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사
1. 개요
중국 출생의 영화배우 겸 무술가.
2. 생애
2.1. 중국에서의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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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7월3일 중국 광저우시에서 소상인인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10살이 되던 해에 태극권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소림무술학교에서 여러가지 쿵후를 연마해나갔는데, 지금의 모습과는 달리 어린 시절엔 무척 야위어서 대련시합에서 체중차로 패배한 것을 계기로 보디빌딩 트레이닝을 하여 체격을 키우려고 하던 중, 우연히 미국 보디빌딩 잡지를 얻어 보게 되고, 보디빌딩 선수도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된다. [4]
하지만 당시 중국은 공산주의가 지금보다 매우 심해서 서구화문명에 대한 반발이 거셌던 시절이라 보디빌딩은 미국 자본주의 사상의 산물로 여겨졌기에 맘 내키는데로 보디빌딩 운동을 하기에 시국이 적절치 못했고, 결국 그는 공산주의를 피해 홍콩행을 선택한다.
2.2. 홍콩에서의 활동
홍콩으로 거주지를 옮긴 양사는 보디빌딩 트레이닝에 더욱 전념하게 된다.
하지만 무술연마 역시 절대 게을리하지 않고 오히려 보디빌딩과 파워리프팅까지 병행하며 벌크를 키우면서도 놀랄만큼의 민첩성과 유연성을 유지해 나갔다. 그도 역시 근본은 무술인으로 출발해서 무술에 도움이 되기위해 보디빌딩과 파워리프팅을 시작한 것이지, 명성을 얻기위해 보디빌딩을 한 것은 결코 아니라고. [5]
1969년에 23세의 나이에 소인매와 소일부 두형제가 설립한 영화제작사인 '쇼 브라더스'에 악역 배우로써 홍콩영화계의 거장이자 전설인 장철 감독에게 스카웃 되었는데 거대한 근육과 험상궂은 인상에 매료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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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남 데이비드 영(1974년생)과 함께
2.3. 배우로써의 시작, 이소룡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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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그는 보디빌딩 대회인 미스터 홍콩에 등극하게 되었으며, 그 타이틀을 무려 10년간 유지[6] 를 하는데 성공하며, 홍콩 파워리프팅 챔피온에도 등극하는 등 이색적인 경력을 추가하게 된다.
이에 배우로써의 커리어도 시작되었는데 1970~1971년까지 쇼 브라더스사의 장철 감독과 4편의 영화를 찍고, 퇴사하던 시기에 윈스턴 담배회사의 광고에서 이소룡과 함께 촬영을 하게 되었고 이소룡 역시 중국인 동포이면서 동양인 보디빌더인 양사에게 매우 큰 관심을 가지게 되며, 양사 역시 이소룡을 무술인이자 훌륭한 영화배우로 존중하고 있었다.
둘 다 표면적인 직업은 영화배우이지만 뼛속깊은 무술가들이였기에 영화 무술에 대해 많은 토론을 나누었다. 그래서 그는 이소룡의 마지막 유작인 용쟁호투에서 극중 최종보스인 '한'역을 맡은 석견의 보디가드인 '볼로'라는 역을 맡게 되었다. 여담으로 볼로라는 이름은 용쟁호투의 모든 전반적인 프로듀스를 맡은[7] 이소룡이 붙여준 배역이름이지만 스태프들이 본명인 '양사'보다 '볼로'가 더 부르기 편해서 볼로라고 불렀으며, 본인 역시 이소룡이 지어준 이름에 큰 호감을 갖고 추후에는 '볼로 영'이란 이름으로 활동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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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용쟁호투의 액션 명장면을 만들어낸것은 이소룡이라는 거장뒤에 양사의 공이 숨겨져있다. 그당시 이소룡의 스턴트 대역을 맡은 원화나 단역을 맡은 홍금보나 성룡, 원표는 아직 햇병아리들이였기에 양사가 유일하게 이소룡이 추구하는 장면을 센스있게 잘 받아들여 그와 함께 대본에 있는 액션씬을 연구했다.
원래 존 색슨과 양사와의 결투는 사실 이소룡과 양사가 대결하여 만들어낼 장면이였으나, 그 이전 장면에 그리 비중있는 역할이 없던 존 색슨의 비중도를 높이기 위해 변경한 것이다.[8] 덕분에 존 색슨도 이 작품으로 유명세를 떨칠 수 있었다.
1973년 이소룡 사망 이후, 그는 이를 계기로 단순히 배우로써가 아니라 중국 영화무술의 발전을 위해 다양한 작품에 악역으로 대거 출연하였다. 비록 그의 작품들 전부 B급 액션영화, 비디오 영화였지만 악역으로써의 입지를 단단히 굳혀나가고 있었다. 이때 그는 중국의 헤라클레스(Chinese Hercules)라는 별명을 얻으며 대중에게 크게 어필하게된다.
사람 패는데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는 멘트가 압권.
'''슈퍼 휴먼~~ 비스트 오브 더 이스트, 본 크래커, 헤드 크러셔, 백 스내퍼, 바디 브레이커~!!'''
2.4. 헐리우드 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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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장 클로드 반담의 영화 투혼 [9] 에서 쿠미테 전년도 챔피온인 한국인 '청 리'라는 악역 최종보스 역을 맡으면서 미국에 그의 이름을 떨칠 기회가 찾아오게 된다.
반담은 이미 17살때 이소룡의 주연작인 용쟁호투에서 양사에 대해 잘 알고있었고 양사의 영화를 보고 그의 카리스마에 매우 흡족하여 제작진들과 캐스팅 제안을 한것이다. 반담은 이소룡과 함께 역사를 함께한 이 양사를 캐스팅하는것에 적극 추진하였고 그도 역시 좋은 기회라고 여겨 수락했다. 영화는 150만달러 저예산으로 제작하였지만 무려 제작비의 35배에 달하는 폭발적인 흥행을 일으켰고 반담을 차세대 액션스타로 등극시킨 출세작이기도 하다. 동시에 양사의 카리스마도 대단해서 추후 그의 행보에 사람들은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추후 반담의 영화 1991년 작품 '더블 임팩트'에서도 중간보스인 '문' 역할을 하며 그야말로 미칠듯한 존재감과 포스를 제대로 보여주었다. 당시 그의 나이는 50을 곧 바라보고 있었지만, 젊은 반담을 압도하는 육중한 근육을 여전히 탑재하며 그 위용을 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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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기에 반담의 무술 멘토이며 모토임과 동시에 그의 몸을 만들어준 트레이너의 역할도 했다. 실제 성격은 매우 인자하다고 알려져있지만, 그도 본질이 무술가이기에 무술 훈련에 있어서는 매우 엄격하고 호되게 야단치는 스타일이라고.
투혼 덕분에 헐리우드 입성후 미국 시민권을 얻고 실제 이름을 '볼로 영'으로 개명한뒤, 차이나 타운 중국무술협회의 일원이 되어 본격적인 중국무술 전파와 액션영화의 무술 감독, 코치를 맡았다.
반담의 영화 이후 B급 액션영화 시장의 수요가 하락을 하던 시기였지만, 그는 꾸준히 비디오 영화라도 무술인 배역이거나 악역전담을 도맡아 왔다.
2.5. 은퇴, 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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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슈트파이터라는 작품 이후, 그는 작품활동을 중단하고 무술인으로써 활발하게 활동을 하며, 차이나 타운의 무술인 협회의 회장직에 오르게 되면서 기강 확립에 큰 공헌을 하였다. 그외 러시아 및 아시아권 국가에 트레이닝 초청 세미나를 개최하며 다방면으로 활동했다.
현재 차이나 타운 무술계에서의 존재감은 물론 그의 영향력, 실력에 대한 평가는 어마어마하다. 그도 그럴듯이 그는 몸집에는 어울리지않게 홍콩에서 활동당시에는 태극권과 영춘권을 베이스로한 어떻게보면 몸집에 안어울리는 무술들을 자신의 이미지와 절묘하게 대입시켜 잘 묘사하였고, 헐리우드에서는 동양식 중화무술의 움직임을 배제하고 절도있는 타격감을 보이기 위해 가라테와 우슈, 태권도를 조합한 무술을 선보였다. 특히 장 클로드 반담의 전매특허인 '롤링 소배트'역시 볼로 영의 가르침으로 빛을 낸것이나 다름없다.
그는 합기도, 킥복싱, 전통 무에타이, 필리핀 전통 무술인 칼리, 인도네시아 무술 실랏, 인도 전통무술 앙카 칼라리 파야트, 이소룡의 절권도까지 포함하여 그가 접해보지 않은 무술이 없을정도이며, 2000년도 이후, 홍콩 체육관 협회의 협회장직과 대만의 국제 보디빌딩 팀의 훈련 총괄 매니저를 지낸적이 있다.
현재 LA 몬테레이 파크에 거주하면서 그가 운영하는 무술관과 짐(GYM)이 있는데, '크고 빠르고 강한'몸을 만들어주는 트레이닝으로 유명하다. 그는 "단순하게 근육의 크기만 비대시키는것은 무의미하다, 근육이 크면 큰만큼 그 효율성도 함께 높아져야만 한다"는것이 그의 트레이닝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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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많은 액션영화배우들이 그의 비법 트레이닝을 받았는데 대표적인 예로 '장 클로드 반담' 이외에도 '랄프 모엘러', '마이클 제이 화이트', '에릭 로버츠', 태보의 창시자로 유명한 전직 영화배우 빌리 블랭크스등이 있다. (현재는 그가 직접 지도하지않고 그의 장남 데이비드 영이 아버지에게 비법을 전수받아 트레이너로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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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개봉예정인 "The Whole World at Our Feet"에 그의 절친이자 그와 함께 90년대 헐리우드 B급액션영화에서 동양인 악역으로 이름을 떨친 캐리 히로유키 타가와와 함께 출연을 하였다. 한국나이로 현재 만 70세이지만 여전히 카리스마는 대단하다. 이 영화는 2016년 12월 카자흐스탄에서 개봉예정이다.
3. 그 외
- 슬하에 2남 1녀의 자녀를 두고 있는데 장남인 데이비드 영은 '볼로 주니어'라고 불릴만큼 그와 판박이다. 게다가 양사가 걸어왔던 길을 그대로 물려받아 데이비드 역시 양사에게 직접 무술을 배웠고 미국으로 건너간 뒤에 아버지처럼 보디빌딩 선수로 활동한 이력이 있다. 데이비드는 현재 배우보다는 스턴트 코치, 무술 연출 및 감독으로 주로 활동하고 있다. 연예인들이나 전문 스포츠 선수들을 대상으로 아버지인 양사가 창립한 체육관을 운영하며 무술계, 피트니스계에서 다방면으로 활동중이다. 딸인 데브라 영도 피트니스 모델과 트레이너로 장남인 데이비드와 함께 활동하고 있다. 막내인 삼남 대니 영은 미국으로 이주하여 낳은 늦둥이이고 대니는 현재 평범한 대학생으로 성장하였는데 성인이 된 후 잭키(Jacky) 영으로 개명하였다. 잭키도 결국 아버지의 피는 못속이는지 취미로 주짓수를 시작하여 현재 크고작은 주짓수 대회에 입상하며 아마추어 주짓수 선수로 활동하고 있다.
- 위에 이어 양사는 홍콩에서 활동할때도 배우 활동외에는 개인적인 사생활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도, 공개하지 않았었다. 헌데, 장남인 데이비드가 보디빌더로 활동하며 아버지 자랑을 많이하고 다니는 바람에 장 클로드 반담과 아버지 양사, 자신과 함께 찍은 사진이 유출되어 그때서야 뒤늦게 슬하에 2남1녀가 있다는것을 밝혀졌고, 그뒤로는 개인적인 사생활과 활동들을 많이 올리고 있다. 사생활을 공개하지 않았던 이유는 워낙 악역을 많이 맡아서 행여나 어린 아이들의 신변에 문제가 생길것 같았고[10] 무엇보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아버지를 원망할까봐 걱정되어서 그랬지만, 장남인 데이비드는 아버지를 스승으로 늘 존경하고 자랑하였다. 어렸을때 홍금보의 아들 홍천명과도 '울 아빠가 더 쎄'라고 자주 다퉜다고 하였지만, 지금은 둘도없는 친우이기도 하며 양사는 겉으로는 잘 표현안해도 아들에게 늘 고맙다고 인터뷰에 밝힌적 있다.
양사를 제외한, 왼쪽부터 차녀 데브라 영, 삼남 잭키 영, 부인, 장남 데이비드 영
- 이소룡과는 비지니스 관계로 만났지만, 이소룡과 사후직전까지 매우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늘 둘이 만나면 하는 얘기가 이번에 무슨 영화에 어떤 무술의 초식이 어울릴것 같냐는 그런류의 대화와 웨이트 트레이닝을 같이하거나[11] , 무술수련을 함께했는데 당시 양사도 이소룡의 절권도에 크게 찬사를 보내며, 반담에게 절권도의 기술을 응용한 동작을 가르쳤다.
- 홍금보가 매우 무서워했던 몇안되는 배우였다고 한다. 알다시피 홍금보는 우점원 경극학교 단원중에서 성격이 불같고 가장 싸움을 잘하기로 유명했다. 용쟁호투에서 이소룡과 원로배우 석견을 제외하고는 별볼일 없다고 생각했는데, '볼로'역을 맡은 양사를 보자마자 험악한 인상에 대번에 겁을 먹었다고 한다. 하지만 양사는 위에서 언급하다시피 외모랑 달리 매우 자상하고 인자하며 무술선배로써 홍금보와 그의 홍가반에 많은 조언을 해주고 홍금보를 후배로써 매우 아껴주었기에 대형으로 모실정도. 훗날 장남인 홍천명과 양사의 아들 데이비드 영이 서로 친하게 지내게 되면서[12] 더욱 가깝게 지내게 되었다. 양사 역시 이소룡과 함께했던것처럼 홍콩에서 활동할 당시 홍금보의 스턴트팀인 홍가반의 무술조언을 해줌으로써 인연을 맺게되어 홍금보의 작품에 총 4회출연했다. 그뒤로는 양사가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자주는 만나지못하지만 1년에 한번씩은 꼭 홍콩에서 그의 가족들과 만찬을 가진다고.
- 하지만 의외로 성룡과는 그리 좋은 사이는 아닌것으로 보인다. 1986년 홍금보의 감독작인 최가복성에서 코믹한 악당 배역을 맡았는데, 후일 그가 밝히길 원래 캐릭터는 그게 아니였는데 성룡이 각본과 액션에 끼어들어 배역과 연기역할을 바꿨다고한다. 양사 본인의 카리스마의 문제니거니와 선배에 대한 예의가 부족한 성룡의 태도, 그리고 성룡의 성가반식의 스타일은 자신과 영 맞지않는다고 얘기했다. [13]
- 당연한 것이겠지만 어마어마한 괴력의 소유자다. 웨이트 트레이닝의 대표적인 고중량 운동인 데드리프트를 맨손으로 700파운드(약 315kg)을 들어올리는[14] 강한 힘을 지녔다. 더블 반담에서 소품팀이 촬영용 가짜 양철 드럼통을 구하지못하자, 영화촬영지가 항만 부둣가라서 실제 무게 50kg이 나가는 빈 드럼통이 많으니 그걸로하면 된다며 영화에서 그 무거운 석유 드럼통을 표정하나 안바뀌고 들고 다녔다. 그외에도 평생동안 단 한번도 팔씨름에 진적이 없다고 알려져있고, 홍콩에서 활동했을때 와이어를 달지않아도 사람을 한손으로 번쩍 머리위로 들어올려 메다꽂는 괴력의 소유자였다. 이소룡의 용쟁호투 촬영시에 실제 건달들이 캐스팅됐는데, 이소룡이 한판 붙어보자며 시비를 걸던 건달무리들 한명을 한방에 쓰러뜨린 일화가 있는데, 이때 양사가 무슨일이냐며 나타나자 이소룡에게도 싸움을 걸었던 그 패기있던 건달들 전원이 쭈뼛거리며 아무말도 못했다는 일화가 있다. 거기다 보디빌딩과 파워리프팅으로 다져진 근육, 특히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거대한 대흉근은 돌덩이처럼 단단해서 1989년작 '블러드 파이트'에서 공동 주연한 쿠라타 야스아키가 촬영도중 그의 흉근을 때리다가 손등 뼈가 부러진적도 있었을만큼 맷집도 대단했다. 홍콩 영화계에서 격투센스는 견자단이 최고지만 신체 스펙은 양사가 최고였다.
- 견자단의 어머니 '맥보선'[15][16] 과 같은 고향인 중국 광저우에서 무술학교를 다녔다. 맥보선이 선배였고 그녀와 함께 북소림사 태극권을 함께 사사받았으며, 영춘권도 함께 수련했다. 90년대에 헐리우드에서 활동하면서 맥보선과 함께 미국에서 중화권 무술 전파에 전력을 기울였으며, 이때 미국과 홍콩을 오가며 영화촬영을 했던 그녀의 아들인 견자단의 무술 수련을 도운적이 있다. (양사가 헐리우드에 입성하여 차이나타운 무술계에 영향력을 끼칠수있게 한것은 맥보선의 도움이 가장 컸다고 보면 된다.)
- 이연걸의 1994년 리메이크작 '정무문'에 후지타로 역을 제안 받았으나, 양사 본인이 영화 촬영스케줄로 부득이하게 불참의사를 밝히자 이연걸이 매우 아쉬워했다고 한다. [17]
- 얻어맞는 연기가 매우 실감나기로 유명하다. 본인 역시 악당역의 핵심은 주인공에게 고통스럽게 맞는 리얼함이 악역의 존재감을 더욱 살릴수있다고 강조한다. [18] 리얼리티를 만들어내기위해 때로는 진짜로 멍과 피가나게끔 맞은적도 있는데, 더블 반담에서 반담의 롤링 소배트는 진짜로 맞았다고 한다. 이는 홍가반의 스턴트 액션에도 큰 영향을 끼치게끔 했고, 견자단도 그의 영향을 받아서 스턴트 지도를 할때 직접 맞아보라고 권할정도. 그가 무술감독을 직접 맡은적은 없지만 홍콩과 헐리웃에서도 많은 격투액션영화에서 무술지도를 맡아오고 배우들을 가르쳤다. 그래서 그런지 반담을 비롯하여 그와 출연한 배우들이 다른 연기력은 몰라도 '맞는 연기'는 대부분 리얼하다. 2011년도에 반담과 양사가 행사장에서 서로 만나 ' 마스터[19] 가 제 작품에서는 늘 나한테 맞아 죽었는데, 이제 제가 얻어맞는 영화를 찍을차례죠? '라고 하자 양사는, ' 60넘기기전에 진작 좀 만들지 그랬나. '라는 농담으로 분위기를 훈훈하게 했다고.
- 2007년에 "Blizhniy Boy: The Ultimate Fighter"라는 제목의 액션영화에서 주인공 에릭역을 맡은 쿵 리의 트레이너 배역을 맡아 오래간만에 영화에 복귀하여 그것도 십여년만에 맡은 선역이었지만 법적인 문제가 있어 결국 개봉을 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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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소룡과 정말 많이 닮았다. 양사는 물론이고 양소룡 본인도 인정하는듯, 서로 같이 출연한적이 한번도 없어서 친하지는 않다. 그냥 서로 존중하는 사이정도...
- 영어를 잘했다면 할리우드에서 대성할 수 있었던 배우로 뽑힌다. 할리우드도 악역배우로서의 매력에 흠뻑 빠졌으나 영어 연기가 안되어서 많은 시나리오가 갔으나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지금은 유창하게 영어를 한다. 단, 빨리 말하는건 종종 광둥어가 나올때가 있다고 한다.
- 엄청난 노력파이며,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하루 8시간의 체력단련을 거르지 않았다고 한다. 2020년 기준으로 나이도 있고 해서 공식자리에서는 옷을 안벗지만, 가끔 아들 데이비드가 운영하는 체육관에서 그가 운동하는 모습을 본 사람들의 목격담으로는 근육은 많이 빠졌음에도 여전히 몸은 좋다고 한다.
- 철권 시리즈의 펭 웨이는 험상궂은 외모, 우락부락한 근육질 몸 등 양사와 많이 닮았다. 태그2에서의 태그 상성도 로우에게 우호적이고 7 로우와 펭 스토리도 로우가 도장 운영을 위해 펭을 새로운 사범으로 영입하려는 내용을 보면 이소룡과 양사의 관계와 나름 비슷하다. 다만 키가 168cm로 작은 양사와 달리 펭은 키가 190cm에 달하는 장신이다.
- 다수의 홍콩 영화에서 악역을 맡으며 친분을 맺었던 일본의 액션배우 쿠라타 야스아키[20] 가, 본인이 출연하는 일본 드라마에 몇번 악역으로 캐스팅한 적이 있다. 그 중에서 G멘75[21] 라는 드라마에선 두사람이 워낙 캐미가 잘 맞아서 인기를 얻어 이후에도 여러번 불려가게 되는데, 처음엔 "야, 저번에 내 배역 죽었잖아? 어떻게 처리할려고?"라는 질문에 "쌍둥이 형제가 있었다고 하면 되지"라고 해서 다시 출연하게 되었다. 문제는 그 이후로도 같은 드라마(후속작인 G멘82 포함)에 몇번이나 더 불려가서 최종적으로는 13쌍둥이가 되어버렸다는 것(...).
4. 주요 출연작
개봉예정작까지 포함하면 현재까지 무려 108편의 영화에서 거의 90퍼센트가 악역을 맡아왔다. 본인 스스로도 선역보다는 악역이 더 적성에 맞고 야유를 받을수록 더 행복했다고...
[1] 8~90년대 활동 당시[2] 라오우급의 초근육질이라서 저 작은 키에 몸무게가 이랬다. 비만이 아니다.[3] 쇼토칸 가라테 챔피언 경력이 있다.[4] 장남인 데이비드 영도 그의 유전자를 물려받아 어린 시절에 몸이 너무 허약해서 직접 무술을 가르쳤다.[5] 보디빌딩 스타일의 근비대 운동도 격투기 운동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이다. 근력과 근지구력은 물론이고 신체 내구력을 발달하기위해 오늘날의 격투기 선수들도 반드시 훈련 루틴에 포함을 시킨다.[6] 당시에는 지금처럼 스테로이드를 하는 보디빌더들이 아시아권에서는 극히 드물었고, 심사기준도 지금보다 수준이 많이 낮았기에 양사의 몸 정도면 10년간 타이틀 방어를 하는데도 큰 문제는 없다고 본다.[7] 감독, 각본, 제작은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나오지만 용쟁호투의 실질적인 모든것은 이소룡이 전반적으로 총괄기획한 작품으로 감독을 비롯한 모든 스탭들은 '고용된 것'이다.[8] 원래 각본은 존 색슨이 한에게 맞아죽고 짐 켈리가 살아남는 것이었는데 그의 소속사 에이전트들이 협박이나 다름없는 각본 간섭질을 해서 결국 존 색슨을 활약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양사와의 결투씬도 존이 워낙 지독한 몸치라 이 몇 분짜리 씬을 사흘에 걸려 찍었고, 플립 동작은 원화가 스턴트를 했다고 한다.[9] 해외명 'Blood Sport' [10] 우리나라도 그랬듯이 옛날 악역들은 실제 사생활에서도 많은 안티팬들에게 비난과 야유를 받았고, 실제로 협박성 범죄나 스토킹, 심각한 폭행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제법 많았다.[11] 오죽 했으면 골든하베스트사의 사무실에 바벨을 갖다놨다고...[12] 둘은 아주 어렸을때 영화에 같이 출연한적 있다.[13] 사실 이시기부터 성룡과 원표, 홍금보와이 사이가 서서히 멀어지던 시점이기도 했다. 홍금보도 욕심이 많고 이기주의 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알려졌지만, 사실 성룡도 코믹한 그 이미지와는 달리 유명세를 얻고나서부터 굉장히 거만하고 예의없는 인물이 되었다고 무술감독 원규가 성룡의 과거에 대해 회자한적 있다.[14] 보통 데드리프트를 할때 악력의 힘이 부족하여 그립이 풀리는것을 방지하기위해 묶는 스트랩을 통상적으로 사용한다. 스트랩을 쓰게되면 통상적으로 최대 50kg이상의 중량을 더 들어올릴수있는데, 현재 체중이 120kg이 넘어가는 보디빌더들도 300kg의 데드리프트는 스트랩없이는 못들어올리는것에 주목한다면, 그는 엄청난 악력과 허리힘을 지니고 있음을 증명한다.[15] 구글에서 Bow sim Mark이라고 치면 다양한 무술활동 사진들이 가득할정도로 유명 무술가다.[16] 맥보선은 싸움실력도 어마어마해서 견자단이 태어나기 몇년 전에는 남자들이 수십명이 덤벼도 여자인 맥보선 하나를 이기지 못할 정도였다.[17] 이 역은 홍콩 자유격투기 챔피온출신 배우 '주비리(Billy Chow)'에게 돌아갔다.[18] 반담과 투혼을 찍을때 진짜로 때리지않았는데도 진짜로 맞은줄 착각하여 사과한다고 NG를 밥먹듯이 해서 양사에게 많이 혼났다고 한다.[19] 반담은 양사에게 무술지도와 트레이닝을 받아서 마스터 볼로라고 호칭을 붙여 부른다[20] 이연걸의 정무문에서 여주인공의 삼촌을 맡은 것으로 유명하다.[21] 1975년부터 79년까지 이어진 TBS의 인기 형사드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