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오자키 야스히사
1. 개요
일본의 정치인.
2. 생애
에히메현 마츠야마시에서 태어나 도쿄도립 신주쿠 고등학교를 거쳐 도쿄대학 교양학부를 졸업했다. 졸업 후 일본은행에서 근무하다가 하버드 대학교 케네디행정대학원으로 유학을 가 행정학 석사 학위를 받는다.
1993년 아버지의 정계 은퇴로 지역구를 물려 받아 제40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당시 자민당 소속으로 구 에히메현 제1구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한다. 2년 뒤 소선거구제로 변경되자 참의원으로 자리를 옮겨 제17회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서 에히메현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된다. 이후 대장정무차관을 지냈다. 2000년 참의원을 중도 사직한 후 제42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에히메현 제1구에 출마해 당선되어 중의원으로 복귀했다. 이후에도 에히메현 제1구를 지역구로 당선되어 현재까지 8선을 기록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에서 외무부대신을 역임했으며, 고이즈미의 후임으로 자신과 당선 동기인 아베 신조가 자민당 총재로 당선되면서 아베 신조 1차 내각에서 내각의 2인자 자리인 내각관방장관을 역임한다. 또 이 당시 납치문제담당대신도 겸임했다. 후임은 요사노 가오루.
아베 1차 내각 이후 아소 다로 내각에서 국적법 개정을 강력하게 추진했는데 이 당시 개정 반대파로부터 ‘A급 전범’이라는 비난을 들었다. 민주당 정권 시절에는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조사 위원회법의 개정에 관여했다. 그러다가 자민당이 다시 정권을 되찾은 이후 아베 신조 2차 개조 내각에서 후생노동대신으로 내정되었으며, 3차 내각 때까지 재임하면서 3년 간 후생노동대신직을 역임한다. 후생노동대신 퇴임 이후 2018년에는 아마리 아키라의 후임으로 자민당 행정개혁추진본부장이라는 당직을 맡고 있다.
3. 기타
- 고교 시절 학생회장을 맡는 등 학생운동에 참여한 적이 있다고 한다. 당시 혁명적 공산주의자동맹 전국위원회 계열의 사회 과학 연구회에 속했으며, 학생운동을 꺼려하는 학교 측에 항의하는 뜻으로 교장실을 점거하고 10일간 시위를 한 적도 있다고 한다.# 미국 유학을 할 때도 베트남 전쟁 반대 시위에 참여했었다. 자민당 내 다른 정치인 자제들과 비교하면 특이 이력인 샘이다.
- 도쿄전력 구제 법안에 찬성했는데 당시 본인이 도쿄전력 주식 1659주를 보유하고 있었다.
- 취미는 등산, 수영, 음악 감상이다.
4. 둘러보기
[1] 1917~2011, 대장성 관료 출신 정치인. 중의원, 총무청 장관 등을 역임했다.[2] 전 마츠야마시노노메여자대학 학장.[3] 변호사라고 한다.[4] 미쓰비시 상사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