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K 츠르베나 즈베즈다
1. 개요
FK 츠르베나 즈베즈다(Фудбалски клуб Црвена звезда Београд)는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에 연고지를 둔 축구 클럽이며 종합 스포츠 클럽인 SD 츠르베나 즈베즈다의 한 일부분이다.[3] '츠르베나 즈베즈다'는 '붉은 별'이란 뜻으로 나라마다 달리 불리는데, Red Star(영어), Étoile Rouge(프랑스어), Roter Stern(독일어), Stella Rossa(이탈리아어), Estrella Roja(스페인어) 등 다양하게 불리고 있다. 특히 FK 파르티잔과 세르비아 축구를 양분하며 라이벌리를 형성하고 있다. 구 유고슬라비아 시절 가장 성공한 세르비아 클럽이며 리그 우승 30회, 컵 우승 12회를 기록하며 세르비아 팀 중 통산 최다 우승팀이기도 하다. 엠블럼 상단의 별은 10회 우승 시마다 하나씩 부여되는데, 1945-46 시즌부터 2018-19 시즌까지 30회를 달성함에 따라 3개의 별이 추가되었다.
동유럽 클럽 중에서는 FC 스테아우아 부쿠레슈티와 더불어 둘밖에 없는 챔피언스 리그 우승 클럽이다. 국제 축구 역사 통계 연맹(IFFHS)이 발표한 20세기 클럽 랭킹에서 네덜란드의 페예노르트와 더불어 27위에 랭크되었다. 90년대 해축팬들에겐 챔스 우승의 레드스타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팀이기도 하다.
2. 역사
제2차 세계 대전 중이던 1945년 3월 4일, 레드 스타 반파시즘을 표방하는 청년 집단에 의하여 내무부 소속의 종합 문화 클럽으로 창단되었다. 전쟁이 종결된 후에 재개된 1946-47 시즌부터는 대략 3년 동안 FK 파르티잔, GNK 디나모 자그레브, 하이두크 스플리트, FK 사라예보 등등 쟁쟁한 경쟁 상대들이 많았기에 부침이 있었지만 정상의 자리를 차지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1951년, 1953년에 리그에서 우승을 달성하였고 1956년에도 챔피언이 되어 1956-57 시즌 유러피언 컵에 첫 출전을 하게 된다. 여기서 츠르베나 즈베즈다는 준결승까지 진출하지만 ACF 피오렌티나에게 밀려 결승까지는 도달하지 못하고 만다. 그 다음 시즌엔 8강에 진출하지만 맷 버스비의 맨유에게 종합 4-5로 밀려 탈락하는데, 이 와중에 맨유가 뮌헨 참사를 당하였다. 그 후 1970-71 시즌 유러피언 컵에서 한번 더 준결승에 오른 것 외에는 1991년까지 기대 이하의 성적만 거뒀다. 다만 1978-79 시즌 UEFA 컵(현 유로파 리그)에는 결승에 올랐다가 VfL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게 1-1, 0-1로 밀려 준우승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1990-91 시즌, 이전까지 착실히 자국 내 유망주들을 수집하며 팀 빌딩을 진행해 온 그들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현재까지도 구단 역사 상 최강의 스쿼드라고 일컬어지는 1991 유러피언 제너레이션이 드디어 구성됐기 때문이다. 유러피언 컵(현 UEFA 챔피언스 리그)에 출전한 즈베즈다는 류프코 페트로비치 감독을 필두로, 로베르트 프로시네츠키, 시니샤 미하일로비치, 블라디미르 유고비치, 데얀 사비체비치의 미드필더 조합에 해당 시즌 발롱도르 2위를 차지한 다르코 판체프, 당대 동유럽 최고의 수비수로 불리던 미오드라그 벨로데디치까지 화려한 중원과 최고의 골결정력을 지닌 스트라이커, 동유럽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를 앞세워 1라운드에서 스위스의 명문 그라스호퍼를 종합 5-2, 2라운드에서 스코틀랜드의 명문 레인저스를 종합 4-1, 8강에서 동독의 강호 디나모 드레스덴을 종합 6-0[4] , 그리고 준결승에서 독일의 명문 바이에른 뮌헨까지 종합 4-3으로 격파하면서 무패로 결승전까지 진출을 하였다. 그렇게 해서 만나게 된 결승 상대가 당대만 해도 유럽 최강의 선수진을 보유하고 있었던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빅 이어가 걸린 경기답게 치열한 접전이 연장전까지 이어졌다. 연장 후반까지 스코어는 끝내 0-0이었으며, 결국 승부차기 끝에 마르세유를 5-3으로 이기고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다.
1991년에는 인터컨티넨탈 컵(도요타 컵)에서도 남미 챔피언 콜로-콜로(칠레)를 3-0으로 이겨 연이은 메이저 타이틀을 획득했다. 다만 UEFA 슈퍼컵에서는 1990-91 UEFA 컵 위너스 컵(역시 현재 유로파 리그 전신 중 하나) 우승팀인 맨유에게 0-1로 패해 준우승했다.
그러나 몇 년간은 이어질 줄 알았던 전성기가 1년도 안 되어 갑자기 막이 내리게 된다. 유고슬라비아에서 내전이 터지는 바람에 큰 타격을 입게 된 것이다. 1991-92 시즌이 한창 진행되던 중에 터진 거라 정신적인 부담이 컸음에도 시즌은 계속 진행되었고, 그 여파인지 유로피언 컵에서 만치니의 삼프도리아에게 밀려 아깝게 결승 진출에 실패하게 된다. 그리고 이 시즌을 끝으로 유고 리그는 1997-1998 시즌이 시작되기 전까지 유럽 대항전에 참가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츠르베나 즈베즈다의 핵심 선수들은 해외로 떠났고, 유고 리그는 5개 리그로 분열되었으며 조국은 내전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인해 정치적, 경제적, 치안적으로 크게 휘청거렸다. 그리하여 오늘날 츠르베나 즈베즈다는 현실적으로 빅 이어는 고사하고 챔스 16강 진출조차 노리기 힘든 구단이 되었다.
전성기가 막을 내린 이후로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동네북이 된 지 오래이다. 전술했듯 유고슬라비아 리그가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몬테네그로, 슬로베니아로 각각 찢어지면서 리그 규모가 큰 타격을 받았고, 내전으로 인해 90년대 중후반엔 유고 리그 상위권 팀들이 유럽 대항전에 참가할 수 없었다. 결국 핵심 선수들은 전부 해외로 뜨는 바람에 챔피언스 리그에선 32강만 가도 본전인 수준으로 추락, FC 스테아우아 부쿠레슈티와 똑같은 신세가 되었다 2000년대 들어 3위권 밖으로 밀려난적은 없지만 라이벌 파르티잔이 리그를 독식해 앞서 있던 리그 우승 횟수를 거의 따라잡혔다.
2013-14 시즌엔 오랜만에 리그 우승을 거뒀으나, 리그 재정 문제 및 UEFA 규정 위반으로 챔피언스 리그 진출 자격이 박탈되어 2위인 라이벌 파르티잔이 대신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했다.
2014-15 시즌은 파르티잔에 이어 리그 2위를 기록했다. 컵 대회에서는 8강에서 탈락했다.
2017-18 시즌에 들어서 엄청난 임팩트를 보여주면서 리그 우승을 했지만 컵에서는 고배를 들이마셨다. 그리고 유로파 리그 플레이 오프에서 FC 크라스노다르를 승부차기로 간신히 꺾고 조별 리그까지 통과하였지만 32강전에서 CSKA 모스크바에게 덜미가 잡혀 탈락하게 되었다.
18/19 시즌 플레이오프에서 잘츠부르크를 상대로 1차전 홈에서 거의 잠근 전술로 0:0으로 비기고 원정에서 2:2로 비기며 원정 다득점으로 챔스 32강에 진출했다. 잘츠부르크가 지난 시즌 유로파 4강까지 간 전력임을 생각하면 좋은 성적이다. 물론 챔스 32강에선 사실상 최약체인데 하필 파리, 리버풀, 나폴리와 한 조가 되었다. 헌데 4차전 홈 경기에서 리버풀을 2-0으로 이기는 이변을 보여줬다. 당연하지만 원정에선 리버풀에게 0-4으로 압도당했다. 리버풀을 이긴 거와 대조적으로 1승 1무 4패로 조 4위 꼴찌로 탈락했다.
19/20 시즌에는 스위스 영 보이스 런던을 이기고 32강에 진출했다. B조에 들어가서 손흥민의 토트넘 홋스퍼 FC, FC 바이에른 뮌헨, 올림피아코스 FC와 맞붙게 되었다. 그리고,한국에서 조금 알려지게 되었는데 손흥민이 이 팀과 2경기 모두 2골씩 넣었기 때문이다. 토트넘에게 원정에서 5-0, 안방에서 4-0으로 참패했고 1,2위 다툼을 하는 뮌헨과 토트넘에 밀려 챔피언스리그 16강은 거의 탈락상태. 그나마, 올림피아코스를 누르고 조별리그 4차전에서 3위를 달리며 유로파리그나마 진출할 기회가 남아있다. 그러나 마지막 6차전 올림피아코스 원정을 0-1로 지면서 역전당해 전번시즌처럼 조 4위로 탈락.
3. 츠르베나 즈베즈다의 스타(Star)
츠르베나 즈베즈다는 창단 직후 50여 년의 역사 동안 활약한 5명과 1991 유러피언 제너레이션에게 각각 별[5] 라는 칭호를 부여하였다.
- 첫 번째 츠르베나 즈베즈다의 별: 라이코 미티치(Rajko Mitić)
- 두 번째 츠르베나 즈베즈다의 별: 드라고슬라프 셰쿨라라츠(Dragoslav Šekularac)
지능적이고 창의적이며 자신감 넘치는 플레이로 인기를 얻었으며 유고슬라비아 국가대표의 전성기를 함께한 선수. 1996년에는 부산 대우 로얄즈의 감독을 지냈다.
- 세 번째 츠르베나 즈베즈다의 별: 드라간 자이치(Dragan Džajić)
- 네 번째 츠르베나 즈베즈다의 별: 블라디미르 페트로비치 "피존"( Vladimir Petrović "Pižon")
- 다섯 번째 츠르베나 즈베즈다의 별: 드라간 스토이코비치 "픽시"(Dragan Stojković "Piksi")
- 여섯 번째 츠르베나 즈베즈다의 별들: 1991년 유러피언 컵 우승 세대(The 1991 European Cup Winner Generation)
[image]
츠르베나 즈베즈다가 처음으로 빅 이어를 들었던 영광의 시절.
등번호 순으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No. 2 블라디미르 유고비치, No. 3 슬로보단 마로비치, No. 4 레픽 사바나조비치, No. 5 미오드라그 벨로데디치, No. 6 일리야 나이도스키, No. 7 로베르트 프로시네츠키, No. 8 시니샤 미하일로비치, No. 9 다르코 판체프, No. 10 데얀 사비체비치, No. 11 드라기샤 비니치. 그 외에 골키퍼 No. 1 스테판 스토야노비치가 있다.
츠르베나 즈베즈다가 처음으로 빅 이어를 들었던 영광의 시절.
등번호 순으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No. 2 블라디미르 유고비치, No. 3 슬로보단 마로비치, No. 4 레픽 사바나조비치, No. 5 미오드라그 벨로데디치, No. 6 일리야 나이도스키, No. 7 로베르트 프로시네츠키, No. 8 시니샤 미하일로비치, No. 9 다르코 판체프, No. 10 데얀 사비체비치, No. 11 드라기샤 비니치. 그 외에 골키퍼 No. 1 스테판 스토야노비치가 있다.
4. 서포터즈
델리예(Delije)라는 이름이 있다. 세르비아어로 ''''영웅들''''이란 뜻.
세르비아 국내에서는 압도적인 인기를 자랑한다. 세르비아의 축구 팬 중 절반 정도가 츠르베나 즈베즈다를 응원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같은 베오그라드를 연고지로 하는 라이벌인 FK 파르티잔과의 더비 매치는 특히 고조를 보이곤 하는데, 2009년 4월에는 파르티잔과의 경기 도중 서포터가 경찰과 충돌하여 95명이 체포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유고슬라비아 내전, 보스니아 내전 당시 세르비아 마피아이자 민족주의자였던 젤리코 라즈나토비치 "아르칸"(Жељко Ражнатовић Аркан, 1952~2000)이 이 서포터 그룹을 장악하고 준군사집단으로 키워놔 내전에 참여했는데, 이 당시 이들의 전술인 '크로아티아 도시에 잠입, 로켓포 폭격 후 빠지기'는 당시 크로아티아계들이 이를 갈기에 충분했고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서 벌인 약탈, 학살, 강간은 하도 사례가 많아 정확한 조사, 집계가 불가능할 정도이다. 이들이 벌인 대학살극의 실상은 스레브레니차 학살 문서 참조. '''사라예보 시민들을 무차별 저격하고, 보스니아계 마을을 불질러 초토화시키는''' 끔찍한 일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했다. '''이들은 이걸 굉장히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하지만 우습게도 이 팀 구단주가 되려고 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자 1996년에 베오그라드에 연고지를 둔 FK 오빌리치(FK Obilić, 이름부터가 1389년 코소보 전투에서 전사한 기사인 오빌리치에서 따옴) 구단주가 되면서 츠르베나 즈베즈다에 테러를 가했다. 이로서 그를 지지하던 극우 즈베즈다 서포터들도 아르칸은 오로지 본인의 이득을 위해 우리를 써먹은 것이었다고 치를 떨게 된다. 아르칸은 오빌리치 서포터들에게 츠르베나 즈베즈다나 파르티잔의 서포터들을 총기로 쏴버리라는 엽기적 명령까지 내렸으며, 심지어 상대방 팀 주전들을 납치하여 감금하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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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호랑이를 들고 있는 사람이 아르칸. 저 호랑이는 그가 애완용으로 키우던 호랑이였다고. 보다시피 이런 게 구단주이고, 위에 복면하던 것들이 나중에 서포터라는 이름으로 행패를 부렸다. 세르비아 극우 정치인으로서 아르칸은 코소보 전쟁 당시 알바니아 여성들을 강간하라는 명령까지 휘하 민병대에게 내려서 코소보의 강간마 히틀러라는 악명까지 얻었으나, 세르비아 극우들에게는 인기가 대단했다. 그리고 정적들에게 훌리건, 아니 부하들을 고용하여 테러를 가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테러 및 상대 주전 납치 감금같은 화려한 노력으로 오빌리치는 1997~98 시즌 세르비아 리그(당시 이름은 유고슬라비아 1부 리그) 우승도 차지하며 98-99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바이에른 뮌헨에겐 이런 방법을 쓸 수도 없어서인지 안방에서 1-1로 비기고 원정에서 0-4로 패해 탈락했다.그리고 이런 범법 행위들이 드러나서 오빌리치에 대한 승점 삭감 및 벌금형이 내려졌고, 팀은 리그에서 중하위로 밀리기 시작했다.
아르칸은 2000년 1월 15일 베오그라드의 5성급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23세의 도브로사브 가브리치가 쏜 총에 눈과 얼굴을 맞고 사망했다. 가브리치는 뒤에서 아르칸에게 접근해 CZ-99 권총을 연사했으며, 총을 맞은 아르칸은 현장에서 혼수상태에 빠졌고 가브리치는 아르칸을 살해한 후 권총을 추가로 난사해 아르칸의 친구 밀렌코 만디치와 드라간 가리치 형사를 살해했다. 현장에 있던 보디가드였던 즈본코 마테오비치가 가브리치를 쏘아 중상을 입힌 뒤 아르칸을 차에 태웠지만 병원으로 이송하던 중 사망했다. 가브리치는 징역 19년형을 선고받았으나 검찰의 상고로 대법원에서 두명의 공범과 함께 각각 징역 30년형을 받았지만 남아공으로 달아났고 20년 지난 지금까지도 남아공에서 살면서 송환을 요구하는 세르비아 측 요구를 무시중인 남아공과 서로 재판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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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인 체차. 1973년생으로 아르칸과 나이 차가 21살이나 되었다.
한편 아르칸이 죽자 아르칸의 아내였던 스베틀라나 "체차" 라즈나토비치(Светлана Цеца Ражнатовић)가 남편이 하던 짓거리를 그대로 하며 구단주가 되었다. 체차는 1995년 당시 43살이었던 아르칸과 결혼한 이후, 상당한 재력을 갖춘 아르칸을 등에 업고 부정 축재를 저질렀다. 남편과 달리 구단 운영 능력은 형편없어서, 오빌리치는 2005년부터 ''''강등-강등-강등-강등-잔류-강등-강등'''' 테크를 타고 3부 리그까지 추락하면서몰락했다. 게다가 자금 횡령 및 이사들과의 대립까지 일어났고, 아르칸에 충성을 다하던 서포터들조차 무능에 치를 떨며 그녀를 배제하여 결국 체차는 구단주에서 반강제로 쫓겨난 뒤 횡령 혐의로 쇠고랑을 찼다. 다른 구단주를 맞이한 오빌리치는 2012~13시즌, 1부리그로 올라왔으나 다음 시즌, 꼴지로 광속 강등당하고 2부리그에서 맴돌고 있다.
츠르베나 즈베즈다 서포터들은 극단적인 극우가 아닌 한, 아르칸을 비난하고 싫어한다. 오빌리치 구단주가 되면서 서포터라고 하고 극우 민병대를 부하로 부리며 츠르베나 서포터들을 쏘거나 구타하던 작자이니 츠르베나 역사에서도 이가 갈리는 짓을 했기 때문이다. 바로 97-98 시즌에서도 오빌리치 구단 막장 짓으로 단 승점 2점차로 츠르베나 즈베즈다(84점)는 오빌리치(86점)에게 리그 우승을 빼앗겨 버렸으니 오히려 극단적인 서포터들은 원래 우승팀은 츠르베나인데 더러운 수법으로 우승을 훔쳐간 아르칸 개색히가 뭐 츠르베나의 자랑이라니?! 면서 분노하고 혐오하게 만들었다. 참고로 유고슬라비아 1부 리그가 사라지고 2020년까지 츠르베나와 파르티잔이 우승을 독점한 가운데, 딱 1번 다른 팀 우승이 바로 이 오빌리치의 97~98 시즌 우승뿐인데 이렇게 불미스런 수단으로 우승했던 것.
5. 기타
- 축구를 잘 모르는 사람이 풋볼 매니저를 접하면서 어쩌다 챔스 우승 목록을 보다 보면, 왜 이런 팀이 우승을 했는지 의문을 가지는 경우도 있다.
- 푸마는 독일의 스포츠 용품 회사이지만 푸마의 스폰서 구단중에 동유럽의 유고슬라비아를 연고로 했던 츠르베나 즈베즈다만이 유일하게 푸마의 저지를 입고 챔스에서 우승을 차지한 바가 있다.[6] 다만 우승직후 유니폼 스폰서가 험멜로 바뀌었고 디아도라, 카파, 아디다스, 나이키, 레게아를 거쳤다가 2013-14시즌에 다시 푸마로 회귀하였다. 그리고 2013-14 시즌 세르비아 쉬페르리가에서 7년만에 리그 우승을 차지하였다. 1980년에 푸마와 유니폼 스폰서를 체결한 후 1991년까지 6번의 리그 우승과 3번의 컵 우승 그리고 챔스 우승까지 이뤄낸후, 유니폼 스폰서가 바뀐 후에는 성적이 추락하다가 푸마로 돌아와서 오랜만에 리그 우승을 이뤄낸 것을 보면 푸마와는 천생연분인듯 하다 .
- 2018년부터 e스포츠 팀을 만들어서 활동하는 중이다.
[1] "레드 스타 베오그라드"도 본 문서로 리다이렉트된다.[2] '델리예(Delije)'라는 츠르베나 즈베즈다의 공식 서포터즈를 위해 12번을 영구결번[3] 농구 팀 역시 세르비아의 강호로 KK 파르티잔과 라이벌리를 형성 중이다.[4] 디나모 드레스덴과의 1차전은 3-0 승리, 2차전에선 78분경까지 츠르베나 즈베즈다의 2-1 리드로 가다가 디나모 드레스덴 팬들의 난동으로 인해 경기는 중단되고 UEFA는 츠르베나 즈베즈다에게 3-0 몰수승을 선언한다.[5] 세르비아어로 즈베즈다(звезда). 러시아어에도 동일한 뜻을 가진 동일한 단어가 있다.[6] AS 모나코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가 각각 2004년, 2013년 챔스 결승에서 푸마 저지를 사용했지만 준우승에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