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피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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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be Pierre (본명 : Henri Antoine Groues)
1912년 8월 5일 ~ 2007년 1월 22일
1. 개요
2. 생애
3. 평가
4. 어록


1. 개요


프랑스신부. 잠시 하원의원을 지냈던 정치인이자 빈민 구제 운동에 헌신했던 성직자로 '''프랑스 현대사에서 가장 존경받은 인물'''로 불린다. 대체로 피에르 신부로도 불린다. 국내에선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의 행적을 알거나 알게된 사람들은 그를 프랑스의 김수환 추기경이라고 평가할정도의 위인이다.

2. 생애


1912년 8월 5일 리옹에서 견직물 상인의 8자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으며 본명은 앙리 그루에였다. 1930년 카푸친 작은형제회에 입회하여 "필립"이라는 수도명으로 수도생활을 하였다. 1938년 8월 24일 소속을 바꾸어 프란치스코회 재속사제로 사제서품을 받고, 그르노블 대성당에서 사목활동을 시작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레지스탕스 활동에 가담하기 시작하면서 '''아베 피에르'''로 불리기 시작했다. 이때 유대인들을 스위스로 피신시키는 일에 앞장서기도 했다. 1945년 하원의원으로 당선되어 의원 생활 중에는 월급 전액을 빈민활동에 썼고, 1954년 노숙자들의 숙소를 짓기 위해 엠마우스 재단을 세워 종교를 초월한 빈민, 노숙자 등 사회적 약자들을 구제하는 사회 운동에 일생을 바쳤다. 1988년에는 본인의 이름을 딴 아베 피에르 재단을 설립하였다.

3. 평가


그의 활동이 국제적으로 부각되지 않아서 한국에서는 지명도가 거의 없는 인물이지만 프랑스인을 상대로 위대한 프랑스인, 가장 존경받는 프랑스인 설문조사를 할 때 샤를 드 골과 함께 가장 먼저 언급되는 인물 중 한 명이다. 굳이 한국 가톨릭계 내부에서 예를 들자면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 정도 될 법하다.
정치적으로는 전후에 샤를 드 골이나 기독교 민주주의 정당과 함께 하기도 했다. 하지만 반핵, 반민족주의[1] 운동을 하기도 했고, 베트남 전쟁(프랑스에 대한 베트남 독립전쟁)에 반대하고 해방신학 계열의 사제들과도 교류하며 말년에는 사회당을 지지하는 등 중도좌파적 성향에 가까웠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적극적인 정치활동 및 사회활동이 껄끄러웠던 프랑스의 가톨릭 교단 높으신 분들이나 교황청으로부터 ''오만함을 주의하라''는 지적을 종종 받았다고 한다.

4. 어록


'세상에 있는 돈을 가지고 사람을 만들지는 않지만 사랑하는 사람들과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Avec tout l'argent du monde, on ne fait pas des hommes, mais avec des hommes et qui aiment, on fait tout)

'굶주린 자는 빵을 갖게 하고 빵을 가진 자는 정의와 사랑에 굶주리게 하라(Que ceux qui ont faim aient du pain ! Que ceux qui ont du pain aient faim de justice et d'amour !)'


[1] 물론 자유주의 등도 반민족주의를 지지하므로 반민족주의를 지지했다는 사실만으로 이 분을 좌파라고 보기는 어렵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