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흥

 


1. 개요
3.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시흥동


1. 개요


始興, Siheung
대한민국의 지명. 아래의 지명들의 한자는 모두 똑같다.
원래는 구한말까지 지금의 서울특별시 금천구, 영등포구(양화동과 조선시대-구한말 한정으로 여의도 제외), 구로구 동부, 관악구 상당 부분, 동작구 일부 및 경기도 광명시,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박달동 일대를 일컫는 말로, 이른바 오리지널 시흥이다. 삼국시대의 '''잉벌노'''(고유어로는 늠내)[1]와 조선 전기의 '''금천현'''[2]도 이쪽이다.
[image]
조선 후기 시흥의 위치
현재의 지명으로는 와닿지 않는다면, 위 지도에서처럼 과거 성저십리 지역의 남남서 지역 일대라고 생각하면 된다.
또한, 일제강점기부터 1989년 폐군까지의 기간 중 시흥군에 속했던 지역인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구로구 동부, 관악구, 동작구, 금천구, 서초구의 대부분 및 경기도 광명시, 안양시, 과천시, 군포시, 안산시, 시흥시, 의왕시 일대를 일컫기도 한다.
시흥의 역사적 내력에 관해서는 시흥군 문서 참조. 그 흔적은 아래의 두 지명에 남아있으며, 두 지명의 근원은 같다.
오늘날에는 '시흥'이라 하면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동 내지는 경기도 시흥시를 가리킨다. 단, 시흥시를 언급할 때는 동 단위까지(예- 정왕동, 연성동, 목감동 등) 정확히 불러주는 것이 좋으며, 비수도권 사람에게는 인근 생활권으로 불러주면 된다(예 : 안산, 광명, 부천, 인천 근처).

2.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동



5개 행정동이 나누어 관리하는 법정동이며,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시흥이라는 지명의 기원이자 시흥의 뿌리다. 시흥군청도 이곳에 있었다가 1914년 영등포 방면으로 옮겨갔다.
1963년 서울에 편입되었다. 현재도 서울 영등포권 내에서 행선지에 표시된 '시흥 방면'(서울 지하철 2호선 구로디지털단지역 출구에 있는 '안양, 시흥 방면' 포함)은 경기도 시흥시가 아닌 서울 시흥동을 가리키는 경우가 있다. 또한, 1963년 서울 대확장 이전에는 '시흥'이라고 하면 지금의 금천구 일대 내지는 금천구를 비롯한 주변 지역(관악구, 광명시)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6.25 전쟁 당시 '시흥지구전투사령부'가 금천구 쪽에 있었으며, 사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서울 영등포권을 거쳐가는 버스들 노선표에는 '시흥동' 대신 그냥 '시흥'으로 표기되는 경우가 많았다. 영등포권에서 시흥시로 가려면 광명이나 부천을 거쳐가야 한다.
서울 택시, 특히 영등포 지역의 택시를 이용할 때 시흥까지 데려달라고 하면 90% 이상의 확률로 금천구청 앞이나 시흥사거리, 금천우체국 등 시흥동으로 간다. 서울 택시로 시흥시에 가려면 기사에게 신천동, 월곶, 시화산업단지 등 동 단위 지역명을 알려주거나 '시'를 붙여서 알려줘야 한다.

3.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시흥동



금토동·사송동·시흥동의 3개 법정동을 관할하는 행정동. 금토동에는 한국도로공사, 사송동에는 한국수자원공사, 시흥동에는 세종연구소가 있다. 위의 지역들과 한자가 같지만 역사적으로는 관련이 없다.

4. 경기도기초자치단체



이 지역은 시흥군에 들어온 시기가 제일 늦다. 현재의 시흥시 남부는 1914년에, 현재의 시흥시 북부는 1973년에 시흥군으로 편입되었다. 이렇게 된 연유에 대해서는 시흥시/역사 문서 참고.
노인들은 경기도의 시흥시보다 2번 문단의 서울특별시 시흥동을 더 익숙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노인과 대화하면서 이 지역을 시흥이라 부르지 않도록 하자. 오해의 소지가 생길 수 있다. 현 시흥시 지역에 관련된 얘기를 한다면 시흥시 북부는 '소래'나 '신천리', 남부는 '시화'나 '정왕동'이라고 하는 편이 더 낫다. 노인들에게는 시흥군의 핵심 지역이 시흥동이던 시절의 기억이 강하고 현 시흥시에 대한 인식이 약해서 그렇지만 지금도 시흥시에 사는 사람들 중 주변 지자체 사람들에게 자신을 '시흥 사람'이라고 하지 않고 '정왕/시화/신천/연성에 산다'고 하는 경우도 적지 않고, 시흥시라고 했을 때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시가지가 딱히 없기 때문에 이런 현상은 시흥시의 정체성이 확고해지기 전까지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1] 시흥시와 시흥군의 역사적 문제 때문에 잉벌노, 늠내는 시흥시가 아닌 이쪽으로 리다이렉트되어 있다. 왜냐하면 당시의 잉벌노/늠내와 지금의 시흥시 일대가 완전히 다른 곳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시흥시 일대는 당시에는 잉벌노 땅이 아닌, 미추홀(지금의 인천) 땅과 장항구(지금의 안산) 땅이었다.[2] 현재의 서울특별시 금천구의 행정구역명의 기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