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방울 레이더스/사건사고

 


2. 팀 내 주축 선수들의 트레이드


1. 교통사고


1990년 6월 21일 2군 선수단 버스가 전라북도 김제시 번영로에서 맞은 편 차로에서 달려오던 트럭과 정면으로 충돌해 운전기사와 트레이너가 사망하고 선수 전원이 부상을 당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사고 관련 KBS 뉴스9 보도 영상 사고 관련 연합뉴스 기사 당시 이 버스는 전주시를 출발해 군산시로 이동해 군산상업고등학교에서 연습을 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참고로 이 사고는 역대 KBO 리그에서 유일하게 일어난 구단 버스 관련 인명사고다. 성난 관중들이 상대팀의 버스를 불태우거나 홈팀 버스의 진로를 막고 연좌농성을 벌이거나 주행 도중 경미한 접촉사고가 난 적은 있었으나 도로를 달리던 버스가 다른 차와 충돌하는 교통사고로 차가 완파된 것은 이 사고가 유일하다.

2. 팀 내 주축 선수들의 트레이드


1997년 10월 이후 대한민국외환위기로 인해 여러 기업들이 도산하거나 그에 준하는 경영 위기에 놓였다. 기업들이 운영하던 프로야구단에도 위기가 찾아오는데 예상대로 다른 재벌 구단에 비해 자금력이 부족했던 해태 타이거즈쌍방울 레이더스에게 시련이 찾아왔다.[1]
특히 레이더스의 모기업이었던 쌍방울그룹은 1997년 12월 무주리조트에 어마어마한 돈을 투자하는 바람에 크나큰 손실을 입게 되었으며[2] 그룹의 돈이 없어져가는 마당에 선수들의 연봉은 올라가고 점점 인플레는 심각하게 진행이 되어가고 있었다. 모기업의 자금력은 당시 8개 구단 중 최하위 수준이었지만 희한하게도 쌍방울 선수단의 페이롤은 8개 구단 중 1위였다.
결국 쌍방울은 기존의 선수단을 근근이 이어나가기 위해 현대 유니콘스삼성 라이온즈 등 당대의 재벌 구단을 상대로 주력 선수들을 연달아 거액에 팔아치우게 된다. 1997년 시즌 후 현대 유니콘스로부터 포수 김형남[3]과 내야수 이근엽에 현금 9억원 묶어서 받는 대신 '''주전 포수 박경완'''을 내주는 거래를 했다. 그리고 1998년 8월에는 또 현대 유니콘스로부터 정통파 투수 가내영, 언더핸드 투수 박정현[4]에 현금 6억원을 묶어 '''붙박이 마무리 투수 조규제'''와 맞바꿨다. 이 트레이드로 쌍방울은 당장의 가용현금으로 최소 15억원을 챙겼고 현대는 1998년 한국시리즈에서 창단 첫 우승의 감격을 누렸다. 다만 이 트레이드 때문에 쌍방울 팬들이 상당한 박탈감을 갖게 됐고 현대 유니콘스를 원망하게 된다.
현대가 쌍방울의 주축 둘을 영입해 우승한 것에 자극받은 재계 라이벌 팀 삼성 라이온즈는 1998년 시즌 후 외야수 이계성과 포수 양용모에 현금 '''20억원'''을 더하는 조건으로 '''팀의 정신적 보스였던 김기태'''와 '''구원 20승의 김현욱'''을 트레이드했다. 극심한 가난으로 인해 팀의 주축 선수들을 연달아 내준 쌍방울은 김기태의 트레이드로 사실상 모든 것이 끝났다고 봐도 무방한 상태였다.[5] 그렇게 쌍방울은 28승 7무 97패[6]를 기록하고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1] 두 야구단의 모기업 계열사인 쌍방울해태제과가 보름여의 시간차를 두고 부도를 맞았다.[2] 무주리조트에 대한 막대한 투자가 쌍방울그룹 좌초의 결정적 원인이 됐지만 이미 주력 사업인 속옷 사업과 방적 사업 외에 건설업, 전자업 등 비주력 사업에 여럿 손을 댔다가 성과를 내지 못하는 문어발식 경영이 경영 부실을 키웠다. 공교롭게도 해태 타이거즈의 모기업 해태그룹 역시 문어발식 경영 때문에 쓰러졌다.[3] 1996년 한국시리즈 당시 정명원과 함께 1회부터 8회까지 호흡을 맞추면서 노히트 노런을 기록한 포수다.[4] 김성근태평양 돌핀스 감독으로 있던 시절 신인왕에 오르는 등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이 때문에 쌍방울에서 김성근 감독과 재회한 것을 반갑게 여기기도 했다.[5] 김성근의 회고록에서도 이와 같이 기술되어 있다.[6] 역대 최저 승률 공동 2위인 롯데 자이언츠의 2002년 시즌과 동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