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히 2세

 

[image] '''골덴바움 왕조 역대 황제''' [image]
아우구스트 2세

에리히 2세

프리드리히 1세
1. 개요


1. 개요


'''Kaiser Erich von Goldenbaum II/エーリッヒ2世'''
The Blood-Stopper(유혈을 멈춘 황제)
은하영웅전설 본편 이전의 인물로 은하제국 골덴바움 왕조의 15대 황제. 이타카판에서는 지혈제(止血帝)로 번역되었다.
아우구스트 2세의 사촌동생으로[1] 본래는 에리히 폰 린다호프 후작이었다. 일찌감치 제도 오딘에서 탈출하여 자신의 영지에 숨어있었기 때문에 아우구스트 2세의 눈길을 피할 수 있었다.[2] 하지만 오딘에서 죽일 만한 인물을 싹 죽여서 심심해진 아우구스트 2세가 지방으로 도망친 사촌동생의 존재를 떠올리면서 이 괘씸한 역적을 체포하라는 명이 떨어졌다. 이에 이왕 죽을 바에야 발버둥이라도 쳐보다 죽기로 결심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순순히 끌려가나, 저항하다 붙잡혀서 끌려가나 어차피 황제 앞에 끌려가면 처참하게 고문당하다 죽는다는 결말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3]
사실 반란을 일으키기로 결정했어도 그의 편을 들어줄 세력이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어차피 이러나 저러나 죽을판인데 뭔들 못해보겠냐는 심정으로 인근 제국군 부대에게 반란 동참을 호소하였고, 그때 까지도 확신이 없었기에 만약을 대비하여 자살할 독약까지 준비해둔 상황이었다.
하지만 아우구스트 2세가 일으키는 막장 폭정을 견딜수 없는 사람은 한 둘이 아니었고 누군가가 도화선에 불을 당겨주기만 기다리던 처지였기에 인근 제국군 부대가 에리히의 호소에 응하여 봉기, 근처의 제국군들이 차례로 합류하면서 에리히의 세력이 점차 증가되었다. 특히 콘라드 하인츠 폰 로엔그람을 위시한 3명의 장군이 합류하여 충성을 맹세하고 활약한 덕분에 에리히에게 큰 힘이 실렸다. 그리고 이들 장군들 중에는 아우구스트 2세의 폭정으로 이미 가족들을 잃은 장군도 있었으므로 급조한 반란군의 약점인 정부군에게 내통자가 생기는 일 자체를 방지할 수 있었다.
에리히를 토벌하기 위해 파견된 제국 함대들에게도 막장 폭군을 위해 싸울 이유 따위는 전혀 없었으므로 에리히의 부대와 마주치면 싸우는 시늉도 안하고 투항하여 합류해 버렸다. 아우구스트 2세와 에리히의 최종 결전 장소가 되었던 트라바흐 성역에서는 에리히의 군대가 아우구스트 2세의 토벌군과 맞서 싸워 대승을 거둠으로써 아우구스트 2세의 통치도 사실상 막을 내리게 됐다. 물론 이 전투에서도 황제군은 제대로 싸우지 않았다. 항복한 병력이 '''전사자의 약 20배'''에 달했다.
아우구스트 2세는 결국 심복 샴바크 준장에게 죽고, 에리히 2세는 제도 오딘에 입성하여 황제로 즉위했다. 에리히 2세는 폭군을 처단한 공을 세운 샴버크 준장을 치하하며 제국군 대장으로 승진시켰으며,[4] 바로 직후 폭군을 비호한 죄를 물어 샴버크 대장을 총살형에 처할 것을 명했다. 이후 전 황제가 망쳐놓은 국가를 재건하면서 오딘과 제국을 되살리는데 전력을 다했다. 에리히 2세는 특출난 선정을 펼치지는 않았으나 아우구스트 2세가 워낙 폭군 중의 최악의 폭군이라 비교우위로 성군으로 칭송받았다. 재건 황제(再建帝, 재건제)인 오토프리트 2세와 비슷한 처지다. [5]

[1] 아우구스트 2세의 아버지인 선제 리하르트 3세의 동생 안드레아스 대공의 아들이다.[2] 이 점을 보면 눈치는 잘 돌아가는 인간이었을 가능성이 높다.[3] 참고로 이 당시 은하제국은 그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지만 자유행성동맹이라는 인류사회의 다른 국가가 있었다. 만일 자유행성동맹의 존재와 위치를 알았다면 반란을 일으키기보다는 망명을 택했을지도 모른다.[4] 무려 3계급 특진이다.[5] 다만 똑같이 고생했어도 지기스문트 2세는 그저 사치가 심하고 재산이 많은 거상들을 잡아다 처형하고 자산을 압류한 정도라 오토프리트 2세는 성군으로까지 칭송받지는 못했다. 심지어 과로로 6년만에 사망하기까지 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