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뮤아 S-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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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쓰인 프랑스군의 중형전차. 정식 제식명칭은 AMC[1] 1935 S이지만, 제식명보다는 제작사인 소뮈아 사의 이름을 딴 Somua S35라는 이름이 더 유명하다. 흔히 소뮤아로 알려져 있는데, 프랑스어 표기법상 소'''뮈'''아가 정확하다.
1934년도에 프랑스군은 기존의 전차를 대체할 새로운 전차를 요구하게 되었고, 그에 따른 계획이 수립되어 개발이 시작되었다. 계획의 목적은 그 당시 사용되던 전차보다도 무겁고 방어력도 뛰어난 새로운 중형전차 개발이었는데, 개발 주체로서 소뮈아(Somua) 사(社)[2] 가 선정되어 이에 소뮈아에서는 1934년 12월부터 본격적으로 연구, 개발에 들어가 1935년 4월에 첫 프로토타입을 제작했다.
이후 몇차례 더 프로토타입을 개선하고 여러가지 테스트가 이루어졌으며, 마침내 1936년 3월에 프랑스 기갑부대의 표준 중형전차로써 제식채용되어 완전히 자리잡았다. 이후 첫 인도분으로 40대가 납품되는 것을 시작으로 하여 총 430여대가 제작되었다. 원래의 수주 물량은 2,000여대 가량이었으나, 모종의 사정으로 인해서 원래의 1/5 정도밖에 안되는 저조한 양만이 도입되었다.
프랑스의 경우 영국의 전차 설계사상의 영향을 받아 탱크를 보병전차(infantry tank)와 기병전차(cavalry tank)로 구분하고 이 양자 사이의 엄격한 '분업'을 전제로 탱크 전술을 운용하였다. 보병전차로써 개발된 샤르 B1 bis와 달리, S-35 전차는 경쾌한 기동성을 지닌 기병전차로써 개발되었다.
보병전차는 통상의 전차보다 무겁고 중무장을 지닌 중전차(heavy tank)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병 사단이 방어망이 촘촘히 이루어진 적의 진지를 돌파할 때 이를 엄호하여 적의 수비라인을 깨는 용도로 개발된 전차를 의미하며 따라서 속도는 다소 떨어지더라도 보다 강력한 화력과 장갑을 필요로 한다. 소련의 중전차 개념과 같다.
반면 기병전차라는 것은 무게가 보다 가볍고 속도가 빠른 전차로서 독립적인 운용이 가능한 전차들을 말한다(medium tank). 따라서 기병용 전차의 경우, 가장 중요한 점은 속도이고 따라서 무장이나 장갑을 희생시켜 비교적 소구경의 화포를 장착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이는 이 기병용 전차의 경우 주상대가 적의 단순한 보병부대나 장갑차라는 전제에서 나온 것이다. 즉, 일단 보병과 무거운 보병전차(heavy tank)에 의하여 적의 수비라인이 뚫리게 된 이후에 이들 가볍고 빠른 기병전차들이 적의 후방까지 순식간에 진격하여 적이 대열을 정비하기 전에 적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적의 통신망을 파괴하는 것 등이 그 주된 임무라는 것이다.
물론 개념은 이렇지만 현실은 시궁창이라는 것을 전혀 반영하지 못했다는 것이 이러한 보병전차와 기병전차의 구분법의 중요한 문제다. 예를 들어 당장 스페인 내전에서도 원래 패주하는 적의 보병을 상대로 하기로 하였던 기병전차의 경우 실제로는 온전히 은폐하고 매복중인 적의 전차와 마주치는 일도 많았고 또 보병들의 대전차포와 대전차 소총의 십자포화를 신나게 두드려 맞게 됨으로써 많은 피해를 봤다. 즉, 실제 전장에서 보병전차와 기병전차를 엄격히 구별하여 각각 다른 전술을 적용하기가 곤란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스펙상으로는 '''1930년대 최고의 전차'''라고 불리기도 했다.
공격, 방어, 주행의 삼박자가 잘 맞았지만, 그 삼박자에만 집중을 했다.
이런 사태가 발생한 이유중 일단 전차 자체의 문제점을 제외하고 나머지 이유를 열거하면 아래와 같다.
1940년 프랑스가 독일에게 항복한 후에는 일부의 S-35 전차들이 북아프리카에 있는 프랑스 식민지로 배치되는데, 이 전차들은 이탈리아와 독일군의 북아프리카 작전 때 함께 동원되었다. 물론 북아프리카에서 독일군이 궤멸된 이후에는 샤를 드 골 장군 휘하의 자유 프랑스군의 장비로 편입되지만, 그 시점에서는 이미 구식장비화하여 제대로 운용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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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를 제외한 대다수의 전차는 독일에 의하여 압수(약 297대 정도)된 다음 방어용 전차 혹은 훈련용 전차로 전환되어 독일군에 의해 사용된다. 이 때 '''독일군은 포탑 위에 새로운 큐폴라를 달고 큐폴라에 해치를 만드는 등의 개조 작업'''을 한 후 Panzerkampfwagen 35-S 739(f).라는 이름으로 제식화했다.
독일군의 경우 이 S-35 전차 등의 프랑스 전차들로 전차부대(201 Panzerregiment)를 구성하여 이후 핀란드 등지로 보내어 소련군과의 전투에 사용했다. 물론 이 S-35 전차는 동부 전선에서의 치열한 전투 등으로 많이 파괴되었고 따라서 1944년 12월경에는 독일측에 약 11대 정도만 남았다.
일부 S-35 전차는 이탈리아와 불가리아 등에도 공여되었다.
일본 측에서 이 전차에 관심을 보여서 1942년쯤 비시 프랑스가 약 250대를 생산해서 보내주기로 약속이 잡혀있었지만, 비시 프랑스가 연합군과 손을 잡으려한다는 이유로 같은 해 11월경에 독일에 침공당하여 무산되었다. 만약 배달되었으면 노획한 스튜어트 전차와 함께 일본군 최강의 전차로 간주되었을 것이다.
독일군이 개수한 S-35 중 프랑스 내에 남겨진 전차는 프랑스 주둔 독일군이 계속 사용하여 노르망디 상륙작전에도 참가하였으며, 1944년 8월 파리 해방 직전에 동원되기도 했다. 당시 파리는 연합군의 파리 진주를 눈앞에 두고 파리 시민들이 봉기, S-35는 이 과정에서 진압을 위해 전투에 동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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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일부 변형 모델이 있는데 우선 1937년도에 프랑스 군부에 의하여 이 S-35 전차를 기본으로 하여 차체를 약간 크게 한 '''소뮤아 SAu40 전차'''에 대한 개발 계획이 나오는데 이는 75mm의 포를 탑재한 일종의 자주포였다. 프랑스군은 36대를 주문했지만 프로토타입 단 1대가 만들어졌는데, 이후 독일과의 전투 이후에도 살아남았으나 그 후의 운명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또 다른 모델로 S-40이 있는데 이는 S-35에서 포탑을 크게 하고 생산 원가 등을 낮추기 위하여 차체(포탑) 부분에 용접을 사용하는 등의 계획이었으나 1대의 프로토타입만 만들어졌을 뿐 생산되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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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들이 독일군이 2선에서 운용하던 S-35 전차를 노획하여 6파운더 포를 단 버전이 존재한다.
1. 제원
2. 개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쓰인 프랑스군의 중형전차. 정식 제식명칭은 AMC[1] 1935 S이지만, 제식명보다는 제작사인 소뮈아 사의 이름을 딴 Somua S35라는 이름이 더 유명하다. 흔히 소뮤아로 알려져 있는데, 프랑스어 표기법상 소'''뮈'''아가 정확하다.
2.1. 개발
1934년도에 프랑스군은 기존의 전차를 대체할 새로운 전차를 요구하게 되었고, 그에 따른 계획이 수립되어 개발이 시작되었다. 계획의 목적은 그 당시 사용되던 전차보다도 무겁고 방어력도 뛰어난 새로운 중형전차 개발이었는데, 개발 주체로서 소뮈아(Somua) 사(社)[2] 가 선정되어 이에 소뮈아에서는 1934년 12월부터 본격적으로 연구, 개발에 들어가 1935년 4월에 첫 프로토타입을 제작했다.
이후 몇차례 더 프로토타입을 개선하고 여러가지 테스트가 이루어졌으며, 마침내 1936년 3월에 프랑스 기갑부대의 표준 중형전차로써 제식채용되어 완전히 자리잡았다. 이후 첫 인도분으로 40대가 납품되는 것을 시작으로 하여 총 430여대가 제작되었다. 원래의 수주 물량은 2,000여대 가량이었으나, 모종의 사정으로 인해서 원래의 1/5 정도밖에 안되는 저조한 양만이 도입되었다.
2.2. 분류?
프랑스의 경우 영국의 전차 설계사상의 영향을 받아 탱크를 보병전차(infantry tank)와 기병전차(cavalry tank)로 구분하고 이 양자 사이의 엄격한 '분업'을 전제로 탱크 전술을 운용하였다. 보병전차로써 개발된 샤르 B1 bis와 달리, S-35 전차는 경쾌한 기동성을 지닌 기병전차로써 개발되었다.
보병전차는 통상의 전차보다 무겁고 중무장을 지닌 중전차(heavy tank)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병 사단이 방어망이 촘촘히 이루어진 적의 진지를 돌파할 때 이를 엄호하여 적의 수비라인을 깨는 용도로 개발된 전차를 의미하며 따라서 속도는 다소 떨어지더라도 보다 강력한 화력과 장갑을 필요로 한다. 소련의 중전차 개념과 같다.
반면 기병전차라는 것은 무게가 보다 가볍고 속도가 빠른 전차로서 독립적인 운용이 가능한 전차들을 말한다(medium tank). 따라서 기병용 전차의 경우, 가장 중요한 점은 속도이고 따라서 무장이나 장갑을 희생시켜 비교적 소구경의 화포를 장착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이는 이 기병용 전차의 경우 주상대가 적의 단순한 보병부대나 장갑차라는 전제에서 나온 것이다. 즉, 일단 보병과 무거운 보병전차(heavy tank)에 의하여 적의 수비라인이 뚫리게 된 이후에 이들 가볍고 빠른 기병전차들이 적의 후방까지 순식간에 진격하여 적이 대열을 정비하기 전에 적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적의 통신망을 파괴하는 것 등이 그 주된 임무라는 것이다.
물론 개념은 이렇지만 현실은 시궁창이라는 것을 전혀 반영하지 못했다는 것이 이러한 보병전차와 기병전차의 구분법의 중요한 문제다. 예를 들어 당장 스페인 내전에서도 원래 패주하는 적의 보병을 상대로 하기로 하였던 기병전차의 경우 실제로는 온전히 은폐하고 매복중인 적의 전차와 마주치는 일도 많았고 또 보병들의 대전차포와 대전차 소총의 십자포화를 신나게 두드려 맞게 됨으로써 많은 피해를 봤다. 즉, 실제 전장에서 보병전차와 기병전차를 엄격히 구별하여 각각 다른 전술을 적용하기가 곤란해진다는 것이다.
3. 화려한 스펙
- 경사각이 주어진 전면 47mm 장갑은 1936년 독일의 주력 전차인 1호 전차와 2호 전차보다 훨씬 두꺼운 중장갑이었으며, 당대 독일의 전차포로는 격파가 불가능했다. 또한 32구경 47mm 주포는 독일의 모든 전차를 전면에서 한방에 파괴가능했다. 이러한 중무장에 중장갑을 자랑했음에도 기동성 역시 매우 좋아서 최고속력은 40.7km/h, 항속거리는 230km이나 되는 등 공격, 방어, 주행의 3박자가 조화를 이루면서 각각의 성능도 매우 좋았다.
- 방어력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주요 부분을 소위 cast steel이라고 부르는 주강으로 제작했다. 부착 위치는 전차의 밑부분(이 위에 엔진과 트랜스미션 등이 위치), 앞부분(승무원들이 탑승하는 공간으로 포탑 등을 커버), 뒷부분(엔진을 커버하는 부분)의 중요한 세군데 지점이며, 그 당시 전차로는 드물게 주강으로 된 장갑에 경사각을 채용하여 방어력을 더욱 증강시켰다. 게다가 주강장갑을 분할하여 제작한 후 볼트로 결합하는 방식을 사용해서 생산성 향상에도 도움을 주었다.
- 그 당시의 신기술인 differential steering 시스템을 채용하여 각 무한궤도들이 각각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거나 한쪽은 빨리, 다른 쪽은 느리게 움직이는 것이 가능하여 차체가 제자리에서 360도 회전이 가능했다. 이러한 기능을 추가한 변속장치는 전진 5단, 후진 1단으로 실사용에 문제는 없었다. 샤르 B1이 주포가 차체에 완전히 고정되어 제자리 선회로 조준하게 되어 있었는데 이와 마찬가지였던 것. 조향장치 역시 핸들식으로 되어 있었다.
- 엔진과 전투실을 방화격벽으로 분리시켰고 자동소화장치를 장비하였다. 작동 방식은 전차 내부의 엔진, 연료탱크, 운전석 뒤등 중요한 부분의 온도가 일정 온도 이상이 되면 탱크 안의 스프링클러가 자동 작동하는 방식으로, 소화액으로는 메틸화 브롬(CH3Br)이라는 화학물질을 사용하여 빠른 소화 및 소화후에도 기기가 정상작동되도록 한다.[3]
- 현가장치의 재질은 철제인데, 우선 전차 앞쪽에 커다란 롤러형 아이들러(idler pulley) 바퀴가 앞 쪽에 위치하고 전차 뒷편에는 커다란 톱니바퀴(sprocket)가 장착되며, 이들 아이들러와 스프로켓 사이에는 작은 형태의 9개의 바퀴가 장착되었는데 그 중 8개는 (2개씩 짝을 이루는) 로드 휠(eight road wheels paired on four bogies)이었고 나머지 1개는 텐션 휠(tension wheel)로 구성된다. 약간 복잡한 방식이지만 샤르 B1 bis와는 달리 고속주행이 가능하며, 그 당시의 프랑스 전차가 그렇듯이 이 바퀴를 보호하기 위하여 철판으로 사이드 커버를 씌워서 적의 사격으로 인한 파손에 대비하였다.
- 무한궤도는 초기형의 경우 144개의 트랙(track link)로 구성되었고 각각의 트랙의 경우 길이가 75mm이지만, 후기형의 경우는 103개의 트랙(track link)에 각 트랙 길이 105mm의 것으로 바뀐다. 초기형이건 후기형이건 고속주행에 문제는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스펙상으로는 '''1930년대 최고의 전차'''라고 불리기도 했다.
4. 단점
- 당시 기준으로 상당한 고속주행이 가능하지만 현가장치 부분이 너무 약하고 수리하기가 아주 어려워 분해에만 하루가 걸릴 정도로 유지 보수가 너무나 힘들었고 이 부분은 전쟁 직전인 39년에 와서 개선된다.
- 연료 탱크가 100리터와 410리터의 2개로 나뉘어 있었다. 문제는 구조가 복잡하고 제대로 된 교육도 잘 이루어지지 않아 100리터짜리에만 연료를 채우고는 기름을 가득 채웠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나왔던 것. 덕분에 항속거리가 수십 킬로미터도 되지 않는 사태가 발생했다. 샤르 B1과 유사하게 견인식 연료 트레일러가 달린 전용 연료 보급차량도 계획되어 있었으나 정작 이 차량은 제대로 배치가 되지 않아 실전에서는 더욱 장거리 이동에 문제가 많았다.
- 1인용 포탑을 채택하여 전차장 1인이 좁은 포탑 안에 들어가서 방향지시, 전투 준비명령, 포탄 장전 및 배출등 전차장, 포수, 탄약수의 역할을 혼자서 다 해야 한다. 즉 1인 3역인 셈인데 이렇게 되면 당연히 방향지시를 할 때는 사격을 못하고, 주포를 조준할 때는 주변관찰을 못하며, 장전할 때는 전투지시를 못하는 등의 애로사항이 발생하므로 항상 독일의 전차보다 매우 굼뜨고 반응속도가 느리게 된다. 개량형에서는 그나마 포탑을 조금 크게 만들어 차체 오른쪽의 무전수가 약간의 보조를 할 수 있는 1.5인승 포탑이 되었다. 다만, 이건 소뮈아의 문제만은 아니고 프랑스 전차의 문제이다.
- 주강으로 된 장갑판을 연결하는 방식은 몇 개 안되는 볼트. 그래서 설령 포탄이 장갑을 관통하지 않더라도 몇 번 집중적으로 포격당하다보면 볼트가 부서진다. 일단 그렇게 되면 장갑이 알아서 벗겨지는 사태가 발생한다. 이 역시 프랑스 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초기형 전차들이 겪던 문제.
- 모든 전차에 무전기를 지급하기로 했지만 보급이 늦어서 무전기는 소대장 전투 차량에만 지급했기 때문에 4대 중 한대꼴이였다. 그래서 모든 전차가 안테나를 가지고 있지만 지급받지 못했다.
공격, 방어, 주행의 삼박자가 잘 맞았지만, 그 삼박자에만 집중을 했다.
5. 실전
이런 사태가 발생한 이유중 일단 전차 자체의 문제점을 제외하고 나머지 이유를 열거하면 아래와 같다.
- 원래 프랑스군이 원하는 수량인 약 2,000대에 턱없이 부족한 상태로 공급되어 프랑스군이 원하는 소위 '집중적인 운용'을 할 수 없었다.
- 프랑스군의 지나친 구태의연한 소극적인 전략, 즉 마지노 선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식의 안이한 수세적인 전략으로 전차 운용에 있어서도 일단 시간적으로 버티기만 하면 된다는 식의 안이한 전술과 이를 역이용한 독일군의 허를 찌르는 전격전에 말려들어 프랑스 전차부대가 우왕좌왕하다가 독일군의 공격에 맥없이 무너졌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프랑스군이 독일군의 공격 예상 지점으로 판단한 곳에서의 독일군의 공격은 종종 속임수(feint: 위장 공격)로 판명되었고 반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독일군의 전차 부대가 프랑스 전차 부대를 포위하는 상황이 벌어지므로 이 포위된 전차 부대를 구원하기 위하여 다른 곳에 포진한 전차 부대들이 급히 이동하게 되는데 독일군은 이러한 우왕좌왕하는 틈을 노려서 대대적인 역습에 나서게 된 것 등이다.
- 일부 운용상의 미스가 있었는데, 하나의 예를 든다면, 무전기가 턱없이 부족하여 S-35 전차의 80%는 무전기없이 전투에 임하는 꼴이 되었다. 상세히 설명하자면 프랑스 전차 부대의 경우 5대의 전차로 구성되는 소대급에서 보면, 선두 지휘차량에게만 본대와 연락할 무전기(ER-29)가 주어져 직접 본대에 보고하고 그 지시사항을 휘하 전차들에 다시 사실상 내부 교신용 무전기(ER-28)로 전달하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 자체가 각 전차마다 본대와 연락할 수 있는 무전기를 각각 지급한 독일에 비하여 아주 열악한 시스템일 뿐만 아니라, 그나마 이 사실상 내부 교신용 무전기들이 제대로 지급되지 못하여 선두 지휘차량을 제외한 후미의 전차들의 경우 무전기가 전혀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허다하였다.[5]
6. 말로
1940년 프랑스가 독일에게 항복한 후에는 일부의 S-35 전차들이 북아프리카에 있는 프랑스 식민지로 배치되는데, 이 전차들은 이탈리아와 독일군의 북아프리카 작전 때 함께 동원되었다. 물론 북아프리카에서 독일군이 궤멸된 이후에는 샤를 드 골 장군 휘하의 자유 프랑스군의 장비로 편입되지만, 그 시점에서는 이미 구식장비화하여 제대로 운용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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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를 제외한 대다수의 전차는 독일에 의하여 압수(약 297대 정도)된 다음 방어용 전차 혹은 훈련용 전차로 전환되어 독일군에 의해 사용된다. 이 때 '''독일군은 포탑 위에 새로운 큐폴라를 달고 큐폴라에 해치를 만드는 등의 개조 작업'''을 한 후 Panzerkampfwagen 35-S 739(f).라는 이름으로 제식화했다.
독일군의 경우 이 S-35 전차 등의 프랑스 전차들로 전차부대(201 Panzerregiment)를 구성하여 이후 핀란드 등지로 보내어 소련군과의 전투에 사용했다. 물론 이 S-35 전차는 동부 전선에서의 치열한 전투 등으로 많이 파괴되었고 따라서 1944년 12월경에는 독일측에 약 11대 정도만 남았다.
일부 S-35 전차는 이탈리아와 불가리아 등에도 공여되었다.
일본 측에서 이 전차에 관심을 보여서 1942년쯤 비시 프랑스가 약 250대를 생산해서 보내주기로 약속이 잡혀있었지만, 비시 프랑스가 연합군과 손을 잡으려한다는 이유로 같은 해 11월경에 독일에 침공당하여 무산되었다. 만약 배달되었으면 노획한 스튜어트 전차와 함께 일본군 최강의 전차로 간주되었을 것이다.
독일군이 개수한 S-35 중 프랑스 내에 남겨진 전차는 프랑스 주둔 독일군이 계속 사용하여 노르망디 상륙작전에도 참가하였으며, 1944년 8월 파리 해방 직전에 동원되기도 했다. 당시 파리는 연합군의 파리 진주를 눈앞에 두고 파리 시민들이 봉기, S-35는 이 과정에서 진압을 위해 전투에 동원되었다.
7. 파생형
7.1. 소뮤아 SAu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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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일부 변형 모델이 있는데 우선 1937년도에 프랑스 군부에 의하여 이 S-35 전차를 기본으로 하여 차체를 약간 크게 한 '''소뮤아 SAu40 전차'''에 대한 개발 계획이 나오는데 이는 75mm의 포를 탑재한 일종의 자주포였다. 프랑스군은 36대를 주문했지만 프로토타입 단 1대가 만들어졌는데, 이후 독일과의 전투 이후에도 살아남았으나 그 후의 운명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7.2. 소뮤아 S-40
또 다른 모델로 S-40이 있는데 이는 S-35에서 포탑을 크게 하고 생산 원가 등을 낮추기 위하여 차체(포탑) 부분에 용접을 사용하는 등의 계획이었으나 1대의 프로토타입만 만들어졌을 뿐 생산되지는 못했다.
7.3. 소뮤아 S-35 유고슬라비아 개조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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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들이 독일군이 2선에서 운용하던 S-35 전차를 노획하여 6파운더 포를 단 버전이 존재한다.
8. 매체에서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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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노획해 개조한 버전이 3티어 프리미엄 중형전차로 등장한다. 포탑에서 혼자 용 쓰는 전차장의 편의는 플레이어가 알 바 아니므로(...)[6] 괜찮은 성능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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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프랑스 테크 트리에는 S35가 없었지만 드디어 9.7 업데이트에서 프랑스 3티어 중형전차로 등장했다! 또한 구축전차 버전도 등장하였다.
독일에서 노획해 개조한 버전이 3티어 프리미엄 중형전차로 등장한다. 포탑에서 혼자 용 쓰는 전차장의 편의는 플레이어가 알 바 아니므로(...)[6] 괜찮은 성능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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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프랑스 테크 트리에는 S35가 없었지만 드디어 9.7 업데이트에서 프랑스 3티어 중형전차로 등장했다! 또한 구축전차 버전도 등장하였다.
파생형인 S40이 3성 4도면 중형전차로 2017년 7월 27일 업데이트로 등장했으며 S-35가 동년 9월 21일 업데이트때 3성3도면 중형전차로 등장했다.
글로벌 시대의 두 번째 프랑스 고유 유닛으로 등장한다.
프랑스 지상군 트리의 1랭크 중형전차로 등장한다. 장갑은 봐줄 만 하지만 나사 빠진 화력과 부족한 기동성 때문에 애매한 성능을 갖추고 있다. 실제로는 게임에 구현된 것보다 더욱 단단하다고 하나, 이 전차를 만든 소뮤아 사가 50년대에 다른 회사와 합병 인수되면서 군사자료들이 소실되었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이 전차를 가이진 사에서 만들 적에 직원들이 직접 프랑스 소뮤르 군사박물관까지 직접 찾아가서 엑스레이까지 떠갔다고 한다. 그럼에도 정확한 장갑 수치 자체는 모른다는 듯하다.
9. 둘러보기
[1] '''A'''uto'''M'''itrailleuse de '''C'''ombat)[2] Société d'outillage mécanique et d'usinage d'artillerie; 유명한 무기류 제작 회사인 슈나이더(Schneider) 사의 자회사이다.[3] 월드오브탱크 기술자문 니콜라스 모런의 동영상에 따르면 수동작동이다. 출처: https://youtu.be/VfaVeZ_xjIc?t=437[4] 개선형에서는 장갑 두께가 비슷해졌지만, 3호 전차의 장갑은 수직장갑이라 같은 두께라 해도 S-35의 경사장갑보다 방어력이 떨어졌다.[5] 지금 우리가 보면 정말 이상하겠지만 당시 프랑스군은 총사령부에서조차 무전기를 쓰지 않았다(...).[6] 다만 전차장에 역할이 몰려있으므로 승무원 스킬을 찍을 때 심각한 애로사항이 꽃피게 된다. 물론 전투 자체가 힘들었던 현실에 비하면 이 정도 어려움은 아무것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