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보스 맨
1. 프로필
2. 소개
빅 보스 맨은 미국 WWE (당시는 WWF라고 불렸다) 에서 활약한 프로레슬러이다. 본명은 레이먼드 워싱턴 트레일러 주니어 (Raymond Washington Traylor Jr).
가장 알려진 이름이 빅 보스 맨이지만 다른 링네임도 가졌다.[5] WWF 태그팀 챔피언 (켄 샴락과 한팀) 그리고 WWF Hardcore Champion을 네번 차지했다.
참고로 상당한 노안이다. 맨 위에 걸린 사진이 빅 보스 맨의 25세 시절 찍은 것이다. 과거 빅 보스 맨과 대립했던 자크 루조(마운티)보다도 세 살 연하다. [6]
3. 커리어
원래 조지아 주 콥 카운티 교도소의 교도관이었다.[7] 이후 이런 교도관/경찰의 이미지를 자신의 기믹으로 사용한다. 1985년에 자신의 본명을 쓰며 자버(jobber)[8] 로 링에 데뷔했다.
1987년 UWF(Universal Wresling Federation)에 빅 버바(Big Bubba)라는 링네임으로 참가했고 1988년 6월부터 WWF에 빅 보스 맨이라는 이름으로 데뷔했는데, 큰 덩치에도 날렵하고 강한 모습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승리한 다음에는 링로프에 상대와 수갑을 채우고 톤파(경찰봉)[9] 로 때리는 세리머니를 통해 악당의 포스를 보여준 덕분에, 1년도 채 되지 않아 바로 탑 힐로 올라설 수 있었다. 헐크 호건, 마초맨의 메가 파워스에 맞서 아킴과 함께 트윈 타워즈로 대립관계를 이어갔으며, 헐크 호건과 대항하는 악역이라는 위치에서 데뷔 초반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다. 밀리언 달러맨이 재수없는 갑부의 이미지였다면 빅 보스 맨은 부패한 경찰의 이미지였다.
이런 인기에 힘입어 WWF 슈퍼스타즈라는 당시 인기있던 아케이드 게임에도 당대의 인기 레슬러였던 헐크 호건 등과 함께 6인의 플레이어중 하나로 등장한다.
그러던 중 1990년 2월 3일 수퍼스타즈에서 매니저의 연락을 받고 밀리언 달러맨과 경기를 하고 있던 제이크 더 스네이크 로버츠를 경찰봉으로 가격하여 디비아시가 DQ패하게 만들었다. 이후 로버츠를 수갑으로 묶고 데미안 (뱀)이 들어 있는 자루를 가져 왔다. 이 당시는 입장로 입구와 링 사이에 브라더러브라는 빨간 얼굴을 가진 악역의 토크쇼 공간이 있었다. 이 장소에서 매니저 슬릭과의 불화가 생기면서[10] 로버츠에게 수갑 열쇠와 데미안을 돌려 주고[11] 선역으로 턴페이스했다.
이후에도 큰 인기를 끌었으며, WWF 레슬매니아 VI에서 함께 트윈 타워즈로 활동하던 아킴을 손쉽게 꺾었다. 다만 악역일 때의 강렬한 포스가 선역으로 전환하면서 강렬함이 조금 모자라는 모습이 된 건 흠[12] .
다만 WWF 섬머슬램(1991)에서 캐나다 경찰 기믹인 마운티와의 Jailhouse Match에서[13] 승리하면서 마운티를 감옥에 쳐 넣는 장면은 나름 명장면이었다[14] .
계약과 출전 등의 트러블로 1993년에는 잠시 빅 버바라는 이름으로 전일본 프로레슬링에서 활동했는데 주로 태그매치에서 싸웠다.
이후 더 보스 (The Boss)라는 이름으로 WCW (World Championship Wrestling)에 입단 했다.
그리고 빅 버바 로저스라는 링네임으로 nWo의 멤버로도 활약했다.
[image]
1997년 9월 빅 버바 로저스에서 본명인 레이 트레일러로 링네임을 변경하고 타도 NWO를 내세우며 탈퇴하고 턴페이스 하며 미들카더 위치에서 활약하다가 1998년 3월을 끝으로 WCW를 탈단하게 되었다.
이후 1998년 10월 링네임 빅 보스 맨으로 WWF에 돌아왔다. 이번에는 경찰 정복 대신 SWAT의 대 테러 복장으로 나왔다.
[image]
빈스 맥마흔의 스테이블 더 코퍼레이션의 일원으로 활동하면서 언더테이커의 미니스트리 오브 다크니스와 대립하다가, WWF 레슬매니아 15에서 언더테이커와의 Hell in a Cell 경기에서 패해 교수형에 처해지는 각본을 수행하기도 했다. 참고로 이 위험한 연출은 보스맨 본인이 숨을 오래 참을 자신이 있어서 승낙한 것이라고 한다.[15]
이후 1999년 여름에 알 스노우와의 하드코어 디비전 쟁탈 대립으로 커리어를 쌓아오던 그는 1999년 가을~겨울에 빅 쇼와의 대립을 하면서 '장례식 각본' 과정에서 빅 쇼 아버지의 관을 탈취하는 설정으로 인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2002년까지 현역으로 활동한 뒤 OVW에서 후학들을 양성하다 2003년경에 다시 WWE를 나오게 된다.
4. 사망
그러다 2004년 9월 22일 조지아의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이후 공로를 인정받아 2016년 3월 7일 WWE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16]
5. 피니쉬 무브
[image]
피니쉬 무브는 보스맨 슬램을 사용했다.
6. 둘러보기
[1] 신인시절에는 357lbs까지 나갔다.[2] 상대를 로프반동 시킨 뒤, 다가오는 상대에게 사이드 슬램을 가하는 기술. 초기에는 스파인 버스터와 혼용해서 썼고 나중에는 사이드슬램에 스핀을 집어넣어 더 강하게 만들었다. 사실상 사이드 슬램을 처음으로 미국 프로레슬링계에 알린 선수.더 락의 락 바텀, 부커 T의 북 엔드, 어비스의 블랙홀 슬램의 원조 격.[3] 섬머슬램 1990에서 마운티와 붙었을 때 피니시로 사용했다.[4] 좀더 무거워진 캐릭터에 걸맞게 기존의 경쾌한 리듬은 사라지고 진중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이 특징이다.[5] 본명인 레이 트레일러, 빅 부바 등이 있다.[6] 그래도 동갑내기였던 어스퀘이크에 비하면 나은 편이다.[7] 국내에서 정식출시된 비엠코리아의 VHS에선 '조지아의 수사반장'으로 번역되었다(…).[8] 간단히 말해서 짜고 져주는 선수[9] 미국 현지에서는 야경봉{Nightstick, Billy club}으로 불린다.[10] 디비아시가 슬릭을 통해 자신을 매수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였다(물론 설정). 이에 보스맨이 격노하여 "네가 감히 날 매수를 해?! 난 그 어느 누구에게도 매수당하지 않아! 난 도난품을 갖고있단 소식을 듣고 법집행 한 거 뿐이라고!"라고 내뱉았다.[11] 그 안에 밀리언 달러 벨트가 들어있었다.[12] 어스퀘익, 요코즈나, 베이더, 그레이트 칼리 모두 악역일 때는 탑 힐이었지만 선역이 되면 악역때만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잦으며 만화로 치자면 아군이 된 적 보정에 가깝다.[13] 패한 쪽은 감옥행.[14] 마운티가 반항을 심하게 해 나중에는 실제 뉴욕시 교정국의 교도관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15] 당연히 목을 매다는 것은 단순히 숨을 오래 참을 수 있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에(목뼈가 부러지거나 척수가 골절된다.) 이는 빅 보스 맨의 허세고, 사실은 셀 내부에 모종의 장치를 했다는 의견이 있다.[16] 헌액 당시 보스맨의 아내와 딸이 나와서 보스맨이 생전에 사용하던 야경봉를 보여 주며 관중들의 환호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