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에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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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네덜란드의 축구선수 출신 감독. 2014년부터 2015년까지 톈진 터다 감독을 맡았다.
70년대 리누스 미헬스의 밑에서 토털 풋볼을 구성하던 1인이자, 아약스의 레전드 중 1인. 1974년 월드컵에서 요한 크루이프와 함께 토털 풋볼을 구성하던 선수들 중 한명으로, 오늘날 수비전술에 큰 영향을 끼친 선수 중 하나이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69년 야악스에서 데뷔하며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75년까지 아약스와 네덜란드의 전성기를 이룩하며 전성기를 보냈고, 이후 스탕다르 리에주와 같은 벨기에 클럽을 거쳐서 은퇴하게 된다.
2.2. 국가대표
74년, 78년 모두 개최국에 발목을 잡히며 콩덜란드의 신화를 이룩하고 시작했다.
심지어 76년에도 유로에서 3등으로 동메달을 닸으니... 이상하게 국가대표로써는 마가 끼었다.
2.3. 플레이 스타일
1974년 서독 월드컵에서 수비수로 출전하기 전 까지는 수비적인 롤을 맡던 미드필더였다.
선수진의 전반적 능력이 뛰어났던 74년의 오렌지 군단의 일원으로 뽑혔을 정도로 그 기량도 뛰어났으며, 미드필더였음에도 수비수 역할을 잘 수행할 만큼(이전까지 수비적인 역할을 했어도) 전술 이해도 역시 매우 뛰어났다.
그리고 또 하나 그를 대표하는 것은 '''엄청난 중거리 슈팅'''.
1978년 월드컵에서 각각 독일과 이탈리아를 상대로 넣은 30m 중거리 대포알 골은 지금도 회자되는 골이다.
3. 오프사이드 트랩
아리에 한을 상징하는 표현은 바로 '''덫 설치 전문가'''.
역사상 최초로 오프사이드 트랩을 잘 깔고, 잘 이용해 먹었다.
하지만 오프사이드 트랩 개념이 이 사람에게서 나온 개념은 아니다. 그 이전에도 엘리아스 피게로아[3] 나 바비 무어같은 선수들이 오프사이드 규칙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트랩을 사용하는 등, 오프사이드 트랩이라는 개념 자체는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리누스 미헬스가 오프사이드 트랩의 형태를 다듬었고 아리에 한이 그것을 팀 단위로 가장 완벽하게 구현해 내면서 토탈풋볼은 크루이프라는 날개에 아리에 한이라는 꼬리날개까지 갖추면서 비상할 수 있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NkQxY0yCno&feature=player_detailpage
브라질과의 경기. 1분쯤부터 오프사이드 트랩이 나온다.
토탈풋볼은 공을 쫒아서 골키퍼를 제외한 10명의 필드 플레이어가 움직이는 전술이다. 이 당시에는 그게 더 심해서 개떼축구 수준이었는데, 이렇게 움직이다보니 공을 빼앗기기라도 하면 티키타카를 사용하며 라인을 극한까지 올리던 펩바르셀로나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만큼 같은 단점으로 작용해서 뒷공간이 비는 문제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바로 '''오프사이드 트랩'''.
당시 규칙으로는 골라인과 패스를 받는 사람 사이에 수비수 두 명(골키퍼 포함)이 있어야 했다. 오늘날처럼 동일선상이 허용되지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동일선상 = 오프사이드가 되는 것이다. 이때부터 오프사이드 라인이 만들어졌고, 그 라인을 이용해서 공격 자체를 차단하는 방법을 이용하게 됐다.
온사이드라면? 리누스 미헬스는 거기까지 보고 골키퍼의 전진압박(노이어의 그것) 전술까지 만들어서 타 팀들을 완전 새로운 전술로 박살내면서 결승까지 올라가게 된다.
비록 오프사이드 트랩 개념을 만들어 내고 전술로 구현한 것은 리누스 미헬스이지만 그것을 실제 플레이로 가장 완벽하게 이행할 수 있었던 선수가 바로 아리에 한이었다.
4. 이야깃거리
웹툰 신의 탑에 설정상으로 존재하는 인물인 아리에 혼의 이름이 이 사람의 이름에서 따 왔을 가능성이 있다.
크루이프가 처음에 아리에 한에게 리베로로 뛸 것을 지시했을 때 한은 "미쳤어?"라고 반문하였다. 하지만 이게 한에게 있어서 큰 성공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