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시 로시츠키

 

''' 체코의 前 축구선수 '''
'''이름'''
'''토마시 로시츠키
Tomáš Rosický'''
'''출생'''
1980년 10월 4일 (44세) /
체코슬로바키아, 프라하
'''국적'''
체코 [image]
'''신체'''
179cm, 72kg
'''직업'''
축구선수(공격형 미드필더, 윙어 / 은퇴)
''' 소속 '''
''' 선수 '''
ČKD 콤프레소리 프라하 (1986~1988 / 유스)
AC 스파르타 프라하 (1988~1998 / 유스)
AC 스파르타 프라하 (1998~2001)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2001~2006)'''
'''아스날 FC (2006~2016)'''
AC 스파르타 프라하 (2016~2017)
'''국가대표'''
105경기 23골(체코 / 2000~2016)
1. 선수 소개
2. 플레이 스타일
3. 클럽
4. 로시츠키에 대한 말, 말, 말
5. 여담


1. 선수 소개


체코의 前 축구 선수. 포지션은 공격형 미드필더.
18살에 체코 명문 스파르타 프라하에서 데뷔했으며 체코의 레전드인 파벨 네드베드가 국가대표팀을 떠난 이후 최연소로 체코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으로 선정되었으며 2010년대 페트르 체흐와 함께 위상이 떨어진 체코 대표팀을 이끌어가는 노년가장이었으며, 2015년 A매치 100경기 출전으로 센추리 클럽에 가입했다. 천재적인 플레이 스타일과 분위기로 인해 '''그라운드의 모짜르트'''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동유럽권에 대한 막연한 이미지와는 달리 은근히 동구권에서 천재형 축구선수들이 많이 배출되었는데, 로시츠키도 그 중의 한 명이다. 동구권의 천재형 플레이메이커 계보로는 직접적으로 불가리아의 불세출의 플레이메이커였던 크라시미르 발라코프의 뒤를 이었다고 볼 수 있으며, 동시에 파벨 네드베드카렐 포보르스키로부터 체코의 에이스 바통을 이어 받은 적자이다. 또한 동시대에 때로는 상대팀으로서, 때로는 같은 소속팀 동료로서 벨라루스알렉산드르 흘렙과 함께 동구권 최고의 플레이메이커 경쟁을 펼쳤다.
이른 나이부터 그 재능과 노력으로 인해 천재라는 호칭과 스타덤에 속에서 살아왔으나, 누구보다 축구장에서나 실생활에서나 겸손하고 검소했으며, 헌신적이고 열정적이었던 체코의 슈퍼 스타였다. 비록 부상으로 점철 된 커리어를 가졌지만, 그럼에도 그 클래스와 인품으로 인해 주변으로부터 인망을 잃은 적이 없었으며, 결국 영광스럽게 커리어를 마무리하며, 은퇴한 현재까지 현재까지 체코가 배출한 마지막 스타 플레이어로 남아있다.

2. 플레이 스타일


[image]
로시츠키는 동시대의 알렉산드르 흘렙, 데쿠 등과 함께 축구 전술의 흐름에 있어서 2000년대 중반 들어서부터 각광받게 되는 속칭 '땀 흘리는 플레이메이커'의 대표주자 중 하나였다. 스스로의 힘으로 경기를 완전히 자신들의 것으로 가져가는 지네딘 지단이나 후안 로만 리켈메 스타일의 느리고 고전적인 템포의 플레이메이커들과 다르게, 그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경기를 쥐락펴락 할 순 없지만 대신에 자신의 다재다능한 무기들을 살려서 부지런히 헌신하며 팀원들의 경기력을 살리는 유형의 플레이메이커였던 것이다. 따라서 로시츠키를 비롯한 이러한 유형의 플레이메이커들은 개인의 압도적인 경기 장악력이나 눈에 확연히 띄는 스탯 생산성은 부족했으나, 팀의 밸런스와 경기력 향상, 일관성 등에 있어서 중요한 몫을 하는 존재들이라고 할 수 있다.
로시츠키는 자신도 인정할 정도로 겉보기에는 호리호리하고 유약했으나 동시에 굉장히 창의적이고 천재적인 축구 지능을 갖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또한 마치 락커와도같은 터프하고 거친 마인드를 동시에 품고 있었던 선수였다. 실제로도 락 음악을 좋아하고 단발 머리에 일렉 기타를 연주할 정도로 정도로 남성적이고 호쾌했는데, 그것이 천부적인 재능과 맞물려 독특한 플레이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그는 축구를 매우 경쾌하고 독특한 리듬으로 했는데, 남들보다도 빠른 두뇌회전으로 우리 팀의 상황이 어떻게 펼쳐질 지를 아는 것처럼, 언제나 패스의 두수, 세수 앞을 보고서 플레이를 가져갔기 때문에 무척 독특하고 경쾌한 템포의 게임 리딩을 선보일 수 있었다. 게다가 유려한 선수들이 으레 그렇듯 속도는 평범하다고 생각될 수 있지만, 꽤 과소평가된 준족이었다.
재밌는 점은 이러한 예술적인 면모를 갖춘 선수인 동시에, 부상을 달고 살던 선수답게 거친 슬라이딩 태클을 자주 구사하던 선수였다. 이는 당시 비슷한 케이스였던 조 콜과 유사한 부분이다. 조 콜 또한 로시츠키처럼 마인드적으로는 마초적이고 용맹했으나, 다소 빈약한 피지컬로 스스로의 몸을 사리지 않는 플레이를 구사하며 부상을 달고 살던 선수였다.
또한 '땀 흘리는 플레이메이커' 답게 수비 가담과 상대의 역공 상황시 백코트가 매우 역동적이고 헌신적인 선수였으며, 대표적으로 06-07시즌 호날두의 치고 달리기 상황을 저지하는 달리기 장면과, 07-08시즌 세비야와의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 홈경기에서, 당시 유럽 최강의 오른쪽 라인이라 불리던 헤수스 나바스다니엘 알베스 라인이 로시츠키의 부지런한 수비 가담으로 인해 아무것도 못하게끔 만든 경기 등을 꼽을 수 있다. 그 경기는 아스날세비야를 갖고 농락하다시피 하며 3:0으로 완승을 거뒀다.
그는 패스, 드리블, 슛, 킥 등 모든 스킬에 있어서 수준 미달인 부분이 없었다. 커리어 내내 골 숫자가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경기 중에 슛을 하는 상황 자체가 많은 선수도 아니었으며, 골로 결정지어야 하는 상황에선 결정력이 있는 선수였다. 게다가 호리호리한 체격과 달리 캐논 슈터였으며, 호쾌한 중거리 슛 골들이 많은 편이다.
로시츠키의 가장 큰 플레이 특징은 2:1패스와 원터치 플레이, 아웃사이드 킥 등이다. 루카 모드리치 이전에 가장 유명한 아웃사이드 패서였으며, 로시츠키 그 스스로가 부상으로 존재감을 잃어가기 전까진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바로 아웃사이드 패스였다. 또한 2:1패스와 원터치 플레이는 그를 상징하는 특징인데, 로시츠키가 뛰는 경기들에서 유독 유려해보이고 예쁜 전개가 많이 나오는 이유였다.
분데스리가 시절을 제외하면 프리미어리그에서 10년간 보내며 부상으로 인해 딱히 전성기라 할 만한 시즌은 없었으나, 데뷔부터 말년까지도 그 클래스와 폼이 언제나 일정하고 수준 높았던 선수로서, 그 수많은 부상과 재활을 반복하면서도 피치 위에 복귀했을 때 감독과 선수와 팬들 모두를 '축구'로 실망시킨 적이 없는 선수였다. 여론은 언제나 로시츠키의 부상에 안타까워했을 뿐, 그의 실력과 경기력에 의문을 가진 적이 없었다. 그것이 아르센 벵거가 무려 10년간 그를 데리고 있었던 유일한 이유였을 것이다. 그는 그의 독특한 플레이스타일과 마인드로 인해 역사에 남을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하나는 아니지만, 특징적으로 매우 유니크한 선수 중 하나로 남아 있을 것이다.

3. 클럽



3.1.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체코의 스파르타 프라하에서 당시 분데스리가 최고 이적료인 1450만 유로의 이적료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 이적하였다. 어렸을 때부터 FC 바이에른 뮌헨을 좋아했던 로시츠키는 바이에른에게 받은 이적 제안을 두말 않고 받아들일 생각을 하고 있었다. 허나 도르트문트의 단장과 함께 벌집 감독 마티아스 잠머가 로시츠키에게 직접 찾아와 이름이 새겨지지 않은 10번 유니폼을 직접 건네주며 10번의 주인공이 돼 달라는 부탁에 감명을 받고 도르트문트로 이적을 결심한다. 이후 팀의 핵심선수로 자리잡으며 좋은 플레이를 보여줬으나, 이미 이 때부터 자주 부상에 시달리고 있었다. 도르트문트에서 병원에 자주 들락거리는 게 로시츠키 하나였으면 몰랐겠지만 클럽 전체가 부상병동이라 투자 대비 성적을 못 내던 도르트문트는 무서울 정도의 재정난에 시달렸고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하자 결국 로시츠키를 팔 수밖에 없었다. 2006년 월드컵 대회가 끝난 후 로시츠키 본인은 여러 명문 팀의 러브콜에도 불구하고 아스날 FC의 오퍼가 올 때까지 기다렸고, 결국 원하던 아스날 FC로의 이적에 성공했다.
이 때 유스에서 뛰던 마르코 로이스가 로시츠키를 보며 축구의 꿈을 키웠다며 로시츠키는 자신의 우상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누리 사힌도 로시츠키의 광팬이다. 2013년 10월에 있었던 아스날과 도르트문트의 경기가 끝나고 누리 사힌은 로시츠키와 유니폼을 교환했다.
로시츠키는 꿀벌집에서 뛰는 6시즌 동안 186경기 25골을 기록했다.

3.2. 아스날 FC


2006년 여름 도르트문트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이적 협상을 하고 있었고 이적료로 천만 유로를 받으려는 도르트문트와 한푼이라도 더 깎으려는 상황이었는데 아스날이 난입해서 쿨하게 천만유로를 도르트문트에 지불하고 로시츠키를 데려왔다.
2006년 5월 23일, 아스날 이적이 확정되었다. 어렸을때부터 아스날의 팬이었던 로시츠키의 꿈이 이루어진 셈이다.
이하 타임즈와의 인터뷰.

로시츠키는 어렸을 때부터 아스날을 좋아했던 팬으로, 피버 피치를 읽었고 1997-98시즌에 더블을 이뤘던 스쿼드, 특히 베르캄프에 푹 빠졌었다. 로시츠키는 언제나 거너가 되고 싶었다. 라니에리첼시로 데려오고 싶어했고, 마틴 욜토트넘 유니폼을 입히고 싶어했다.

"리버풀 감독이 울리에에서 베니테즈로 바뀐 해에 리버풀에 입단 직전까지 갔었습니다. 훌리에가 계속 감독직을 맡았더라면 아마도 리버풀로 갔을 거예요."

그를 원하는 팀들이 계속 도르트문트에 연락을 해왔다.

'''"다른 팀에 갈 기회가 굉장히 많았지만, 전 언제나 아스날이 연락할 때까지 1년 더 기다리자고 말했습니다. 기다리길 정말 잘 했습니다.'''"

- Tomáš Rosický, The Times 인터뷰 中 -


3.2.1. 아스날 FC/2006-07 시즌


로베르 피레스의 등번호 7번을 받으며 아스날에 입단.2006년 8월 9일, 디나모 자그레브와의 챔피언스 리그 원정경기로 데뷔전을 치렀고, 2006년 9월 13일, 2-1로 승리한 함부르크 SV와의 챔피언스 리그 원정경기에서 두번째 골을 성공시키며 아스널에서의 데뷔골을 넣었다. 또 그는 2007년 2월 11일에 열린 위건과의 경기에서 결승골을 넣어 팀의 2-1승리를 견인하며 그의 첫번째 프리미어리그 골을 기록하였다. 2006-07 시즌동안 총 37경기를 출전하여 6골 4도움을 기록하는 등 준수한 활약을 하며 시즌을 마쳤다.

3.2.2. 아스날 FC/2007-08 시즌


세스크 파브레가스를 중심으로 알렉산드르 흘렙, 마티유 플라미니와 함께 강력한 중원을 구축하며 벵거볼 2기인 지공형 패스축구의 중심이 되었다. 벵거의 축구 철학과 이 4명의 미드필더의 시너지는 엄청났으며, 이 때의 아스날을 그리워하는 팬들이 많다. 그 당시 이 4명을 세스갱, 또는 4중주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2008년 1월, 뉴캐슬 유나이티드 FC와의 FA컵 경기에서 부상으로 시즌 아웃을 당했다. 이 부상으로 인해 유로 2008 출전에도 실패했고, 오랜 회복 기간을 거쳤다.
총 24경기 7골 2도움.

3.2.3. 아스날 FC/2008-09 시즌


햄스트링 부상으로 '''통째로 시즌을 날렸다.'''

'''0경기 0골 0도움.'''

3.2.4. 아스날 FC/2009-10 시즌


시즌 초반까지 부상이었고 9월에 복귀, 복귀전에서 1골 1어시를 하는 활약을 했지만 팀은 패배했다. 2010년 1월 4일 팀과 2년 반 계약 기간의 새 계약을 맺었다.

"이 팀에 온 지 4년이 됐는데 정말 집처럼 편안합니다. 저는 이 팀에서 팀원들과 함께 무언가를 이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재계약 이후 인터뷰에서.

"저는 지금까지 로시츠키의 클래스와 헌신에 대해 여러차례 칭찬했습니다만 경기장 위에서 뿐만이 아니라 밖에서도 매우 좋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저는 이 새로운 계약에 대해 정말 기쁩니다."

재계약 이후 벵거 감독의 인터뷰.

에버튼 FC와의 홈 경기에서 93분 결정적인 동점골을 기록했으며 볼턴 원더러스와의 경기에서 시즌 3번째 골을 기록했다. 1:0으로 승리한 2010년 2월 10일 리버풀 FC와의 홈 경기에서는 결승골이 된 아부 디아비의 골에 크로스로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또한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FC 포르투를 상대로 한 경기에서 역시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이 경기 코너킥을 헤딩해 솔 캠벨에 전달해 도움을 기록했다. 결국 아스날은 총합 6:2 승리로 진출했다.
총 33경기 3골 5도움.

3.2.5. 아스날 FC/2010-11 시즌


시즌 개막전인 8월 15일 프리미어 리그 리버풀 원정 경기에서 교체 출전한다. 이 날 경기에서 로랑 코시엘니의 퇴장으로 열세에 몰렸던 아스날은 로시츠키의 활약과 레이나의 실수가 겹쳐 1-1 무승부를 거뒀다. 89분, 마루앙 샤막에게 크로스를 연결해 이 튕긴 공을 레이나 골키퍼가 제대로 잡지 못하고 그대로 골대에 넣어버렸다.
8월 21일에는 2010년 4월 블랙풀 전 이후 처음으로 선발출전하며 6-0 승리에 공헌한다.
8월 28일에는 블랙번과의 원정경기에서 68분 세스크 파브레가스 대신 교체투입되어 출전하였다.
11월 10일 울버햄튼 원정경기에서 90분 풀타임 출전하며 팀의 2-0 승리를 이끌었다.
2011년 2월 20일 레이튼 오리엔트와의 FA컵 경기에서 53분 헤딩으로 시즌 첫 골을 터트린다. 이 골은 13개월만에 아스날에서 넣은 골이였다.
2월 27일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버밍엄 시티와의 칼링컵 결승에 부상이였던 세스크 파브레가스 대신 풀타임을 소화하나 팀은 2-1로 패배. 이 경기에서 주장 완장을 차고있던 로빈 반 페르시가 부상으로 니클라스 벤트너와 교체되어 나가자 주장 완장을 맡기도 했다.
3월 12일 패배한 FA컵 4강전 라이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올드 트래포드 원정 경기에서 72분에 안드레이 아르샤빈과 교체투입된다. 이 경기를 마지막으로 사소한 부상에 시달리며 더 이상의 경기 출전은 없었다. 이 시즌동안 로시츠키는 총 34번 출전하였으며 1골을 넣어 아스날이 4위로 시즌을 끝마치는 데에 공헌했다.
총 34경기 1골 5도움

3.2.6. 아스날 FC/2011-12 시즌


부상으로 인해 10월에 복귀. 복귀전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후 로빈 반 페르시와 함께 시즌 후반기부터 회춘한 듯한 미친 활약을 보여주며 주전 선수의 대거 이탈로 인해 강등권까지 떨어졌던 아스날을 3위로 끌어올리는 1등 공신이 된다.
2012년 2월 26일 토트넘 핫스퍼와의 리그경기에서 5-2 역전승의 시발점이 되는 골을 넣었는데 이는 2년만의 리그 골이었다. 이 때 김동완 해설위원의 괴랄한 드립이 일품이다.#
AC 밀란과의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에서도 엄청난 활약과 1골을 기록하고 UEFA 선정 MVP에 뽑히는 등 팀의 3:0 승리를 이끌었으나, 아쉽게도 8강 진출은 실패했다. 몇몇 축구팬들은 아스날의 반격이 로시츠키의 긍정적인 경기력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아르센 벵거가 경기 이후 말하기를 "오늘 밤 로시츠키는 다시 놀라운 활약을 펼쳤다. 요즘의 게임에서 그는 가장 영향있는 선수였으며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따라서 나는 로시츠키에게 그 기대를 충족시킬 기회를 더 줄 것이다." 라고 밝혔다.
또한 구단과 새로운 재계약을 맺었다.
총 38경기 2골 8도움.
참고로, 07-08 시즌과 더불어서 로시츠키가 아스날에서 보여준 최고의 시즌으로 기억된다.

3.2.7. 아스날 FC/2012-13 시즌


유로 2012에서의 부상으로 인해 겨울에 복귀. 이후 남은 시즌 동안 뭔가 크게 나쁜 모습을 보여준건 아니지만 산티 카솔라, 미켈 아르테타와의 호흡이 맞지 않는 모습을 보이며 경기를 잘 풀어나가지 못하는 잭 윌셔를 대신해 대활약, 아스날이 4위로 시즌을 마치는데 크게 공헌한다.
총 16경기 3골 2도움.
로시츠키의 나이가 나이인지라-물론 폴 스콜스, 라이언 긱스같은 경우가 있긴하지만- 대체자를 구해야 하는데, 로시츠키와 같은 창조적인 공격형 미드필더가 흔하지 않아 아스날은 고민이 많다. 잭 윌셔를 공미로 쓰자니 스페인 선수들과의 호흡과 창조성이 문제가 되고, 산티 카솔라를 기용하면 창조성은 훌륭하지만 템포가 떨어진다.

3.2.8. 아스날 FC/2013-14 시즌


외질 영입 이후 급상승한 아스날의 기세에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다. 램지와 외질, 카솔라 등 핵심 미드필더들이 부상으로 이탈하는 상황이 생겨도 로시츠키가 그 공백을 상당히 잘 메꿔줘서 아스날이 전반기를 1위로 마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특유의 업템포 축구는 수비적으로 나오는 중하위권 팀들과의 경기에서 상당한 위력을 발휘하는 중. 선발로 나와서 90분이 넘어가는데도 상대진영까지 넘어가서 적극적으로 수비하는 등, 실력이 전성기만 못하다지만 그 투지와 노련미는 나날이 빛을 발하고 있다. 그리고 동료 페어 메르테자커와 함께 재계약 오피셜이 떴다!! 계약기간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2016년까지인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토트넘과의 FA컵 경기에서 골을 기록했다. 외질, 램지, 지루, 벤트너(?) 등 공격의 핵심이 모두 이탈한 상황에서 추가골을 넣으며 팀의 2:0 승리에 기여하였다.
30R 토트넘과의 리그경기에서도 선제골을 넣었다!
[image]
그리고 시즌 마지막 경기인 FA컵 결승전에서 연장후반 교체투입되어 15분만 뛰었지만 팀의 우승에 공헌했다. 아스날 이적 이후 첫 메이저 대회 우승이다!

3.2.9. 아스날 FC/2014-15 시즌


시즌 시작 전에 실시한 피지컬 테스트에서 달리기로 3(!)위를 했다 카더라.
가끔 있는 잔부상과, 나이가 나이인지라 후보로 밀려 교체로 간간히 출장하고 있다. 적은 출장기회에 불만을 가지고 있다는 인터뷰를 한 적도 있다. 박싱데이를 맞아 QPR과의 리그 19라운드에 오랫만에 선발로 출전하여...알렉시스 산체스의 패스를 받아 첫 선발 출전에서 골을 기록하게 되었다. 올리비에 지루의 불필요한 퇴장으로 수적 열세에 처한 상황에 터진 골이라 아스날에게는 큰 의미가 있는 골이었다.
다음 라운드인 웨스트햄 전에서는 결장. 2015년 첫 경기인 사우샘프턴 경기에서는 선발출장했다. 팀 전체가 침체된 모습을 보여준터라 로시츠키 또한 전반 초반에 날카로운 모습을 몇 번 보여준 것 말고는 별 활약은 없었다. 챔버스가 플라미니 자리로 나왔는데, 수비도 안되고 빌드 업도 꽝이라서 로시츠키, 카솔라가 아래로 내려가서 받아주느라 공격에 전념하기 힘들었다.
헐시티와의 FA컵 경기에서도 선발로 출장. 공격 포인트는 기록하지 못했지만 산체스에게 날카로운 스루 패스를 넣어주는 등 쏠쏠한 활약을 펼쳤다.
2015년 1월 11일, 21R 스토크 시티전에서도 역시 선발로 출장했다. 장기 부상에서 복귀한 이후로 컨디션이 많이 올라온 듯. 스토크 시티의 거친 축구에 고전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말 그대로 발라버렸다. 강력한 압박으로 상대 미들진이 하프라인 넘어서는 것조차 버겁게 했고 산체스에게 넣어준 원터치 패스로 어시까지 기록. 중계하던 아나운서와 해설자가 회춘한 것 같다며 호평할 정도의 활약이었다. 이 활약을 바탕으로 아르센 벵거는 재계약에 자신있어 하지만, 출장 기회에 불만을 가진 로시츠키가 재계약에 사인할 지는 확실하지 않다.
아스날의 부상자가 대부분 복귀하고 상승세를 탔던 리그 후반기에는 로시츠키가 뛰는 모습을 거의 볼 수 없었다. 경기 중에 미드필드진에 전술 변화를 줄 때도 주로 윌셔가 나오곤 했다. 교체명단에는 꾸준히 있음에도 출전이 너무 뜸해서 플랜에서 제외된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을 정도. FA컵 결승전에서도 명단 제외됐고 트로피 세레모니 할 때도 모습을 비추지 않았다.

3.2.10. 아스날 FC/2015-16 시즌


무릎 부상으로 인해 박싱데이가 되어서야 웰벡과 함께 복귀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 시즌 후반기에 모습이 잘 안보였던 것도, FA컵 결승전에서 우승 이후 웰벡과 함께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이유도 두 선수 모두 최소한 이 때부터 부상으로 고생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리고 마침내 FA컵 32강전에서 아르테타와 정말 오랜만에 교체출전을 하면서 복귀전을 치렀다. 이제 아스날의 미드필더 라인도 안정적으로 운용될 듯 하다.
'''그런데 경기 후 6주 추가 부상이라고 한다. 무려 37번째 부상이라고...#'''
로시츠키 본인은 현재 굉장히 심란한 상황이라고 한다.# 이 쯤 되면 은퇴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판이다. 3개월 아웃이 확정되었다. 사실상 번리전이 그의 아스날 커리어 마지막 경기. 혹은 은퇴 경기가 될것으로 보인다.
결국 2015-16시즌을 끝으로 플라미니, 아르테타와 함께 팀을 떠나게 되었다.
2016년 5월 15일 38R 마지막 경기를 출전하지 못했지만, 아스날 선수들이 두번째 골을 넣은 후 로시츠키에게 안기며 감동을 주었다. 경기가 끝난 후 로시츠키의 고별전이 진행되었다.
이로써 아스날 선수로서의 로시츠키의 일정은 끝이 나게 되었고, 10년 간 잘 지켜왔던 아스날의 7번과도 이별을 고하게 되었다.[1]
로시츠키의 역할은 시즌 초 알렉스 이워비가 비슷한 롤로 잘 매워주고 있었으나, 이워비의 폼이 무너져내리고 현재까지 그와 같은 스타일의 선수는 아스날에서 나오지 않고 있다.
[image]
[image]
[image]

3.3. AC 스파르타 프라하


유로 2016 출전 이후 새 팀을 구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서는 고향인 체코 복귀가 유력한 상황.
결국 고향팀인 스파르타 프라하로의 복귀가 확정되었다. 계약 기간은 2년.
2017년 9월 10일 프라하에서 17년 만에 복귀 골을 기록했다. 2015년 에버튼 전에서 골을 기록한 지 30개월 만의 골이기도 하다.
2017년 12월 20일, 로시츠키는 19년 간의 프로 생활을 끝내며 현역 선수 생활에서 은퇴를 선언했다. 커리어 내내 부상을 달고 살면서 더 이상 선수 생활을 할 수 없는 몸상태가 되어 오랜 고민 끝에 은퇴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저는 더 이상 프로 축구가 요구하는 몸 상태를 완전하게 준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 커리어를 빅 클럽으로 이끌어 올려주고, 제가 가장 사랑하는 곳에서 작별 인사를 할 수 있게 해준 스파르타 프라하에게 감사하고 싶습니다.'''"

스파르타 프라하 - 로시츠키의 은퇴 성명 발표문.

이후 2018년 6월 9일 은퇴경기가 열렸는데, 은퇴경기에는 파브레가스, 반 페르시 , 레만, 깁스, 사냐, 체흐등 아스날 출신 유명 선수들과 체코 출신 얀 콜러 등이 참여했다.
[image]
경기는 체코팀이 월드팀[2]을 5-2로 이겼다.[3]로시츠키는 두 골을 넣었는데[4], 엄청난 활약을 보이며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했다.

4. 로시츠키에 대한 말, 말, 말


'''로시츠키는 환상적이다. 그는 우리 모두가 사랑하는 선수이다. 당신이 축구를 사랑한다면 로시츠키를 사랑하는 것이다.''' - 아르센 벵거[5]

'''그라운드 위의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역시 소프라노를 위한 아리아 사랑하는 이여 나에게 오라 이런 노래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 김동완 해설위원


5. 여담


  • 메탈리카의 팬이고, 기타도 꽤 잘치기로 유명.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오히려 로시츠키는 부상 중이라 나오지 못하고 체흐와 산체스가 밴드를 구성했다. 그리고 그 옆은...
[image]
  • 취미는 영화감상과 위닝 일레븐.
  • 아버지와 형도 스파르타 프라하에서 축구를 했다.
  • 존경하는 선수는 로타어 마테우스. 선호하는 팀은 FC 바이에른 뮌헨. 그러나 당시 화려했던 선수층을 자랑하던 바이에른으로 가지 않고 도르트문트로 갔다.
  • 스파르타 프라하 시절 유럽대항전에서 현 소속팀인 아스날 FC와 맞붙은 바 있다. 도르트문트 이적 후에도 02-03 시즌에 아스날과 챔피언스리그에서 맞대결했다. 이때 도르트문트의 골키퍼는 옌스 레만이었다.
  • 부상이 잦은 선수였고, 유독 허벅지 부상이 많았는데 로시츠키를 담당했던 체코의 팀닥터 파벨 콜러의 의견으로는 유스시절 잘못된 훈련으로 인해 근육 구조에 불균형이 생겨서 허벅지 뒤쪽 근육이 다른 곳에 비해 과도하게 발달되고 긴장된 상태였던 것이 이러한 잔부상이 생기게 된 원인이라고 한다.출처 파벨 콜러는 영국이 독일에 비해 스포츠 의학 수준이 떨어져 아스날이 로시츠키에게 부상 예방을 위한 적절한 훈련을 제공하지 못했다[6]고 지적했는데 아스날로 이적하는대신, 유리몸의 대명사로 악명 높았던 리베리와 로번도 강철몸까진 아니더라도 부상을 극복하고 대부분의 경기에 뛸 수 있게 갱생시킨 볼파르트 박사가 팀닥터로 있는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했다면 어땠을까하는 궁금증이 드는 부분.
  • 시즌을 통째로 날린 08-09 시즌 경기에 하도 나오지 않게 되자 로시츠키 사망설(...)이[7] 나돌기도 했다.
  • 부상으로 하도 결장을 많이해서 네이버 카페나 디시 해축갤 등지에서는 "축구 게임을 하는데 아스날에 로시츠키라는 선수가 있네요. 실제 축구에서는 못본 선수인데. 생성선수인가요?" 드립이 유행하기도 했다.
  • 한때 팀 동료였던 알렉스 송의 말에 의하면 할머니처럼 운전한다고 한다.(...)
  • 세스크 파브레가스, 알렉산드르 흘렙, 마티유 플라미니, 로빈 반 페르시, 사미르 나스리, 가엘 클리쉬, 콜로 투레, 윌리엄 갈라스 등 화려했던 시기를 함께 보냈던 많은 동료들이 다른 팀으로 이적하고 함께 아스날을 지탱하던 바카리 사냐까지 이적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클럽에 남아있어 많은 구너들은 로시츠키는 아스날에서 은퇴했으면 하고 바라고 있다.
  • 그래도 그 전까진 얼굴이 곱상한 편이었는데, 어느 날 부상에서 돌아온 그는 아저씨가 되어 있었다.
[image]
[image]
먼 옛날 SBS에 의해 '''로사키'''라고 개명당한(?) 적이 있다. 이 때 위팔루시, 얀쿨로프스키, 스미체르, 콜레르, 체흐도 대거 개명을 당했다.[8] [9][10]

[1] 여담으로 아스날 7번의 새 주인은 알렉시스 산체스.[2] 대부분 아스날 선수 출신 선수로 꾸려진 팀[3] 로시츠키는 전반전에 월드팀, 후반전에 체코팀에서 뛰었다.[4] 전부 체코팀에서 넣었다.[5] 훗날 벵거는 이 말을 외질을 칭찬할 때도 그대로 인용했다.[6] 5년동안 뛴 도르트문트에서 뛴 경기수가 149경기인데, 10년동안 뛴 아스날에서 경기수가 170경기이다.[7] 물론 개드립. 네이버에 표시된 로시츠키 출생년도와 사망년도(..)가 기록된 합성짤방이 히트치면서 사망설 혹은 고인설이 유행했다.[8] 참고로 해당 짤방의 경기는 2003년 3월 29일에 열렸던 체코 vs 네덜란드의 유로 2004 예선전인 것으로 추정된다.[9] 체코어 발음이 아닌 영어 발음으로 읽은 결과물들이다.[10] 보면 체흐는 Čech, 얀쿨로프스키는 Jankulovski, 위팔루시는 Ujfaluši가 본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