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트 2세(은하영웅전설)
1. 개요
August II von Goldenbaum/アウグスト2世. The Blood-Maker(유혈 황제). 이타카판에서는 유혈제(流血帝)로 번역되었다.
제국력 247 ~ 253년(우주력 556 ~ 562년) 재위.
소설 은하영웅전설의 과거 등장인물. 은하제국 골덴바움 왕조의 14대 황제.
은영전 세계관에서는 인류 역사상 희대의 살인마이며, 6년이라는 짧은 재위기간 동안 제국을 붕괴 직전까지 몰아넣은 암군이자 폭군이다.
2. 행적
2.1. 황태자 시절
황태자 시절부터 약물 과다사용 및 황음 등으로 몸이 엄청나게 비대해졌고, 성년이 되기 전에 모든 쾌락을 경험했다고 할 정도로 방탕한 인물이었다. 무절제한 생활 때문인지 제대로 몸을 가누지도 못할 정도가 되어 공중부양 휠체어에 의존했다.[1]
일반적인 경우라면 아예 황제가 되지도 못했을 것이고, 실제로 리하르트 3세는 이런 황태자에 실망해서 황태자 자리에서 폐위시킬 것도 고려했다고 한다. 하지만 형제들도 다 그 밥에 그 나물인지라 아우구스트 2세만 못했다고 한다. '형만한 아우 없다'는 속담을 이상한 쪽으로 증명한 예였던 것이다.
2.2. 유혈제의 폭정
제위에 오르자마자 매우 잔혹하고 무분별한 성정을 아낌없이 드러냈다.
즉위 이후 선제의 총희들에게 금전을 주고 내보내는 그간의 관례를 깨고 모조리 자신의 후궁으로 삼아 비난을 받았는데, 어머니이자 황태후인 일레네가 이에 대해 나무라자 '선물'이라면서 한 방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황태후가 비명을 지르며 그 방에서 뛰쳐 나왔다. 그 방 안에는 수백 명이나 되는 선제의 총희들이 살가죽을 벗기는 고문을 받고 죽은 참혹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리하르트 3세가 정실인 어머니를 두고 수백의 총희들을 두고 여색을 즐기고 있었으니 어머니의 마음고생이 심했다는 이유를 내세워 벌인 짓이었다. 나중에는 동생 셋을 제위 찬탈을 노렸다며 살해하고는 시체를 토막내어 유각견 무리에 던져주었고, 심지어 역적을 태어나게 했다는 죄로 자기 어머니에게까지 자결을 강요하여 죽였다.
선제의 총희들, 그리고 자신의 형제와 친어머니도 죽인 황제는 이제 거리낄 것이 없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사람을 기분 내키는 대로 잔혹하게 처형하여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심지어 시체를 벌거벗겨 거리에 내세우기도 했다. 또한 이상한 분야에서 재능을 발휘했는데, 다이아몬드 주사기로 대상자의 눈동자를 찔러 안저,眼底,와 두개골을 뚫고 뇌에 손상을 입혀 미쳐 죽게 만드는 최악의 고문기구 '아우구스트의 주사기'를 발명했다고 한다. 제국에는 참혹한 피바람이 불었고, 근위여단장 샴버크 준장은 황제에게 아부하고 빌붙는 것도 모자라 아예 직접 나서 황제의 '직감'에 따라 반역자를 색출한 후, 그 일족까지 모조리 죽이고 재산을 몰수하는 데 앞장섰다.
일개 쾌락살인마 따위가 제위에 올랐으니 국정이 제대로 돌아갈 리 없었고, 사람을 죽이는 기준도 그저 황제 자신의 마음대로였으니 당시 은하제국은 일개 평민부터 대귀족들까지 언제 살해당할지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혀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기가 은하제국 역사상 가장 평등한 시기였다. 평민, 하급귀족, 대귀족, 황족 할 것 없이 황제의 말 한 마디에 모두 '평등'하게 일족이 멸족당하고 모든 재산이 몰수당했기 때문이다.
정확히 추산되지는 않지만 아우구스트 2세 시기에 살해당한 사람의 숫자가 무려 600만에서 2000만이었다. 작중 표현에 따르면, 황제가 그 굵디굵은 손가락을 움직여 명령을 내릴 때마다 오딘의 인구가 감소했다고 한다.
2.3. 최후
선제 리하르트 3세의 동생 안드레아스 대공의 아들이자 아우구스트 2세의 사촌동생인 에리히 폰 린더호프 후작은, 황제가 부리는 피의 광풍이 두려워 일찍이 오딘을 벗어나 자신의 영지에 틀어박혀 숨죽여 살고 있었으나, 오딘의 자기 친족들을 거의 다 죽여버린 황제가 변방으로 도망간 자신의 사촌동생을 떠올려 출두명령을 내리자 어차피 죽을 것이라면 발악이라도 해보겠다는 심정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린더호프 후작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인근 제국군 주둔부대를 찾아가 봉기를 호소했는데, 황제의 폭정에 두려움과 공포를 가진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던지라 제국군은 후작의 반란에 동참하기로 했다. 그리고 황제에게 가족이나 친족을 잃은 콘라드 하인츠 폰 로엔그람을 비롯한 세 명의 젊고 유능한 제독들이 합류하며, 한낱 지방 반란으로 끝날 수도 있던 후작의 발악은 이제 폭정에 신음하는 제국 신민들을 구원할 단 하나의 빛줄기가 되었다.
황제는 분노하여 토벌군을 파견했으나 이들의 심정도 반란군과 다를 것이 없었고, 결국 트리바흐 성역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토벌군은 제대로 전투도 벌이지 않다가 그대로 항복하여 린더호프 후작에게 가담한다. 이 때 토벌군의 투항자 숫자가 전사자의 20배가 넘었다고 한다.
결국 황제 곁에 남은 것은 없었다. 린더호프 후작은 자신을 따르는 군대를 이끌고 오딘에 상륙했으나, 이미 아우구스트 2세는 죽은 뒤였다. 대세가 정해졌다는 것을 알아차린 근위여단장 샴버크 준장이, 상황 판단도 못하고 느긋하게 애완유각견에게 먹이를 주던 황제의 등을 떠밀어 유각견 우리로 떨어뜨렸고 황제는 그대로 자신의 애완견들에게 잡아먹힌 것이다.[2] 이후 샴버크 준장은 새로운 황제 앞에 출두하여 머리를 조아렸고,[3] 에리히 폰 린더호프 후작은 제국의 새로운 황제로 등극하였다.
2.4. 기타
현실에서는 이름이 같은 작센 선제후 출신인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의 국왕(아우구스트 2세)이 있다. 그러나 이 국왕은 폭군은 아니었으며 호색한이란 점을 제외하면 국가 운영은 그럭저럭 잘 수행했다. 비슷한 예로는 송의 후폐제가 있다. 살인에 재능을 보이기는 마찬가지였는데, 아우구스트는 고문기구를 만들었지만 후폐제는 살인도구를 만들었다.[4]
[1] 프랭크 허버트의 과학소설 듄의 블라디미르 하코넨 남작을 모티브로 한 듯하다.[2] 을지서적판에서는 칼로 등을 찔려서 떨어진 걸로 나왔으나, 서울문화사와 이타카판에서는 그냥 밀어죽인 것으로 나온다.[3] 그리고 황제 에리히 2세는 폭군을 처단한 공을 세운 샴버크 준장을 제국군 대장으로 승진시키고, 폭군을 비호한 죄로 샴버크를 즉결처분했다.[4] 그나마 골덴바움 왕조는 황제만 교체되고 끝났지만 유송은 멸망했다. 게다가 아우구스트 2세는 성인이기라도 했지 후폐제는 사망했을 때가 '''14세''' 즉위했을 때는 '''9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