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레이 아르샤빈
1. 개요
'''그라운드의 마법사'''라는 별명을 갖고있는 러시아의 축구선수.
2. 클럽
2.1. 제니트 시절
2000년 러시아 프리미어리그 소속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입단하며, 섀도 스트라이커, 측면 공격수 등 다양한 포지션에서 활약하기 시작했다. 2007 시즌 10골 10도움을 기록하며 제니트의 우승에 일조하기도 했다. 한편 2007-2008 UEFA 컵에서도 제니트가 우승하는데 기여하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2006년 김동진이 울산 현대에서 제니트로 이적하면서 국내에도 처음 알려졌다.[2] 다만 당시까지만 해도 러시아 프리미어리그는 같은 유럽권이긴 해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이하 EPL),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이탈리아 세리에 A의 인기에 밀려 좋은 대접을 받지 못했고(이점은 지금도 마찬가지이긴 하다) 러시아 축구 자체가 '유럽의 변방'이라는 선입견이 강했기 때문에 그저 '김동진 팀의 에이스' 정도로만 인식되고 있었다.
'''하지만 UEFA 유로 2008을 거치며 그의 위상은 현저히 달라진다.'''
2.2. UEFA 유로 2008에서의 대약진
취약한 인지도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축구 국가대표팀은 국내 축구팬들이 이 대회에서 가장 관심있게 지켜본 팀 중 하나였다. 왜냐하면, 그 감독이 '''이 분'''이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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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엄청난 거물이 아닐 수 없었다. '축구종가' 잉글랜드를 밀어내고 본선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뤄내 러시아 팬들은 환호했지만, 정작 팀내 에이스인 아르샤빈은 마지막 경기에서 불필요한 반칙을 범하고 퇴장당해 결국 본선 두 경기에 출장하지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히딩크는 대표팀 주장이였던 아르샤빈을 대체하지 않고 끝까지 명단에 남겨두었고, 본선 첫번째 경기인 스페인전에서 처참하게 발렸다.
하지만 세번째 경기인 스웨덴전에서 복귀한 아르샤빈은 팀의 두 번째 골을 만들어내며 자신을 믿어준 히딩크 감독에게 8강 진출을 선물한다. 그리고 운명의 네덜란드전...
여러모로 '빅매치'라 불릴만한 경기였다. 네덜란드는 예선에서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격퇴시키고 올라온 최강팀이었고,[3] , 히딩크는 러시아를 내세워 그런 자신의 조국을 꺾고 '역적'이 되겠다며 호언장담했다. 그리고 그는 그 약속을 지켰다.
러시아는 정신력, 피지컬에서 우위를 점하며 네덜란드를 몰아붙였다. 그야말로 창과 창의 대결. 하지만 네덜란드는 예선의 피로감 때문인지 쉽게 경기를 풀어나가지 못했으나, 0-1로 러시아에 끌려나가던 후반전 막판에 '''반 니스텔로이'''가 동점을 뽑아내는 데 성공, 연장전에 역전을 도모하는 듯 했으나...
러시아엔 아르샤빈이 있었다. 후반전 토르빈스키의 골을 도운 날카로운 크로스로 2-1을 만들어낸 것도, 그리고 '''에드빈 판데르사르'''와의 일대일 상황에서 통렬한 슛을 작렬시키며 3-1의 완승을 완성시킨 것도 바로 '''아르샤빈'''이었다. 누구도 예상하기 힘든, 기적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엄청난 결과였다.
러시아에서는 이 승리가 1988년 유럽선수권대회 결승전에서 네덜란드에 패해 분루를 삼켰던 구 소련 국가대표팀의 복수혈전으로 받아들여진 모양. 일제히 '기적', '혁명'과 같은 기사를 쏟아내었고, 히딩크는 대한민국, 호주에 이어 러시아에서도 영웅이 되었다.
비록 4강전에서 스페인에 완패해 4강을 끝으로 러시아의 파죽지세는 꺾였지만 히딩크의 위엄을 다시 한번 세계에 널리 퍼졌고, '유로 2008의 스타' 아르샤빈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으며 대회 베스트팀에 들어갔다.
2.3. 아스날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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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 2008의 활약으로 러시아의 마라도나라는 칭호를 얻으며 대어로 떠오른다. '바르셀로나', '유벤투스' 등 굵직굵직한 팀들과의 숱한 염문을 뿌리던 아르샤빈이 최종적으로 종착한 곳은 아스날 FC였다. 1500만 달러의 이적료로 클럽 레코드를 세웠다. 수준급 선수가 3000만 달러 선에서 거래되는 최근 이적 시장에 비하고 보면 상당히 싼 가격에 영입한 것. 아르샤빈의 똥줄 영입 과정에 대해서는 여기를 참고.
그간 맡아온 공격형 미드필더(혹은 섀도 스트라이커) 자리는 팀이 4-4-2 전술을 사용하다보니 포지션 자체가 없으며 또한 이 포지션을 위해 포지션을 바꾸기에는 절대적인 입지를 확보하고 있는 세스크 파브레가스의 롤과 겹치기 때문에 4-4-2의 왼쪽 측면 미드필더로[4] 출전하게 되었고, 이후 아스날이 4-3-3 포메이션으로 전환함에 따라 왼쪽 윙포워드로 보직이 거의 굳어진 상태.
리버풀에 강한 면모를 보였다. 드록바가 아스날 킬러라면, 아르샤빈은 리버풀 킬러. 어느정도인지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전설의 08-09시즌 33라운드 아스날VS리버풀 경기. '''4슈팅 4골'''. 골결정력 100%. 양팀 수비가 얼마나 막장이었는지와 더불어 아르샤빈의 결정력을 두고두고 회자할때 쓰이는 예. 아르샤빈은 네번째 골을 넣고는 네손가락을 모두 들어 올렸다. 그런데도 팀은 비겼다. 4:4로. 아르샤빈의 데뷔시즌인 08-09시즌과 이후시즌인 09-10시즌에서 아르샤빈의 모습은 크랙 그 자체의 모습이었다 ( 현재 아스날에서 당시의 아르샤빈처럼 양발 & 드리블, 득점능력, 경기조율 능력이 다 되는 선수는 없다. )
하지만 팬들은 이 때의 폭발적인 아르샤빈을 그리워하며 '''계속 까고 있다.''' 아르샤빈의 폭발력은 초기 두 시즌을 제외하고 급격히 감소한 모습을 보여줬는데, 기본적으로 28세가 되던 해에 아스날로 이적을 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수비수들에게 드리블 패턴이 읽히기 시작하면서 막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게다가 아르샤빈은 체중조절을 실패한 모습을 자주 노출하면서 몸관리에 소홀한 편이었는데, 그 이유로 30세가 넘어가면서 신체능력이 급감하며 더욱 고전했다. 테크닉보다 밸런스와 운동능력에 의존하는 성향이 강했기에 더욱 기량쇠퇴가 빨리 올 수 밖에 없었다. 센세이셔널한 첫 시즌의 모습이 아쉬울 따름이었다.[5] 다만 그간 뛰어온 포지션이 아닌 측면 자원으로 주로 기용되었고 심지어 09-10 시즌에는 센터 포워드 자원들의 줄부상으로 정말 어울리지도 않는 원톱 자리에서 시즌 절반을 소화했으며, 10-11 시즌 전에는 조국 러시아의 월드컵 탈락으로 인한 동기부여 상실과 프로 데뷔 이후 첫 휴가라는 변수가 생겼다는 등의 변명거리는 있다. 거기에 키가 워낙 작으니 사소한 피지컬적인 하락도 더욱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클래스는 어디 안간다고, 이따금씩 그만의 여전한 클래스를 보여주며 소속팀을 승리로 이끌기도 했으며 '러시아 사기꾼'이라는 소릴 들을 정도로 경기력을 떠나 스탯만큼은 준수하게 쌓고 있다. 그러나 체력적인 한계가 눈에 띄게 보이고 있으며 90분 풀타임을 기록한 횟수가 손에 꼽을 정도가 되었다. 11-12 시즌을 기점으로 후반 조커로 위상이 급락했고, 출전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잦았다. 그리고 점점 러시아로 복귀하다는 이적설이 나오기 시작했고, 결국 친정팀 제니트로 복귀한다.
2.4. 다시 러시아로
벤치를 지키는 날이 점점 많아지더니, 결국 2012년 2월, 원 소속팀인 FC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임대가 확정되었다.
그리고 2013년 7월, 아스날과의 계약이 끝나고 제니트로의 완전 이적이 확정되었다. [6]
복귀 이후 조커로 쏠쏠하게 활약하기도 했지만 30 이후로 급격한 노쇠화 때문인지 점점 출장수가 줄어들면서 2014-15시즌 종료 이후 제니트는 야르샤빈과 더 이상 재계약할 의사를 보이지 않았고 계약만료로 팀을 떠날거라고 한다. 아르샤빈도 제니트를 떠나면 선수생활에서 은퇴할 의사를 보여서 현역 은퇴가 유력해보인다.
2015년 7월 14일 쿠반 크라스노다르와 1년 계약에 성공하므로써 현역을 이어간다. 2016년 2월 2일 쿠반과 계약해지를 했다.
그리고 카자흐스탄 리그인 FC 카이라트와 계약해서 남은 시즌 동안 25경기 8골 8도움을 올렸다.
2018년 11월 10일, 샤흐타르 카라간디와의 리그 최종전을 마지막으로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3. 지도자 생활
2019년 2월 21일에 C급 라이선스를 따는데 성공하였다.
이후, FC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유스팀 풋볼 디렉터로 부임하였다. 공식 직함은 Директор департамента развития молодежного футбола по спортивным вопросам.
현재 제니트의 1군 풋볼 디렉터로 부임한다는 루머가 돌고 있다.
4. 국가대표
2002년 5월 17일 러시아 축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어 데뷔했지만 그해 열린 2002년 한일 월드컵 명단에는 들어가지 못했고, 유로 2004 명단에도 탈락하였다. 2003년 2월 13일 루마니아와의 친선 경기에서 첫 골을 신고했다. 아르샤빈은 2007년 유로 2008 예선 에스토니아전에서 첫 주장 완장을 달았다.
유로 2008에서 엄청난 활약 이후 아르샤빈은 2009년 러시아 국가대표 주장에 공식 선정되고 팀을 이끌었으나, 아쉽게 남아공 월드컵 본선 진출에는 실패하였다.
2012년 딕 아드보카트 감독 체제에서 유로 2012의 명단에 뽑힌 아르샤빈은 조별리그 3경기 모두 출전했지만 토너먼트 진출에 실패해 탈락하였고,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인 그리스전 패배 직후 팬과의 언쟁으로 곤혹을 치렀으며 러시아 축구협회도 아르샤빈의 행동을 비판했다.
이후 파비오 카펠로 감독이 취임하면서 코트디부아르와의 친선 경기에 선발된 이후 국가대표에 한번도 선발되지 못했다. 공석이 된 주장은 로만 시로코프에게 넘겨졌고, 이후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최종 명단에도 탈락했다.
5. 플레이 스타일
천재적인 윙포워드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선수이다. 양발에 능하고, 드리블 능력도 수준급이면서 득점 능력도 되는 선수가 바로 아르샤빈. 현재로 보면, 드락슬러가 키가 작아지는 대신에 스탯에서 비약적인 발전이 생기게 되면 바로 아르샤빈과 같은 선수가 될듯 싶다.
아르샤빈의 드리블과 피니쉬의 절정을 보여준 골은 바로 아스날 시절 데뷔골이다.[7] 그리고 공미나 스트라이커도 소화할정도인지라, 연계 측면에서도 상당히 훌륭하다.
단점은 멘탈과 체력, 그리고 수비가담. 수비가담이야 피지컬 특성상 그렇다 치더라도 이 선수가 몰락한 이유는 바로 멘탈적인 문제가 크다. 아르샤빈이 망하게 된 시점을 보면 2010년도 이후인데, 바로 러시아가 월드컵에서 떨어진 이후이다. 실제로 벵거가 멘탈도 따로 챙겨줘야 할 정도로 힘들어 했었던게 당시 아르샤빈. 90분 소화가 어려운 저질 체력 역시 멘탈 문제로 인한 자기 관리 소홀이 큰 원인으로 추정되고 있다.
참고로, 현재 아스날의 윙어진이 가지지 못한 점을 보유하고 있는 선수이기도 하다. 양발 & 득점력 준수, 그리고 상대방 수비진을 박살낼 수 있는 변칙성등을 모두 갖고 있는 선수가 현재 아스날에 전무하다.
아르센 벵거 재임기간중에 아르샤빈과 같이 나잇대가 많은 선수를 영입한 적은 많지 않다. [8] 허나, 벵거가 지르는 이러한 베테랑급 영입이 왠만하면 중박이상을 터뜨리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선수이다. 만약 벵거가 유스만이 아닌 이러한 영입도 적절히 섞어서 이적시장을 운용하였다면 좀 더 나은 결과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들게 할 정도로 아스날에서 아르샤빈은 엄청난 크랙이었다.
6. 그 밖의 얘기거리
- 상당한 동안 속성 보유자. 하는 짓도 나이에 맞지않게 아기자기한 행동들이 포착되어 나이 어린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가족사진에는 네살배기 아들과 형제같다는 댓글이 종종 달리기도.
- 인터뷰가 굉장히 쿨하다. 예를 들어 자기 공식 홈페이지에서 진행하는 문답에서 "나 어린 축구 선순데 당신처럼 플레이하고 싶어요. 어떻게 해야하나요" 라는 질문에 "감독말 잘듣고 열심히 훈련해" 이런 식으로 대답한다. 거의 모든 질문에.
- 오래전부터 바르셀로나 팬이다. 유로 2008 전에, '레알 마드리드가 제의하면 어떻게 할꺼냐?' 라는 질문에, "난 바르셀로나 팬이다, 레알 마드리드가 전 세계의 모든 돈을 준다고 해도 안간다." 라고 선언한 적도 있다.
- 카자흐스탄 리그 이적 이후 한 축구 블로거가 아르샤빈이 이번 시즌에 아무리 골을 많이 넣어봐야 7골이 끝일 것이라는 조롱성 포스팅을 남겼고, 이를 본 아르샤빈은 해당 블로거에게 이번 시즌에 7골 이하를 넣으면 자기가 삭발을 하고, 8골 이상을 넣으면 블로거가 삭발을 하는 내기를 제안했다. 블로거가 내기를 받아들인 이후 아르샤빈은 시즌 8호골을 넣는 데 성공했고, 결국 내기에서 진 블로거는 삭발을 했다. 신나서 머리를 깎으려는 아르샤빈과 내기에서 져서 침울한 표정의 블로거의 표정 대비가 포인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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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CSKA 모스크바 에서 뛰고 있는 알란 자고예프가 "제2의 아르샤빈" 으로 불렸다. 하지만 지금 자고예프는 결국 포텐셜을 다 보여주지 못하고 평범한 선수가 되었으니 눈물.... 다만 자고예프는 2018년에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았다.
- 전처 율리아 사이에 3자녀를 두고 있다. 아내와 2013년에 결별후 2016년 Alice Arshavina와 식을 올렸다
- PES 2020에서 레전드 선수로 새롭게 등장한다. 위닝이 FC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와 특별 계약을 맺으면서 등장하게 되었다. 포지션은 왼쪽 윙포워드.
[1] 그러나 아르센 벵거가 아르샤빈 키는 커봐야 160대 후반이라고 언급했다. [2] 제니트로의 이적은 김동진보다 현영민이 앞섰다. 단지 그때는 더더욱 러시아 축구에 대한 관심이 적었던 터라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참고로 현영민이 회상하는 아르샤빈은 장난꾸러기 같고 사교성이 좋은 선수였다고.[3] 불과 2년 전에 열린 2006 FIFA 월드컵 독일에서 각각 우승, 준우승을 기록한 팀이다. 단, 이탈리아는 월드컵 우승을 정점으로 점점 하락세를 타던 팀이었고, 프랑스는 전력 그 자체는 꽤나 막강했으나, 지네딘 지단의 은퇴로 팀의 조직력이 막 붕괴되기 시작하던 시점이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당시 네덜란드는 막 상승세를 타던 시점.[4] 아르샤빈보다 앞서 아스날에 입단한 토마시 로시츠키도 원래 공격형 미드필더였지만 아스날 입단 초에는 왼쪽 측면 미드필더로 뛰었다.[5] 아르샤빈의 이적 직전, 아스날의 리그 순위는 '''5위'''. 즉 빅4에서 탈락하고 다음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참가자격 자체가 날아갈 위기였다. 아르샤빈이 오며 공격진의 숨통이 트여 그가 출전한 경기에서는 '''무패'''를 기록하며 아스톤 빌라를 끌어내리며 4위를 지켰다.[6] 팬들의 반응은 보통 '안녕 잘가ㅜㅜ 리버풀전에서는 정말 멋져썽ㅜㅜ 다시 제니트가서 훨훨 날길 바랄게' 정도. 반면에 아직도 안가고 있는 벤트너는 얼른 꺼지라고 쌍욕을 먹고 있다(...) [7] 블랙번전. 참고로, 아스날 공홈 선정 역대 베스트 골 탑 10에 당당히 들어가 있다. [8] 체흐는 포지션 고려, 아르테타 & 카솔라가 그나마 비슷한 케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