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례억지전략
1. 개요
냉전시대에 프랑스가 채택하고 있었던 핵전략. 쉽게 말하자면 "이기지는 못하지만, 대신 '''같이 죽자'''"는 식의 물귀신 발상에 기반을 둔 핵 억지전략.
'강자에 대한 약자의 억지'(la dissuasion du faible au fort. 영어로는 deterrence by the weak of the strong)라는 용어로도 불린다.
프랑스 공군 장성이자 전략학자였던 피에르 갈루아(Pierre Marie Gallois. 1911-2010)가 기초한 것을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이 채택한 것이다.
2. 기본 특징
프랑스는 미국이나 소련과 같이 엄청난 핵전력을 만들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소량의 핵무기로 전 인류의 몰살을 가져올 최종전쟁의 방아쇠를 당긴다는 개념으로 만들어낸 무서운 전략이다. 우선 프랑스는 일단 적대국의 핵이 자신의 국가를 향해 발사되었다는 정보를 접수하면 '''모든 프랑스의 핵무기를 적국으로 발사해 상대의 대도시 한 두군데는 반드시 물귀신처럼 끌고 간다'''는 전략이다.[1]
당연하지만 이러한 전략계획은 보복의 성공 유무와 관계없이 '''프랑스 민족과 국토의 절멸'''을 불러오게 되므로, 진정한 목적은 상대의 핵무기 사용을 단념시키는 부분에 있다. 따라서, 프랑스는 전략의 존재 자체를 모르고 프랑스에게 핵공격을 하는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전략을 최대한 대외적으로 선전할 필요가 있다. 즉 이 전략은 핵전쟁을 대비한 전략이 아니라, 핵전쟁이 일어나지 않게끔 하는 전략이다[2] .
당시 프랑스 대통령이었던 샤를 드 골은 이렇게 말했다.
프랑스의 비례억지전략은 사실상 소련의 핵전력에 대한 억지책이라 할 수 있는데, 실제로 소련이 프랑스를 선제공격하는 경우를 가정해 보자. 소련에 비해 핵전력에서 압도적인 열세인 프랑스가 소련과 대등한 핵전쟁을 벌일 수는 없다. 하지만 프랑스가 모든 핵전력을 동원하여 반격할 경우, 모스크바나 레닌그라드등 소련의 주요 대도시 한 곳 정도는 궤멸시키는 것은 가능할 수 있다. 따라서 소련 입장에서는 프랑스를 멸망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그 대가로 자국 역시 감당하기 어려운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것. 일단 이것이 비례억지전략의 1차적인 작동원리이다.물론 우리가 발사할 수 있는 핵무기의 파괴력은 미국과 소련이 발사할 수 있는 핵무기의 파괴력에 비해 수적으로 동등한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 사실, 어떤 인간도, 어떤 국가도 단 한 번만 죽을 수 있기 때문에, 잠재적 적에게 치명적 손상을 가할 수 있고, 그렇게 하려는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으며, 그러한 의지를 (잠재적 적에게) 충분히 인식시킬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억지 효과는 충분할 것이다.'''
-1964년 프랑스의 핵전략을 공표하며, 샤를 드 골- (출처)
3. 추가적 의미
더 나아가 비례억지전략은 상호확증파괴의 도미노에 방아쇠를 당길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왜냐하면 가상적국인 소련을 상대로 비례억지전략이 실제로 적용되는 사태가 발생할 경우, 더이상 소련은 전술핵무기 한두개 정도로 프랑스를 '적당히 손봐주는' 선에서 끝낼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일단 핵무기를 프랑스에 사용한 이상 프랑스의 공격으로 큰 피해를 입게 되므로, 소련은 프랑스에 전면적인 핵공격을 퍼부터 철저하게 멸망시켜야만 하게 된다. 만약 외부 개입이 없다면 프랑스는 절멸하고 소련은 무시할 수 없는 타격을 입겠지만 수복할 수 있는 피해만으로 사태를 종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즉 비례억지전략으로도 초강대국을 상대로는 국민과 국토를 수호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의미하므로, 핵무장을 하지 않은 대다수 유럽 국가들을 패닉 상태에 놓이게 할 뿐만 아니라 핵무장을 실시하던 영국마저 패닉 상태에 빠뜨릴 수밖에 없다. 냉전이라는 극단적 대립상황에서의 아슬아슬한 균형을 일시에 무너뜨리는 신호탄이 될 수 있으며, 즉 유럽 대륙에서 소련의 영향력이 크게 확대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3]
반대로 소련 입장에서도, 프랑스의 핵공격으로 큰 타격을 입은 입장에서 미국과 서유럽 여러 나라들이 (프랑스를 제외하고는) 온전한 상태로 남는 것은 전후 복구단계에서 국력의 차이가 극복할 수 없을 정도로 벌어질 게 분명했다. 따라서 프랑스가 핵으로 모스크바를 날려버린다면 국력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소련이 미국의 대도시에 핵공격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고, 실제로도 소련은 핵이 어떤 나라에서 날아왔건 전면적 핵전쟁의 시작으로 간주할 것을 공언해왔다.
때문에 당장 미국은 프랑스에 대한 핵공격이 이루어진 시점에서 소련에 보복을 가할 수밖에 없다. 유럽 대륙에 대한 소련의 핵전력 투사가 어떤 대가를 치르는지 보여주는 것만이 유럽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을 유지할 유일한 방법이며, 어차피 소련으로부터의 핵공격이 예상되는 이상 소련의 핵공격 역량을 조금이라도 줄여놓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핵무기 사용에 대한 보복은 핵무기가 될 수밖에 없으므로 이는 상호확증파괴로의 확전을 불러올 수 있는 단초가 된다. 때문에, 이러한 위험부담까지 고려한 상대는 도저히 프랑스를 상대로 핵무기를 사용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이는 미국의 핵전략에 대한 일종의 물귀신 전략이기도 했다. 당시 미국에서는 작은 충돌이 전면적인 핵전쟁으로 발전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전쟁에서 핵을 사용하더라도 전략핵무기를 상대의 도시에 사용하는 것은 피하고 가능하면 중-단거리 핵무기를 전선에 한정해서 사용하도록 통제하자는 전략을 세웠다.(정치지도자들은 핵무기 사용 자체를 피하자는 쪽이었고 군부는 중-단거리 핵무기는 사용하자는 차이는 있었다.) 그러나 유럽인들이 보기에는 이는 최전선이 될 유럽에서만 핵무기를 사용하고 미국과 소련 본토에 핵무기가 날아가지는 않도록 통제하자는 소리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서는 일단 핵무기가 사용되기 시작하면 반드시 미국과 소련 본토에 핵이 날아가는 전면핵전쟁이 되도록 만든다는 전략을 세우게 된 것이다. 프랑스의 전략이 가장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아래에서 설명하듯이 이런 관점은 영국도 마찬가지였다.
4. 현실
그런데 문제는 프랑스가 이 비례억지전략을 64년에 공표한 이후로 수립한 핵개발 계획은 5년단위로 끊어지는데, ICBM을 갖추는 것은 제4기, 그러니까 80년에 도달해서야 갖출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한 것이다.[4] 즉 15년 간은 대륙간 탄도탄이 '''없었다.''' 1985년에 M4 미사일이 실전배치될 때까지 프랑스는 고작 사거리 3,000㎞대의 S2 / S3 IRBM과 M1 / M2 / M20 SLBM으로 버텨야 했다. 그럼 프랑스는 그 동안에는 어떻게 강대국의 심장부에 핵폭탄이라는 비수를 박아넣어 강제로 MAD를 발동시킬 계획이었을까? 답은 간단하다. '''미라주 IV 초음속 전략폭격기로 모스크바를 폭격하는 것이다'''(...)
이 미라주 IV 전략폭격기는 1963년 말부터 생산되어 프랑스 공군에 실전배치된 물건인데, 66년 2월까지 대략 50대 가량이 배치되었다. 참고로 이 전투기의 공식 항속거리는 3,704㎞이다. '''행동반경이 아니라.''' 그래서 미라주 IV 한 대에는 핵투발 수단을 장착하고 다른 한 대에 연료를 꽉꽉 실어 공중에 띄운 다음에 중간에 공중급유하는 식으로 모스크바까지 날려 보낸다. 이 방식으로 작전반경을 대략 1,500마일, 즉 2,400㎞까지 늘릴 수 있었다는 데, 파리에서 모스크바까지의 '''직선''' 거리가 대략 2,500㎞쯤 된다(...) 즉 이 미라주 IV는 마하 1.7로 모스크바를 향해 직선으로 날아갔다 와야 한다는 말이다. 정말이지 근성의 결정체가 아닐 수 없다.
물론 미라주 IV가 NATO의 도움 없이 구 소련의 방공망을 단독으로 돌파하고 핵 투발에 성공할 가능성은 한없이 낮다. 때문에 비례억지전략은 전략 자체로는 작게는 소련의 몇몇 대도시, 크게는 전세계를 끌어들이는 전쟁억지수단이었지만 현실적으로는 소련이 프랑스를 핵무기로 공격하되 프랑스의 보복은 요격하여 무력화, 미국은 전면적 핵전쟁으로 에스컬레이트할 가능성을 두려워해 프랑스를 포기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불완전한 안보전략이었다.
때문에 이러한 상황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미국이 프랑스를 포기하지 못하게끔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되, 핵 투발수단이 불완전한 이상 소련 상대로도 리스크를 감수하고 자국을 공격하지 않을 정도의 양호한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게다가 상호확증파괴를 전제로 한 물귀신 전략인 동시에 대외적으로 공표할 필요가 있는 전략이기에 필연적으로 여러 국가의 어그로를 끌게 된다. 그래도 유럽 국가 중에서는 소련과의 관계가 양호한 편이었던 프랑스나 선택 가능한 수단.
또한, 상대의 재래식 공격에 먼저 핵으로 반격하면 핵만능주의의 확산과 핵확산의 기폭제가 될 수 있어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되므로 프랑스는 핵무기를 어디까지나 방위용으로만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결과적으로 모든 핵무기는 방위용이 되었지만, 핵무기 도입 초기만 해도 상호확증파괴에 걸리지 않을 정도의 전술핵을 전선에 도입하려는 발상은 꾸준히 있었는데 프랑스는 애초에 이러한 여지를 두지 않은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하지만 이렇듯 현실적으로 난점이 존재하는 전략인 동시에 상호확증파괴의 역린을 건드려 주변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방위전략이기에 드골주의가 잦아들고 미국의 프랑스 핵기술 지원이 시작되던 1970년대 공식적으로 폐기되었다. 이 시점을 계기로 NATO와의 협력 또한 부활하면서 SLBM에 대한 개발 또한 일시적으로 중단된다.
북한의 핵개발은 비례억지전략으로 보지 않는 경향이 많다. 2000년대 초 이미 MD의 개발 이후 핵무기와 ICBM이 개발되었으며, 전 국토가 감시당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5] 다만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SLBM을 개발하고는 있지만.
5. 유사 사례
영국도 비슷한 논리로 "독자적으로 '''모스크바를 작살낼 수 있을 만큼'''의 핵 보복 능력을 유지한다"는 '''모스크바 기준'''(Moscow Criterion)을 채택했다. 국방비의 25%를 퍼부었던 프랑스와 달리 영국은 적은 비용만 사용했으며, 초기에는 자체 개발한 전략폭격기를 사용했으나 이후에 자체개발을 포기하고 혈맹인 미국에서 SLBM을 사 와서 장착했다.
현대 중화민국이 중화인민공화국과의 전쟁에 대비해 채택하는 전략이기도 하다. 1999년에 리덩후이가 양안관계는 특수한 국가 간의 관계라는 '양국론'을 언급하자 분노한 장쩌민이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에게 곧 대만을 침공할 것이라고 했는데, 이를 전해들은 리덩후이가 내뱉은 말이 "만약 대륙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홍콩·상하이·난징도 영향을 받을 것"이었다. 대만이 중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슝펑 순항미사일을 개발하고, 탄도미사일 개발까지 진행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전략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
싱가포르군의 '독새우'(poisonous shrimp) 전략도 이와 비슷하다. 국토가 좁기 때문에 방어전만 하다가는 아무 것도 남지 않을 게 뻔하므로, 그럴 시간에 적국을 한 대라도 더 때려서 피를 보고 휴전을 종용하는 것이 더 이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싱가포르는 상륙전 능력을 가진 상륙함, 장거리 타격 능력을 가진 F-15SG 같은 공세적인 장비들을 도입하고 있다.
대한민국 국군도 상대가 북한이 아닌 중국, 러시아일 때는 싱가포르와 마찬가지로 비례억지전략을 채택할 수밖에 없는데, 핵무기는 사용이 불가능하지만 대신 초음속 순항미사일이나 탄도 미사일, 잠수함 등 비핵 정밀타격무기를 이용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대놓고 비례억지전략 한다고 하지는 않고 북한과의 전쟁에 대비한다고 해놓고 중국을 상대할 때도 쓸만한 무기를 도입하는 식이다.[6]
[1] 만약 러시아가 핵공격을 감행해 프랑스를 멸망에 이르게 한다면,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정도는 같이 끌고 들어간다는 소리다.[2] 다만, <핵전쟁 발생 시 유리한 전황을 이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핵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억지력을 발휘하는 것>을 목표로하는 전략이라는 점은 상호확증파괴전략 역사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핵무기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이후 현재까지 등장한 거의 모든 핵전략은 <자신이 핵무기를 선제 사용하는 상황>보다는 <상대가 핵무기로 자신을 선제 공격하여 대응해야 하는 상황>을 주로 상정하여 <상대가 핵무기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억지력 발휘>를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현실적으로 핵무기를 사용한 전면전이 벌어질 경우 승자건 패자건 양측 모두 감당 불가능한 피해를 입고 사실상 회생불가의 몰락 상황에 빠질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당대의 주류 관점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핵전쟁을 대비한 것이 아니라 핵전쟁 발생에 대한 억지력을 발휘하는 것을 목표로 함> 자체가 비례억지전략의 고유한 특징이라기보다는, 열세의 입장에서 그 억지력을 '''어떻게''' 발휘할지에 대한 구상이 본 전략의 핵심요소이다.[3] 이후 21세기에만 해도 명백히 러시아보다 우위에 있는 미국에게 줄을 댄 조지아가 남오세티야 전쟁에서 크게 당한 일이 있는 것처럼, 전세계를 합친 것보다 더 막강한 전력을 보유한 미 해군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지닌 지정학적 리스크는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소련은 육로로 유럽과 연결되어 있는 점과 대조적으로 미국은 대서양을 두고 유럽과 단절되어 있기 때문이다.[4] 출처 : 경항신문 1973년 5월 21일자 3p[5] 비례억지전략을 입증하려면 '''상대방 도시에 투하'''해야하는데, 북한 전력으로 이를 실행하기 전에 미국에 의해서 요격당하기 때문에 비례억지전략으로는 볼 수 없는 것이다.[6] 중국이 한국의 전략무기 개발에 민감한 이유가 다 있는 것이다. 물론 북한의 핵개발이 멈추거나 한국에서 진짜로 주사파가 집권하지 않는 한 그걸 전면적으로 수용할 일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