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축구 국가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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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축구 국가대표팀'''
'''中国国家足球队'''
'''정식명칭'''
中国国家足球队[1]
'''FIFA 코드'''
CHN
'''국가 협회'''
중화인민공화국 축구 협회 (CFA)
'''대륙 연맹'''
아시아 축구 연맹 (AFC)
'''지역 연맹'''
동아시아 축구 연맹 (EAFF)
'''감독'''
리톄 (Li Tie)
'''주장'''
정즈 (Zheng Zhi)
'''최다출전자'''
리웨이펑 (Li Weifeng) - 112경기
'''최다득점자'''
하오하이둥 (Hao Haidong) - 41골[2]
'''홈 구장'''
베이징국가체육장 (91,000석)
'''첫 국제경기 출전'''
VS 핀란드 (0:4 패), 핀란드 헬싱키 (1952년 8월 4일)
'''최다 점수차 승리'''
VS (19:0 승), 베트남 호치민 시 (2000년 1월 26일)
'''최다 점수차 패배'''
VS 브라질 (0:8 패), 브라질 헤시피 (2012년 9월 10일)[3]
'''별칭'''
龙之队 (용의 팀), 万里长城 (만리장성),
[4]
'''월드컵'''
출전 1회 (2002)
'''아시안컵'''
출전 11회, 준우승 2회 (1984, 2004)
'''동아시안컵'''
출전 5회, 우승 2회 (2005, 2010)
'''올림픽'''
출전 2회 (1988, 2008)
'''유니폼 컬러'''
'''홈'''
'''어웨이'''
'''상의'''

'''7'''


'''하의'''
'''7'''
'''18'''
'''양말'''


1. 개요
2. 역사
2.1. 중화민국 시절 (1913-1949)
2.2. FIFA 탈퇴기(1950~1979)
2.3. FIFA 복귀 이후 (1980-2002)
2.4. 2002년 이후
3. 안습한 실력
4. 중국의 축구가 약체인 이유
5. 미래의 가능성
5.3. 마르첼로 리피호 2기
5.4. 리톄호 (2020~)
6. 그래도 여자 축구 대표팀은...
7. 역대 감독
8. 역대 성적
9.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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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20년 9월 기준 피파랭킹 76위로 아시아에서 9번째 순위이다. 메인 컬러는 빨간색. 아르헨티나(하늘색 줄무늬), 네덜란드(주황색), 크로아티아(빨간색 체크무늬) 등과 함께 종목 불문하고 유니폼 보면 저거 중국이구나 할 정도로 전 종목 컬러가 뚜렷한 팀 중 하나이다.[5] 성인 대표팀 감독은 에버튼에서 뛰었던 리톄감독이 선임되었다.
2010년대 후반 들어 볼리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을 벤치마킹해서 약한 실력을 강력한 경기장으로 커버하고 있다. 그 미친 라파스에스타디오 에르난도 실레스 스타디움만은 못하지만 그래도 꽤나 골치아픈 쿤밍의 투오동 스포츠 센터 스타디움의 고지대에서 경기를 벌인 바 있다.
현재 유니폼 스폰서는 나이키다.
주요 선수로는 우레이, 장린펑, 황보원, 엘케손 등이 있다.

2. 역사



2.1. 중화민국 시절 (1913-1949)


중화민국이 대륙에 있던 시절부터 축구는 인기스포츠였다. 신해혁명으로 건국된 지 2년만인 1913년 아시안 게임의 전신인 극동챔피언쉽 게임(Far Eastern Championship game)에 축구대표팀을 보내면서 시작되었다. 이때 중국의 라이벌은 필리핀 축구 국가대표팀이었다.[6] 1931년 중화민국은 FIFA에 가입하였다.
1936 베를린 올림픽에도 축구 대표팀을 보냈는데 영국 축구대표팀에 2-0으로 패했다.[7] 이 당시에 출전한 선수 중에는 홍콩 배우 알란 탐의 아버지인 담강백이 있는데, 이분은 아시아 축구왕이라고 불리던 선수였다. 이분은 중국이 공산화되자 홍콩에 정착했다.

2.2. FIFA 탈퇴기(1950~1979)


중국 본토가 공산화되고 축협 고위직을 점하던 국민당 고관들이 대부분 대만으로 도피하자 1952년 새로 축협이 구성되었다. 1952년 대만의 중화민국을 대신해 중화인민공화국으로 FIFA에 재가입했다. 하지만 FIFA가 대만을 "중화민국"이라는 이름으로 계속 회원국 자격을 인정하자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내세워 피파를 탈퇴했고, 중국 축구 국대는 국제대회에 나서지 못하고 공산권 우방국들과의 친선전에만 나서게 된다. 더구나 1967년 문화대혁명이 발생하면서 축구 및 다른 스포츠는 "자본주의 오락"로 단죄되어 많은 축구팀이 해체되고 국가대표팀도 당연히 해체되었다. 많은 선수나 지도자들이 "혁명의식이 부족하다"며 시골 오지로 끌려가 삽질을 했다. 이렇게 10여년간 중국 국내에서 공식 경기가 전혀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안그래도 고립되어 저하된 중국의 축구실력은 10여년간 계속된 문화대혁명 때문에 더 떨어지게 된다.
1971년 유엔중화인민공화국을 유일한 합법정권으로 승인하자, FIFA도 중화인민공화국을 중국의 유일한 국대로 선언하였고 중화민국은 축출되었다. 그리하여 1979년 다시 중화인민공화국은 피파에 재가입하고 국제교류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8]

2.3. FIFA 복귀 이후 (1980-2002)


1980년부터 각종 국제대회 및 월드컵 지역 예선전에 참가하기 시작했으나, 번번히 떨어졌다. 동북아 4개국 대항전인 다이너스티컵에도 매번 참가했으나, 우승은 한 바 없었다. 그래도 오랜기간 동안 참가를 못한것에 비해서는 아시안컵에서는 1980년도를 제외하면 조별리그 통과는 할 수있을 정도의 성적은 기본적으로 내 준 데다가 1984년 아시안컵에서 준우승을 거두기까지 했다. 하지만 당시 아시안컵의 낮은 위상을 생각하면 크게 의미를 두기는 힘들다.
그러던 1986 멕시코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당시 영국의 식민지에 불과했던 '''홍콩을 상대로 베이징에서 박살나며''' 탈락해 버렸다. (5.19 사건) 2라운드도 아니고 1라운드에서 당한 패배라 당시 중국 축구계에 씻을 수 없는 치욕이었다.
1988 서울 올림픽에는 본선 진출에 성공했지만 서독, 스웨덴에 털리고 튀니지와 무승부를 거두면서 1무 2패 조 최하위로 광탈했다. 월드컵에서도 예선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시며 본선 무대를 밟지 못했다.
그러다가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서 보라 밀루티노비치 감독의 지휘 하에 처음으로 본선에 진출하는데 성공했다. 당시 대한민국일본이 개최국 자격으로 예선을 아예 치르지 않았고, 여기에 강호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가 한 조에 들어간 덕에 반대쪽 조에서 중국은 빈집털이를 성공하며 본선에 안착했다.[9]
그러나 조별리그에서는 브라질, 터키, 코스타리카가 있는 C조에 들어가 '''3전 전패 무득점 9실점'''이라는 처참한 기록을 세우면서 광탈했다. 이미 세계 최강 브라질을 만난 것 하나만으로,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나마 사우디아라비아가 삿포로에서 독일에 8대0으로 패하면서 총 실점을 뒷받침해줬기 때문에, 최종 꼴찌는 면했다.[10] 그나마 브라질이 우승하고 터키가 3위를 기록하면서 우승권 강호들과 붙어서 떨어졌다는 구색은 맞춰졌지만 말이다.
여담으로 중국이 본선 진출에 성공한 국제 대회는 대한민국에서 열린 대회들이다. 1988 서울 올림픽과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인데, 월드컵은 경기를 전부 대한민국 경기장에서 치렀다.

2.4. 2002년 이후


2004년에는 자국에서 열린 AFC 아시안컵에서 일본에게 결승전에서 3-1로 패배하여 준우승을 기록했다. 그러나 대회 내내 중국에 유리한 편파판정이 난무했기 때문에 그다지 인정받지는 못한다. 그런데 대회 후 극성 치우미들은 결승전 일본 대표팀의 신의 손 사건만 부각시키는 뻔뻔함을 보였다.
일부 축구팬들은 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중반까지가 중국팀의 전성기였고, 중국화/축구의 미신을 강조하기 위해 한국과 일본은 선수들이 유럽에 꾸준히 진출해서 실력이 상승했는데, 중국만은 중국 슈퍼 리그가 출범(2004)한 후에 실력이 퇴보했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드는 근거는 중국 국대가 아시안컵에서도 조별예선 통과 이상의 성적은 꾸준히 내고 있었고, 월드컵 본선도 어쨌거나 한 번 밟아 봤다는 것. 그리고 이당시 중국의 여러 선수(둥팡줘(맨유), 정즈(찰턴), 리톄(에버튼), 리웨이펑(에버튼), 쑨지하이(맨시티)[11], 하오하이둥(셰필드))들이 EPL에 진출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살펴보면 사실이 아니다. 2019년 현재 중국이 이 당시보다 피파랭킹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이나 일본도 랭킹이 2002-04년보다 떨어진 것은 마찬가지이니, 딱히 중국만 퇴보했다고 보긴 힘들다. 아래 나오지만 특수한 사정의 2002 월드컵을 제외하면 중국은 [12], 2006, 2010, 2014년 모두 최종예선에 발을 딛지 못했으나, 2018년 월드컵 예선에서는 드디어 최종예선에도 나갔다.[13][14] 그리고 전통적으로 중국이 아시안컵에서 실력에 비해 매우 성적이 좋았기 때문에[15] 2004년 준우승(그것도 홈개최)을 했는데 이후 아시안컵에서 성적이 더 안나온다는 이유로 퇴보했다고 보기는 힘들다.[16] 그냥 아시안컵 위상이 갈수록 높아짐에 따라 점점 실력대로 성적이 결정되어 갔다고 보는 편이 옳다. 또한 2000년대 초반 EPL에 진출한 중국 선수들은 중국시장 개척전략 및 스폰서빨이 컸기 때문에 대부분 벤치신세를 졌고,[17], 온전한 실력으로 진출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중국 리그에서 오가는 돈이 커치고, 빅리그에 가봤자 몇년간 경기에 뛰지도 못할 것을 알기 때문에 아예 진출을 안하게 되었다.[18]
2004년에는 7만명의 인구를 가진 안도라를 상대로 0대0으로 비기는 굴욕을 당한 적도 있다.
2006년 월드컵 지역예선에서는 2차예선 4조에 포함, 홍콩, 말레이시아, 쿠웨이트와 1위 자리를 놓고 경쟁했다. 5승 1패로 쿠웨이트와 동률을 이뤘으나 승자승 원칙으로 최종 3차예선에 올라가지 못한다. 만약 올라갔다고 해도 한국, 사우디, 우즈벡, 쿠웨이트(A조)[19]로 구성된 최종 3차 예선에서 사우디나 한국을 뚫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1무 2패 조 3위로 탈락했다. 사실 개최국으로 자동진출했지만 이 조는 브라질과 벨기에가 너무 강해서 8강은 보나마나였다. 브라질은 다 알다시피 올림픽과 월드컵의 전통적 강호이고 호나우지뉴마르셀루가 포함되어 있었다. 벨기에는 당시 피파랭킹에는 중위권이었지만, 이후 황금세대의 주축이 되는 선수들이 많이 포함되었기 때문에 이기는 것은 힘들었다. 즉 당시 벨기에는 마루앙 펠라이니(맨유), 무사 뎀벨레(토트넘), 얀 베르통언 (토트넘), 케빈 미랄라스 (에버튼), 뱅상 콩파니(맨시티), 토마스 베르마엘렌 (아스널) 등등의 미래 특급선수들이 다수 포함된 팀이었다. 이들이 이 다수 들어간 2014 월드컵의 벨기에팀에게 대한민국 홍명보호도 벨기에가 한명 퇴장당했음에도 원사이드하게 밀리는 졸전을 하다가 1-0으로 졌을 정도였기 때문에, 2008년 당시의 중국은 더 이기기 힘들었다. 결국 둥팡줘의 한 골로 뉴질랜드와 1-1로 비기는 것으로 전패는 면했다.
2010년 월드컵 지역예선에서는 3차예선 1조(중국, 카타르, 이라크, 호주)에 포함되었으나, 1승 3무 2패의 조 최하위로 4차 최종예선에 올라가지 못하고 탈락하였다. 하지만 프랑스와의 평가전에서 1:0으로 이기는 이변을 연출했다.[20]
2014년 월드컵 지역예선에서도 3차예선 A조(중국, 싱가포르, 요르단, 이라크)에 포함되었으나, 3승 3패 3위로 4차 최종 예선에 올라가지 못하고 탈락하였다.
2015년 아시안컵에서는 사우디, 우즈벡, 북한을 이기며 조 1위로 8강에 올랐으나 8강전에서 개최국 호주에게 패배하였다.
2018년 월드컵 지역예선에서는 그동안 번번히 2-3차 예선에서 고배를 마시던 전통을 깨고 '''최종예선까지 올라왔으나''' 한국, 이란, 카타르, 시리아, 우즈벡이 포함된 A조에서 5위로 마감하였다. 하지만 가오훙보가 사퇴한 이후 마르첼로 리피 감독이 맡으면서 경기력이 급상승, 한국, 카타르, 우즈벡을 이김으로써 가능성을 보여주게 되었다. '''위에서 지적했지만, 일부에서는 2000년대 초반보다 중국 국대의 실력이 더 떨어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2002년 한국/일본의 개최국 자격으로 아시아 예선에서 빠지면서, 중국이 어부지리[21]를 얻은 것을 제외하면 중국 국대가 월드컵 최종예선까지 올라온 것은 2018년 월드컵이 최초[22]이므로 시간이 갈수록 점점 실력이 좋아지고 있다고 보는게 맞다.
일부에서는 아시안 컵을 앞둔 평가전에서 소위 20억의 지구매치라고 불린 2018년 10월 13일의 인도 대표팀과 비긴 것을 졸전을 벌였다고 주장하면서 개막장팀으로 돌아왔다고 비하하고 있는데, 사실과 다르다. 인도는 그동안 약체였지만, 2013년 인도 슈퍼 리그 출범후 서서히 축구실력이 올라오고 있으며, 특히 2019년 인도팀이 아시안컵 조별리그 1차전에서 나름 동남아의 맹주였던 태국을 4-1로 대파한 것을 봐서는 인도가 중국과 비긴 것이 딱히 중국팀이 졸전을 벌였다고 볼만한 근거는 되지 않는다.[23]

3. 안습한 실력


우선 월드컵 진출이라고는 단 1회에 불과하다. 그나마 이 1회 월드컵도 2002년 한일 월드컵인데, 그러니까 아시아의 강호들인 대한민국일본이 개최국 시드를 받아 예선을 건너뛰고 본선에 직행하며 남은 자리를 어부지리로 겨우겨우 주워먹은 것이다[24]. 1980년대 이전에는 중화민국을 국가로 인정한다는 이유로 피파를 보이콧 했고, 이어 피파가 중화민국을 축출하자 그제서야 피파에 가입해서 세계 축구 무대에 데뷔했다.
아시아권에서조차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한-일 호주 이란과 같은 4강 뿐만 아니라, 그 아래의 중동-중앙아시아보다도 쳐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처음으로 진출한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는 한국과 일본이 개최국 자격으로 자동적으로 진출하고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같은 강호들을 피하고 상대들이 싸그리 약체, 그나마 상대적으로 강호(?)도 아랍에미리트가 고작이던 환상의 꿀조를 만나 운 좋게 겨우 진출했을 뿐이다. 이 대회에서 C조에 배정받았으나 브라질, 터키, 코스타리카 등을 상대로 무득점 9실점, 3전 전패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하였다. 최종 순위는 뒤에서 2위[25]. 특히, 비록 이 대회의 우승국이긴 했지만, 지역 예선에서는 에콰도르에까지도 밀릴 정도로 죽을 쑨 브라질에는 0-4로 압살을 당했다. 뭐, 충분한 변명은 되는 게 원래 남미 지역예선이 치열한 건 일상다반사다. 어쨌든간에 브라질은 당시 우승팀이었으니 중국도 0-4로 압살당한 게 그렇게 부끄러울 일은 아니니고, 오히려 4점만 내주는 선에서 끝낸 게 선전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물론, 터키도 2002년 이 대회에서 엄청난 돌풍을 일으키고 또 다른 돌풍의 팀이었던 대한민국, 그리고 개최국의 이점인 일본도 떨궈내고 우승국 브라질과도 조별예선과 준결승전(4강전) 2번을 만났는데, 조예선에서는 한국인 심판오심으로 1-2로 패배했고, 준결승에선 0-1로 제법 엄청나게 선전한 팀이므로 이런 팀한테 0-3 압살당한 것 역시 그렇게 부끄러울 일은 아니고 나름 중국치곤 선전했다고 봐야 할 듯...하지만 코스타리카전은...뭐... 답이 없다. '''그냥 못해서 패배한 것이다'''. 결국 이 조의 순위는 승점자판기였던 중국을 얼마나 잘 털었느냐에 따라 갈린 셈이었다. 당시 코스타리카는 완초페, 폰세카 등을 앞세워 인상적인 공격축구를 했다. 터키와도 접전 끝에 1:1로 비겼으며, 브라질전에서도 막판에 무너지면서 탈락하긴 했지만, 그래도 만만치 않은 화력을 뽐낸 바가 있다. 괜히 완초페가 2006 월드컵 개막전에서 독일을 괴롭혔던 게 아니다. 그렇게 따지자면 월드컵 때 중국이 못한 게 아니라고 하겠지만 후술하는 걸 보면...중국이 올림픽에 나가면 그 많은 인구의 인해전술 덕분에 미국과 더불어 스포츠 초강대국으로 군림하는데도 불구하고 유독 축구만큼은 요상하게 다른 종목들과는 달리 매우 허약하다. 실제로 올림픽에 나가면 중국이 인구수가 '''500분의 1에 불과'''한 우루과이보다 열등한 종목이 축구가 유일하다.
게다가, 2004년에는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스페인 전지훈련에서 FC 바르셀로나에 '''0:6''' 참패를 당하는 수모까지 겪었다. 이 당시 순지하이라든지 몇몇 유럽파 주전은 없었다고 해도 당시 독일 월드컵 최종예선을 대비한 전력을 모두 소집했다는 점에서 변명할 게 없었다. 게다가 당시 주말에 라이벌 레알 마드리드와 엘 클라시코을 앞둔 바르셀로나가 중국전에 호나우지뉴, 에드가 다비즈 등 핵심 주전을 출전시키지 않고도 손쉽게 대승을 거두는 통에 더더욱 망신을 당했었다.[26]
2004년 AFC 아시안컵 준우승에 힘입어 2006년 독일 월드컵에도 진출하겠다고 선수단과 팬들은 자신했는데, 쿠웨이트 원정에서 0-1로 패한 것이 끝내 발목을 잡아 5승을 거두고도 2차 예선에서 미끄러졌다. 하필이면 같은 조의 말레이시아홍콩이 승점자판기였던 탓에 쿠웨이트와 같은 5승 1패를 거두고 결국 다득점에서 14점을 기록해 15점을 거둔 쿠웨이트에게 밀려 탈락한 것이다. 그리고 2010 남아공 월드컵 3차 예선에서는 호주·이라크·카타르 등과 묶이는 죽음의 조 편성이 나오는 바람에 광탈크리를 맞고 말았다. 당시 호주와 안방경기를 벌일 당시 일부러 1900미터 높은 고지에 위치한 경기장[27]에서 경기를 했지만[28] 결과는 조 꼴찌로 탈락하고 만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선 이라크·요르단·싱가포르 등과 한 조에 묶여서 비교적 무난하게 최종예선까지 진출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4년 전 카타르와 이라크에 고전하던 것을 생각하면 중국 축구팬들도 어렵다고 평했고, 예상대로 싱가포르에만 2승을 거뒀고 마지막 6차전에서 요르단을 이겼지만, 이미 최종예선으로 진출 확정이 된 요르단이 마지막 경기는 쉬엄쉬엄 진행한 탓에 이긴 승리였기에 결국 3위로 또 다시 광탈하고 말았다.
게다가 아시안컵에서도 2007, 2011년 8강조차 가지도 못 하고 연속으로 조별예선에서 탈락하고 있다. 두 대회 모두 조별예선에서 만난 복병 우즈베키스탄에 덜미를 잡히고 탈락하면서 아시아 대회에서도 별것 아니라는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2012년 6월에 가진 스페인과 친선경기에서 의외로 0-1로 패하는 통에 이걸로 당시 스페인에 (2012년 5월 30일 친선경기) 1-4로 대패한 한국보다 낫다고 우쭐거리긴 했지만, 1년만인 2013년 6월 6일, 또 우즈베키스탄에 평가전에서 1-2로 패했다. 하지만 우즈베키스탄이라면 2007년 친선경기(중국 안방경기)에서 3-1로 이기긴 했다.

그러나 며칠도 안 가서 가진 경기에서 우즈벡전 패배는 단순한 장난으로나 보일 정도의 대굴욕을 당하는데, 바로 2013년 6월 15일에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태국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친선경기에서 무려 '''1:5'''라는 믿기 어려운 스코어로 대참패를 당한 것이다. 태국과의 역대전적은 그동안 12승 3무 2패였으니 중국의 우세였다. 게다가 태국은 중국보다도 더 약체인 국가. 하지만 '''태국 선수진들은 대부분이 23살 이하 올림픽 대표팀급이었지만, 중국은 1진급 선수들이 대다수였다.''' 게다가 그나마 얻은 1점도 보면 그냥 심판의 노골적인 홈빨오심으로 만들어진 페널티킥에서 나온 것이다. 누가 보더라도 어이없는 할리우드 액션.
결정적으로 친선경기가 열린 장소조차도 중국 홈 경기[29]였음에도 아시아 2류도 아니고 3류팀 정도에 불과한 태국, 그것도 U-23팀에게 이런 대패를 거뒀기에 현지 반응은 폭발적으로 분노했다. 더군다나 태국은 AFC 아시안컵에서 우승은 커녕 1972년 자국 대회에서 3위를 거둔 걸 빼면 언제나 1라운드 아니면 지역예선에서 언제나 광탈이었고, FIFA 월드컵 본선 진출 경험조차도 전무한 약체 중에서도 상약체다. 대체로 태국은 아시아에서 3류 정도 실력이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중국이라고 뭐 그다지 다를 것이 없었다'''.
경기 당시의 동영상을 봐도, 경기가 끝난 후 처참한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욕설과 야유가 터지면서 자국 선수들에게 물병과 오물을 내던지고 분노하는 치우미들(중국 축구팬들의 별칭)의 폭발이 확실히 보였을 정도였다. 얼마나 분노가 컸는지 치우미들이 대표팀 차량을 에워싼채 "下课!(감독 짤라라!)", "解散!(대표팀 해산하라!)"를 외쳤다. '''심지어 축구광으로 잘 알려져 있는 시진핑 국가주석도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참패하는 소식에 노발대발했다는 기사도 실렸을 정도였다. #'''[30]
이렇게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본선 진출을 3차 예선에서 실패한 이후 신뢰가 흔들리기 시작하며 날로 입지가 위태롭던 스페인 출신의 호세 안토니오 카마초 감독[31]은 이 대패로 인해 계약 기간이 아직 1년 남짓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광속으로 경질당했다.
하여튼 이 패배를 잊지 못한 중국은 2014년 10월 10일 태국과 재평가전을 가져서 안방에서 3:0으로 이기며 일단 설욕은 했다. 하지만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는 16강전에서 태국에 0:2로 패배하고 말았다(...).
그리고 월드컵 2차예선에서 부탄을 원정경기에서 6:0으로 가볍게 이기는가 했는데... 또 패한다. 사실 최약체 부탄을 이긴 것도 자랑도 아니긴 하다. 전승절 이후 11월 또 다시 홍콩에 지는 일이이 벌어졌다.
결국, 알랭 페랭 국대 감독은 해임되었고, 벌써부터 이번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은 포기하고 2022 카타르 월드컵이나 노리자고 이러고 있는 판국이다. 그리고 후임 감독으로는 2010년 동아시안컵에서 공한증을 깨는데 성공했던 가오훙보 감독이 재선임되었다. 다만, 월드컵 지역 2차 예선까지만 맡기고 이후에는 외국인 사령탑을 다시 선임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조 1위 자리를 카타르에 압도적으로 넘긴 터에 홍콩에 고전 끝에 2위를 차지한다고 쳐도, 꼴찌 부탄 전의 득점을 빼고 골득실을 계산한다면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도 최종예선조차 못 가고 탈락할 가능성이 높았으나...마지막 경기에서 카타르를 잡고 북한필리핀에 역전패 당하는 기적으로 간신히 최종예선에 합류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월드컵 본선의 길은 멀기만 하다.
아니나 다를까, 최종예선 3차전에서 최약체 '''시리아한테 안방에서 0-1로 패했다'''. 중국은 이 결과로 A조 5위로 떨어지면서,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본선 진출에 적신호가 켜졌다. 결국 감독 교체 초강수를 두었고, 한국 격파를 포함 최종전까지 PO티켓 획득 가능성을 남기고 최종전도 이겼으나, 워낙 초반에 잃은 게 많고, 한국과 이란이 모두 승리하지 못해서 또 낙방했다.
2020년 1월 16일에 치러진 이란과의 올림픽 예선에서는 이란측 골키퍼가 할 일 없어서 골대를 떠나 구경 중이고, 텅 빈 이란측 골대 앞에 참새들이 내려앉아 한가롭게 산책하는 상황이 일어났다.
희한하게도 동남아시아 상대로는 역대 전적상 극강이다.
2018년까지 중국이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치른 A매치는 총 123경기로, 중국은 이들 국가를 상대로 88승 19무 16패라는 압도적인 전적을 자랑하고 있다. 사례별로는 대 태국 28전 18승 5무 5패, 대 말레이시아 20전 12승 5무 3패, 대 싱가포르 20전 11승 6무 3패, 대 필리핀 19전 16승 1무 2패, 대 인도네시아 15전 10승 2무 3패이고, 베트남, 캄보디아, 미얀마, 브루나이, 라오스 상대로는 각 6, 5, 4, 4, 2번을 만나 전승을 거두었다. 문제는 동남아시아가 전세계에서 최약체 지역이라는 점. 동남아시아보다 축구 실력이 떨어지는 지역은 남아시아뉴질랜드를 제외한 오세아니아 정도 밖에 없으니... 다만 이것은 과거 기록까지 포함한 것으로, 대한민국의 대 말레이시아 통산 전적이 87전 47승 20무 20패인 것을 감안하면 확실히 뭔가 상성이 있긴 한 듯.
다만, 그렇다고 동남아를 늘 이기는 것도 아니다. 2019년 아시안컵 16강전에서 태국을 상대로 2-1로 진땀승을 거뒀고, 3월 홈에서 열린 차이나컵에선 태국에게 0-1로 패하면서 그 태국조차도 대놓고 "중국은 해볼 만하다!"라고 외칠 정도로 놀림감 수준이 되어버렸다.
또한 의외로 일본 상대로도 역대 전적이 우세(38전 16승 8무 14패)인데, 이는 1917년부터 1980년까지 10승 1무로 학살해 놓은 과거의 영광 덕분이다. 최근 성적은... 중국이 마지막으로 일본을 격파한 것이 무려 20년 전인 1998년 다이너스티컵 2:0 승리이다. 이후 20년 동안 11전 5무 6패. 안습. 참고로 중국이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만나 승리를 거두지 못한 기간이 1978년부터 2010년까지 32년[32]이다.
혹자에 따르면 중국의 축구 실력은 인류의 미스테리 중 하나라고 하는데, 실제로 중국 축구팬들이 남긴 댓글을 보면 이런 식의 댓글로 가득하다. 더 노골적인 표현으로 들어가면 중국 최고의 예능이 중국 국대 경기라고까지 할 정도다. 어느 정도냐면 중국 예능인들 실업자 될까 봐 걱정된다고 할 지경이다. 중국 국대 경기를 보고 스트레스 풀었다는[33] 댓글은 그나마 애교 수준이다. 사실 2002 월드컵때 좌절을 하기는 했지만 2004년 아시안컵에서 준우승하는 등 호성적을 냈던때도 분명히 있었는데 막상 그 이후로 월드컵 진출도 못하고 아시안컵에서도 2차례씩이나 조별예선탈락하는 등 암흑기가 이어지다보니 해탈상태라 그렇기도 하다.

4. 중국의 축구가 약체인 이유


사실, 중국 축구의 잠재력은 충분하다.
  • 축구를 좋아하는 열성팬인 치우미들이 매우 많다.
  • 14억에 달하는 인구를 자랑하므로 축구를 잘하는 23인을 모으기가 다른 나라보다 더더욱 쉽다. 스포츠가 제대로 발전할 정도의 부와 생활수준을 가진 계층을 추려내고 한족보다 푸대접을 받는 소수민족을 제외해도 스포츠 빅마켓이라는 미국 인구 수의 3배에 달하는 수준이며 축구 인기가 열성적인 대륙 유럽의 인구를 2배 이상 앞선다.[34]
  • 중국 슈퍼 리그라는 거대한 축구리그가 성황리에 운영되고 있다. 게다가 중국 슈퍼 리그에는 디디에 드록바, 에세키엘 라베찌 등 쟁쟁한 선수들도 뛴 적이 있다.
  • 중국은 GDP 2위인 부자국가라서 돈이 많다. 축구에 투자할 수 있는 자금이 넉넉하므로 그만큼 축구 발전이 용이하다.
  • 중국의 정치가, 지도자 중에도 축구광이 매우 많다. 국가정책으로 축구굴기라고 부르며 축구발전을 위해서 온갖 역량을 쏟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덩샤오핑의 소원 중 하나가 살아생전에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FIFA 월드컵에 나가는 것이었고, 현재 중국 주석 시진핑도 축구광으로 유명하다.
  • FIFA에서도 중국의 거대한 시장을 노리고 있어서, 진심으로 중국 축구가 잘 되기를 바라고 있다. 오죽하면, 2016년에 FIFA 회장인 잔니 인판티노FIFA 월드컵 본선진출 티켓을 40~48장으로 늘리겠다는 말을 한 배경으로 중국의 월드컵 진출을 뽑을 정도다. 정확하게는 FIFA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아시아 시장을 염두에 둔 발언이지만, 중국의 비중이 큰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여러 문제들이 중국 축구의 발전을 가로막는데...
  • 1980년대에야 겨우 시작된 현대적인 축구 문화
중국의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축구는 문화대혁명 등 정치격변 때문에 전통이 깡그리 단절되고 1980년대에 백지상태에서 새로 시작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다보니 모든 면에서 미숙함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 관련 인프라의 부실
축구장을 짓기 위해서는 넓은 부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많은 학교들에서는 그럴 여력이 없는데, 중국의 인구가 오히려 독이 된 케이스. 14억 인구가 살아가기 위하여 이것저것 지어야 하니 축구장 지을 땅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중국 학교의 운동장은 농구장을 기준으로 만들어지며 따라서 학생들의 운동은 대부분 농구, 탁구, 배드민턴 등이다. 그래서 유소년 단계에서 기반이 형성되기 어렵다. 후술하다시피 축구 인프라가 너무 늦게 갖춰졌으며, 이것이 중국 축구 부진의 주된 이유다. 거기다 환경적으로도 사람이 모여 사는 곳마다 미세먼지 문제가 심각하지 않은 곳이 드물 정도로 실외 훈련도 제대로 진행할 수 없다.
  • 입시위주의 교육
문화대혁명으로 공부를 제대로 못한 세대들은 개혁개방이라는 시대변화를 겪으면서 고생을 제대로 하게 된다. 하여 자식세대들은 그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자식들의 공부를 엄청나게 중시하게 되었고, 축구 같은 놀이는 천대받던 시절이 있었다. 이 시절에 축구부를 하는 학생들은 사실상 공부로 가망이 없는 학생들이었으며, 반쯤 일진이나 다름이 없었다. 아무리 점수와 인성이 무관하다지만 기본적으로 공부를 열심히 하려는 마음가짐이 없고, 당시의 그런 교육열 분위기에서조차 공부를 안한다는 건 부모나 선생의 말을 듣지 않는 문제아라는 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는 위에서 언급한 술담배 문제와도 이어진다.
  • 비교적 늦게 출범한 현대적인 축구리그
K리그가 1980년대 J리그가 1990년대 시작한 것에 비해서 중국 슈퍼 리그는 2004년에야 시작했다. 물론 그 전에도 중국에는 아마추어나 세미프로 리그는 있었지만, 본격적인 프로리그는 2000년대 들어서야 시작된 것이고 초창기의 모든 면이 시행착오의 연속일 수밖에 없듯이, 축구도 마찬가지였다.
  • 체계적인 유소년 육성 시스템의 부재
중국은 올림픽에서 메달따기 용이하고 적은 비용으로도 성과를 보기 쉬운 개인종목 위주로 엘리트 체육을 육성하였다. 대표적으로 육상, 수영, 체조, 탁구 등등. 운동신경이나 신체조건이 좋은 선수들은 대부분 그쪽으로 갔고, 축구같이 실력을 키우려면 돈이 많이 들고 선수가 아니라 리그를 키워야하는 종목의 육성은 적어도 2000년대 초반까지는 소극적이었다.[35] 이는 이장수가 지적한 부분이지만, 중국의 등록선수는 인구에 비해서 매우 적으며, 2000년대까지는 등록선수가 한국보다도 적었다. 학교체육을 중심으로 축구를 발전시킨 한국이나 일본과는 달리 학교 축구부도 그다지 많지 않다. 중국은 자국 대표팀이 여러 굴욕을 당한 2010년대 들어서야 유소년 시스템을 정비하는 중이다. 그 전까지만 해도 체육부가 구성되지 않은 일반 학교에서 재능이 특출난 유망주들을 발굴하는 식으로 선수를 수급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 농구에 비해 떨어지는 인기
중국 축구 인기가 높다고는 해도 농구에 밀린다. 나라 전체가 축구에 미쳐 돌아가는 남미 국가들이 아니고서야 축구에 열성적인 연령대는 한정이 되어 있는데 축구 흥행을 이끄는 세대는 주로 10대~30대 남성들이다. 그런데 중국 내 이 세대들에게는 축구 탑 티어 리그인 유럽 5대 리그나 UEFA 챔피언스리그보다는 NBA의 인기가 훨씬 높다. 실제로 중국 학교들은 축구장 없는 학교는 많아도 농구장 없는 학교는 찾기 힘들 만큼 농구가 대중화되어 있고 중국 국민들 입장에서도 국제무대에서 항상 죽쑤고 놀림거리만 되는 축구 대표팀보다 적어도 아시아권에서는 최정상이고 세계적으로도 경쟁력이 있는 농구 대표팀이 훨씬 응원할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 문화적인 문제
라 리가에서 잔뼈가 굵었으며, 베이징 궈안상하이 선화의 감독을 역임한 그레고리오 만사노는 스페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 축구가 잘 안되는 이유로 상명하복 문화를 들었다. 그리고 이런 문화 때문에 중국 선수들이 감독의 권위에 순종적이고 잘 따르지만, 현대 축구 전술을 중국 선수들에게 이해시키는게 힘들었다고 한다. 사실, 이런 비슷한 말은 한국 팀을 맡았던 데트마어 크라머거스 히딩크도 한 적이 있다. 한국 선수들이 감독말엔 잘 따르지만, 대표팀의 선후배 문화나 서열 때문에 창의적인 플레이를 못한다고 한다.
  • 축구선수들의 부실한 몸관리
식단 등의 방면에서 몸관리에 엄청나게 신경써야 하는 운동선수임에도 그러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경우가 보인다는 점에서 자국 축구팬들의 비판을 듣고 있다. 중국에서는 중국 국대 축구선수의 형편없는 실력을 비하할 때 '돼지'라는 표현을 썼으나 어느 경기가 끝나고 선수들이 상의를 벗었는데 상대팀 선수들은 식스팩이 선명하게 찍혀있는 몸짱인데 반해 중국 대표팀 선수들은 새하얀 피부에 포동포동 살이 오른 몸매였던 것을 보고 중국 내 축구팬들이 국대 선수들에게 닭백숙이라는 비하 멸칭까지 붙여줄 정도다.[36] 2002년의 중국 국대는 비록 월드컵에서 참패했을지언정, 몸관리는 착실해서 잘 다져진 복근을 보여줬지만, 요즘 국대 선수들은 복근도 없는 물렁살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이장수의 증언에 의하면 중국 선수들은 경기 전날에도 술판을 벌이거나 평소 흡연을 하는 일이 잦았다고 하며[37], 감독이 된 후 이를 금지시켰다고.
  • 프로 선수의 동기부여 부재
대부분의 선수들은 유럽에 진출하는 것을 소원이자 목표로 하고 있다. 현대축구의 선수 육성 시스템이나 축구전술 등은 유럽을 기준으로 돌아가고 있으며 중국보다 더 인프라가 부족한 아프리카 국가들의 유망주들은 출세를 위해 유럽리그 진출에 사활을 걸고 있다. 중국은 이런 흐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데 CSL의 연봉수준은 2000년대 초반 이미 K리그 수준에 이르렀다. 이때 중국의 국민소득이 1000불 수준이었던 것을 감안하면(한국이 12000불 수준), 축구선수들은 엄청난 고연봉을 받고 있었던 셈이다. 이 때문에 언어, 현지문화 적응문제등을 해결하면서까지 해외에 진출하려는 선수들의 동기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2018년 4월 기준으로 손흥민의 연봉이 56억원 정도인데 중국의 우레이가 110억원 정도로 2배가량(...) 더 받고있는 셈. 굳이 해외에서 적응실패하고 유니폼 판매원 노릇만 하다오느니 자국 리그에서 뛰려는 선수가 많아지고 결국 이는 세계 축구의 흐름에서 도태되는 결과를 낳았다. 다만 현재는 이 문제를 쇼미더머니를 통해 해외감독과 선수를 영입하여 해결하려는 중이지만 결과는 미지수.
이러다 보니 덩샤오핑도 평생 소원 중 하나였던 자국이 월드컵 본선에 가는 것도 보지도 못하고 1997년에 93세를 일기로 사망했을 정도다. 그래도 하늘의 도움으로 2002년 한일 월드컵에는 출전했지만, 한 골도 못 넣고 전패로 광탈했다(...).
물론, 당시 대회 우승국에 3위 팀인 브라질과 터키가 있어서 나름대로 중국은 죽음의 조에 편성된 셈이므로 나름대로 변명거리가 된다. 중국 축구가 이상할 정도로 약하다는 사실은 비단 아시아권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명한지 구글에는 "Why is Chinese soccer so bad"(왜 중국 축구는 초라한가?)라는 연관검색어가 다 뜰 정도...참고로 Korean이나 Japanese를 넣으면 아무것도 안 나온다. 월드컵 시즌을 맞아 타임지에서 중국이 왜 축구를 못하는지 분석까지 할 정도다.
또한 중국 특유의 만만디 문화 역시 축구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방해를 하고 있다. 게으르다는 것이 의심될 정도의 지나친 여유로움 역시 중국이라는 나라의 발전에서 모든 분야를 전체적으로 방해를 하는데 빠른 스피드가 생명인 축구도 역시 예외가 아니다. 중국의 축구인들 거의 전부가 국공내전 이후 대만으로 가버리는 바람에 중국축구협회가 와해되고 재창설 후 다시 FIFA에 가입한 해라는 게 '''1979년'''이었으니 그 만만디가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다. 지나치게 날림으로 해도 문제지만 중국 축구의 경우는 모든지 '''지나치게 느려터져서 문제다.'''
그나마 인구 수에서 세계적으로 유일한 라이벌 인도 축구 국가대표팀보다 우위이긴 하다. 그런데 2018년 10월 13일 경기에서는 졸전 끝에 0:0 무재배를 이룩했다.[38]
참고로 인도 프로축구 리그의 경우에도 최근에야 해외 유명 스타급 선수를 몇 명 영입시키며 리그 활성화와 대외적 인지도 홍보에 나서고는 있는데 초창기라 아직 인도 축구가 갈 길이 멀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현실이다. 뭐, 인도도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서 아시아 역사상 처음으로 4강에 올라가기도 했고, 19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나름대로 강호 취급을 받았지만 그것도 옛날 일이 되어버렸다.
물론 이 외에도 방글라데시[39],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등도 들 수 있다. 특히, 이들은 국가 영토 면적대비로 보나 절대치로 보나 인구수가 제법 큰 나라인데도 불구하고 인지도가 딸려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의외로 인구 많은 국가 생각하면 깜빡 잊고 넘어가는 나라들 중 하나다. 특히, 인도네시아가 그렇다. 러시아는 그래도 구 소련 시절에 레프 야신이라는 전설적인 골키퍼가 있었던데다 월드컵 4강까지 올라가고 유로컵도 우승한 적이 있는 강호였고 현재도 2002년과 2014년에 본선에 진출하며, 가장 최근인 2018년엔 8강까지 갈 정도로 축구 실력이 있다. 더불어서, 러시아의 경우에는 인구가 위 국가들처럼 인구가 억대 이상 찍기는 하지만 2억 이상 찍는 나라가 아니고 오히려 면적 대비로 따지면 인구가 많은 나라도 아니다. 멕시코, 일본 등과 비슷한 인구밖에 안 되니까 이 정도면 그럭저럭 평균 정도 실력은 있는 셈이다.
사실 인구 1억이 넘고도 축구를 못하는 나라는 생각보다 많다. 아시아에서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파키스탄이 있다. [40] 사실 인구와는 아무 상관 없는 게 대한민국과 인구가 비슷한 아르헨티나는 세계 축구 4대 본좌 반열이고 미국보다 인구가 적은 브라질은 '''세계 축구 최강국'''이다. 심지어 인구 36만으로 자치구 인구 정도인 아이슬란드의 피파랭킹은 2019년 12월 기준으로 인구 140배가 넘는 한국보다 단 한 계단 낮은 40위이다. 그러나 한국과 미국은 그렇지 않다.
축구를 잘하고 못하고는 인구에 달린 것이 아니라, 축구 인재를 선발하고 교육시킬 수 있는 시스템과 이런 인재들의 경기감각을 키울 수 있는 리그가 필요하다.
중국은 공산정부가 출범하고 나서 피파를 탈퇴하면서 국제축구계와의 교류가 단절되었다. 게다가,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그나마 남아있던 축구계 지도자나 선수들이 모두 시골로 끌려가서 삽질하고 있었기 때문에 1980년대 이전에는 아예 이런 것이 존재하지 않았으니 중국 축구는 1980년부터 시작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하여 중국에는 인구는 많지만 축구지도자들이 많지 않았으며, 이런 틈을 타서 1990년대부터 문화적, 지리적으로 가까운 한국 축구자들을 대거 영입했으나, 가장 중요한 유소년 레벨의 지도자는 1990년대부터야 양성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좋은 지도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많은 수의 경우 고등학생 정도가 되어야 본격적인 선수의 길로 들어가고 있다.
물론, 중국 슈퍼 리그가 출범하고 나서 구단별로 현대적인 유소년 육성 시스템을 갖추고는 있지만 어디까지 몇몇 부자구단에 한정되어 있다. 그리고 2000년대 우후죽순처럼 생긴 중국의 프로 구단들은 이런 시스템을 갖춘 구단이 거의 없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초창기에 보이는 여러 시행착오나 삽질을 반복하고 있다.
게다가, 많은 인구와 축구열기에 비해서 축구를 하는 유소년들이 적다는 문제도 있다고 한다. 한 자녀 정책으로 인해서 자녀들을 힘들고 코치들로부터 구타를 당하고 돈도 많이 들어가는 데다가 뒷배가 있어야 되는 스포츠 선수로 키우려 하지 않고 대체로 공부를 시키려는 경향으로 축구선수가 되려는 꿈을 꾸기가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중국에서 감독을 했던 이장수 감독도 "중국 유소년 축구인구는 겨우 몇 천명 수준으로 한국보다 적다."고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그리고 스웨덴의 에릭손[41] 감독도 "중국의 유소년 축구 인구가 터무니 없이 적다."라는 말을 했다. 심지어, 잠시 감독을 맡았던 코트디부아르보다도 적어보인다고 했다. 참고로 중국의 '''하루''' 출생아 수가 대략 5만명이다(...). 1년 동안 신생아만 1600~1700만명이 태어나는데 유소년 축구 인구는 고작 저것 뿐이다.
게다가, 중국은 학교에서도 농구 코트나 테니스 코트가 있는 실내체육관은 많아도 축구 골대가 없는 학교도 많고 애초에 학교의 설립기준을 축구를 할 수 있는 학교 운동장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농구장을 기준으로 설계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인프라가 부족해 축구를 접하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적다고 한다. 이로 인해, 축구를 좋아하고 관람하는 사람들은 매우 많지만 실제로 축구를 하는 사람들이 적어서 축구를 하는 유망주들을 발굴하기가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에 발전이 매우 어렵다는 문제점도 있다.
거기다가 축구를 잘하려면 자국 리그가 활성화되어야 하는데, 중국의 본격적인 프로리그인 슈퍼리그는 한국보다 20여년 늦은 2004년에야 출범했고, 압축성장에는 여러가지 문제점이 따르듯이, 마인드는 정체상태인데 온갖 현질이 난무하다보니 엄청난 시행착오가 나오고 있다. 이러니 리그에서 오가는 돈은 유럽의 그 어떤 리그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인데, 투자된 돈에 비해 전력은 그다지 향상시키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남자 축구계에서는 세계 수위권의 강팀인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이 정작 여자 축구는 죽쑤는 것도 이러한 요인이 작용되어서이다. 남자부에서는 리오넬 메시, 곤살로 이과인, 세르히오 아게로, 에세키엘 라베시, 앙헬 디 마리아, 하비에르 마스체라노, 카를로스 테베스, 니콜라스 오타멘디 등 뛰어난 선수들이 많이 나오는 반면 여자부에서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며 그나마 이름이 알려진게 현재 아르헨티나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장인 에바 나디아 곤잘레스 정도가 고작인 게 아르헨티나의 축구다.
그나마 에바 곤잘레스도 팀의 주장인 데다가 175cm의 훤칠한 키에 얼굴이 매우 예쁘게 생겨서 알려진 거지 실력은 여자 축구라고 치고도 하위권이다. 실제로도 남자 축구부가 전승 우승으로 금메달을 획득하던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여자 축구부는 3전 전패로 조별리그 탈락했으며 3경기를 통털어 여자 축구부에서 골을 넣은게 루드밀라 마니클러가 캐나다 전에서 넣은 1골이 유일했다. 심지어는 중국에게마저 일격을 당했다.
독일의 경우는 조직력이 세계 최강이기 때문에 리오넬 메시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같은 개인기가 뛰어난 크랙형 선수가 없이도 세계 수위권의 강팀이다. 다만,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미로슬라프 클로제, 루카스 포돌스키, 마르코 로이스처럼 월드 클래스급 크랙형 에이스 선수들이 아주 없다고도 할 수 없다. 조직력은 말할 것도 없이 세계 최강급이다. 또한, 분데스리가의 인기도 세계 4대 프로축구 리그로 불릴 정도로 축구열기도 매우 높고 열광적이다 못해 용광로가 울고 갈 수준으로 뜨거운 국가다.
이렇다 보니, 중국은 쉽게 축구가 발전하지 못하고 FIFA 랭킹도 개판인지라 보통 100위권이고 제일 좋았던 시절이 1998년 37등까지는 올라갔었으나[42] 그거 빼고는 늘 70위권 아래다. 2013년 12월자 피파랭킹도 93등, 2015년 2월 피파랭킹은 82위였다. 이 정도면 아시아 상위권인 대한민국이나 일본보다 30~50계단 정도 아래다.
또 다른 이유로는, 미국도 마찬가지지만 국가 내 운동을 잘하는 스포츠 인재들이 올림픽에서 중국이 강세를 보이는 개인종목으로만 몰려서 축구분야에는 인재가 없다보니 부진을 겪는 이유도 있다. 이는 미국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두 나라가 올림픽에선 세계 1, 2위인데 축구에서는 세계 1, 2위가 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하지만 이런 부분으로만 봐도 미국은 중국보다 훨씬 축구의 발전이 좋은 상황이다.
미국 축구 국가대표팀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미국이 올림픽 종합 성적만큼은 아니어도 축구도 월드컵에선 다크호스급 이상은 되니까 말이다. 특히, 미국은 역대 월드컵 성적만으로 따지면 4강안에 든 적도 한번 있었다. 그것이 바로 1930 FIFA 월드컵 우루과이대회였는데 당시 3위를 기록했고 이것이 미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역대 최고 기록이다.[43]
요약하면 중국이 축구를 못하는 이유는 많은 인구와 뜨거운 축구열기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후발주자로 늦게 시작한 축구문화가 성숙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 축구가 약체인 이유에 대해 한 매체에서 정리한 칼럼이 있다.

5. 미래의 가능성


중국은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한 팀도 생겼고, 15억 인구라는 세계 최고의 인구와 세계 2위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엄청난 시장성을 지닌 국가이다. 미래에는 중국 축구가 어찌될지 모르는 일이다.
중국 정부가 본격적으로 나서서 축구 진흥책을 펼친 것이 2015년부터였고, 당연히 이런 대규모 프로젝트가 1-2년만에 성과를 내기는 불가능하다. 중국측도 50년 후를 바라보고 추진하는 일이라고 밝히고 있다. 만약 그런식으로 단기간에 국가대표팀의 축구실력이나 리그의 수준을 높일 수 있었다면, 이런 프로젝트 자체가 필요없을 거다. 특히 위에서 기술한 대로, 중국의 현대 축구 역사는 1980년부터 시작했다.
여러가지로 2017년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중국팀이 선전하고, 마르첼로 리피호 출범후 보여주는 몇가지 긍정적인 모습을 보면, 중국 축구도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미 여러 전문가들도 중국축구를 무시하기는 힘들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중국 축구가 앞으로 더 성장할 것이라는 언론 매체의 분석도 있다.

5.1. 마르첼로 리피


2016년 10월 22일, FIFA 월드컵 우승, 그리고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 횟수가 무려 4회에 빛나는 화려한 커리어를 가진 마르첼로 리피가 새로운 감독으로 부임했다. 이전까지의 전적은 1무 3패로 자력진출은 힘든 상황.
하지만 250억 연봉의 리피감독은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일신하는데 성공한다. 대표적 사례가 창사에서 치뤄진 월드컵 최종 예선 경기로 공한증의 한국을 1-0으로 꺾어버렸다. 게다가 그 1골도 정교한 세트플레이 상황에서 나온 것. 리피감독은 가오훙보 감독의 색깔을 완벽하게 지워버리고, 공격과 역습이 가능한 팀으로 변모시켰다.
월드컵 최종예선 전반에서 1무 3패를 기록한 가오훙보호를 물려받은 리피호는 3승 2무 1패를 기록, 중국팀을 일신시키는데 성공한다. 비록 A조 최강이었던 이란에게는 패배했지만, 어떻게 보면 중국팀에게 있어서 이란보다 더 상대하기 까다로웠던 한국을 1:0으로 이겼고, 카타르 원정에서는 첫골을 얻어먹고도 2-1로 역전승을 거두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비록 전반기의 부진을 떨쳐내지 못하고 최종예선 5위로 탈락했지만 2위인 한국과 승점 3점차, 시리아와 우즈벡과는 1점차로 아쉽게 탈락했다는 점에서 중국 측으로서는 희망적으로 볼 수 있다.
특히 리피 감독은 "중국팀의 문제는 자신감이지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다."며 패배에 주눅든 선수들의 승리 본능을 일깨워주는데 힘썼다.
2017년 여름 U-20국가대표팀이 독일의 4부리그 레기오날리가의 남서부지구에 참여하려 했으나, 논란을 일으키며 결국 정식 리그전이 아닌 친선전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마저도 일부 관중이 경기장에 티베트 깃발를 내건 것에 대해 반발, 1게임 마치고 참여를 포기했다.
2017년 11월, 한국대표팀과 똑같은 상대인 콜롬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세르비아 축구 국가대표팀과 평가전을 가졌다. 0-4, 0-2로 각각 참패했는데, 한국 대표팀이 2-1 승리, 1-1 무를 기록한 것을 보면, 중국 국대가 잠시 피파랭킹에서 한국을 앞서긴 했지만 실력면에서 앞선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이 패배로 다시 11월 피파랭킹에서 한국 국대는 59위, 중국은 60위로 한국이 앞서기 시작했다.
한편 마르첼로 리피 감독은 2020년까지 재계약을 했다. 축구감독으로는 무리뉴에 뒤이어 2000만 유로로 세계 2위의 연봉을 받는 리피가 얼마나 중국 축구의 실력을 끌어 올릴 수 있을지 주목된다.
2018년 3월 22일 차이나컵 웨일즈전에서는 가레스 베일에게 해트트릭을 내주며 6-0으로 참패했다. 리피도 화가 났는지, "선수들의 정신력이 문제있다."고 일갈. 뒤이어 체코와 치룬 3위 결정전도 편파판정의 힘입어 선제골을 기록했지만 후반전에만 4골을 먹혀 패배했다.
2018년 5월부터 태국, 미얀마 등과 꾸준히 치뤄온 평가전은 승리하였으나 하필 9월에 카타르와 치룬 평가전에서 굴욕적인 패배를 당했다. 점점 리피 감독에 대한 투입 비용 대비 성과와 관련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심지어 U-21감독으로 부임한 히딩크 감독을 리피 감독의 삽질이 더더욱 심해질 경우 바로 성인대표팀 감독으로 써먹는 대체자로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2018년 10월 소위 지구매치라고 불린 인도팀과 무승부, 2018년 12월에는 이라크에게 1-2로 발리고 요르단에게도 1-1로 간신히 비기는 등 좋지 않은 결과를 보였다. 하지만 2019년 아시안컵을 보면 인도는 2013년 인도 슈퍼 리그가 출범한 이후 실력이 급상승, 최근에 동남아팀은 압살할 정도로 실력이 좋아졌고, 이라크는 몰락했어도 중동팀중에서 상당히 까다로운 팀이고, 요르단은 2019년 아시안컵에서 보듯이 다크호스팀의 하나였기 때문에 중국이 쉽게 이길만큼 약팀들은 아니었다.[44]
이렇게 리피가 이런 평가전 와중에서 "아시안컵 본선에서만 잘하면 된다"고 하면서 여러 선수들을 엔트리에 넣다 뺐다하면서 테스트했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 이런 시도나 발언은 당연히 한국에서는 소개안되고, 일부 기레기들에 의해 마치 리피가 계약만료를 앞두고 팀에 관심이 없거나 태업을 벌이는 것처럼 보도되었다.[45] 어쨌든 리피호의 2018년 A매치의 총 전적은 11전 3승 4무 4패로 승률이 30%도 되지 않았는데, 리피는 계속 "팀의 최종목표는 아시안컵이다"라며 불만에 찬 중국팬들을 달랬다.
한편 중국축협은 교육상 이유로 A매치에 내온 선수들의 팔문신을 가리라며 붕대로 감거나 스티커를 붙이게 해서 선수들의 불평을 샀다. 슈퍼리그에 문신을 즐겨하는 브라질리언이 많이 진출하면서 중국선수도 이를 모방, 장린펑처럼 아예 팔뚝을 모조리 문신으로 덮은 중국 선수들이 많아졌다.
2019년 아시안컵 1차전에서 키르기즈스탄에 2-1로 이기고, 필리핀은 3-0으로 이겨서 조1위를 달리고 있다. 하지만 조1위를 둔 최종전에서 벤투호의 한국한테 2-0으로 복수당하게 된다.
16강전에는 태국을 간신히 이기고 내부적인 목표인 8강에 도달했다. 문제는 다음 상대가 우승후보 이란이었다는 것. 결국 이란을 상대로 수비수가 알아서 골을 먹혀주는 예능축구를 선보인 끝에 0-3으로 완해하면서 탈락했다. 경기 종료 후 완전히 해탈한 듯한 리피의 표정은 덤이다.
결국, 리피 감독은 이날의 경기를 끝으로 대표팀과의 계약을 끝내고 중국 대표팀을 떠나게 되었다. 2년 3개월 남짓하게 대표팀을 맡았던 기간,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고 한때 한국을 상대로 승리도 거둔 유의미한 결과를 보여주었으나 결국 16년 만의 월드컵 진출에 실패하고 동아시안컵 3위의 결코 만족할 수 없는 순위와 중국의 아시안컵의 목표였던 8강에는 들었지만, 그 8강 경기에서 철저하게 이란에 지배당하면서 중국대표팀의 한계를 다시 한 번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다.
게다가 세대교체도 제대로 이루어지지도 못했는데, 이번 대회에 출전국중 평균나이가 29.1세로 가장 나이가 들었으며 29세가 7명, 30세 이상의 선수가 10명이나 되었던 경험으로 상쇄하기에 중국대표팀은 노쇠한 팀이었다.

5.2. 파비오 칸나바로


결국 아시안컵을 끝으로 리피 감독이 중국을 떠나고 후임 감독으로 파비오 칸나바로가 선임되었다.
헌데 3월 21일, 데뷔전인 차이나컵에서 태국에게 0-1로 지고 말았다. 이어 3, 4위전에서 우즈벡에게도 0-1로 졌다. 이 2연패와 칸나바로가 이끌던 광저우가 대구 FC에 3:1에 패배한 일 때문에 중국 언론에서는 이른 경질설을 살포하고 있다.
4월 29일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결국 2경기 만에 감독직에서 물러났다고 한다.

5.3. 마르첼로 리피호 2기


결국 칸나바로의 사임 후 리피 감독을 다시 불러들였다.
중국 혼혈 출신이거나 슈퍼 리그에서 5년 이상 활동한 용병들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귀화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동안 중화사상으로 대표되는 국가주의, 민족주의에 빠져있던 중국이라서 상당히 의외의 행보고 그만큼 오직 월드컵 진출에 눈이 돌아갔다는 소리다. 언론에서도 '''"중국이 언제부터 한민족 국가였냐? 중국은 원래 다민족 국가고 당연히 역사적으로 중국은 타민족의 인재도 중국의 발전을 위해 잘 받아들였다. 언젠가 라틴계도 중국의 57번째 민족이 될수있다(...)"'''는 식의 칼럼도 나왔다.
사실 중국 국대의 문호는 점점 넓어지고 있는 중이다. 1990년대까지는 순수 한족 아니면 축구 국대가 되는 것이 힘들었지만 2010년대부터는 조선족(김경도, 지충국 등등) 및 회족(우레이, 장린펑)이 국대에 올라타기 시작했고, 2010년대에는 미라흐멧잔 무제페르가 위구르계 최초로 국가대표에 승선했고,[46][47] 2019년에는 혼혈 2세 니코 예나리스[48]가 6월부터 국가대표에 들어왔으며 9월에는 중국 축구 최초의 귀화 국가대표 엘케손이 국가대표 데뷔전을 치뤘으며 10월에는 히카르두 굴라르, 알랑, 페르난지뉴, 알로이시우의 귀화가 완료되면서 2020년부터 이들의 중국 국가대표 데뷔가 가능해질 전망이다. 2020년에는 화교 2세 장광타이[49], 페이난둬[50]의 귀화가 끝났다. 과연 이들이 어떤 결과를 낼지?
하지만 리피 감독이 월드컵 2차예선 도중 갑작스레 사임하며 리피호 2기도 허무하게 종료되었다. 리피 감독은 시리아에게 1-2로 패한 후 기자회견에서 사임 의사를 밝히며 "나는 고연봉을 받기 때문에 패배에 책임을 지겠다. 나는 사임할 것"이라며 "중국 대표팀의 플레이는 열정도 투지도 아무것도 없었다. 선수들이 질까봐 두려워 할 정도면 다 내 잘못"이라며 우회적으로 선수들을 비판했다. 중국축구협회(CFA) 역시 그의 사임을 받아들일 계획이다. 사임 기자 회견 직후 리피 감독은 자신의 아내와 함께 중국 대표팀이 묵던 호텔을 떠나 비행기를 타고 이탈리아로 향했다. 리피감독은 귀국후 "자격에 비해 돈을 많이 받는 것에 죄책감을 느껴서 사퇴했다"고 기자회견을 했는데, 겸손함의 행간을 읽어보면 중국팀을 월드컵에 진출시키는 것이 상당히 어렵다고 느낀 듯 하다.
후임은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광저우 헝다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이 유력하다고 한다. 마침 스콜라리도 9월에 파우메이라스에서 잘려서 야인생활을 하고 있다.
덤으로 시리아전 패배 이후, 반발 여론이 거세지는 가운데 중국 시나닷컴 및 여러 언론에서는 중국 선수들의 몸값 거품을 지적하고 있다. 중국을 패배시킨 골을 넣은 시리아 스트라이커 오사마 오마리가 받는 월봉은 1,600위안(약 26만 8,000원)에 불과함에도 중국 선수들은 그저 1000만 위안(한화 약 16억 원)을 넘는 돈을 받는 달마다 받는 선수들이 여럿 있다고 지적. 한국이나 일본에서도 이 정도 받는 선수는 극소수인데 중국 리그 물거품이 너무 심하고 이런 물거품이 심한 선수들을 국대라고 하니 희망이 안 보인다고 비난하는 여론이 거세서 중국 축구협회에서 샐러리캡을 도입, 중국선수 수입을 깎을 상황이 올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결국 ,중국 축구협회는 이를 시행하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 1부인 슈퍼리그부터 3부리그인 을 리그까지 속한 모든 프로축구 선수 계약 협상을 중단하라고 각 팀에 공문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현재 중국 클럽들은 자국 선수들과 연봉 협상을 멈추고 중국축구협회가 제시할 다음 정책을 기다리고 있다.
이것이 이뤄질 경우. 브라질 선수로서 연봉 5,000만 위안(약 83억 8,000만 원)을 받던 엘케손같이 귀화한 선수는 더는 외국인 선수가 아니니 연봉이 대폭 삭감될 수밖에 없다. 중국 인터넷 언론 <화체망>은 엘케손이 1/5 수준인 1,000만 위안 정도 밖에 받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다. 중국인이 됐다는 이유로 기존 연봉의 80% 가량을 강제적으로 삭감당하는 셈이다. 엘케손이 이런 상황을 견디면서까지 중국 국가대표 커리어를 이을지는 미지수다.
실제로 <화체망>은 중국축구협회의 이번 조치 때문에 지나칠 정도였던 중국 슈퍼리그 내 외국인 선수들의 귀화 러시에 제동이 걸렸다고 평가했다. 이렇게 될 경우 황사머니에 혹해 중국 선수로 귀화한 외국 선수들이 포기하거나 귀화를 알아보던 선수들이 그만둘 경우가 많으리라 전망된다.

5.4. 리톄호 (2020~)


리피 감독이 사임한 이후 2020년 EPL 에버튼에서 뛰었던 리톄 우한 줘얼 감독이 국대 감독에 선임되었다.
일부에서는 위에 씌여진 기술처럼 귀화 열풍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기도 했지만, 리톄 감독은 단시일에 성적을 내려면 어쩔 수 없다고 판단한 듯, 적극적으로 귀화선수를 기용한다고 한다. 그리하여 중국 축협에 귀화선수만을 전담하는 부서를 만든다고 한다.

6. 그래도 여자 축구 대표팀은...


아시아권에서도 이리치이고 저리치이며 국제무대에 나가지 못하는 중국 축구지만, 여자축구는 세계수준의 강호로 군림하고 있다. 한때 여축에서는 미국과 더불어 양강체제를 이루었을 정도.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는 지금도 중국 여자 축구는 여전히 세계 수준의 강자다. 지금의 유럽으로 치면 사실상 스웨덴과 비슷하다.
하지만 남자 축구에서 나타난 것처럼 여자 축구도 기반이 튼튼하지 못해 2010년 이후로 전력이 흔들리는 중이다. 지역에서 전통의 강호였던 북한과 일본에게 툭 하면 차이기 일쑤고, 왕년에 동네북으로 여겼던 한국 여자 축구도 발전하여 안방에서 열린 대회에서 0:1 패배를 당했을 정도. 하지만 이보다 심각한 건 2015년 8월에 열린 U-19 아시아 예선. 3-4위전에서 한국에 0-4로 개발리면서 세계대회 출전권을 잃었다. 하지만 한국도 여자 축구가 발전했다고 하지만, 그 기반이 튼튼하지 못한 편이기에 중국 여자 축구의 추락을 남의 일이라 여길 수는 없다.
사실 여자 축구에 투자 많이 하고 발전을 시킨 국가들이 많지 않다. 아르헨티나만 해도 여자대표팀 피파랭킹은 오히려 중국보다 낮은 40위권이다. 최근에 여자월드컵에서의 실망적인 성적 박태하 감독이 이끄는 중국 여자 U-19대표팀마저 U-19 예선에서 한국에 2-1로 패하며 위기론이 일고있다.

7. 역대 감독



일부에서는 중국이 명장을 데려와도 실력이 더 퇴보하고 있다는 식으로 주장하는데, 위에서 보듯이 발전 속도는 느리지만 퇴보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위의 명단을 보면 1급 명장이라고 볼 수 있는 사람은 카마초와 리피 정도. 그나마 모두 전성기를 지났을 때 (즉 유럽에서 다시는 팀을 맡을 수 없을 만큼 흑역사를 기록한 후) 중국에 왔다. 그외 감독들은 국내파를 제외하면 한국과 비슷한 수준의 외국인 감독이 왔으며(아리에 한 같은 경우 한국의 히딩크를 보고 데려온 네덜란드 감독인데, 히딩크보다는 커리어가 처진다.), 오히려 중국 대표팀보다는 클럽에 명장이 많다.

8. 역대 성적



8.1. FIFA 월드컵


역대 월드컵 전적 순위 : 76위
년도
결과
순위
승점
경기



득점
실점
1930 우루과이 월드컵
중화민국으로 출전
1934 이탈리아 월드컵
중화민국으로 출전
1938 프랑스 월드컵
중화민국으로 출전
1950 브라질 월드컵
비회원국
1954 스위스 월드컵
비회원국
1958 스웨덴 월드컵
아시아·아프리카 지역예선 1차 1조 탈락으로 인한 '''본선 진출 실패'''[51]
1962 칠레 월드컵
비회원국(FIFA와 AFC 탈퇴)
1966 잉글랜드 월드컵
비회원국(FIFA와 AFC 탈퇴)
1970 멕시코 월드컵
비회원국(FIFA와 AFC 탈퇴)
1974 서독 월드컵
비회원국(FIFA와 AFC 탈퇴)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
비회원국(FIFA와 AFC 탈퇴)
1982 스페인 월드컵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 최종예선 3위로 '''본선 진출 실패'''[52]
1986 멕시코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 1라운드 4그룹 A조 2위로 '''본선 진출 실패'''[53]
1990 이탈리아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4위로 '''본선 진출 실패'''[54]
1994 미국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 1라운드 1조 2위로 '''본선 진출 실패'''
1998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A조 3위로 '''본선 진출 실패'''[55]
2002 한일 월드컵
본선 조별리그[56]
31위
0
3
0
0
3
0
9
2006 독일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 2라운드 4조 2위로 '''본선 진출 실패'''
2010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 2라운드 1조 4위로 '''본선 진출 실패'''
2014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 3라운드 A조 3위로 '''본선 진출 실패'''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A조 5위로 '''본선 진출 실패'''[57]
2022 카타르 월드컵
?
?
?
?
?
?
?
?
?
합계
본선진출 1회
1/21[58]
0
3
0
0
3
0
9
# 1976년 마오쩌둥 사망 이후 FIFAAFC에 재가입.

중국의 월드컵 역사는 별로 논할 가치도 없이 안습하다. 중국이 월드컵 무대를 밟아본 건 2002년 한일 월드컵 단 1번 뿐이다. 통산 전적은 '''3전 3패''' '''무득점 9실점'''이다.
월드컵 전적은 코스타리카브라질, 터키를 상대로 각각 1패씩 기록 중이다. 스코어는 코스타리카를 상대로 0 : 2, 브라질을 상대로 0 : 4, 터키를 상대로 0 : 3으로 패배했다. 득점자는 단 1명도 없으며 최다 실점 기록은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기록한 4실점이다.
2026년 월드컵부터는 월드컵 본선 참가국 확대로 아시아에 티켓이 상당히 많이 뿌려졌기 때문에 그때부터는 중국을 월드컵에서 자주 볼 수 있게 될 지도 모르지만, 사실 이것도 중국 시장을 의식하는 FIFA의 바람일 뿐이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게 문제.[59]

8.2. AFC 아시안컵


AFC 아시안컵 역대 순위 : 5위
년도
결과
순위
경기



득점
실점
승점
홍콩 1956
불참
대한민국 1960
불참
이스라엘 1964
비회원국(AFC 탈퇴)
이란 1968
비회원국(AFC 탈퇴)
태국 1972
비회원국(AFC 탈퇴)
이란 1976
4강
3위
4
1
1
2
2
4
'''4'''
쿠웨이트 1980
조별리그
7위
4
1
1
2
9
5
'''4'''
싱가포르 1984
'''준우승'''
2위
6
4
0
2
11
4
'''12'''
카타르 1988
4강
4위
6
2
2
2
7
5
'''8'''
일본 1992
4강
3위
5
1
3
1
6
6
'''6'''
아랍에미리트 1996
8강
8위
4
1
0
3
6
7
'''3'''
레바논 2000
4강
4위
6
2
2
2
11
7
'''8'''
중국 2004
'''준우승'''
2위
6
3
2
1
13
6
'''11'''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베트남 2007
조별리그
9위
3
1
1
1
7
6
'''4'''
카타르 2011
조별리그
9위
3
1
1
1
4
4
'''4'''
호주 2015
8강
7위
4
3
0
1
5
4
'''9'''
아랍에미리트 2019
8강
6위
5
3
0
2
7
7
'''9'''
중국 2023
개최국으로 자동본선진출
합계
준우승(2회)
14/18
56
23
13
20
88
65
'''82'''
2019년 현재까지 중국의 아시안컵 통산 성적은 56전 23승 13무 20패로 승점 82점을 기록하고 있으며 총 88득점 65실점을 기록해 득실 차는 +23을 기록 중이다. 아시안컵 출전국 중에선 최다 패배 및 최다 실점을 기록하고 있다.
다른 나라들과의 역대 전적은 아래와 같다.
국가명
전적
대회연도
이란
4무 3패
1976, 1980, 1984, 1988, 2004, 2007, 2019
대한민국
1무 3패
1988, 2000(2회), 2019
일본
4패
1992, 1996, 2000, 2004
사우디아라비아
1승 1무 3패
1984, 1988, 1992, 1996, 2015
쿠웨이트
2승 2무 1패
1976, 1984, 1988, 2000, 2011
이라크
2승
1976, 2004
아랍에미리트
1승 1무
1984, 1992
우즈베키스탄
1승 1무 2패
1996, 2007, 2011, 2015
호주
1패
2015
카타르
3승 1패
1996, 2000, 2004, 2011
시리아
2승 1패
1980, 1988, 1996
바레인
1승 1무
1988, 2004
태국
1승 1무
1992, 2019
북한
1승 1패
1980, 2015
인도네시아
2승
2000, 2004
인도
1승
1984
말레이시아
1승 1무
1976, 2007
싱가포르
1승
1984
키르기스스탄
1승
2019
필리핀
1승
2019
방글라데시
1승
2019
지역별 상대전적은 다음과 같다.
지역
전적
동아시아
1승 1무 8패
서아시아
12승 5무 6패
중앙아시아
2승 5무 5패
동남아시아
6승 2무 1패
남아시아
2승
중국이 패배를 기록한 나라들은 '''일본(4패), 대한민국(3패), 이란(3패), 사우디아라비아(3패), 우즈베키스탄(2패), 쿠웨이트(1패), 호주(1패), 카타르(1패), 시리아(1패), 북한(1패)'''로 총 10개 팀이다. 이 중 일본과 호주 2팀을 상대로 전패를 기록 중이다.
중국이 승리를 기록한 나라들은 '''카타르(3승), 쿠웨이트(2승), 시리아(2승), 이라크(2승), 인도네시아(2승), 아랍에미리트(1승), 바레인(1승), 말레이시아(1승), 태국(1승), 인도(1승), 싱가포르(1승), 키르기스스탄(1승), 필리핀(1승), 방글라데시(1승), 북한(1승), 사우디아라비아(1승), 우즈베키스탄(1승)'''으로 총 17개 팀이다. 이 중 이라크, 인도네시아, 인도, 싱가포르, 키르기스스탄, 필리핀, 방글라데시까지 총 7팀을 상대로 전승을 기록하고 있다. 중국이 아시안컵에서 가장 많은 승점을 획득한 팀은 '''카타르'''로 4경기 9점을 획득했다. 그 뒤를 이어 쿠웨이트가 5경기 8점으로 뒤를 잇고 있다.
중국이 상대 전적에서 열세를 보이는 나라는 대한민국, 이란, 일본, 호주, 사우디아라비아, 우즈베키스탄까지 총 6팀이며 호각세를 이루는 나라는 북한 하나밖에 없다. 나머지 팀을 상대로는 모두 우세를 보이고 있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중동 팀과 동남아시아 팀을 상대로는 비교적 강세를 보이지만 동아시아 팀과 중앙아시아 팀을 상대로는 매우 열세를 보이고 있다. 동아시아에는 중국의 천적인 대한민국과 일본이 있고 중앙아시아에도 또 다른 천적인 이란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한경기 최다득점 기록은 1980년 조별리그 방글라데시전 6 : 0 승으로 여섯 골을 기록했으며, 이는 중국의 아시안컵 최다 점수차 승리기록이기도 하다. 반면에 한경기 최다실점 기록은 1996년 8강 사우디아라비아전 3 : 4 패로 4실점을 한 것이 최다 실점 기록이다. 최다 점수 차 패배 기록은 2007년 조별리그 우즈베키스탄전과 2019년 8강 이란전에서 기록한 0 : 3 패배이다.

9. 관련 문서


[1] 중국국가족구대. 중국에서는 축구를 족구라 한다. 참고로 우리가 흔히 족구라 부르는 놀이는 한국에만 있는 것. football의 어원을 보면 족구로 번역하는 게 더 정확하긴 하다.[2] 하오하이둥이 중국의 공산당을 비판하는 영상을 올리자 중국축협은 그의 모든 기록을 말살했다.[3] 이 경기에서 네이마르가 A매치 첫 헤트트릭을 기록했다. [4] 대표팀을 지칭하는 国足(궈쭈)와 발음이 비슷한 단어로 국가돼지라는 뜻. 졸전을 펼칠 때 팬들이 야유하는 별명이다. 공식적으로 쓰이는 별명은 아니다.[5] 아시아의 최강이라는 한국과 일본은 모든 종목 기준으로는 뚜렷하지 않다. 한국의 경우 축구는 빨간색이지만 야구를 비롯해서 파란색을 쓰는 종목도 상당히 많고, 일본은 축구는 파란색이지만, 다른 종목을 보면 빨간색, 검은색도 있는 등 중구난방이다.[6] 지금은 막장이지만 그 당시 필리핀은 알칸타라 같은 당대 초대형 축구스타를 배출했던 축구 강국이었다.[7] 당시의 영국 축구팀은 지금과는 달리 지상 최강의 팀이었고 1930년 월드컵 우승국 우루과이를 비웃고 1934년 월드컵 우승국 이탈리아와 직접 맞붙어 양민학살 수준으로 쳐발라버렸다. 당시 영국팀은 월드컵이 너무 질이 떨어져서 불참하던 그런 팀이었다.[8] 이 때 쫓겨난 중화민국은 1989년에 중화 타이베이로 재가입했다.[9] 한편 사우디에 밀려 조 2위를 기록한 이란은 대륙간 PO까지 갔지만 아일랜드에 패해 탈락했다. 한편으로는 현재 아시아 4강 중 한 팀으로 불리는 호주가 이 당시는 OFC 소속이었던 점도 한몫했다.[10] 당시 중국은 대한민국과의 거리와 일본과의 정치적 관계를 고려해서 대한민국에서 조별리그를 치르도록 FIFA에 요청했다.[11] 이 항목에서 같이 언급된 5명과 비교해서 EPL무대에서 100경기를 넘게 뛰었고, 그만큼 실력도 좋았기 때문에 만수르가 구단을 인수하기 이전의 암흑기 시절 맨시티 레전드로 기억하는 현지 팬도 많다.[12] 사실은 1차예선 8조에서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베트남을 밀어내고 최종예선에 올라갔으며, 최종예선 A조에서 사우디, 이란, 카타르, 쿠웨이트라는 중동 강호들과 한 조가 되었다. 이 조에서 3승 2무 3패를 기록하며 3승 3무 2패를 기록한 이란에 승점 1점차로 밀리며 탈락했다. 사실 이란을 넘었다 해도 일본과의 플레이오프를 이겨야 했고 여기서 패배시 오세아니아 1위인 호주와 대륙간 플레이오프를 거쳐야만 했기에 본선 진출은 역시 힘들었을 것이다.[13] 물론 최종예선이 12개국 체제로 확대된 덕도 있다. 하지만 득실차로 아쉽게 밀린 2006년 예선이라면 모를까, 2010년, 2014년 예선 때 보여준 퍼포먼스로는 아시아 12위 안에 들기도 힘들었을 것이다.[14] 그 전에도 몇 번인가 최종예선에 올라온 적이 있기는 한데, 당시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소련에 소속되어 있어 존재 자체가 없었고, 아예 월드컵 예선에 불참하는 국가들도 상당히 많았다. 때문에 경쟁이 지금만큼 치열하지 않아서 지금과 1대1로 비교하기는 힘들다.[15] 아시안컵 승점수로만 따지면, 중국은 이란, 한국, 일본에 이어 4위다. 본격적으로 중화민국을 축출하고 나온 1976년부터 따지면, 준우승(84, 04)에 3위(76, 92), 4위(88, 00). 이 기간동안 한국(준우승 3번(80, 88, 15), 3위(00, 07, 11), 4위(0번)과 비교해보라.[16] 다만 리그가 워낙 돈이 몰려서 고연봉을 받기 때문에, 중국 선수들이 해외진출을 기피하고, 이렇게 고인물이 되다보니 고연봉에 비해 실력이 별로라는 지적은 맞다. 중국리그와 중국 국대가 EPL과 잉글랜드의 나쁜점을 닮아가는 것이다.[17] 그럼에도 불구하고 쑨지하이맨시티에서 몇년간 주전으로 상당한 활약을 했고, 리톄에버튼에서 어느정도 활약했다.[18] 중국인 선수 입장에서는 스폰서 빨로 빅리그나 빅클럽에 가봤자 벤치신세만 지고, 그보다 수준이 낮은 유럽 리그들에서 천신만고 끝에 주전으로 나온다고 하더라도, 10~20억의 연봉이 보장된 중국 리그 주전보다 돈을 훨씬 적게 준다. 거기다가 세금도 엄청나게 떼인다. 이런 리스크를 보면 개인 입장에선 답이 나온다. 축구팬들 입장에선 "돈보다 더 중요한게 있다" 또는 "도전이 아름답다"고 쉽게 말하지만, 선수 본인의 입장에서는 어떤 것이 합리적일지는 불문가지다. 일부 축구팬들이 주장하듯이 딱히 중국인들의 멘탈이 나빠서가 아니다.[19] 일본, 이란, 바레인, 북한(B조)[20] 사실 이때 프랑스를 이긴 것도 중국이 잘 해서 이겼다기보다는 당시 프랑스가 중국보다도 더 개노답이라서 그나마 이겼던 것이다. 이후 프랑스는 월드컵 본선에서 '''남아공 쇼크'''라는 대사건을 일으킨다.[21] 뿐만 아니라, 1차예선부터 인도네시아-몰디브-캄보디아라는 꿀조가 걸렸고, 최종예선에서는 중국보다 강한 사우디 이란 바레인 이라크가 모두 중국과 다른 조에 묶이는 등, 노골적인 푸쉬를 받았다.[22] 물론 단순히 "중국이 월드컵 아시아예선 최종라운드까지 올라온 역사"만 찾으면 몇 차례 더 찾을 수 있긴 하다. 1998 월드컵 예선에서 타지크, 투르크멘, 베트남을 이기고 최종예선에 올라왔으나 사우디와 이란에 밀려 탈락했으며, 1990 월드컵 예선에서는 이란, 방글라데시, 태국을 이기고 최종예선에 올라왔으나 한국, UAE, 카타르에 밀리며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다. 하지만 소련 붕괴, 오일머니를 등에 업은 중동 축구의 급격한 발전, 한국, 일본을 필두로 한 유럽 축구 시스템 도입 등으로 인해 아시아 지역예선의 경쟁이 지금만큼 빡빡해진 이후로 한정하면 처음이므로 다소 늦게나마 중국 축구가 발전하고 있다는 징후로는 충분하다.[23] 이렇게 중국팀의 실력이 떨어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대체로 한국에 보도되는 중국의 A매치 결과가 매우 졸전스럽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 축구가 발전하고 있다는 징후는 분명히 있는데, 위에서 말한 2018년 월드컵 최종예선에 올라왔다는 것에 근거한다. 그런데도 이런 왜곡된 인식이 만연한 것은, 언론과 축구 커뮤니티의 문제가 크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지만, 한국의 기레기들은 국가감정에 호소에서 포털의 자사 기사의 클릭수를 올리기 위해서 중국팀(그리고 일본팀)의 결과를 졸전, 참패, 최악 등등으로 선정적 제목을 붙이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이 누적되다보니 일종의 확증편향으로 중국팀이 세계 최하위권이라는 오해를 하는 축구팬들이 많다. 심지어는 중국국대가 베트남, 태국 등보다도 더 못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데, 물론 중국팀이 아시아에서 한국, 일본, 호주, 이란과 같은 상위티어는 아니지만 피파랭킹이나 상대전적을 보면 동남아 팀들보다는 확실이 앞선다. 여기에 축구 커뮤니티에서는 자꾸 이런 기사를 읽은 사람들이 비슷한 논조의 글을 올리고 이런 글들이 계속 유통되면서 커뮤니티의 성원에게 "중국 축구는 실력이 계속 떨어지고 있으며, 돈써도 안되고, 중국팀은 아시아 최하위권이다"라는 인식을 주입시킨다. 커뮤니티에서 얼마나 사실이 왜곡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24] 한국과 일본이 있으면 중국은 웬만해서는 시드를 받기 힘드므로 자칫 잘못하면 이 두 팀, 혹은 이 두 팀에 필적하는 이란이나 사우디 등과 한 팀이 될 수 있다. 진출권이 줄어드는 것보다 시드를 차지할 수 있는 편이 훨씬 이득. 그게 아니더라도 최종예선에서 한일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애시당초 중국이 왜 한일월드컵에서만 본선에 진출할 수 있었을지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25] 뒤에서 1위는 독일에게 8-0으로 털린 사우디아라비아였다.[26] 참고로, 이 해 바르셀로나는 K리그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경기에서 1군의 가까운 전력을 투입하고도 이운재도 없었던 수원에 1:0으로 패하였다.[27] 윈난 성 성도 쿤밍(해발 1,891m)에 위치해 있다.[28] 홈&어웨이 방식의 A매치에서 경기장 선택은 홈팀의 권리이다. 물론 2010년 월드컵 남미 지역예선 당시 마라도나는 이걸 오히려 악용하는 바람에 브라질과의 홈 경기에서 1-3 참패를 당하기도 했다.[29] 허베이성에서 진행.[30] 다만, 이 기사는 대만 언론을 옮긴 거고, 그 대만 언론조차도 카더라 통신이라 신빙성은 그다지 없다고 봐야 한다. 한국 언론들보다도 신빙성이 없다는 소리를 듣는 게 대만 언론이다. 또한 중국은 전통적으로 지도자가 대놓고 정서를 드러내는 걸 굉장히 꺼린다는 점도 있다.[31]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스페인 감독이었던 그 사람 맞다. ## 1970~1980년대 현역 선수 시절에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활동했으며, 울리 슈틸리케의 팀 동료였다.[32] 다만, 이 기간은 이견이 있다. 80년대 중국이 한국을 격파한 경기는 83년 12월 17일 머라이온컵(2-0), 84년 9월 3일 메르데카컵(1-0), 86년 1월 18일 네루컵(2-1)인데, A매치 기록에는 올라있으나 당시에는 프로의 출전 자격이나 규정 등의 미비함 때문에 현재의 A매치와는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기 어렵다.[33] 처참하고 한심한 경기력에 웃음이 터졌다.[34] 중국이 아무리 빈부격차가 심하고 소수에게 부가 몰려있다고는 하나 중국의 인구를 생각해보면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조건을 아무리 까다롭게 잡아도 주전은 물론 후보군까지 꽉꽉 채우고도 남는 것이 정상이다.[35] 수영, 육상, 체조, 탁구같은 종목은 개인의 체력과 기술 위주 훈련이지만 축구의 경우에는 팀웍을 맞춰야 하는 종목이므로 차이가 있었다.[36] 이 닭백숙이란 멸칭도 아깝다는 일부 중국 네티즌들의 지적까지 있을 정도다. 닭백숙은 그래도 식사노릇은 한다면서(...). 돼지라고 부르기도 어려운게 돼지에게 모욕이 된다나...[37] 오죽하면 중국 축구선수들이 가져야 할 덕목(?!)으로 음주와 흡연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비아냥이 댓글에 실릴 정도다.[38] 그러나 인도는 1950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기권하였다. 그래도 피파에는 출전이 아니라 '기권'으로 나와있다. 그래서 공식출전국 랭킹에 '?'라고 나와있다.[39] 러시아보다도 인구 많다.[40] 1938년 프랑스 월드컵에 네덜란드령 동인도로 출전, 아시아 최초, 동남아 유일 출전국이다. 다만 주권 국가로는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 출전한 대한민국이 먼저이고, 인도네시아는 1경기만에 탈락해서 많이 퇴색되었다.[41] 2002 한일 월드컵 대회에서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던 그 분이다.[42] 참고로 당시 한국은 17등, 일본은 20등이었다.[43] 단, 미국의 최고성적 3위가 아주 잘했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 그 당시 월드컵은 지금과 달리 출전 국가가 적고 전반적인 축구 수준이 현재의 축구보다 전술, 전략, 피지컬 측면에서 뒤쳐지고 상향평준화가 지금처럼 되기 전이라 지금 3위와 그 옛날 3위는 당연히 같지 않다.[44] 게다가 경기기록을 보면 리피가 각 평가전마다 계속 포메이션과 선수 포지션을 바꾸는데, 카타르(4-3-3), 바레인(4-4-2), 인도전(4-2-3-1, 위다바오 원탑), 팔레스타인전(3-4-3), 주공격수(좌, 우 모두 기용) 우레이, 가오린, 수비수(or 미드필더) 펑샤오팅, 골키퍼 옌준링의 붙박이를 제외하면 멤버를 계속 바꾸면서 테스트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45] 아무리 리피가 전성기가 지났어도, 월드컵과 챔스 우승경력이 있는 초일류 감독인데 자신의 말년을 먹칠하는 태업을 벌일 정도로 무개념한 사람은 아니다.[46] 농구는 이미 1980~90년대부터 아딜잔 쉴레이만등 여러 위구르계들이 국가대표 주축으로 활동했었다.[47] 이런 위구르 선수들은 국제무대에서 쓸 이름도 라틴 문자 스펠링이 한어병음과 너무 다르다보니 외국인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인 기자들마저 애먹인다. 모르는 사람들한텐 외국에서 온 귀화선수라 오해받기도 다반사. 이 기사에 따르면 한국 기자가 중국 선수 이름을 못 읽고 쩔쩔매다 엘케손 같은 귀화선수냐고 중국인 기자한테 물어봤더니 자기들도 잠시 뜸 들이다(...) 신장 출신이라서 그렇다고 답을 해줬다고 한다. [48] 중국명 리커[49] 본명 티아스 브라우닝, 조부가 중국인인 혼혈3세.[50] 본명 페르난지뉴[51] 인도네시아와 1차전 0:2 패배, 2차전 4:3 승리를 거두었으나 골 득실 차이로 탈락하였다.[52] 당시에는 최종예선 1위가 월드컵 직행, 2위와 3위는 단판 플레이오프를 통해 월드컵에 직행하였는데, 2위 뉴질랜드와의 플레이오프에서 2:1로 패배하여 본선 진출에 실패하였다. 2002년 본선 출전 이전에 가장 월드컵에 근접한 지역예선이었다.[53] 중국한테 비빌 수는 있냐고 무시했던 홍콩한테 져서 탈락했다. (5.19 사건)[54] 월드컵에 직행할 수 있는 2위와는 승점이 2점차였으며, 당시에는 승리시 승점 2점/무승부시 승점 1점이었다.[55] 당시에는 최종예선 A-B조 2위 간 플레이오프를 통하여 승자에게 월드컵 직행 자격을 주었고, 패자에게는 대륙간 플레이오프를 자격을 통한 월드컵 출전 자격이 주어졌다. 중국은 이때 2위와 승점 1점 차이로 탈락하였다. [56] 대한민국과 일본이 빠진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까지 올라가 B조 1위로 진출 자격을 부여받았다. 당시 운 좋게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을 피했다.[57] 최종예선 조 3위간 플레이오프를 치룰 수 있는 3위와 승점 1점 차이였다. 대한민국과의 경기에서도 승리하는 등 선전하였다. [58] 월드컵 본선 출전 비율[59] AFC에서는 동아시아, 남아시아, 서아시아, 중앙아시아, 아세안이라는 5개 산하 연맹이 있고 여기에 속한 국가들을 모두 합치면 거의 50개에 육박한다. 그리고 이 중에서 8위 안에 들어야 월드컵에 갈 수 있는 건데, 당장 한국, 이란, 호주, 일본은 확정이고 그 다음 사우디와 우즈벡이 유력하다. 거기다가 카타르, UAE, 쿠웨이트,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요르단 등 중동 국가들은 중국을 상대로 그다지 밀리지 않는다. 한술 더 떠서 최근 중국은 동남아 최상위 국가지만 그래도 객관적으로 봤을 때 이길 수 있는 태국을 상대로도 지는 등 영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