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 리얼리즘
Socialist realism
사회주의 리얼리즘 - 두산백과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라고 하기도 한다. 근현대에 공산권에서 유행한 예술 사조로 선전, 선동에 특화되어 있다. 소련, 중국, 북한 등이 대표적으로 유행한 국가이다. 북한에서는 아직도 유행하고 있다.
그 시작은 1930년대로, 1934년의 소비에트작가동맹 제1회 대회에서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다음과 같이 규정했다.
흔히들 리얼리즘은 사실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인데,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사상이 개입되니 잘못된 리얼리즘이라는 오해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리얼리즘이란 결국 하나의 주체가 자신의 시선을 통해 전체 세계를 파악하고 그 조망도를 그려내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즉, 리얼리즘은 일종의 창작 방법론으로, '''세계를 관찰하는 주체가 어떤 시선에서 세계를 보느냐에 따라 관찰되는 사실의 모습은 달라지기 마련이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주체가 사회주의적 렌즈를 통해 세계를 파악해 그 세계를 서술하는 예술사조일 뿐이고, 해마다 인문대 새내기들 중 이를 모르는 학생들이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리얼'을 왜곡한다."라는 식의 이야기를 강의에서 했다가 성적이 초현실주의적으로 나오는 일(...)도 심심찮게 일어난다.
Socialist realism과 자주 혼동되는 것으로 Social realism이 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사회적 리얼리즘의 차이. 또는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와 사회적 사실주의의 차이.
위의 국가들 이외의 자유주의 진영 국가에서도 소수이지만 사회주의를 추구하면서 작업하는 화가들이 있었다. 심지어 미국에도 이런 화가들이 있었다.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집권기에는 뉴딜정책의 일환으로 농업안정국(Farm Security Administration)이나 공공산업진흥국(Works Progress Administration)에서 실업자가 된 예술가들을 시골에 보내 사진을 찍게 하거나 벽화를 그리게 시켰었다. 그때 만들어진 작품들은 지금도 당시 생활상을 보여주는 주요 자료 손꼽히고 있다.
당연히 이들의 성향은 소련, 중국, 북한의 그 사회주의 리얼리즘과는 달랐다. 소련, 중국, 북한의 공산주의는 전체주의화, 군국주의화된 국가를 옹호하는 것이었으나, 그 외 국가들은 그런 정치상황이 아니었으니 당연히 다를 수밖에. 그냥 유럽공산주의, 아나키즘, 트로츠키즘, 사회민주주의 적인 성향을 가진 작가들이 많았다.
현실사회주의 이념에 따른 사회주의 리얼리즘(Socialist realism)의 정의 역시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특징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 중 하나이다. 현실사회주의 이념을 따르는 국가들은 마르크스의 역사발전론에 따라 예술의 발전 단계를 비판적 리얼리즘(Critical realism)-사회주의 리얼리즘(Socialist realism)-공산주의 리얼리즘(Communist realism)의 3단계로 정의하였다[1] .
이 중 '''첫 단계인 비판적 리얼리즘'''은 '반 자본주의적이고 반 파시즘적인 노동자, 무산대중의 시각으로'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고발하는 사조를 의미한다. 즉, 예술이 사회의 문제를 고발하고, 노동자와 힘없는 민중의 시선을 대변하는 도구로 기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사회주의적 관점에 따르면 이것만으로는 부족한데... 단순히 문제를 드러내고 고발하는 것으로는 '무산대중의 입장을 대변하여 적극적으로 사회의 병폐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판적 리얼리즘보다 한 단계 더 발전하여 대중에게 이념적 지향점을 제시해주는(님이 무엇인지 설명하고 어떻게 해야 님을 만날 수 있는지 제시해주는) '''두 번째 단계인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 다음으로 나타날 예술의 사조가 '''세 번째 단계인 공산주의 리얼리즘''' 인데 이건 패스. 마르크스가 주장한 낮은 단계의 공산주의와 높은 단계의 공산주의를 레닌이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로 명명한 이래, 현실사회주의 진영에서 사회주의적 XXXX에 대비되는 공산주의 XXXX를 이야기 할 경우, 후자는 그냥 '이상적인' 무언가라는 추상적 개념이다. 나타난 적이 없으니 분석할 수도 없다.
이 관점에 따른 분류를 객관적으로 볼 경우, 비판적 리얼리즘의 사조에는 20세기 초중반의 걸작 중 상당수가 포함된 데 비해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속하는 작품들의 평가는 영 좋지 않다. 이는 정치적 선전의 도구로 사용된 예술 작품들 대다수의 평가가 좋지 않은 것과도 관련이 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어 현실의 부조리와 모순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그 문제를 고발하는' 리얼리즘 특유의 가치에 충실한 비판적 리얼리즘과는 달리, 사회주의 리얼리즘 작품들의 경우 프로파간다의 목적이 개입되면서 작품성에 타격을 입는다.
백과사전의 정의에 따르면, 소련에서 1920년대 말기부터 1930년대 초기에 제창되고 1934년의 소비에트작가동맹 제1회 대회에서 통일적 창작방법으로 확립된 문학예술의 방법이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리얼리즘의 본래 정신과는 조금 멀어지게 되었다.
'자, 현실을 봐. 뭣같지? 그런데 사회주의라는게 있네? 이걸 도입하면 참 좋을것 같지 않아?'
문제는 전망제시에 너무 치우쳐서 인물이 비현실적으로 그려졌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아무리 현장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더라도 그것을 해결하는 주인공이 영웅적 인물로 그려지기 때문에 큰 설득력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다. 예술적인 자유도나 창의성 면에서도 상당히 떨어졌고 말이다.
한반도의 경우 일제강점기를 기하여 카프 등이 생기면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추구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당시에 노동자 계급이 제대로 발전하지 않은 관계로 큰 호응을 얻지 못하였다. 때문에 농촌소설과 결합하는 등 기형적인 형태로 발전했다. 광복 후 대부분의 사회주의 리얼리즘 소설가들은 북으로 월북했으며, 황혼을 쓴 한설야는 북한의 소설학에 매우 큰 공헌을 했다 전해진다. 하지만 이후 북한은 도서정리사업을 단행해 철저하게 사상통제와 검열을 시행하였다.
만화나 극화에도 시라토 산페이처럼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추구한 사람들이 있다.
[image]]
예시는 북한 선전 포스터. 사회주의 리얼리즘 미술을 전부 드러내는건 아니지만, 사상과 이념을 긍정적으로 그려내거나 홍보하는 특징을 볼 수 있다.
러시아의 경우 소련시절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밀려 이전의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이 시도했던 구축주의나 생산주의 운동이 탄압받았다. 이 당시 예술가들은 르네상스나 바로크 풍 그림, 사상적인 의미를 담은 그림만을 그릴 것을 강요받았다. 변월룡처럼 이 기류에 순응하면서도 나름의 영역을 구축하는 형태도 있었으나, 카지미르 말레비치처럼 러시아를 떠나 망명하지 못한 화가들은 이런 환경에 어쩔 수 없이 순응해야 했다고. 오늘날 예술계에서는 이를 국가주의나 대중성만을 강조할 경우 예술에 생기는 부작용의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기도 한다.[2][3]
중국의 경우 특유의 '홍조를 띈 토실토실하고 밝은 이미지'를 강조한 포스터가 대량으로 제작되었다. 색조는 밝은 색 몇가지만 써서 뚜렷하게 보이도록 했으며, 당연한 이야기지만 붉은 색을 많이 쓴 편이다. 북한이 이 화풍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오늘날 뜨고 있는 아이웨이웨이, 장샤오강 등의 중국 신세대 작가들은 이 시기의 경험을 소재로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
북한은 소련에서 파견된 변월룡에 의해 미술 교육 방식부터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맞게 다시 세웠다.[4] 때문에 북한 회화는 러시아, 중국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사실적인 표현에 기반한다. 하지만 폐쇄적인 정책, 본토의 리얼리즘보다도 더욱 사상과 이념을 강조하다보니 작가의 몰개성함이 더 잦게 드러나는 편.
한편 민족주의적인 성향이 강해, 백두대간 풍경화나 백두산 호랑이 같은 그림을 많이 그리고, 줄리앙, 아그리파를 가지고 소묘 연습을 하는게 아니라 별도의 소묘 석고상을 만들어 그리게 한다고. 특이한건 자수가 발달해 있어 자수로 세밀화를 만들어낸다고 한다고 한다.
1959년 김일성은 만수대 해외개발사를 설립해 1974년 에티오피아의 혁명승리탑 무상 건립을 시작으로, 마다가스카르, 토고, 기니, 에티오피아, 세네갈 등에 공공건물, 기념비, 동상 등을 만들어주고 외화를 벌어오기도 했다고 한다. 이를 주제로 작품을 만든 한국 작가도 있다.#
소련, 중국, 북한에서 연극이란 선전극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중국의 경우 문화대혁명때 경극을 없애고 창작 연극이랍시고 각종 허접한 선전극을 만들어낸 역사가 있다. 북한이야 연극 영화계는 사실상 김씨 일가의 선전단 수준.
1. 개요
사회주의 리얼리즘 - 두산백과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라고 하기도 한다. 근현대에 공산권에서 유행한 예술 사조로 선전, 선동에 특화되어 있다. 소련, 중국, 북한 등이 대표적으로 유행한 국가이다. 북한에서는 아직도 유행하고 있다.
그 시작은 1930년대로, 1934년의 소비에트작가동맹 제1회 대회에서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다음과 같이 규정했다.
막심 고리키와 그의 작품 어머니가 유명하다."사회주의 리얼리즘은 현실을 그 혁명적 발전에 있어서 올바르게 역사적 구체성을 가지고 묘사할 것을 예술가에게 요구한다. 그때 예술적 묘사의 진실성과 역사적 구체성은 근로자를 사회주의정신에 있어서 사상적으로 개조하고 교육시키는 과제와 결부되지 않으면 안 된다."
2. 오해
흔히들 리얼리즘은 사실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인데,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사상이 개입되니 잘못된 리얼리즘이라는 오해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리얼리즘이란 결국 하나의 주체가 자신의 시선을 통해 전체 세계를 파악하고 그 조망도를 그려내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즉, 리얼리즘은 일종의 창작 방법론으로, '''세계를 관찰하는 주체가 어떤 시선에서 세계를 보느냐에 따라 관찰되는 사실의 모습은 달라지기 마련이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주체가 사회주의적 렌즈를 통해 세계를 파악해 그 세계를 서술하는 예술사조일 뿐이고, 해마다 인문대 새내기들 중 이를 모르는 학생들이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리얼'을 왜곡한다."라는 식의 이야기를 강의에서 했다가 성적이 초현실주의적으로 나오는 일(...)도 심심찮게 일어난다.
3. 사회적 사실주의(Social realism)와의 차이?
Socialist realism과 자주 혼동되는 것으로 Social realism이 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사회적 리얼리즘의 차이. 또는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와 사회적 사실주의의 차이.
위의 국가들 이외의 자유주의 진영 국가에서도 소수이지만 사회주의를 추구하면서 작업하는 화가들이 있었다. 심지어 미국에도 이런 화가들이 있었다.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집권기에는 뉴딜정책의 일환으로 농업안정국(Farm Security Administration)이나 공공산업진흥국(Works Progress Administration)에서 실업자가 된 예술가들을 시골에 보내 사진을 찍게 하거나 벽화를 그리게 시켰었다. 그때 만들어진 작품들은 지금도 당시 생활상을 보여주는 주요 자료 손꼽히고 있다.
당연히 이들의 성향은 소련, 중국, 북한의 그 사회주의 리얼리즘과는 달랐다. 소련, 중국, 북한의 공산주의는 전체주의화, 군국주의화된 국가를 옹호하는 것이었으나, 그 외 국가들은 그런 정치상황이 아니었으니 당연히 다를 수밖에. 그냥 유럽공산주의, 아나키즘, 트로츠키즘, 사회민주주의 적인 성향을 가진 작가들이 많았다.
3.1. 현실사회주의 국가의 내재적 기준
현실사회주의 이념에 따른 사회주의 리얼리즘(Socialist realism)의 정의 역시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특징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 중 하나이다. 현실사회주의 이념을 따르는 국가들은 마르크스의 역사발전론에 따라 예술의 발전 단계를 비판적 리얼리즘(Critical realism)-사회주의 리얼리즘(Socialist realism)-공산주의 리얼리즘(Communist realism)의 3단계로 정의하였다[1] .
이 중 '''첫 단계인 비판적 리얼리즘'''은 '반 자본주의적이고 반 파시즘적인 노동자, 무산대중의 시각으로'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고발하는 사조를 의미한다. 즉, 예술이 사회의 문제를 고발하고, 노동자와 힘없는 민중의 시선을 대변하는 도구로 기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사회주의적 관점에 따르면 이것만으로는 부족한데... 단순히 문제를 드러내고 고발하는 것으로는 '무산대중의 입장을 대변하여 적극적으로 사회의 병폐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판적 리얼리즘보다 한 단계 더 발전하여 대중에게 이념적 지향점을 제시해주는(님이 무엇인지 설명하고 어떻게 해야 님을 만날 수 있는지 제시해주는) '''두 번째 단계인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 다음으로 나타날 예술의 사조가 '''세 번째 단계인 공산주의 리얼리즘''' 인데 이건 패스. 마르크스가 주장한 낮은 단계의 공산주의와 높은 단계의 공산주의를 레닌이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로 명명한 이래, 현실사회주의 진영에서 사회주의적 XXXX에 대비되는 공산주의 XXXX를 이야기 할 경우, 후자는 그냥 '이상적인' 무언가라는 추상적 개념이다. 나타난 적이 없으니 분석할 수도 없다.
이 관점에 따른 분류를 객관적으로 볼 경우, 비판적 리얼리즘의 사조에는 20세기 초중반의 걸작 중 상당수가 포함된 데 비해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속하는 작품들의 평가는 영 좋지 않다. 이는 정치적 선전의 도구로 사용된 예술 작품들 대다수의 평가가 좋지 않은 것과도 관련이 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어 현실의 부조리와 모순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그 문제를 고발하는' 리얼리즘 특유의 가치에 충실한 비판적 리얼리즘과는 달리, 사회주의 리얼리즘 작품들의 경우 프로파간다의 목적이 개입되면서 작품성에 타격을 입는다.
4. 각 분야별 상황
4.1. 사회주의 리얼리즘 문학
백과사전의 정의에 따르면, 소련에서 1920년대 말기부터 1930년대 초기에 제창되고 1934년의 소비에트작가동맹 제1회 대회에서 통일적 창작방법으로 확립된 문학예술의 방법이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리얼리즘의 본래 정신과는 조금 멀어지게 되었다.
'자, 현실을 봐. 뭣같지? 그런데 사회주의라는게 있네? 이걸 도입하면 참 좋을것 같지 않아?'
문제는 전망제시에 너무 치우쳐서 인물이 비현실적으로 그려졌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아무리 현장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더라도 그것을 해결하는 주인공이 영웅적 인물로 그려지기 때문에 큰 설득력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다. 예술적인 자유도나 창의성 면에서도 상당히 떨어졌고 말이다.
한반도의 경우 일제강점기를 기하여 카프 등이 생기면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추구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당시에 노동자 계급이 제대로 발전하지 않은 관계로 큰 호응을 얻지 못하였다. 때문에 농촌소설과 결합하는 등 기형적인 형태로 발전했다. 광복 후 대부분의 사회주의 리얼리즘 소설가들은 북으로 월북했으며, 황혼을 쓴 한설야는 북한의 소설학에 매우 큰 공헌을 했다 전해진다. 하지만 이후 북한은 도서정리사업을 단행해 철저하게 사상통제와 검열을 시행하였다.
만화나 극화에도 시라토 산페이처럼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추구한 사람들이 있다.
4.2. 사회주의 리얼리즘 미술
[image]]
예시는 북한 선전 포스터. 사회주의 리얼리즘 미술을 전부 드러내는건 아니지만, 사상과 이념을 긍정적으로 그려내거나 홍보하는 특징을 볼 수 있다.
러시아의 경우 소련시절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밀려 이전의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이 시도했던 구축주의나 생산주의 운동이 탄압받았다. 이 당시 예술가들은 르네상스나 바로크 풍 그림, 사상적인 의미를 담은 그림만을 그릴 것을 강요받았다. 변월룡처럼 이 기류에 순응하면서도 나름의 영역을 구축하는 형태도 있었으나, 카지미르 말레비치처럼 러시아를 떠나 망명하지 못한 화가들은 이런 환경에 어쩔 수 없이 순응해야 했다고. 오늘날 예술계에서는 이를 국가주의나 대중성만을 강조할 경우 예술에 생기는 부작용의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기도 한다.[2][3]
중국의 경우 특유의 '홍조를 띈 토실토실하고 밝은 이미지'를 강조한 포스터가 대량으로 제작되었다. 색조는 밝은 색 몇가지만 써서 뚜렷하게 보이도록 했으며, 당연한 이야기지만 붉은 색을 많이 쓴 편이다. 북한이 이 화풍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오늘날 뜨고 있는 아이웨이웨이, 장샤오강 등의 중국 신세대 작가들은 이 시기의 경험을 소재로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
북한은 소련에서 파견된 변월룡에 의해 미술 교육 방식부터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맞게 다시 세웠다.[4] 때문에 북한 회화는 러시아, 중국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사실적인 표현에 기반한다. 하지만 폐쇄적인 정책, 본토의 리얼리즘보다도 더욱 사상과 이념을 강조하다보니 작가의 몰개성함이 더 잦게 드러나는 편.
한편 민족주의적인 성향이 강해, 백두대간 풍경화나 백두산 호랑이 같은 그림을 많이 그리고, 줄리앙, 아그리파를 가지고 소묘 연습을 하는게 아니라 별도의 소묘 석고상을 만들어 그리게 한다고. 특이한건 자수가 발달해 있어 자수로 세밀화를 만들어낸다고 한다고 한다.
1959년 김일성은 만수대 해외개발사를 설립해 1974년 에티오피아의 혁명승리탑 무상 건립을 시작으로, 마다가스카르, 토고, 기니, 에티오피아, 세네갈 등에 공공건물, 기념비, 동상 등을 만들어주고 외화를 벌어오기도 했다고 한다. 이를 주제로 작품을 만든 한국 작가도 있다.#
4.3. 사회주의 리얼리즘 연극
소련, 중국, 북한에서 연극이란 선전극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중국의 경우 문화대혁명때 경극을 없애고 창작 연극이랍시고 각종 허접한 선전극을 만들어낸 역사가 있다. 북한이야 연극 영화계는 사실상 김씨 일가의 선전단 수준.
5. 매체 등장 사례
- 문명 5에서는 사회 제도 시스템의 한 테넌트로 등장한다. 체제(공산주의) 이념의 1단계 테넌트중 하나. 모든 기념비 행복을 +2 해주고, 기념비를 2배의 속도로 빨리짓게 해준다. 재밌는건 현실과는 달리 정말로 행복도가 상승한다. 문명 5/사회 정책 참조.
6. 관련 항목
[1] 다만, 마르크스의 역사발전론, 즉 역사적 유물론은 역사의 변화와 발전을 정치, 경제, 소유관계등의 유물론적이고 형이하학적인 요소들의 변화를 통해 설명하려는 이론이고, 예술이나 종교, 사상등의 형이상학적인 요소는 '유물론적 요소에 의해 규정된다' 고 설명할 뿐, 역사적 유물론을 통해 설명하지는 않는다. 마르크스주의의 과도한 확장 해석이라고 볼 수 있다.[2] 역으로 미국과 유럽은 예술가들이 뭘하든 크게 터지하지 않았고, 그 결과 추상화나 개념미술 등의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게 되었다.[3] 한편 현재에 이르러선 러시아 출신의 일러스트레이터들이 탄탄한 드로잉력을 바탕으로 여러 업계에 진출하는 등 나름의 특색이 되고 있다. 다른 국가는 개념, 추상미술 등으로 여러 갈래로 발전할 때, 러시아는 본의 아니게 인물화, 정물화 등을 더 파고든 셈이기 때문.[4] 이전까진 일제강점기의 영향으로 일제식 미술교육이 주를 이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