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 카리미
1. 소개
'''이란의 마라도나''' , '''공포의 왼발'''(오른발 잡이인데..)
2000년대 초반 아시아를 대표하는 선수 중 한 명으로 알리 다에이와 자바드 네쿠남과 함께 이란 역대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손꼽힌다.
2. 클럽
2.1. 초기
1996년 이란 2부리그 소속의 파스 테헤란에서 데뷔했으며 2년 뒤인 1998년 자국 명문인 페르세폴리스 FC로 이적했다. 1999년에는 리그와 컵을 모두 들어올렸고 2000년에는 리그 2연패에 성공했다.
페르세폴리스에서의 활약으로 유럽의 몇몇 구단이 카리미의 영입에 흥미를 보였고 가장 먼저 그를 영입하고자 했던 클럽은 페루자 칼치오였다. 카리미는 페루자에서 트라이얼을 받았고 이적하는 듯 싶었으나 페루자가 그의 몸값이 너무 높다고 판단, 결렬되었다.
또 다른 클럽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였다. 아틀레티코는 그의 이적료를 맞춰줄 의향이 있었고 카리미에게 4년 계약을 제시했으나 카리미는 UAE의 알 아흘리 클럽으로 이적했다. 그 이유는 고향 근처에서 뛰고 싶어서(...). 첫 시즌 프레지던트 컵을 들어올린 카리미는 알 아흘리의 에이스로 맹활약했고 2004년에는 리그 득점왕을 차지하기도 했다.
2.2. FC 바이에른 뮌헨
2005년 5월 카리미는 분데스리가의 명문팀 FC 바이에른 뮌헨과 1년 계약을 체결하며 알리 다에이, 바히드 하셰미안의 뒤를 이은 3번째 이란 출신 뮌헨 선수가 되었다. 카리미의 영입을 주도했던 인물은 감독이었던 펠릭스 마가트였는데, 그는 스카우터들의 부정적인 발언에도 카리미를 영입했다. 바이엘 레버쿠젠을 상대로 데뷔한 카리미는 로이 마카이에게 도움을 제공하고 팀의 2번째 골을 득점하며 팀의 5-2 대승에 기여했다.
이후 라피드 빈과의 UEFA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골을 뽑아냈고, 12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의 경기에서 리그 2호골을 뽑아내며 순조롭게 적응했다. 2006년 4월 함부르크 SV와의 경기에 출장하며 총 25경기를 출장한 카리미는 옵션에 의해 자동적으로 계약이 1년 연장되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같은 경기에서 카리미는 6주짜리 부상을 끊었다. 06-07 시즌 카리미는 벤치 멤버로 밀렸고 레드불 잘츠부르크의 오퍼를 받기도 했다. 벤치 멤버였던 카리미는 이적이 기정사실화 된 듯 했으나 세바스티안 다이슬러의 은퇴로 인해 팀에 잔류했다.
2.3. 이후
시즌이 종료된 뒤 카리미는 예정대로 방출됐다. 뮌헨을 떠난 카리미는 카타르 SC와 계약을 맺었고 1시즌간 활약한 뒤 알 사일리야로 이적했다. 팀에 입단한지 얼마안 된 시점에서 그의 친정팀인 페르세폴리스 FC의 회장은 카리미와의 통화를 통해 그의 합의를 이끌어냈고, 이적료를 지불하며 카리미를 페르세폴리스로 복귀시켰다.
에스테그랄 테헤란 FC와의 테헤란 더비에서 동점골을 뽑아내며 화려하게 복귀한 카리미였으나 새로 부임한 회장엔 압바스 안사리파드와 불화가 생겼고 페르세폴리스와 계약을 연장하지 않고 새로 승격한 스틸 아진으로 이적했다. 스틸 아진에서 첫 시즌 카리미는 개막전부터 4경기 연속골을 성공시켰고 시즌 총 11골을 기록했다. 2010년 알 아흘리가 카리미의 임대를 노렸으나 스틸 아진의 거부로 인해 무산됐다. 2010년 8월 카리미는 잠시 클럽에서 퇴출당했는데, 라마단을 안지켜셔였다.[2]
2011년 팀을 구하던 카리미는 뜬금없이 독일의 샬케 04와 6개월 계약을 체결했다. 라울 곤잘레스와의 교체로 인터 밀란과의 챔피언스리그 경기에 출전한 카리미는 이후 카이저슬라우테른과의 경기에도 교체출전했다. 이후 경기에 나서지 못한 카리미는 계약 연장에 실패했고 새로운 회장이 부임한 친정팀 페르세폴리스로 복귀했다.
주장에 임명된 카리미는 말라반을 상대로 복귀골을 신고했다. 2012년 잦은 부상으로 카리미는 은퇴를 선언했다. 그러나 얼마 안가 카리미는 은퇴를 번복하고 트락토르 사지 FC와 1년 계약을 맺었다. 트락토르 사지에서 카리미는 하즈피 컵을 들어올리며 유럽 진출 이후 처음으로 다시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2014년 트락토르와의 계약이 종료된 카리미는 유투브를 통해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3. 국가대표
1998년, 쿠웨이트를 상대로 데뷔했으며, 2012년까지 127경기 38골을 기록했다. 알리 다에이, 자바드 네쿠남, 메흐디 마다비키아 등과 함께 이란의 주축 선수로 맹활약했다. 특히 2004 AFC 아시안컵 중국에서는 대한민국을 상대로 해트트릭까지 때려박으며 이란의 4-3 승리에 크게 일조했고, 대회 득점왕에 오르기도 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도 참가했으나 1무 2패로 탈락했다.
동료와의 불화로 인해 2007년, 잠시 제명당한 일이 있으며, 2008년, 알리 다에이가 이란 감독으로 부임할 때 찍혀 기량과는 별개로 소집되지 못했다. 2014년, 이란이 2014 브라질 월드컵에 진출하며 트락토르에서 좋은 모습을 보인 카리미를 팀의 지주로 데려갈 수 있다고 케이로스 감독이 말했으나, 정작 최종 30인 명단에도 들지 못했다.
4. 플레이 스타일
드리블 돌파 능력이 장기였다.
5. 지도자
2014년부터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를 맡고있다.
6. 기타
지나치게 경직된 이슬람 국가의 분위기에도 이란 여성들의 축구장 입장 허용을 강하게 주장했다. 왠만한 용기없이는 힘든 일을 강하게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