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산성
1. 개요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에 있는 성곽.1970년에 사적 제212호로 지정되었다.
산성 이름에 붙은 '상당(上黨)'은 청주의 옛 지명이다.[1] 한국에서 보존 및 복구 상태가 매우 좋은 산성인데, 청주시에서 홍보를 위해 상당산성 앞에 '청주'를 붙여 쓴다.
2. 내용
본래는 백제시대부터 토성이 있었는데, 조선시대 숙종 42년(1716) 석성으로 개수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대한민국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대도시의 성곽들은 헐리거나 소실되는 사례가 많으나, 상당산성은 시 외곽의 고개 너머 산골에 있기 때문에 조선시대 성곽의 형태뿐만 아니라 주변의 자연 풍경이나 이동로의 구조까지 잘 보존되었다. 시 외곽에 존재해서 접근성이 애매한 것이 산성과 주변 환경을 비교적 잘 보존하는 데에 도움이 됐다ㅡ다. 내부시설 다수와 성벽 위 여장 같은 시설들은 소실되었지만, 부실하게 복원하느니 이대로 두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한반도의 성 건축 형태뿐만 아니라 풍경까지 잘 남은 성곽으로서 가치가 높다. 조선시대의 지방 촌락이 잘 보존된 낙안읍성과 함께 보존상태로만 본다면 조선시대 산성의 풍광을 대충이나마 찾아볼 수 있는 유적이다. 대도시권 성곽에 비하여 많이 갈아엎지 않았으면서 적당한 규모라서 전통적인 매력을 듬뿍 느낄 수 있다.
다른 산성들처럼 시대를 거치며 돌이 파내어져 초라한 토대가 드러난 부분이 많으나 그런 곳조차도 평가가 좋고, 쌓아올린 돌담이 예쁘게 보존되는 곳도 많다.
산성을 올라가면 청주 도심이 보이며, 식당이나 관광시설이 들어서 있고 산책로가 있다. 성은 동그란 모양으로 작은 골짜기를 싸는데, 안쪽에는 마을이 있어서 여러 가지 토속음식들을 판매한다.
3. 이용 가능한 대중교통
택시를 타거나 시내로 거쳐서 가는 862-2번을 타면 된다. 상당산성에서 시내로 갈 땐 862-1번을 타면 된다.
4. 여담
충북과 대전광역시 일대는 소위 '''중원지역'''이라고 지칭되며 삼국시대 5~6세기의 각축장이었던 만큼 관방시설이 굉장히 많다. 또한 '''중부내륙 산성군'''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등재''' 목록에 포함되었다.
5. 바깥고리
- 한국어 위키백과 : 청주 상당산성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상당산성
- 답사여행의 길잡이 12 - 충북 : 상당산성
- 대한민국 구석구석 : 청주 상당산성
- 대한민국 여행사전 : 상당산성
-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 : 상당산성
- 두산백과 : 청주 상당산성
6. 사적 제212호
상당산 계곡을 둘러 돌로 쌓아 만든 산성으로 백제 때 부터 이미 이곳에 토성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되는 곳이다.
『삼국사기』에는 통일신라 초기에 김유신의 셋째 아들이 서원술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때 쌓여진 것이 아닌가 추측되기도 한다. 상당이란 이름은 백제 때 청주목을 상당현이라 부르던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지금의 성은 임진왜란 때에 일부 고쳤으며 숙종 42년(1716)에 돌성으로 다시 쌓은 것이다. 성벽은 네모나게 다듬은 화강암으로 쌓았으며, 비교적 잘 남아있으나 성벽 위에 낮게 쌓은 담(여장)은 전혀 남아있지 않다. 성 안에 5개의 연못과 3개의 사찰, 관청건물, 창고 등이 있었는데, 현재는 문과 치성이 남아있다.
정상에 오르면 서쪽으로 청주·청원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여 서쪽 방어를 위해 쌓여진 곳이었음을 알 수 있다.
※(상당산성 → 청주 상당산성)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
7. 관련 문서
- 성(건축)
- 산성
- 청주시
- 금정산성 - 상당산성이 백제의 토성을 바탕으로 쌓은 유려함을 지녔다면, 금정산성 쪽은 영남의 화강암 지대에 쌓아올린 석성으로서 정반대적인 야성적인 산성 이미지이며 한국 최대의 길이를 자랑한다. 다만, 금정산성 쪽은 일제강점기 때 사람들이 많이 몰리면서 성곽훼손이 심해진 터라 상당산성처럼 보존이 좋지 못하지만, 둘 다 조선시대 산성의 풍광을 유추할 수 있는 유적이다.
- 남한산성 - 청태종도 쩔쩔맸던 한국을 대표하는 산성. 성곽의 보존상태도 남한산성이 더 뛰어나다. 하지만 주변 환경에 있어서는 상당산성 쪽이 더 조선시대의 풍광을 유추하기 쉽다. 남한산성은 한옥으로 지어진 가톨릭 성당까지 있을 정도로 국제화, 관광지화 되어버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