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렌츠 해

 


'''바렌츠 해(Barents Sea)'''
1. 요약
2. 역사
3. 영해 분쟁


1. 요약


북극해의 일부에 속하는 바다로 북서쪽은 스발바르 제도(Svalbard), 북동쪽은 제믈랴 프란차-이오시파 제도(Земля Франца-Иосифа), 동쪽으로는 노바야 제믈랴 제도(Новая Земля), 그리고 남쪽은 콜라 반도로 둘러싸여 있다. 남서부의 만은 따로 백해라고 불리고 있다. 바렌츠라는 명칭은 인도에 가기 위한 신항로를 찾다가 이 바다를 수 차례 항해한 네덜란드의 탐험가 빌럼 바렌츠(Willem Barentsz : 1550~1597)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동쪽은 노바야 제믈랴 제도의 남섬인 유즈니 섬(Южный)을 경계로 삼아 카라 해, 서쪽은 갑자기 평균 수심이 2,000m로 깊어지는 노르웨이 해로 이어진다. 석유천연가스, 메탄 하이드레이트 등 해저 자원이 매장되어 있으며 대구(어류) 같은 어족 자원도 풍부하다.

2. 역사


난류인 북대서양 해류의 영향이 미치는 해역에 접한 무르만스크노르웨이 북부의 바르되(Vardø)는 해수면이 얼지 않는 부동항이다. 북부와 동부, 남부 부근은 겨울에 얼어붙게 되므로 쇄빙선으로 얼음을 깨면서 항로를 개척하지 않는 한 항해가 불가능하다. 1500년대, 포경업과 아시아까지 갈 북동 항로 개척을 목적으로 네덜란드와 영국, 러시아 등의 나라들이 탐사선을 보내 항해를 시작하게 되었다. 해역의 이름인 바렌츠도 당시 이 북극 해역을 탐사한 네덜란드의 탐험가인 빌렘 바렌츠(Willem Barentsz, 1550~1597)의 이름에서 따왔다. 빌렘 바렌츠는 북극항로를 뚫기 위해 탐사하다가 바다가 얼어붙어서 노바야 제믈랴 섬에서 오두막을 짓고 버티다가 작은 보트를 만들어서 탈출에 성공했다. 하지만 바렌츠 본인은 영양실조와 괴혈병 등으로 인해 건강이 악화되어서 탈출 도중 사망했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는, 소련으로 각종 자원과 무기를 지원해주는 주요 항로가 되어 북극해는 연합군의 보급로를 차단하려는 독일 해군과 공군, 그리고 미국까지 닿아있는 유일한 젖줄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인 소련 해군이 격렬하게 싸우는 전쟁터가 되었다. 루프트바페폭격기와 구축전투기를 동원해 연합군의 호송선단에 사정없이 폭격을 가하면서 어뢰로 공격했고, 유보트까지 가세한 이 공세를 막아내려는 호위함들과 소련 해군의 전투기와 군함들 간에 치열한 전투가 전개되었다.
냉전 시대 이후에도 소련 해군 북방 함대와 SLBM을 탑재한 원자력 잠수함을 경계하는 NATO 국가들의 해군에 의해 중요한 길목이 되는 바다가 된다. 바렌츠 해의 해저에는 1988년에 화재 사고를 일으켜 침몰한 소련의 마이크급 잠수함 K-278 콤소몰레츠(Комсомолец)와 소련 붕괴 후 러시아 연방이 무단으로 투기한 방사선 폐기물이 많이 가라앉아 있는 탓에 방사능 오염이 우려되고 있다.

3. 영해 분쟁


1970년대에 소련과 노르웨이 사이에서 대륙붕을 둘러싼 영해권 분쟁이 시작 되었고 오랫 동안 그 상태가 유지되었다. 그렇지만 2010년 9월 15일에 분쟁 해역 면적을 거의 2등분하여 경계선을 그어 '''<바렌츠 해와 북극해 경계와 협력에 관한 협약>'''을 맞교환하며 상호조약이 체결되면서 타협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