완벽하다고 간주되는 사회를 급진적으로 실현하려고 시도했다는 것은 분명하나, 이들의 테러리즘과 과격함, 무자비함을 생각해 본다면 이데올로기를 떠나 쉽게 긍정할 수 없는 면모가 있다. 독일의 법률상 나치 부역 혐의와 더불어 살인에는 공소시효가 없기에 지금도 바더 마인호프 소속 조직원들은 수배범으로 명시되어 있고 심지어 2009년에도 바더 마인호프 조직원이 살인 혐의로 체포당한 적이 있다. 독일에는 사형제도가 없기에 사형당한 바더 마인호프 조직원은 없으나 대부분은 지금도 특별 격리 대상으로서 분류되어 무기수로서 교도소에서 생활한다. 그러나 전향하거나 출소한 일부는 독일 행정부에서 보조금을 받으면서 일반인으로서 생활하기도 한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이들의 등장이 나치의 폐해와 부모 세대에 대한 독일 전후 세대의 환멸과 연계되어 있다는 점이다. 2차 세계 대전 직후 서독은 과거에 대해 쉬쉬하려는 분위기가 있었고[3], 부모 세대의 끔찍한 범죄를 안 독일 전후 세대들은 부모 세대에 대해 경멸/혐오하는 수준으로 치달았다. [4] 바더 마인호프는 극단적인 방책으로 그런 과거의 과오를 청산하겠다고 나선 셈. 여기다 당시 베트남 전쟁으로 대표되던 미국의 과오라든가 자본주의 문제도 끼어들면서 당시 서독을 비롯한 서유럽에선 68운동이 전개되었고, 이로 인해 사회적으로 큰 혼란이 들이닥치기 시작한 시기였다.
바더 마인호프의 몰락으로 말미암아 현재 유럽의 극좌 조직은 이탈리아붉은 여단이 명맥을 겨우 유지한다.

3. 관련 매체


바더 마인호프를 대상으로 한 다큐멘터리 소설과, 그 소설을 원작으로 한 세미 다큐멘터리 영화 <바더 마인호프 콤플렉스(Der Baader-Meinhof Komplex)>(2007)도 나와 있다. 독일 영화 최고의 제작비를 들였고 시대 고증도 아주 잘 되어 있는 수작이다. 브룩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를 감독한 울리히 에델이 감독했다.

▲ 영화 <바더 마인호프>의 영어 버전 트레일러 독일어 버전 트레일러
독일 영화계에서 바더 마인호프는 상당히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다. 이들의 활동 시기가 뉴 저먼 시네마의 부흥과 겹치기 때문이다.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제 3세대나 옴니버스 영화 독일의 가을 같은 영화가 바더 마인호프와 뉴 저먼 시네마 간의 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영화다. 68혁명이나 세대 갈등을 다루는 독일 영화엔 빠지지 않는다고 보면 좋다. 더 에쥬케이터라던가 토니 에드만, 서스페리아(2018)에서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한편으로는 좀 상관없을 것만 같은 뮌헨에서도 잠깐 언급된다. 이스라엘 모사드 요원들이 같은 정보상에게서 같은 아지트를 빌려온 PLO(팔레스타인 해방기구) 조직원과 마주치고는 총을 겨누고 고래고래 소리지르다가, 주인공 아브너가 독일계라서 바더 마인호프에서 왔다고 속였다. 잘 속였는지 PLO 조직원 알리와 맞담배를 피우면서는 "유럽 빨갱이들 이데올로기 따윈 쥐뿔도 관심없다. 우리는 고향을 되찾고 싶을 뿐이다."는 말까지 들음으로써 바더 마인호프는 영화에 등장하지도 않았는데 의문의 1패를 당한다.(...)[5]
사족으로, 붉은 여단의 총리 알도 모로 납치 사건을 다룬 영화 <굿모닝 나잇(Buongiorno, notte)>(2003)과 함께 감상하면 양국의 관점의 차이가 여실히 드러나 상당히 재미있다. 이 영화도 상당한 수작.

4. 관련 문서



[1] 그러니까 서독 젊은이들이 경찰의 과잉대응에 분노해 들고 일어나도록 하여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오네조르크를 죽였다, 즉 쿠라스는 프락치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2] 자세한 것은 GSG-9의 '마법의 불꽃 작전'항목 참조[3] 이건 프랑스 같은 다른 유럽 국가들도 그랬다. 청산이 이뤄졌지만 금기시 되는 지점도 있었다.[4] 정치 성향은 바더 마인호프랑 반대지만, 독일/오스트리아 전후 세대에 속하는 아놀드 슈워제네거는 반 나치 단체인 시몬 비젠탈 센터에 후원을 한데다, 정계 진출 직전 아버지가 나치에 어떻게 부역을 했나 확인하기 위해 의뢰를 했을 정도였다. 아놀드는 아버지랑 사이가 안 좋았던 편이긴 했지만, 독일/오스트리아 전후 세대가 어떻게 이 문제를 받아들였는지 알 수 있는 부분.[5] 상기된 독일 영화 <바더 마인호프 콤플렉스>에서도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독일 이상주의 극좌파 세력인 바더 마인호프 단원들과 아랍 민족주의자들인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조직원들 간의 갈등이 어렴풋이 묘사된다. 군사훈련이라는 명목 하에 요르단에 와서 팔레스타인 해방 무장단체와 함께 지내는데, 성적으로 보수적인 팔레스타인인들 앞에서 일부러 보란 듯이 나체로 일광욕을 하면서 그들을 조롱하고, 전략에 대해 질문하는 교관에게 바더가 "섹스나 총질이나 그게 그거지", "우리는 도시 게릴라나 하는거다, 도시에 씨발 사막이 어딨냐" 같은 무신경한 대답을 하며 설전을 벌이기도 한다. 둘 다 서로 같은 진영이니 손을 잡았을 뿐, 서로의 대의에는 무관심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