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디 새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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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or=#373a3c> '''"Macho Man"
Randy Savage
'''
1. 프로필
2. 개요
3. 레슬링 경력
3.1. 초창기
3.2. WWF 시절(1985년~1994년)
3.2.1. 악역으로 시작
3.2.2. 선역으로 전환 및 헐크 호건과의 팀업
3.2.3. 헐크 호건과의 대립 및 엘리자베스 각본의 시작, 그리고 마초킹으로의 턴힐
3.2.4. 얼티밋 워리어와의 커리어 엔딩 매치와 마초맨으로의 턴페이스, 엘리자베스 각본의 절정
3.2.5. 링 복귀 및 릭 플레어와의 대립, 워리어와의 팀업
3.2.6. 엘리자베스와의 파국과 WWF 탈단
3.3. WCW 시절(1994년~1999년)
3.4. TNA 시절(2004년~2005년)
4. 사망
5. 기타
6. 둘러보기


1.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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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E 명예의 전당 헌액자'''
'''본명'''
Randall Mario Poffo
'''별칭'''
'''Macho Man''', Macho King
'''출생일'''
1952년 11월 15일
'''출생지'''
미국 오하이오 주 콜럼버스
'''사망일'''
2011년 5월 20일
'''사망지'''
미국 플로리다 주 세미노레
'''신장'''
190cm
'''체중'''
107kg
'''가족'''
배우자 바바라 페이니
'''피니시 무브'''
'''더 마초맨 엘보우[1]'''
'''유형'''
테크니션
'''주요 커리어'''
AWA 남부 헤비웨이트 챔피언 2회
CWA 인터내셔널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NWA 미드 아메리카 헤비웨이트 챔피언 3회
GPW 인터내셔널 헤비웨이트 챔피언 2회
NWA 걸프 코스트 태그팀 챔피언 1회
I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3회
USWA 통합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WWC 북부 아메리칸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WWF 챔피언 2회'''
WWF 인터컨티넨탈 챔피언 1회
1987 WWF 킹 오브 더 링 우승
'''W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4회'''
'''WCW 월드 워 3(1995) 우승'''[2]
2015 WWE 명예의 전당 헌액자


2. 개요


WWE, WCW, TNA프로레슬러1980년대 중후반, 헐크 호건과 함께 절대적인 인기를 구가했다.
WWF가 이전까지 미국 각처에 난립하던 일개 지방중소 단체에서, 일약 미국을 대표하는 거대 단체로 성장하던 시기에 활약한 슈퍼스타다. 특히 땀내 나는 육중한 아저씨들이 부딪히는(...) 프로레슬링 이미지에 '''쇼'''라는 요소를 강하게 부각시켰다.
화려한 무대의상 못지 않게 현란한 제스쳐도 돋보였으며, 인터뷰를 할 때도 쇳소리 섞인 독특한 목소리와 특유의 톤으로 개성을 강하게 어필했다. 워낙 특이해서 한번만 들으면 다음부터 누구나 마초맨 목소리인 줄 기억할 정도. 그리고 마무리는 언제나 '''우~예~'''(Ooh yeah!). 지금은 많은 인기 프로레슬러가 하나쯤은 갖고 있는 고유 멘트의 대선배격.

3. 레슬링 경력



3.1. 초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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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안젤로 포포, 동생 '지니어스' 래니 포포가 모두 프로레슬러인 레슬링 집안 출신이다. 포포라는 성이 말해주듯 이탈리아계. 원래 대학졸업 후 마이너리그 야구선수로 뛰었으며, 비시즌 때는 프로레슬러로 뛰었다. 그러나 어깨 부상을 당해 야구를 접고 레슬링에 전념하게 된다. 야구선수로는 4년동안 마이너리그에만 뛰면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신시내티 레즈, 시카고 화이트삭스 산하 마이너 등을 거쳤으며 포지션은 외야수였고 통산성적은 289경기, 타율 0.254, 16홈런, 66타점의 통산 성적을 남겼다. 잦은 부상 탓인지 4년뛴것 치고는 경기수가 많지 않다.[3]
1970년대 부친이 설립한 ICW를 비롯해 여러 단체를 다니며 10년 넘게 경력을 쌓아간다. 그리고 1985년 6월 빈스 맥마흔이 이끄는 WWF(지금은 WWE)와 계약한다

3.2. WWF 시절(1985년~1994년)



3.2.1. 악역으로 시작


마초맨은 '''악역'''으로 WWF 경력을 시작했다. 처음 맡은 기믹은 미녀 매니저 미스 엘리자베스[4]를 데리고 다니는 '''오만방자한 돌+아이'''.
WWF의 강력한 푸쉬를 받아 '드래곤' 리키 스팀보트, 다이너마이트 키드 등 인기 레슬러와 시합을 치루며 정상급 악역으로서 빠르게 입지를 굳혔다. 마침내 1986년 인기 선역인 티토 산타나를 꺾고 WWF 인터컨티넨탈 챔피언 벨트를 획득하면서 서서히 메인 이벤트 급으로 부상한다.
1987년 3월, 프로레슬링 팬들에겐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WWF 레슬매니아 III가 열렸다. 메인 이벤트가 다름아닌 헐크 호건 VS 앙드레 더 자이언트 시합이었다! 하지만 이해 최우수 경기로 선정된 것은 이 시합이 아니라, WWF 인터컨티넨탈 타이틀매치 마초맨 VS '드래곤' 리키 스팀보트였다. 마초맨이 스팀보트를 부상시킨뒤 분노한 스팀보트의 도발에 맞서 인터컨티넨탈 타이틀 매치를 가졌는데, 치열한 접전끝에 스팀보트가 승리하게 된다. 지금도 WWE에서 손꼽히는 명승부로 남은 이 시합 이후[5], 마초맨은 차세대 메인 이벤트로서 입지를 굳게 다졌다. 이전까지 헐크 호건앙드레 더 자이언트라는 넘사벽 외에도 호시탐탐 왕좌를 노리는 로디 파이퍼 등 2인자 무리가 건재했는데, 이런 세력판도를 단숨에 뒤엎어버렸다. 리키 스팀보트의 회상에 따르면 이 경기 이후 파티에서 스팀보트와 새비지에게는 축하한다며 줄이 끊기지 않았는데 헐크쪽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더라(...)고 한다.

3.2.2. 선역으로 전환 및 헐크 호건과의 팀업


1987년 킹 오브 더 링 토너먼트에서 킹콩 번디를 꺾고 우승을 차지하고, 팬들의 지지와 성원을 등에 업고 선역으로 전환한다. 이 시기 마초맨과 대립한 상대가 '내가 킹왕짱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을 자처하는 홍키 통크 맨이었다. 마초맨은 전 챔프의 자존심을 걸고 홍키 통크 맨을 밟아버렸지만, 홍키 통크 맨의 매니저 지미 하트는 태그팀 하트 파운데이션을 불러들여 마초맨을 밟아버렸다. 그러자 엘리자베스헐크 호건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는 당시 WWF를 대표하는 수퍼스타 두 사람이 뭉치는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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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봄 레슬매니아 4에서 마초맨은 '밀리언 달러맨' 테드 디비아시를 꺾고 월드 챔피언 벨트를 획득한다. 이때 밀리언 달러맨의 곁에 앙드레 더 자이언트가 있었는데, 마초맨은 이를 타개하기 위해 헐크 호건의 도움을 요청했다. 그리고 팬들의 바람과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마침내 그해 여름 헐크 호건과 마초맨은 태그팀 메가 파워스(The Mega Powers)를 결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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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여기엔 어른의 사정이 있는데,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던 헐크 호건이 이 무렵 영화촬영 등으로 좀처럼 레슬링에 전념하지 못하자 WWF에선 차세대 아이콘이 필요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선역 헐크 호건과 악역 앙드레 더 자이언트의 위상은 너무나도 높았기 때문에, 한창 푸쉬를 몰아주던 신예 악역 밀리언 달러맨과 마초맨의 대립은 사실상 헐크와 앙드레의 대리전 양상으로 몰고갈 수 밖에 없었다.

3.2.3. 헐크 호건과의 대립 및 엘리자베스 각본의 시작, 그리고 마초킹으로의 턴힐


메가 파워스의 숙적은 역시 앙드레와 달러맨의 태그팀 메가 벅스(The Mega Bucks)였는데, 엘리자베스를 사이에 둔 삼각관계 시나리오로 팀이 깨지면서 마초맨은 호건과 대립을 펼친다.
1989년 레슬매니아 5에서 마초맨은 헐크 호건에게 패하면서 WWF 챔피언 벨트엘리자베스를 모두 잃게 되었다. 이후 새롭게 센세이셔널 셰리를 매니저로 맞아들이고 괜히 "핵소우" 짐 더간에게 시비를 걸어서 시합을 벌인 뒤 "핵소우" 짐 더간을 떡실신시켰다. 그리고 이를 이유로 링네임을 마초킹으로 바꾼다. 그러면서 "난 "핵소우" 짐 더간을 이겼으니까 내가 왕이다"라며 공식 선언해버렸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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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악역으로 전환한 마초킹은 '아메리칸 드림' 더스티 로즈, 레슬매니아 6에서 헐크 호건을 꺾고 새 챔피언이 된 얼티밋 워리어와 차례로 대립을 갖는다.[7]

3.2.4. 얼티밋 워리어와의 커리어 엔딩 매치와 마초맨으로의 턴페이스, 엘리자베스 각본의 절정


1991년 레슬매니아 7에서 마침내 마초킹은 얼티밋 워리어와 커리어 매치를 갖는다.[8] 커리어가 걸린 탓인지 두 선수는 그야말로 사투를 벌였는데, 마초킹의 피니쉬 플라잉 엘보 드롭을 다섯번이나 연속으로 맞고도 씹어버린 워리어나, 워리어의 피니쉬 고릴라 프레스를 맞고도 발악하는 마초킹이나...장내의 분위기는 한껏 고조되어 갔다. 그리고 관중석에서 시합을 지켜보던 엘리자베스의 얼굴은 차츰 비참하게 굳어갔다. 결국 워리어의 플라잉 숄더 어택 삼연타를 맞고 마초킹은 종이장 구겨지듯 링바닥에 널부러졌고, 워리어는 마초킹을 발로 즈려밟아서 핀폴을 하는 굴욕적인 장면까지 연출한다(...).
워리어가 승리 세레모니를 끝내고 퇴장한 뒤에도 여전히 마초킹은 링 위에서 일어날 줄 몰랐는데, 매니저 셰리가 올라오더니 열불을 내며 마초킹을 마구 짓밟고 구타했다. 뻗어있던 마초킹은 속수무책으로 매타작을 당했는데, 보다 못한 엘리자베스가 뛰어들어와 셰리를 끌어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린 마초킹의 눈앞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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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 사내놈이 사소한 오해로 열폭해서는 일편단심 여친을 나쁜년 취급하고 천하의 개쌍년과 놀아나다가 끝내 여친의 진심을 알고 과거를 뉘우친다'''는 장장 3년에 걸친 스토리라인이 완결되는 순간이었다.
20년 세월이 흐르고 한층 정교한 엔터테인먼트를 자랑하는 현 WWE 기준으로 본다면 무척 유치해 보이겠지만, 당시로선 글자 그대로 감동의 폭풍이었다. 시합 영상을 보면 마초킹이 엘리자베스를 어깨에 태우는 순간 관객들이 환호성을 내지르며 기쁨에 겨워 울음을 터뜨린다.
어쨋든 마초킹은 패자였기 때문에 은퇴, 즉 선수로서 링 위에서 모습을 보이는 대신 TV에 선역 마초맨 캐릭터를 가지고 얼굴만 비추게 된다. 그런데 1990년대 초반 WWF는 서서히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 시발점은 얼티밋 워리어빈스 맥마흔의 불화였다.[9] 훗날 애티튜드 시대가 도래할 때까지 오랜 침체와 암중모색을 거듭하던 시기가 닥친 것이다.
서전 슬로터갑툭튀언더테이커가 새로운 챔피언 대열에 합류해보았으나 아무래도 헐크 호건이나 마초맨 같은 시대의 아이콘 노릇은 무리였고, 결국 WWF는 다시금 마초맨 카드를 꺼내든다.
1991년 마초맨은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린 WWF 섬머슬램(1991)에서 엘리자베스와 결혼식[10]을 했는데, 결혼식 피로연에서 제이크 '더 스네이크' 로버츠 가 난동을 부리면서 대립해 링에 복귀할 명분(?)을 갖추게 된다. 이때 수난을 많이 당했는데, 로프에 묶인채로 제이크 로버츠가 풀어논 뱀에게 팔이 물리는(!!!) 일도 있었고, 아내 엘리자베스는 따귀를 맞는 일도 있었다.

3.2.5. 링 복귀 및 릭 플레어와의 대립, 워리어와의 팀업


1992년 봄 레슬매니아 8에서 마초맨은 릭 플레어를 꺾고 다시 한번 챔피언 벨트를 획득한다.[11] 이후 워리어와 WWF 섬머슬램(1992) 까지 대립을 하게 되는데, 겉모양새는 '''"커리어 엔딩 매치에서 패하였지만 현재는 챔피언인 마초맨 VS 도전자이지만 예전에 현 챔피언의 커리어를 끝낸 워리어"'''의 형식이지만, 실제로는 '''마초맨+워리어 VS 릭플레어+미스터 퍼펙트''' 의 구도였고, 헐크호건이 빠진 메인 스토리 라인에서 당시 나름 화제를 모으는데 성공하였다. 마초맨과 워리어는 대립을 하는 듯 하였으나, 결국 릭플레어와 미스터 퍼펙트의 방해를 빙자한 도움(?)으로 화해를 하게 되고, 이 둘은 '''"얼티밋 매니악스"'''[12] 라고 불리는 팀을 이루게 된다.
이 대립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펼처진 섬머슬램 1992 에서, 릭 플레어와 미스터 퍼펙트의 방해로 인해 '''링 안에 쓰러져 있는 자신의 상대 워리어를 플라잉 엘보우로 마무리하지 않고, 링 밖에 있는 릭 플레어를 향해 뛰어 내리는 마초맨'''이다. 이 전의 헐크 호건과의 대립 때는 마초맨이 오해와 질투를 이겨내지 못하고 악역으로 바뀌어 버렸지만, 이 번 워리어와의 대리은 그 와는 반대로, 서로 간의 불신과 오해를 이겨내고, 선역 간의 팀업으로 정리되는 훈훈한 마무리를 보여 주었다.

3.2.6. 엘리자베스와의 파국과 WWF 탈단


하지만 영광스런 순간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해 가을 다시 벨트를 릭 플레어에게 뺏겼고, '''엘리자베스와 실제로 이혼'''한다. 마초맨이 헐크 호건과 사이가 나쁜 이유는 WWF에서 늘 호건의 위광에 가렸던 점도 있지만, 바로 이 이혼이 결정타였다고 한다. 호건 부부가 엘리자베스에게 마초맨과 이혼하라고 충고했다 카더라. 이혼한 뒤 엘리자베스는 WWF에 출연하지 않았고, 마초맨 또한 서서히 시합 비중이 줄어갔다. 빈스 맥마흔의 요청으로 함께 해설을 하며 위트있는 멘트를 날리기도 하지만 마초맨은 선수로서 뛰고 싶어했고, 결국 1994년 WCW와 계약하고 이적한다. 마초맨의 이적 후 RAW에서 빈스는 마초맨에게 감사를 표했고 그의 앞날에 행운이 깃들기를 바란다는 멘트를 남겼다.

3.3. WCW 시절(1994년~1999년)


1994년 12월 WCW에 데뷔한 새비지는 헐크 호건을 습격하던 쓰리 페이시즈 오브 피어[13]를 저지한 것을 시작으로 애벌런치와 대립하게 된다.
1995년 2월 스팅과 태그팀을 맺어 빅 버바 로저스[14]와 애벌런치의 태그팀을 상대로 승리를 거뒀다. 애벌런치와의 대립은 다음달 PPV인 WCW 언센서드(1995)까지 계속됐는데, 여기서도 세비지는 애벌런치와 1대 1로 맞붙었지만 돌연 관중석에서 튀어나온 여성팬이 세비지를 공격함에 따라 DQ승을 거뒀고 그 정체는 여장한 릭 플레어.
새비지는 WCW U.S 챔피언 토너먼트에 참가해 버처스티브 오스틴을 꺾고 결승까지 진출하게 되는 한편 역시 토너먼트에 참가한 플레어의 경기에 난입하며 대립을 더욱 키워나갔는데 계속 치고 박던 둘은 결국 토너먼트에서 모두 실격 및 제거당하는 비극을 낳고 만다.
WCW 월드 워 3(1995)에서 우승하며 첫 W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에 오른다. 이후 릭 플레어와 타이틀을 두고 대립해 서로 타이틀을 주고받다가 최종적으로 WCW 수퍼브롤 6에서 타이틀을 최종적으로 릭 플레어에게 내주고 만다.
1996년 nWo가 WCW를 난장판으로 만들었을때 WCW 정규군으로 맞서싸웠다. 저 유명한 WCW 배쉬 앳 더 비치(1996)에서 스팅, 렉스 루거와 팀을 이루어 케빈 내시스캇 홀과 경기했지만 결국 헐크 호건의 턴힐의 제물이 되고 말았다.
그후 WCW 정규군의 실질적인 리더로서 nWo와 대립해 WCW 할로윈 해벅(1996)에서 헐리우드 호건과 맞붙어 거의 승기를 잡나했지만, 남은 nWo멤버의 난입과 자이언트(지금의 WWE 빅 쇼)의 배반으로 패배. 한동안 WCW 무대에서 볼 수가 없었다. 이유는 계약 문제.
그러다 1997년 2월. WCW 수퍼브롤 7의 메인이벤트인 헐리우드 호건과 로디 파이퍼의 경기에 등장, 막판에 로디 파이퍼를 공격하고 nWo에 가입한다. 이후에는 다이아몬드 댈러스 페이지와 긴 대립을 가졌다.
1998년에 세비지는 헐크 호건 위주로 돌아가는 nWo에 불만을 품게 되고, 결국 호건에게 감정이 폭발하면서 대립에 들어간다. 여기에 케빈 내시가 새비지의 편을 들면서 nWo 내분이 가속화되고, PPV WCW 스프링 스탬피드(1998)에서 케빈 내시의 도움으로 통산 3회 W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에 오르지만 바로 다음 날 나이트로에서 브렛 하트의 도움을 받은 헐리우드 호건에게 하루만에 타이틀을 빼앗기고 만다.
1999년에는 팀 매드니스 스테이블을 결성해 여성 매니저 3명(메두사, 미스 매드니스, 고져스 고지)와 시드 비셔스를 보디가드로 두며 활동하였으며 WCW 배쉬 앳 더 비치(1999)에서 시드 비셔스와 팀을 이뤄 케빈 내시와 스팅을 꺾고 통산 4회 W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에 오르지만 다음날 나이트로에서 케빈 내시의 난입으로 인해 헐리우드 호건에게 타이틀을 잃는다. 이후 팀 매드니스 내부사정으로 인해 팀은 해체되고 새비지는 고져스 고지만 매니저로 두고 활동을 하였다
WCW 로드 와일드(1999)에서 데니스 로드맨을 꺾었으며 이후 WCW와 계약만료로 WCW를 떠났다
2000년 5월 3일 WCW 썬더에서 베틀로얄 경기에 1회성 출연을 하였다

3.4. TNA 시절(2004년~2005년)


TNA 터닝 포인트 2004에서 제프 하디, AJ 스타일스 등과 팀을 이뤄 제프 제럿·스캇 홀·케빈 내시 팀에 승리를 거뒀다.

4. 사망


은퇴후에는 더이상 레슬링과 연관되고 싶지 않았는지 옛동료들이 연락을 해도 받지 않았다고 하며 가장 친했던 브라이언 아담스[15]와만 연락하다가 그가 2007년에 사망하자 장례식장에 가기도 했는데 이런일 외에는 공식석상에 나서기를 극히 꺼려했다.
사고 당일인 2011년 5월 20일 오전 9시 25분경, 결혼한 지 1년 된 부인 린을 자신의 지프에 태우고 운전하던 도중 갑작스런 심장마비 증세가 일어나서 순간적으로 운전을 하지 못하게 되었고, 중앙 분리대를 넘어 반대편 차선의 가로수를 들이받아 머리를 크게 다치면서 사망했다고 한다.
사고 차량에 동승했던 부인 린은 다행히 경미한 부상만 입은채 병원으로 후송되었다고 하며, 경찰 발표에 따르면 두 사람 모두 안전벨트를 착용했고 음주운전은 아니였다고 한다. 같은 달 초 부인 린과 결혼 1주년 축하 파티를 가졌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자세한 전후사정은 부검 결과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프로레슬링 팬들 사이에선 마초맨과 같은 시기에 활약했던 프로레슬러들이 대부분 약물 문제로 고생했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마초맨 역시 진작부터 심장이 망가진 상태가 아니였을까 어림짐작하고 있다.
WWF에서의 갈등과 엘리자베스와의 이혼 사건 때문에 오랜 동안 앙숙 관계였던 것으로 알려진 헐크 호건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정말로 망연자실했다. 랜디(마초맨)와 10년간 대화를 하지 않았지만 불과 몇 주 전에 우리는 다시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친구가 되었다"는 글을 올렸고 그에 이어 "나는 다만 랜디가 더 행복하고 더 좋은 곳에 있기를 기도한다. 그가 많이 그리울 것이다"며 애도를 표했다고 한다. 호건으로서는 오랜 기간 동안의 은원을 청산하고 다시 친구가 된 지 몇 주 만에 친구를 떠나보낸 셈이니 망연자실할 만도 하다.[16]
2015년 1월 12일의 RAW에서 '''명예의 전당 헌액이 확정되었다'''. 거기다가 헌액자는 다름아닌 '''헐크 호건'''.

5. 기타



  • 그의 피니시 무브인 다이빙 엘보 드롭은 프로레슬링 사상 가장 완벽한 엘보 드롭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긴 체공시간에도 불구하고 자세가 전혀 흐트러지지 않고 그대로 처음 자세를 유지한 채로 상대방의 가슴팍에 묵직하게 쿵 떨어지는 그 모습은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 프갤 움짤 그를 기리는 의미로 사용하던 CM 펑크의 다이빙 엘보 드롭과 비교하면 그 격의 차이가 확 느껴진다. 다만 나중에 헐크 호건이나 얼티밋 워리어, 요코주나 등의 상대들이 다들 대놓고 씹기 시작한 후 부터는 이 기술의 포스가 좀 약해졌다.[17]
  • 마초맨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입장 테마곡은 에드워드 엘가위풍당당 행진곡 제1번이다. 클래식이기 때문에 WCW에서도 같은 테마곡을 쓸 수 있었다. 단 WCW에선 일렉트릭풍으로 편곡해서 썼다.
  • 엘리자베스는 마초맨과 이혼한 뒤[18] 프로레슬러 렉스 루거와 교제했고 2003년 사망했다. 사인은 약물과 알콜 과다 복용. 그리고 센세이셔널 셰리 또한 진통제인 옥시코돈 과다 복용으로 인해 2007년 사망했다.
  • 매니저 센세이셔널 셰리는 2006년 WWE 명예의 전당에 올랐으나, 정작 마초맨은 오르지 못했다. WCW로 이적할 즈음 빈스 맥마흔과 심각한 불화를 빚었는데 예나 지금이나 회장님 뒤끝 더러운 건 유명하니(...). 술집에서 빈스 따귀를 때렸다, 난잡한 사생활이 문제가 됐다 등 온갖 카더라가 나돈다. 결정적인 것은 빈스의 딸인 스테파니 맥마흔과의 부적절한 관계가 문제가 되지 않았느냐는 설.#[19]그러나 결국 2015년에 명예의 전당 헌액이 확인되었다.
  • WCW 시절 자신의 스테이블 팀 매드니스를 이끌 때 매니저이자 실제 여자친구였던 고저스 조지와 헤어진 이유가 심히 대박인데. 새비지가 조지에게 "네 여동생하고 같이 쓰리썸 하자"라고 제안했다고...당연 이 제안을 거절한 조지는 이후 새비지에게 괴롭힘을 당하다가 얼마 안가 퇴사해버렸다. 덤으로 스테이블도 해체,
  • 결국 WWE는 2009년 마초맨의 베스트 DVD를 발매했다.
  • 헐크 호건과 여러 차례 시합을 벌였는데, 카운트 아웃으로 이긴 것 빼고는 승리가 없다. 대부분 DQ 아니면 패배(...).

  • 영화 스파이더맨에 출연했다. 피터 파커가 돈을 벌기 위해 프로레슬링 시합에 아마추어 자격으로 참전했을 때의 상대인 '본 소우(bone saw)'라는 레슬러로 나온다.
  • 2003년 랩 음반을 냈다. 헐크 호건디스하는 곡도 있다고(...) 하지만 레슬링 실력에 비해 랩 실력은 형편없다고 잔뜩 욕을 먹었고 심지어 클럽에서 립싱크를 하다 야유를 받고 쫓겨난 적이 있다고 한다. 애시당초 발음 자체가 별론데...
  • 특유의 거친 저음과 터프한 이미지와 기믹때문에 싸움을 잘할거라는 이미지완 달리 생각외로 싸움을 잘하진 못한 편. 과거 WWE 시절 로드 워리어즈의 호크와 시비가 붙어서 덤볐다가 호크의 주먹연타에 그대로 뻗어버리고 안면골절까지 당한바 있다. 물론 호크가 프로레슬링 업계에서 하쿠를 제외하고는 손가락안에 들 정도의 주먹꾼이었기도 하다.
  • 운동능력이 좋아 테크니션으로 기억하는 사람도 있지만, 구사 기술은 시대를 감안하더라도 단조로운 편이었다. 특히 체중이 많이 나가는 상대와의 시합에서는 이런 성향이 더 심해졌다.
  • 친동생인 레니 포포[20] 역시 프로레슬러이고 문설트 프레스는 주무기로 쓰는데 무토 케이지가 이 기술의 대명사로 여겨져서 원조로 알려지자 레니 포포는 자기야 말로 문설트의 원조라고 힘주어 말했다.
  • 고저스 조지, 엘리자베스와의 일화에서 알수있듯 실제 성격도 링네임의 이름값을 한다고 할만큼 단순히 마초적인걸 넘어 아예 꼴마초급이었다.

6. 둘러보기


[image]
'''1996년 레슬링 옵저버 명예의 전당 헌액자'''
[image]
'''2015년 WWE 명예의 전당 헌액자'''
<colbgcolor=#000000> [image] '''PWI 선정 올해의 레슬러'''
헐크 호건
(1987)


<colbgcolor=#ffffa1> '''랜디 새비지
(1988)
'''

릭 플레어
(1989)

[image] '''PWI 선정 올해의 대립'''
에릭 비숍 vs 빈스 맥맨
(1996)


'''다이아몬드 댈러스 페이지 vs 랜디 새비지
(1997)
'''

빈스 맥맨 vs 스티브 오스틴
(1998)

[image] '''PWI 선정 올해의 선역'''
더스티 로즈
(1987)


'''랜디 새비지
(1988)
'''

헐크 호건
(1989)

[image] '''PWI 선정 올해의 악역'''
앙드레 더 자이언트
(1988)


'''랜디 새비지
(1989)
'''

어스퀘이크
(1990)

[image] '''PWI 선정 올해의 복귀'''
헐크 호건
(1994)


'''랜디 새비지
(1995)
'''

사이코 시드
(1996)

[image]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올해의 경기''' [★]
'''1987년'''
3월 29일
WWF
레슬매니아 III
WWF 인터컨티넨탈 챔피언십
_리키 스팀보트_ vs '''랜디 새비지'''(C)
****½

'''1987년 WWF 킹 오브 더 링 우승자'''
할리 레이스

'''랜디 새비지'''

테드 디비아시

'''역대 레슬매니아 메인이벤트'''[★]
'''1988.3.27
레슬매니아 4'''
WWF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토너먼트 결승전
'''랜디 새비지 vs 테드 디비아시'''
'''1989.4.2
레슬매니아 5'''
WWF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랜디 새비지 vs 헐크 호건'''
'''역대 스타케이드 메인이벤트'''[★]
'''1995.12.27'''
W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랜디 새비지 vs 릭 플레어'''
[1] 기술 사용 전, 탑로프에서 양 팔을 하늘로 들고는 그대로 점프해 팔꿈치로 상대의 배를 공격. 생각보다 쉽지 않은 기술이다. 1990년 무렵 다른 선수들의 기술을 보면 탑로프 공격을 다들 어려워했고 새비지만이 유일하게 탑로프에서도 오랫동안 화려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가 사망한 후에는 CM 펑크가 그를 추모하는 의미로 사용하기도 했다. 다만 점프하면서 팔을 흔드는 펑크와 달리, 새비지는 팔을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자세를 유지한 채 그대로 떨어진다.[2] 붙어 있는 링 3개에서 각각 20명씩 총 60명이 동시에 배틀 로얄을 시작해 각 링의 승자는 옆 링으로 넘어가는 WCW 특유의 경기. 이때 W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은 공석이었는데 마초맨이 최종 승자가 되면서 챔피언 벨트를 획득했다.[3] 다만 카즈에 스카웃 되었을 때는 포수로 들어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포수 출장은 거의 없었다.[4] 사실은 미스가 아니라 1984년 랜디 새비지와 결혼한 진짜 부인이었다. 각본상 연인 노릇을 했다.[5] 대표적인 "show stealer"로 꼽히는 경기이다. 경기 시간도 몇분 가량 메인 이벤트인 호건 대 안드레보다 길었으며 경기의 퀄리티도...[6] 이 당시 WWF에는 비 공식적으로 King 네임을 쓸 수 있는 타이틀이 있었다. 처음에는 일본계 레슬러 하쿠가 킹 하쿠라는 네임을 쓰다가 핵소우 짐 더간이 킹 하쿠를 이겨 킹 타이틀은 핵소우에게 넘어갔다. 이때부터 핵소우 짐 더간이 "킹 더간" 이라는 닉네임을 쓰게 되었는데, 그 해 새러데이 나잇 메인이벤트에서 마초맨이 킹 더간에게 승리를 거두어 킹 타이틀이 마초맨에게 갔다. 이후 워리어가 레슬매니아 7에서 마초킹에게 승리했으나 킹 타이틀은 승계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7] 악역으로 전환한 이후 슈퍼스타즈 오브 레슬링에서 성대한 대관식까지 열었다. WWF의 모든 악역들이 링으로 나와서 마초킹의 대관식을 축하했고 밀리언 달러맨 테드 디비이시가 마초킹에게 왕의 상징인 골든 셉터를 선물했다.[8] 패자는 은퇴하는 조건이다.[9] 그래서 커리어 매치에서 패배한 마초맨은 해설자로 매주 모습을 드러냈으나 오히려 커리어 매치의 승자였던 워리어의 모습은 거의 볼 수 없었다.[10] 각본상 결혼이다. 사실 두 사람은 진작 결혼한 부부다.[11] 이 당시 각본이 저 유명한 "엘리자베스는 나 릭 플레어의 연인이었다" 각본이다.[12] 얼티밋 워리어의 '얼티밋' + 마초 매니악의 '매니악'[13] 더 버처, 애벌런치, 케빈 설리번으로 이뤄진 스테이블. 버처는 WWF 시절의 브루투스 비프케익, 애벌런치는 어스퀘이크이다.[14] WWF 시절의 빅 보스 맨.[15] 데몰리션의 멤버였던 크러쉬, WCW에서 가장 막강했던 태그팀 크로닉의 멤버기도 했고 nWo에 가입하기도 했다.[16] 하지만 새비지와 친한 관계인 얼티밋 워리어유튜브를 통해 헐크 호건의 이야기는 거짓이라고 일축하고 둘은 그 뒤에도 설전을 펼쳤지만 2014년 WWE 명예의 전당 행사 때 만나서 호건이 화해를 요청하자 이를 받아들이며 둘의 오랜 앙금도 마침내 풀렸다고 한다. WWE 레슬매니아 XXX 이틀 후 얼티밋 워리어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던 걸 생각하면 마초맨의 죽음이 호건과 워리어의 극적인 화해까지 이어졌을 가능성이 높다.[17] 특히 워리어는 이를 5번 연속으로 맞은 후에도 킥아웃을 해서 이 기술의 위상이 하락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다만, 이 매치에서는 마초킹도 워리어의 고릴라 프레스 + 스플래시 무적 필승기를 씹었을 만큼 커리어가 걸린 격렬한 경기였던걸 감안해야할 부분도 있을듯.[18] 원래 엘리자베스가 잘생기고 몸 좋던 젊은 시절 새비지를 잡기 위해 따라다녔고, 결혼 이후 엘리자베스가 미디어에 노출되며 인기를 얻자 새비지가 의처증에 걸려 엘리자베스를 이래저래 의심했다고 한다. 그러다 이혼을 했으니... 마치 TV 드라마를 보는 듯한 두 사람의 러브스토리에 열광하던 팬들의 입장에서는 이래저래 착잡한 감정이 들게한다.[19] 재미있는 것은 이 관계를 주도적으로 시작한 것이 마초맨이 아니라 미성년자였던 스테파니였다란 이야기가 많다는 것이다.[20] 지니어스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했으며 닉네임 답게 재수 밥맛 천재 컨셉이었고 미스터 퍼펙트의 매니저 겸 태그팀 파트너이기도 했다[★] A B C 오른쪽이 도전자, 밑줄이 승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