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태(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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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국적의 요미우리 자이언츠 2군 수석코치.
선수 시절에는 쌍방울 레이더스를 대표하는 타자이자 덕아웃 리더로서 명성을 쌓았고, 그 후 삼성 라이온즈와 SK 와이번스를 거쳤다. 선수 은퇴 뒤에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코치를 거쳐 LG 트윈스에서 수석코치, 2군 감독을 맡은 뒤 1군 감독을 지내면서 10년 간의 비밀번호를 끊었고 이후 KIA 타이거즈 감독으로서 2017년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쾌거를 달성했다. 선수로서나 지도자로서나 어느 정도 성과를 이뤘다고 볼 수 있으나, 지도자 성과의 이면에는 상당한 논란이 많은 인물이기도 하다. 또 KBO 리그 정식 감독 커리어에 두 번이나 자진 중도 퇴진이라는 불명예 기록을 남긴 인물이기도 하다.
2. 선수 경력
김기태(1969)/선수 경력 문서로.
3. 지도자 경력
3.1. 코치 경력
3.1.1. 한신 타이거스 시절
은퇴 후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한신 타이거스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았으나, 2006년 8연패에 빠진 SK 와이번스의 사정으로 인해 조범현 감독의 요청으로 연수를 중단하고 귀국하여 타격 보조 코치를 맡았다. 그러나 팀은 결국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했고, 조범현 감독이 물러난 후 그도 코치에서 물러나 다시 일본으로 연수를 받으러 건너갔다.
3.1.2. 요미우리 자이언츠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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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시즌 후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김종훈, 김한수와 함께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지도자 연수를 마친 후 코치 생활을 했다. 2008년 시즌 중에는 베이징 올림픽 국가대표팀 타격코치로 선임되어 금메달을 이끌었다. 2006 시즌 후 이승엽이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계약하면서 한국인 코치 1명을 데려갈수 있는 조항[15] 이 있었는데, 그 조항으로 김기태가 갈 수 있었다고 한다.[16]
후에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솔선수범하여 이승엽만을 위한 보조코치에서 한국인 최초로 일본프로야구 팀의 정식 타격코치로 선임되었고, 요미우리의 퓨처스 팀 감독도 맡았다. 당시 요미우리의 하라 다쓰노리 감독과 선수들 사이에서 평가가 굉장히 좋아서, 후에 국내 복귀 뒤에도 여러 일본프로야구 팀에서 탐을 낼 정도였다고 한다. 한때 몸담았던 팀인 삼성 라이온즈에서도 2009년 강봉규와 신명철의 타격 성장에 기여한 나가시마 기요유키 타격코치가 치바 롯데 마린즈로 옮기자 김기태를 타격코치로 영입하려고 시도했을 정도였다.
3.1.3. LG 트윈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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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시즌 종료 후 김재박의 뒤를 이어 LG 트윈스의 감독으로 확정되었다는 설도 있었으나 LG의 감독은 박종훈이 되었고, 박종훈 신임 감독의 요청으로 귀국하여 LG 트윈스의 2군 감독으로 선임되었으며,[17] 이 때부터 김기태 차기 감독 내정설을 불러 일으켰다. 2011 시즌 말미에는 김영직과 보직을 바꿔 1군 수석코치로 콜업되었다. 2011 시즌을 마치고 박종훈 감독이 사임한 후 후임 감독으로 수많은 카더라가 난무하던 가운데, 유일한 '''내부승격 후보'''였다. 이 때 LG 2군 선수단을 본인의 유명한 카리스마로 휘잡으면서 '사신기태'라는 별명도 얻게 된다. 나중에 이 별명을 알게 되고 나서 "선수들하고 잘 지내는데 왜 사신으로 부르는지 모르겠다"는 식의 반응이었다. 하지만 결국 본인 성격과 성향이 사신과 맞아떨어졌음이 해가 지날수록 드러나게 된다. '''특히 2018시즌 KIA 타이거즈 감독으로서의 행보를 보면 더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2군 감독으로 있을 때 박병호의 트레이드를 끝까지 반대했다고 한다.
3.1.4. 요미우리 자이언츠 2기
3.1.4.1. 2021 시즌
2020 시즌이 끝나고 SK 와이번스, 한화 이글스, 키움 히어로즈의 사령탑이 공백이 되면서 선동열, 김경문과 함께 감독 후보로 물망이 올랐으나 이뤄지지 않았다.
2020년 12월 1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2군 수석 코치 제의를 받고 11년만에 NPB 무대로 복귀했다. #
3.2. 감독 경력
3.2.1. LG 트윈스 감독
3.2.1.1. 2012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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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들을 직접 지휘하는 '''2012년 기준 현역 최연소 감독.'''[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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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타격 케이지 안에서 타격시범을 보이는 김기태 감독.[21]
김기태(1969)/2012년 참조.
3.2.1.2. 2013 시즌
LG 트윈스의 10년에 걸친 암흑기를 청산한 해였다.
김기태(1969)/2013년 참조.
3.2.1.3. 2014 시즌
시즌 초반에 성적이 좋지 않자 사퇴. '''런기태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었다.'''
김기태(1969)/2014년 참조.
3.2.2. KIA 타이거즈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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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2.1. 2015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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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리피트 아웃에 항의하다가 그 거리를 보여준다며 직접 누웠고, 이로 인해 '''눕기태'''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하나 더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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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투게더 시프트. 미국 ESPN에 소개 될 정도로 엄청난(?) 시프트 였다.
김기태(1969)/2015년 문서로.
3.2.2.2. 2016 시즌
KIA 타이거즈에서 2년차. 프런트에게 FA 선수 중 손승락을 꼭 잡기를 요청했지만, 아무도 잡지 않았다. 하지만 구단 내 재활 시설과 선수육성 시스템에 대규모 투자를 하면서 리빌딩에 더 큰 도움이 될만한 해다.
지난해 어느 정도의 리빌딩과 작년보다 나아진 용병 투수들을 보면기대가 되는 시즌. 그리고 시즌 전 순위 예상을 뒤엎고 기대 이상의 성과를 보여주는 데에 성공했다. 자세한건 '''김기태(1969)/2016년 참조'''
LG 트윈스에 이어 기어코 감독 2년차에 가을잔치 티켓을 거머쥐었다.
3.2.2.3. 2017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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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우승을 향해 전력질주해야 할 KIA 타이거즈의 3년차. 프런트에게 브렛 필을 대체하는 좌타 외국인 선수와 최형우를 꼭 잡기를 요청했고, 전년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최형우도 잡았고 나지완과 양현종도 잔류시키고 외국인 타자까지 교체해주었다.''' 구단의 과감한 투자에 보답하는 성적을 내야 하는 책임이 주어졌다.
타이거즈 부임 3년차가 되자, 이제는 김기태 감독의 성향을 '잘 알게 된' 선수들이 알아서 시즌 전 몸을 만드는 습관을 기르게 되면서 2년 동안 해온 체력테스트를 없앴다. 김 감독 시각에서는 이제는 준비가 잘 되었다고 판단해서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윤석민이 시즌 전 어깨 뼈 수술로 이탈이 불가피해지면서 4, 5선발 및 중간계투 구성을 고민해야 하게 되었다.
마무리캠프와 스프링캠프 동안 큰 부상이나 충돌 없이 무탈하게 팀 훈련을 이끌었다.[22] 무엇보다도 최형우의 가세 및 안치홍-김선빈의 제대 등으로 주전 층이 두터워지면서 백업층 역시 다양해지면서 운용 폭이 커진 것이 김기태 감독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투수력은 리그 중간급이나 공격력은 단연 1등팀.
결국 2017년 한국시리즈에서 두산을 상대로 시리즈 전적 4승 1패를 거두며 기아 타이거즈에게 11번째 우승을 선물했다. 그리고 김기태 본인으로서도 선수와 지도자 커리어 통틀어 '''첫 우승이다.'''
3.2.2.4. 2018 시즌
KIA 타이거즈 출범 이후 최초로 3년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을 이끈 감독이 되었다.[23]
하지만 야구 내외적으로 잡음이 많았던 시즌. 자세한 사항은 항목 참조.
김기태(1969)/2018년 문서로.
3.2.2.5. 2019 시즌
김기태(1969)/2019년 문서로.
시즌 도중 사퇴하였다. 조범현과 비슷한 점이 있는데, 오랜만에 팀을 우승시켰으나(2009, 2017) 성적 부진으로 인해 팬들의 비난에 의해 연임 2년차(2011, 2019)에 자진 사퇴했다는 점이 비슷하다. 물론 차이점도 있는데, 조범현은 포스트시즌이 끝나고 사퇴했으며 2011년 당시 올스타 브레이크까지 1위를 질주하다가 후반기에 급추락했으나 결국 최종 4위로 준플레이오프에는 진출했다. 그러나 2019년의 김기태는 프로야구 출범 이후 해태 타이거즈 포함하여 '''타이거즈 역사상 최악이라고 할 정도'''로 시즌 시작부터 답이 없는 형편없는 성적을 보였다.
이런 형편없는 몰락의 배경에는 16년 와일드카드 결정전, 17년 우승, 18년 와일드카드 결정전 이라는 성적을 보여줬음에도 주축 선수들이 먹튀 또는 부상으로 전력이 급하락 하면서 성적도 같이 떨어지게 된 점도 있으나, 감독(코칭스텝들의 책임과 권한)의 역할도 크며, 전술적인 무능과 선수 부상 등의 배경에 이들의 잘못이 개입되어 있는 경우들이 있기에 이 모든 것을 선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그럴 경우에는 과거 노리타들이 범했던 것과 같은 우를 범하는 꼴이 될 수 있다. 믿었던 선수들이 제정신이 아니어서 부진에 빠졌다는 점을 간과할 수는 없으나, 이미 17년 하반기부터 타자들의 노쇠화에 대해서 몇몇 팬덤에서는 지속적으로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었다. 실제로 17년, 18년 주전야수 막내가 안치홍이었던 것을 고려해보면 야수진의 고령화가 진행중이었다. 즉, '''하루 아침에 선수단이 무너진게 아니란 이야기다.''' 이는 4년 연속 통합 우승을 해오던 삼성 라이온즈의 몰락 과정과[24] 00년대 한화 이글스의 몰락 과정에서도 보였던 것이다. 이미 수차례 반복된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프로 감독이 이러한 사례들을 전혀 학습하지 않은 수준의 팀 운영을 보였다는 것은 감독으로서의 재능과 노력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분명 주전 선수들의 성적이 떨어진 부분은 변명거리가 될 수 있으나, 2년간 수도 없이 팬덤과 외부 전문가들이 이야기 해 온 운영을 고집하여 몰락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더군다나 후술할 투수 운영 문제에서 투수를 여럿 갈아마셨으니 '''감독으로서 운영능력에 대해서는 KIA 타이거즈 사상 최악'''이라고 봐도 무방하다.[25] 수많은 악재에 대해서 수도없이 경고해왔으나 그것을 무시하고 밀어부친 주제에 변명을 한다는 것은 후안무치의 끝이 될 것이고, 경고하던 사람들이 운이 좋아서 버틴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으므로 결과물에 대하여 변명할 수 없을 것이다.
김기태가 사퇴하자 놀랍게도 KIA의 팀 성적이 갑자기 껑충 뛰었다. 결과 뿐만이 아니라 여러 지표 면에서도 상당히 좋아져서, 선수들이 태업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 아닌 의혹도 제기되고 있으며, 있는 자원을 제대로 써먹지도 못한 무능한 감독이라는 반증이 될 가능성이 열려버렸다. 동시에, 임창용과의 상상을 초월하는 사건 등으로 차후 감독을 맡게 될 가능성이 점점 희박해지고 있다. 더군다나 소위 어용기자라 불리는 기자들이 지속적으로 임창용만 공격하고 김기태의 이야기는 청취하지 않으면서, 막장스캔들에 연루되어 있으면서 말 한마디 안하고, 잘못을 인정하지도 않은 옹졸한 인간으로 만들어버리고 있는데[26] , 감독으로서 인격과 실력이 모두 실격이라는 판정패를 당할 위기에 놓여져 있다. KIA 팬들의 바램과는 달리 KIA 타이거즈가 김기태 감독 커리어상 마지막 감독이 될 수도 있는 상황.
다만 2004년 유남호[27] 도 돌풍을 불러일으켰다가 2005년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지하에 틀어박혀버리는 상황도 있었기에 평가에 대한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지켜보는 것이 타당한 자세일 것이다. 그러나 '''김윤동'''[28] , 황인준[29] , 홍건희[30] , 한승혁[31] , 유승철[32] , 윤석민[33] 등 투수를 갈아마시고, 선수들을 이용하여 언플하고, 팬들을 향한 위선적인 모습들과 제대로 된 사과 한마디 없이 떠난 점들이 초대 금지어와 쏙 빼닮았다. 심지어는 투수를 대타로 세우거나 베테랑 선수의 정당한 발언을 항명으로 치부하고 사적 감정으로 팀을 운영하는 등 더 심각한 패악질까지 부렸다. 성과상으로는 팀 차원에서는 가장 큰 업적을 세웠으나[34] 하는 짓거리는 초대 금지어와는 전혀 다를바가 없으므로 '''럭키 서정환''' 이란 악명은 KIA 타이거즈 팬들에게 영원히 입에 오르내릴 것이며, 만일 이후 KIA 타이거즈가 상승세로 간다면 감독으로서는 두 번째 금지어로 확정될 것이다.[35][36]
퇴임후에는 쉬면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는 듯 하다. 토론토에서 벌어진 2019 NBA 파이널 1차전때 김기태 전 감독으로 보이는 사람이 카메라에 잡혀 여러 커뮤니티에서 본인인지 아니면 그냥 닮은사람인지 갑론을박이 벌어졌는데, # 그냥 닮은 사람이라기엔 너무 본인과 유사하고 결정적으로 가족들이 토론토에 체류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김기태가 맞는 것으로 굳어지는 분위기. 만일 맞다면, NBA와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 KIA 측에서 편의를 봐준 듯 하다.
4. 평가
KBO의 이슈메이커 감독 중 한 명이다. 대체적으로 평가는 호와 불호가 갈리는 스타일이다. 특히 주요적인 비판은 경기운영과 관련된 부분에서 받고 있으며, 호의적인 평가는 팀의 성적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받고 있다.
더욱 자세한 사항은 문서 참조.
5. 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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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으로 활동할 때 워낙 이슈가 많았던지라 별명도 상당히 많았다.
- 왕방울 - 쌍방울에서 가장 타격이 좋아서 붙은 별명이다.
- 눕기태 - 2015년부터의 별명. 심판의 쓰리피트 오심에 항의하며 경기장에 누워버렸고 이후 이슈가 되었다. 가장 유명한 별명.
- 런기태 - 2014년부터의 별명
- 숲기태 - 2012년 한정 별명
- 포기태 - LG 감독 시절부터의 별명
- 돌기태 - LG 감독 시절부터의 별명. 간혹 '돌태'로 줄여서 까는 팬들도 여럿 있다.
- 숨기태 - 2018년부터의 별명. 퇴장당한 이후 숨어서 경기를 보다가 걸려서 붙여진 이름이다.
- 줍기태
- 관종태
- 소고기태, 소고기김밥 - 2018년도 선수단 운영과 임창용 등판 문제로 인해 KIA 타이거즈 갤러리가 주도로 시작하여 KIA팬들이 챔피언스 필드 앞에서 퇴진시위를 하였다.[37] 청문회 전에 김기태 감독이 본인을 기다리던 팬들을 위해 소고기 김밥을 사준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는 분탕들이 만들어낸 루머였다.[38][39]
- 최악태
6. 여담
- 팬 서비스가 상당히 좋다. 특히 어린이 팬들에게 더 잘해준다.
- 홈런왕과 타격왕을 둘다 차지해본 한국프로야구 선수 6명 중 하나.[40] 그러나 140안타 이상을 기록한 적이 없다. (당시 경기수를 144경기로 환산하면 5번을 기록)1997년에 그보다 낮은 타율을 기록한 이승엽이 170안타를 기록한 것을 보면, 분명 그는 최다 안타와는 인연이 없다. 대신 어마무시한 볼넷을 얻어내는 중장거리+출루형 타자로 보면 된다. 아무래도 팀 전력 자체가 약한 쌍방울에서 오래 뛰다 보니 투수들도 정면 승부보다는 거르는 플레이를 많이 했기 때문. 다만 언급되는 이야기로, 김기태 감독이 현역시절 클러치 상황이 아닐 때 의도적으로 루킹 삼진을 당하며 약점인 척 노출시키고 결정구의 구질이나 위치 등을 기억하고 있다가 중요한 시점, 한방이 필요한 시점에서는 투수가 전 타석에서 사용한 똑같은 결정구를 던지면 쳐냈다는 일화도 있는 걸 보면 본인도 굳이 욕심부려가며 안타를 생산해내는 스타일은 아니었던 듯 하다.
- KIA 감독을 맡기 이전에 선수 시절과 코치 시절에 우승이 없기로 유명했다. 약체 쌍방울 소속이라 우승 근처도 못가보다가 2003년 한국시리즈에서 처음으로 한국시리즈에 출전했지만, 현대 유니콘스에 밀려 준우승을 기록해 콩라인에 가입되었다. 커리어 기준으로도 번번이 장종훈, 양준혁, 이승엽에 밀린 안습한 2인자 인생. 1994년에 홈런왕을 차지하긴 했지만 절친한 동생인 이종범에 밀려 MVP를 받지 못했다. 2009년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우승하기 직전에 LG의 2군 감독으로 임명했기 때문에 콩라인에서 탈퇴하지 못했다. 2008 베이징 올림픽 국가대표팀 타격코치로 참가해 금메달을 획득한 게 선수, 지도자 합해서 유일한 우승 경력이었으나, 마침내 2017년 KIA가 통합 우승을 차지하며 리그 첫 우승을 감독의 이름으로 맛보며 기쁨의 눈물을 펑펑 흘렀다.
-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의 창립을 결사 반대했던 유지현, 김경기, 김태형, 이호성과 함께 선수협 오적으로 불리우는데 63빌딩 창립총회 당시 뒤늦게 들어와 TV 방송 카메라들이 뻔히 중계하고 있는 자리임에도 삼성 라이온즈 선수들을 거친 말과 행동을 위협해 모두 끌고 나갔고 자신의 행동에 반발하는 선수들과 팬들에게 방망이를 휘두르는 추태를 보이기도 했다.
- 송진우를 회장으로 뽑고 나서도 시간이 더 걸렸다고 들었는데.
“말도 마라. 두 시간 걸려서 회장을 뽑았는데 이제는 어느 팀이 먼저 입장하는 것을 두고 다퉜다. 선수들이 63빌딩에도 있고, 포장마차에서 우동도 먹고 있고, 버스 안에 대기도 하고 있는데 도대체 입장을 하지 않는 거다. 서로 눈치만 보고 절대 먼저 들어가려는 팀이 없었다. 삼성은 LG만 쳐다보고 있었다. '''삼성의 K 선배는 LG Y 선수에게 LG 몇 명 왔냐, 어떻게 할 거냐고 묻고 Y 선수는 왜 우리 팀 이야기를 하냐, 알아서 하겠다고 하니 말대꾸한다고 욕하고. 멱살 잡고 고성 오가고 몸싸움 벌어지고 막 그랬다.”'''
- 그리고 나서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당시의 사단을 기억하는 팬들이 많지 않겠나. 긴 설명 하고 싶지도 않다. '''삼성 K 선배가 삼성 선수들 끌고 나갔고, 안 따라 나온다고 고함 지르고 난리 치고.''' LG는 삼성이 나가는데 우리는 왜 남아 있냐고, 우르르 따라 나가고 그랬다. 아주 가관이었다. 200여명 모였던 선수들이 8개 구단 수는 맞췄지만 100명도 남지 않았다. 지금도 그 자리에 있었던 야구 팬들에게 너무 죄송한 기억이다. K 선배가 나가는 순간 나는 야구를 못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두산 대표는 나오지도 않았고, 얼떨결에 내가 대표를 하게 됐다. 최동원 선배가 구단에게 보복 당한 학습효과가 있어서 그렇게 안 되려고 진짜 총회 개최 의지를 다지고 또 다졌는데….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출처
- 마구마구 관련 고정글 중 해기태와 비기태에 대한 비교글이 있다.보러가기 첨언하자면, 꼭 쌍방울 올스타를 하지 않을바에야 파워-컨택 모두 나은 비기태가 많이 쓰이며, 저 글에서는 7렙을 찍는다는 가정하에 해기태>비기태 드립을 치는 것이다. 낚이지 말자.
- 김기태의 주변인맥이 깨는데, 먼저 이종범과는 어린 시절 친한 동네 형-동생 사이였다고 한다. 어린 시절 김기태가 이종범의 집에 자전거를 끌고 가서 종범아~ 자전거 타자~라고 자주 불러내서 놀았다고 한다. 초등학교 시절 축구소년이였던 이종범이 축구부가 사라지자 야구부에 가입하게 한 장본인도 바로 김기태. 선수 시절에도 이종범이 배트를 거리낌없이 가져갈 정도였다.
김기태와 같이 쌍방울 레이더스에 잠깐 있었던 그의 광주일고 1년 후배 구한성에 의하면, 생활이 어려운 편이었다고 한다. 글에 의하면 이종범의 집이 김기태 감독의 두 집 건너 이웃이었다 하니.... 뭐...
- 두 사람의 프로필을 봐도 알겠지만 염경엽 감독이 원래 1살 더 많은데, 김기태 감독과 동기동창이 된 이유는 빠른 1968년생[44] 인 염경엽 감독이 중학교 때 1년 유급했고, 김기태는 학교를 1년 일찍 들어가 같은 1969년생 양준혁에게 선배님 소리를 듣는다. 참고로 1970년생 이종범이 1993년 데뷔, 1969년생 양준혁은 상무를 거쳐서 1년 늦게 25세인 1993년 데뷔 했다. 중학교 3학년 때 야구 안 한다고 염경엽과 둘이 같이 도망나와서 서울역에서 3일 동안 구두닦이를 했었다. #
- 원래는 오른손잡이였으나 야구를 시작하면서 3개월만에 왼손잡이로 전향했다. 우투좌타 스타일이 있는 줄 알았다면 자신도 그랬을 것이라고 하였다.# 공교롭게도 동네 동생인 이종범은 그 반대로 왼손잡이이지만 우투우타라는 것.
- 해태-KIA 타이거즈 연고인 광주광역시 출신이었지만, 쌍방울 레이더스의 지명을 받은 이후로 고향 연고인 타이거즈에서 뛰어본 적이 없는 선수였다.[45] 이 때문에 좌타자 잔혹사에 시달렸던 타이거즈에서 뛰어 봤었음 하면 어땠을까 하는 많이 아쉬워했던 선수 중 한 명이 되었는데, 23년 후 그 김기태는 감독으로 KIA 타이거즈에서 뛰었다.
- 주 포지션은 1루수이지만, 골든 글러브도 지명타자로서 2번을 받기도 했고 경기 출장도 1루수보다는 지명타자로 출장한 경우가 많아 엄밀히 말하면 전문 지명타자에 가깝다. 사실 뛰어난 타격에 비해 수비에는 약점이 많기도 해서 지명타자로 나온 경우가 많았다.[46] 찰스 스미스에 밀려 좌익수 수비를 하지 못했다면 말 다한 것.[47] 사실상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최초의 전문 지명타자 출신 감독. 그리고 지명타자 출신 감독 최초의 우승 커리어도 추가됐다.
- 거포 이미지와는 달리 주루도 프로야구 선수 평균 이상이었다. 남들은 한 번도 하기 힘든 인사이드 파크 홈런을 2차례나 성공했고, 두 자릿수 도루도 네 차례나 기록했다. 거기다가 빵사마도 못해본 11년 연속 3루타 기록까지...
- 와 친하다고 한다. 강동희와 인터뷰 한 시기는 강동희가 승부조작을 하기 전에 한 인터뷰이다.
- 가족들이 미국 오하이오 주에 거주한 적이 있어서 한때 기러기 아빠였다. 1995년 12월에 결혼했는데[48] , 부인이 1993년 미스코리아 본선에 나갔던 미스 전북 출신의 신세영씨이다. (레전드 올스타 화보 촬영현장)
- 첫째아들 김건형에게 야구를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는 일화가 있다. 하지만 자식의 뜻을 꺾진 못했는지 첫째아들은 중학교 때부터 아버지의 지원을 받고 미국에서 꾸준히 야구를 하다가 2020년 9월 열린 2021 KBO 트라이아웃에 심정수의 아들 심종원과 함께 참여했다. 트라이아웃 받으러 가던 날 아침엔 아들에게 하이파이브를 해줬다고. 아마추어 리그에서 40도루를 기록하는 등 주력은 좋은 편이며 포지션은 우투좌타 외야수. 김건형은 결국 2021년 신인드래프트 2차 8라운드에서 kt wiz의 지명을 받았다.
- 2015년 시즌을 맞이하고 적극적인 어필 제스처와 의욕적인 모습 덕분에 이 해에만 5월 기준으로 7개의 별명을 얻게 되었다. 아직은 박용택, 김태균의 별명왕 명성에는 아직 부족하지만 2015년에 이 두 명의 별명왕을 능가하는 별명 획득 페이스를 보이고 있어서 만약 시즌을 희망적으로 마치고 김기태 감독이 KIA에서 입지를 다지는 데 성공한다면 별명 문서가 생길 수준이 되었다.
- 인터뷰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목소리가 상당히 깬다. 얼굴만 봐서는 꼭 굵직한 저음에 할 얘기만 할 것 같은데 의외로 하이톤에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 머로 운을 떼며 더듬더듬 정신없이 빠른 속사포가 마구 섞여서 마치 시골 이장님같은 수더분하고 푸근한 인상을 준다. 그덕에 머동님이라 불리며 컬트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친구인 염경엽 감독이 비교적 안정된 톤에 달변가인 것과 대조된다. 2016 KBO 리그 미디어 데이에 어떤 팬이 그뭐저를 사용하지 않고 기아 팬들에게 영상편지를 남겨달라고 하는 질문에 팬들이 빵 터졌는데 SPOTV에서 그 질문을 예상하고 김기태 감독의 예뭐저를 영상 자료로 준비한 것에 2차로 빵 터졌다 카더라.출처
- 보상선수 픽의 귀재다. 2012년 LG 감독으로 부임시 여러 요인으로 주전급 선수의 대규모 이탈이 발생했고, 곧이어 전력 보강의 기회로 3명의 보상선수 영입 기회가 돌아왔다. 아무리 리빌딩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어도 차포도 모자라서 마상까지 떼고 장기를 두는 정도의 대규모 전력 출혈이 발생한 이상 즉시전력감 선수를 지명하고 싶은 유혹이 클 것이지만, 김기태의 선택은 2011년 신인드래프트에서 지명된 프로 1년차 루키 3명이었다. 심지어 셋 가운데 그래도 즉시전력감이라고 평가할 만했던 윤지웅은 이미 경찰청 입대가 확정된 상황.[49] LG 팬들 입장에서야 꽤 기대할 만한 유망주들이기에 결과 자체에는 호의적이었지만, 그 선택 자체에 대해서는 크게 놀라워하는 분위기였다. 2013년 시즌이 끝난 이후에는 이대형이 FA로 나가게 되는데 이때는 꽤 나이가 있는 신승현을 선택한다. LG 팬들 입장에선 나가도 아쉬울 게 없는 이대형에 대한 보상선수인지라 어차피 누구든지 일단 받기만 하면 이득이라는 분위기였지만 정작 신승현으로 결정된 이후에는 뭔가 아쉽다는 평가가 많았다. 앞서 뽑은 루키들은 성장을 기대할 수 있는 자원들이지만 신승현은 과거의 모습을 다시 보여주는 건 이젠 무리다 라는 평가가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기대치 자체가 높아질 수가 없었기 때문. 차라리 앞서처럼 신인이나 뽑지 하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 이 보상선수 4인방 가운데 임정우와 윤지웅은 2014년 시즌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해 이미 LG 마운드 구상에서 제외할 수 없는 자원이 되었다. 또한 2015년에는 LG가 전년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죽을 쑤는 가운데 전혀 기대도 안했던 신승현은 뜬금없이 나타나서 7월 기준으로 1점대 방어율을 유지하며 음주운전으로 자숙에 들어간 정찬헌과 폼이 박살나서 2군에 틀어박힌 유원상, 신재웅의 공백을 제법 훌륭하게 틀어막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편으로는 타선의 노쇠화, 부상, 시즌전 기대했던 최승준 등이 삽질을 하는 가운데 기회를 얻은 나성용도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보상선수로 뽑은 4인 모두가 1군 엔트리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보상선수 선구안을 보여줬기에 KIA 팬들은 송은범의 보상선수로 선택한 임기영[50] 에 대해서 기대를 해보는 상황. 전년도까지 성적은 그렇게 훌륭하진 않지만 어쨌건 젊은 선수들 재능을 꿰뚫어보는 일엔 일가견이 있는 김응용 전 감독이 눈여겨보던 자원이었으며 상무 입대 후 2군 리그에서 썩 훌륭한 성적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과연 보상선수 불패신화를 계속 이어갈 가능성도 보인다. 그리고 바로 그 임기영은 군에서 복귀한 2017년 시즌 놀라운 호투를 거듭하며 보상선수 불패 정도가 아니라 보상선수 대박 신화를 보여주었다.
- 자타 공인 고졸 성애자이다. 2016시즌 신인드래프트에서 고졸로 도배하다시피 선발을 해서 전임 선동열감독의 미래가 없는 미칠듯한 대졸 사랑에서 드디어 벗어났다며 팬들이 환호중이다. 또한 나무가 아니라 숲을 봐야 한다는 김기태 감독의 평소 철학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라는 평. 앞으로도 김기태 감독의 이런 신인 선발은 꾸준할 것으로 보인다.
- 슬하에 아들 2명이 있는데, 이들 중 장남 김건형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야구를 하고 있다. 미국 아이다호 주에 있는 보이지 주립대학 졸업 예정으로, 워싱턴의 아마추어 야구팀 카울리츠 블랙 베어스에서 외야수로 선수 생활을 했으며, 2021년 신인 2차 지명을 앞두고 개최되는 해외선수 트라이아웃에 신청했다고 한다.
- 표창원과 닮은 꼴이다.
- 전지훈련 사진인데, 배트를 이용해 만든 쌍절곤이 눈길을 끌었다.[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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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독 투수를 타석에 세우는 기행을 자주 보여주는 편이다. LG 시절에도 투수로서 1군 데뷔도 하지 않은 신인급 투수를 정우람을 상대하라고 대타로 기용한 적이 있었고, 외국인 투수들도 지명타자 소멸 등을 이유로 타석에 내보낸 사례가 있다. 조쉬 스틴슨, 헥터 노에시 등이 그 예. 그러다 경기 포기 논란에 휩싸여 징계를 받기도 하였다. 2019년 3월 26일 한화 경기에서도 6점차로 벌어진 9회말 2사에서 정우람을 올리자 투수 문경찬을 대타로 기용했다.
- 역대 타이거즈 감독 중 유일한 좌투좌타이다. 김동엽, 김응룡, 김성한, 유남호, 서정환, 조범현, 선동열은 전부 우투우타였지만, 김기태만 좌투좌타다. 하지만 김기태 역시 야구만 왼손으로 하는 오른손잡이인 탓에 아직 기아에 완벽한 왼손잡이 감독은 없다.
- 일본에서 펜싱을 활용한 특이한 방법으로 타자 코칭을 했다. 선수 인터뷰에 따르면 효과가 있는 모양. 그 외 요미우리 공식 인스타와 유튜브에서 김기태의 코칭하는 모습이 자주 올라온다고 한다.#
7. 연도별 성적
- 붉은 글씨는 리그 1위 기록. 진한 표시는 리그 5위 내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