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엘 오르테가
1. 개요
아르헨티나의 前 축구 선수
아르헨티나의 '마라도나의 후계자' 릴레이의 실질적인 스타트를 끊은 선수.[1] 라이언 긱스나 안드리 솁첸코와는 정반대로 국대 경력은 좋은데 클럽 경력이 안습해서 비운의 선수라 불린다. 사실상 마라도나가 은퇴한 1994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아르헨티나에서 중추적인 플레이어로 활약했다.
2. 선수 경력
오르테가는 이 클럽에 소속되기 전에 페네르바체 SK, 파르마 칼초 1913, UC 삼프도리아, 발렌시아 CF, CA 뉴웰스 올드 보이스 등을 거쳤으며, 그는 이미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87번의 국제 경기에 출전해, 17골을 득점했다. 그 밖에 오르테가는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의 구성원으로, 1994 FIFA 월드컵 미국,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 참가했으며,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선 은메달에 그쳤다.
그는 2010년 말에 CA 리버 플레이트에서 훈련거부를 이유로 방출되었으나, 이후 올보이스로 이적하였다.
2003년에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했으나, 2010년 디에고 마라도나 감독 시절 아이티와의 평가전에 대표팀에 7년 만에 소집되어 1경기 뛰었다.
그리고 2013년 7월 15일에 오르테가는 은퇴하였다. 클럽 통산 441경기 105골을 넣었다.
3. 플레이 스타일
3.1. 장점
아르헨티나인다운 강력한 기본기와 탄탄한 축구 기본기에서 시작되는 빠른 주력과 데드 볼 상황에서의 뛰어난 능력으로도 유명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오르테가는 드리블 돌파와 키핑 능력, 화려한 발재간이다. 또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바이지만, 패스도 매우 준수하여 반짝하고 사라져버린 디에고 라토레에 이어 '제 2의 마라도나'라는 이야기를 들었으며, 아르헨티나 국가 대표팀에서는 마라도나의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 공격형 미드필더와 좌우 윙포워드, 세컨드 탑까지 다재다능하게 소화했다. 즉 전형적인 스타일의 아르헨티나 넘버 10.
아르헨티나 출신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최고 수준의 기본기와 공격능력을 지녔다. 실제로 '''공격수 하나만은 아르헨티나를 따라올 축구 국대는 없다.''' 특히 드리블 하나만으로는 현 메시나 마라도나에 전혀 뒤지지 않았다. 드리블시 볼이 발에 붙어 다니는 경지이며 극강의 균형 감각만으로 돌파해 들어가는 메시와는 달리 발재간에도 아주 능했다. 전성기 당시에는 세계 최고의 드리블러로 평가받았다. 1997년, 전 세계가 신동 호나우두의 용틀임에 들썩거렸음에도 "오르테가의 플레이를 보면 호나우두 플레이는 재미가 없어진다"라는 말이 관계자들 간에 떠돌았으니, 테크니션으로 당시 상당한 입지에 오른 선수였다.
흔히 팀워크가 부족하다는 말 때문에 패스를 하지 않는 선수로 알기도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98 월드 컵에서 바티스투타에게 바치는 조공 패스들로 어시도 꽤나 찍었다. 애초에 아르헨티나의 국가 대표 10번이라는 번호는 최고의 상징성을 지니며 게임의 전체적인 플레이 메이킹을 담당해야 한다. 적어도 프로 감독이라면 전혀 패스를 하지 않는 선수에게 이런 중책을 맡길 만한 바보가 아니다. 현재 전혀 패스를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왓포드 FC의 마우로 사라테가 아르헨티나 대표팀에 뽑히지 않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3.2. 단점
공의 소유 시간 자체가 매우 길고 팀 플레이가 자기 중심적으로 돌아가야 꽃을 피우는 플레이 스타일이었다.[2] 반대로 말하면 팀이 자기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본인의 폼이 좋지 않거나 본인이 막힌다면 팀 전체가 시망하는, 양날의 검이었다.
게다가 누가 마라도나 후계자 아니랄까봐 사고란 사고는 다 치고 다녔다. 알콜 중독에 페네르바흐체에서 클럽 무단 이탈, 이중 계약 등 개막장 인증을 하면서 사실상 전력 외로 평가 받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마라도나도 악동으로 유명했지만, 최소한 마라도나는 축구 자체에 대한 열정은 엄청나서 축구장 밖에서 마약을 하건 매춘을 하건 경기장 안에서는 열심히 뛰었던데 비해 오르테가는 축구 선수의 자질을 의심하게 만들 만큼 태업과 불화가 잦았다. 열심히 축구만 해도 적응하기 힘들판에 악동 짓거리를 하니 유럽 생활은 당연히 실패, 귀국하여 열심히 하나 했지만 혹시나가 역시나로 판명되기도 했다.
4. 그 외
마라도나의 후계자라고는 하나, 축구 해설가 한준희는 가장 유사한 선수로 지단의 우상인 엔조 프란체스콜리[3] 를 언급했다. 프란세스콜리가 리베르의 레전드임을 생각하면 자연스레 비슷한 스타일로 크게 되었다고 보는 편이 합당할 것이다.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에서 지단과 오르테가는 뛰어난 천재 플레이 메이커로 둘다 주목받았고 사실 16강전까지만 해도 오르테가 활약상이 더 괜찮았는데, 지단은 조별리그 사우디전에서 퇴장당하고도 돌아와서 프랑스를 우승시킨 반면 오르테가는 8강에서 네덜란드의 골키퍼 에드빈 판데르사르에게 헤드벗을 시전하고 조국을 말아먹었다.
2003년에 대표팀에서 은퇴했지만 마라도나의 소환으로 아이티와의 친선 A 매치에서 국대 복귀. 물론 그렇다고 주전 멤버로 기용하겠다는 것은 아니고 '여태 열심히 국대 뛰어준 것에 대한 보답' 정도의 의미였다. 최근 자선 매치에서 메시와 드리블 콤비 플레이를 보여줬다.
선수 생활 말년에는 아르헨티나로 복귀해 리베르 플라테에 입단했지만, 제 버릇 개 못준다고 다시 친정 팀 리베르에서도 훈련 거부로 나이 37살에 방출되었다. 이후 올 보이스라는 1부 리그 중소 클럽에서 활약하다가 2부 리그 팀인 데펜소레스 델 벨그라노로 이적하여 2년간 활동하다가 2013년 7월 15일 은퇴했다.
은퇴 이후 리베르 플라테의 2군 수석 코치로서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
[1] 맨처음 포스트 마라도나로 언급된 선수는 디에고 라토레라는 선수였다. 의외로 포스트 마라도나는 플레이 스타일보다 아르헨티나의 공격의 중추적인 선수면 지명되었지만 맨처음 언급된 선수는 라토레였다. 물론 임팩트가 약해서 잊혀졌고 그 이후에는 오르테가가 맞다.[2] 리베르 플라테의 라이벌 보카 후니오르스의 플레이메이커 리켈메 역시 이러한 문제점이 있었다. 그런데 오르테가는 이런 경향이 리켈메보다도 훨씬 심했다.[3]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한 뒤, 리버 플레이트로 이적했다. 이후 프랑스 리그 앙, 이탈리아 세리에 A를 거쳐서 다시 리베르 플라테로 돌아온 뒤 팀에서 은퇴, 현재는 풋볼 디렉터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