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용길
徐容吉
(1912년 8월 6일 ~ 1992년 6월 18일)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호는 일창(一滄)이다.
1912년 충청남도 아산군 탕정면에서 태어났다. 온양공립보통학교, 경성부 배재고등보통학교, 연희전문학교문과, 교토제국대학 경제학부 경제과를 졸업, 수료하였다. 이후 귀국하여 조선화약총포 주식회사에서 근무하였다. 8.15 광복 직후에는 모교인 배재고등학교 교사,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강사,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등을 역임하였다.
한편 8.15 광복 후 한국민주당에 입당하였다가 1946년 10월 탈당하였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 후보로 충청남도 아산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특별검찰관에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1949년 국회 프락치 사건으로 구속되었다가 1950년 6.25 전쟁 직후 석방되었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무소속 후보로 충청남도 아산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홍순철 후보에게 밀려서 낙선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무소속 후보로 충청남도 아산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 성기선 후보에게 밀려서 낙선하였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당 후보로 충청남도 아산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이영진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충청남도 아산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이민우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12년 8월 6일 ~ 1992년 6월 18일)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호는 일창(一滄)이다.
1912년 충청남도 아산군 탕정면에서 태어났다. 온양공립보통학교, 경성부 배재고등보통학교, 연희전문학교문과, 교토제국대학 경제학부 경제과를 졸업, 수료하였다. 이후 귀국하여 조선화약총포 주식회사에서 근무하였다. 8.15 광복 직후에는 모교인 배재고등학교 교사,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강사,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등을 역임하였다.
한편 8.15 광복 후 한국민주당에 입당하였다가 1946년 10월 탈당하였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 후보로 충청남도 아산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특별검찰관에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1949년 국회 프락치 사건으로 구속되었다가 1950년 6.25 전쟁 직후 석방되었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무소속 후보로 충청남도 아산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홍순철 후보에게 밀려서 낙선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무소속 후보로 충청남도 아산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 성기선 후보에게 밀려서 낙선하였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당 후보로 충청남도 아산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이영진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충청남도 아산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이민우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