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동 삼릉

 



[image] '''대한민국의 사적''' '''제219호'''
'''배동 삼릉'''
拜洞 三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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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73-1
'''분류'''
무덤/왕릉
'''면적'''
4,533㎡
'''지정연도'''
1971년 4월 28일
'''제작시기'''
신라
'''위치'''


1. 개요
2. 상세
3. 둘러보기
4. 관련 문서


1. 개요


[image]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73-1번지에 나란히 있는 능 3기. 사적 제219호.
경주가 시로 승격되기 전, 즉 배동이 배리였던 시절에 지어진 명칭인 배리 삼릉(拜里 三陵)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으며 2016년 현재까지도 명확한 기준 없이 여기저기서 혼용한다. 일단 공식명칭은 2011년 7월 28일 고시로 배리삼릉 → 경주 배동 삼릉으로 변경됐다.

2. 상세


신라 8대 국왕 아달라 이사금 박아달라, 53대 국왕 신덕왕 박경휘, 54대 국왕 경명왕 박승영의 능이라고 전한다. 이 세 왕의 공통점은 모두 박씨이며, 아달라 이사금은 신라 초기 박, 석, 김씨가 번갈아가며 왕위를 잇던 시기 박씨 마지막 왕이었고, 신덕왕은 아달라이사금 이후 '''728년''' 만에 부활한 박씨 왕조의 왕, 경명왕은 그 다음 왕이다. 아달라 이사금과 다른 두 왕릉의 연대차가 너무 커서 세 왕의 능이 맞는지 확신할 수는 없으나, 맞다면 박씨 왕조 부활의 상징성과 계승성을 내세우고자 이 자리에 홀로 있던 박씨 마지막 왕 아달라 이사금 옆에 묻었다고 볼 수 있다.
세 능 중 가운데가 신덕왕릉인데 1963년 7월 19일에 도굴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원래 왕릉으로 지목된 능은 대한민국에 현존하는 후손들[1]의 좋지 않은 시선도 감안해 발굴조사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도굴로 훼손된 능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조사가 이루어졌다. 능 3곳 모두 돌로 방을 만들고 문이 있는 전형적인 굴식 돌방무덤이고, 왕과 왕비의 합장묘이며, 능 내부에서는 신라 왕릉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채색 벽화의 흔적이 발견되어 주목을 받았다. 원래는 사신이 그려져있던 것이 아닌가 추측되고 있으며, 벽화 외 다른 부장된 유물은 이미 도굴당했으므로 없고 도굴꾼이 버리고 간 소주병만 남아있었다고 한다.
신라 후기 박씨 왕조 마지막 왕인 55대 국왕 경애왕 박위응의 능과 경애왕이 후백제 견훤에게 털린 포석정, 신라의 시조 혁거세 거서간을 비롯한 5명의 박씨 왕이 묻힌 오릉이나 박혁거세 탄생설화의 배경인 나정 등이 모두 배동 삼릉 근처에 몰려있어서 경주 시가지 서남쪽, 남산의 서쪽 일대인 이 지역이 서라벌 내에서도 박씨 세력과 특히 밀착된 지역이 아닐까 추측된다.
일대에는 삼릉숲이 있는데 국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나무 숲으로 손꼽힌다. 사진작가 배병우의 사진이 유명해져 사진을 찍으러 오는 사람이 많아졌다. 특히 안개가 낀 날의 분위기는 신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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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관련 문서




[1] 한국에 존재하는 박씨의 80%를 차지하는 밀양 박씨의 시조 밀성대군 박언침이 신덕왕의 손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