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선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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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 정조와 수빈 박씨 사이에서 태어난 딸. 순조의 동복 여동생이다.
2. 생애
1793년(정조 17) 3월 1일에 태어났다. 사실 숙선옹주는 어머니 수빈 박씨의 출산예정일이 한 달이 지나서야 태어났다.[2] 다만, 당시 일성록에서 정조는 다행히 순산하였다고 말한 것으로 보아 수빈 박씨의 건강에는 큰 문제가 없었던 듯 하다.
1796년 숙선옹주가 천연두에 걸렸는데 이때 아버지 정조와 오빠인 순조가 이문원으로 피신했다. 후에 숙선옹주가 완쾌하자 정조가 크게 기뻐하며[3] 마마신 전송 의식으로 숙선옹주의 완쾌를 기뻐하는 시를 지었다.
숙선옹주는 정조의 생전에 작호를 받지 못하였다. 그래서 오빠인 순조가 '숙선'이라는 작호를 주었다.[4]
1804년(순조 3) 1월 16일 창덕궁 희정당에서 부마 초간택을 하고, 3월 17일 중희당에서 재간택, 4월 9일 중희당에서 삼간택을 거쳐 전 정랑 홍익모의 아들 홍현주를 낙점했다. 같은 해 5월 17일 가례청이 세워지고 혼인을 치른다.
숙선옹주는 아버지인 정조와 오빠인 순조의 사랑을 많이 받았는데 숙선옹주가 시집갈 당시 순조가 혼수로 많은 재물을 챙겨주면서 "선왕(정조)이 몹시 사랑하는 바이고 (나의) 유일한 동생이니 선례로 삼지말라" 라고 신하들에게 훈계를 내린 기록이 있을 정도다.[5]
이외에도 《순조대왕묘지문》, 《명경왕비가 내린 행록》등에는 숙선옹주를 자신과 같이 대하였으며 숙선옹주가 결혼한지 고작 3일만에 순조는 옹주를 그리워하여 매우 서글픈 빛을 띠었으며, 옹주가 궁으로 돌아올 때에는 마치 멀리 떨어져 있던 사람이 온 것처럼 맞이하여 위로하였고 출가한 후 계속 서로 만나볼 수 없는 것을 한스럽게 여겨 문안과 선물을 빠뜨리는 날이 없었으며 숙선옹주가 말하는 것은 반드시 따라 주었고 요구하는 것은 반드시 들어주었다고한다.
또한 숙선옹주가 순조를 방문하러 입궁한다고하면 순조가 기뻐하며 동생의 방문을 몹시 기다렸는데 기쁜 표정이 주변 사람들이 보일정도로 눈에띄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순조는 신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숙선옹주의 집으로 행차하기도 할만큼 우애가 깊었다.
《조선요리학》에서 숙선옹주가 무를 썰어 만든 요리를 임금에게 올려 크게 칭찬을 받았는데 이것이 깍두기의 시작이라고 소개하였다. 아버지인 정조가 승하했을 때 숙선옹주의 나이가 겨우 8세였으므로, 여기서 말하는 임금은 순조인 것으로 보인다.
숙선옹주는 아버지인 정조를 닮아 여러가지 시를 남겼는데 남편인 홍현주의 문집에 수록되어 있다. 이는 왕실의 여인으로서는 유일하게 남아있는 시라고 한다.
淸風入羅袖(청풍입나수) 맑은 바람은 소매자락에 들어오고
身隨白雲去(신수백운거) 몸은 흰구름 따라가네
啼鳥無定樹(제조무정수) 우는 새는 정한 나무가 없고
流水向何處(유수향하처) 흐르는 물은 어느 곳으로 가는가
봉은자(逢隱者)
3. 가계
3.1. 왕가(전주 이씨)
3.2. 외가(반남 박씨)
- 외할아버지 : 증영의정 박준원 - 사후에 외손자인 순조가 영의정으로 증직했다.
- 외할머니 : 원주 원씨
3.3. 시가(풍산 홍씨)
- 시할아버지 : 영의정 홍낙성[7]
- 시아버지 : 홍인모
- 시어머니 : 영수합 달성 서씨
- 남편 : 영명위 홍현주(1793년 ~ 1865년)
- 아들 : 홍우철(1813년 ~ ?)
- 손자 : 홍승억(1842년 ~ ?)[6]
- 아들 : 홍우철(1813년 ~ ?)
- 남편 : 영명위 홍현주(1793년 ~ 1865년)
4. 기타
서울특별시 중랑구에는 숙선옹주로라는 도로가 있다. 하지만 이 숙선옹주로는 정조의 차녀 숙선옹주가 아닌, 태종의 후궁 숙선옹주(선빈 안씨)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1] 동국여지비고에서 숙선옹주의 제택으로 나온다. 지금의 서울시 중구 초동 일대. [2] 현대의학으로도 산모와 아이 모두 위험한 출산이다. [3] 정조는 예전에 천연두로 첫아들인 문효세자를 잃었다.[4] 참고로 정조는 2남 2녀로 두 딸이 있었는데 의빈 성씨 소생의 큰 딸은 태어난지 1년도 살지 못한채 일찍 죽었다. 즉, 정조는 생전에 자식들에게 작호를 내린적이 없었다. 2남 중 큰 아들은 세자를 책봉하였기 때문에 작호를 내리지 않았고 둘째아들인 순조가 태어날 당시에는 아들이 없었으니 작호를 내릴 수가 없었다.[5] 숙선옹주는 순조에게는 유일한 동복 남매인데, 순조의 고조부가 되는 숙종도 하나뿐인 여동생 명안공주를 무척 아꼈다. [6] 이후 대가 끊겼다고 한다.[7] 혜경궁 홍씨의 6촌 오빠이다. 정조의 후궁 의빈 성씨의 친언니가 홍낙성의 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