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만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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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use of Normandy'''
1. 개요
2. 역사
3. 계보

언어별 명칭
영어
House of Normandy
프랑스어
Maison de Normandie

1. 개요


영국(잉글랜드 왕국)의 역대 왕조 중 하나. 앵글로색슨 민족의 웨식스 왕조를 멸망시켰다.
윌리엄 1세, 윌리엄 2세, 헨리 1세까지 3대에 걸쳐 군림했으며, 헨리 1세가 프랑스 리옹 생드니에서 전사하면서 가문이 단절되었다. 이후 헨리 1세의 딸인 마틸다(Matilda)는 앙주 백작이었던 제프리 플랜태저넷(Geoffrey Plantagenet, 프랑스어식으로는 '조프루아 플랑타주네-Geoffroy Plantagenêt')과 결혼하였고, 무정부시대 이후에 둘 사이의 장남인 헨리 2세가 잉글랜드의 국왕에 즉위하면서 플랜태저넷 왕조가 시작되었다. 이후의 랭커스터 왕조, 요크 왕조, 현대의 윈저 왕조 모두 노르만 왕조를 뿌리로 한다.

2. 역사


기원은 바이킹(노르드인)의 모험가 롤로. 롤로는 서프랑크 왕국의 샤를 3세에게 신봉하는 대가로 노르망디 지방을 영지(노르망디 공국)로 받았으며 '노르망디 백작'이 된다. 롤로의 후손들은 노르망디 공작으로 승격된다.
1066년 노르망디 공 윌리엄 1세는 헤이스팅스 결전에서 해럴드 2세를 죽이고 잉글랜드 왕에 오른다. 윌리엄 1세가 노르망디 공작 지위를 버린 게 아니었기 때문에 잉글랜드 왕인 동시에, 프랑스 카페 왕조의 신하이기도 했다.
당시 잉글랜드의 인구를 조사한 둠스데이북이라는 책을 보면 노르만 잉글랜드 정복 이전에는 2천 명이 넘는 앵글로색슨 영주들이 있었는데 정복 이후에는 오로지 3백 명 내외였다. 노르만 문화는 잉글랜드 곳곳에 새롭게 지어진 성당과 대륙식 성채들을 기반으로 뻗어나갔으며, 북유럽 문화권이던 잉글랜드를 대륙 문화권에 편입시켰다.
노르망디에 처음 정착한 롤로 이후 5대 동안 노르만 인들은 프랑스 문화에 동화됐다. 궁정에서는 프랑스어를 사용했고 오늘날 영어에 프랑스어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pork(프랑스어로는 porc, 돼지고기), beef(프랑스어로는 bœuf, 쇠고기), mansion(프랑스어도 철자가 동일, 집) 등이 그렇다.
그렇다고 소수 노르만이 앵글로색슨을 모두 학살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앵글로색슨의 문화와 혈통 역시 약간의 수정을 거친 채로 계속 이어질 수 있었다.
헨리 1세가 아들없이 전사하면서 노르만 왕조가 단절이 되지만, 딸 마틸다(잉글랜드 국왕)를 통해 그 뿌리가 계속해서 플랜태저넷 왕조로 이어진다. 노르만 왕조 때 노르망디의 영토와 앙주 공이 혼수로 들고온 프랑스의 절반도 존 왕 때 거의 다 날리고 브리튼 섬 만으로 영국 영토가 줄어든다.
그러나 노르망디 공국의 영토 중 채널 제도는 프랑스에 거의 붙어있다시피 한 섬들이지만 영국 영토로 남겨두었다. 현재도 영국령이다.
노르만 왕조 이후로 잉글랜드에서는 프랑스어의 유입으로 인해 순수 영어 이름은 거의 쓰이지 않게 되었다. 애설레드애설스탠 등등 고귀하다는 뜻을 가진 'Æðele'과 다른 명사를 결합해 만드는 인명들은 상당히 인기있었고 지배층, 피지배층을 가리지 않고 널리 쓰였으며 왕의 이름으로 굉장히 많이 쓰였지만[1], 노르만 정복 이후로 죄다 묻혀버리고 그 자리를 프랑스어에서 건너온 인명들이 차지하게 되었다. 지배층의 대부분이 색슨족이 아닌 노르만족이었기에 당연했던 일.

3. 계보


윌리엄 1세
아델라
스티븐 왕
윌리엄 2세
헨리 1세
마틸다
헨리 2세
(플랜태저넷 왕조)

[1] 웨식스 왕조의 왕만 따져봐도 애설허드, 애설울프, 애설스탠, 애설버트, 애설레드 1세, 애설볼드, 애설레드 2세로 총 7명이나 된다. 또 그외에도 아예 브리튼어가 확실한 캐드왈라나 혹은 논란이 있지만 체르디치킨리치처럼 브리튼어로 추정되는 인명들도 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