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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梁會璲
1922년 3월 07일 ~ 2001년 8월 19일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본관은 제주(濟州)[1]#
1922년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석정리#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한국민사처(KCAC) 경제관으로 근무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전라남도 화순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구흥남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민주당에서 구파에 속하였으며 1960년 12월 구파 소속 정치인들과 민주당을 탈당하여 신민당 창당에 참여하여 중앙감사위원을 지냈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정당 후보로 전라남도 화순군-곡성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민정당에서 중앙당 총무부 차장, 대변인 등을 역임하였다. 1965년 통합야당 민중당이 창당되자 원내부총무, 전라남도지부 부위원장 등을 지냈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처음에는 민주공화당 기세풍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부정선거임이 드러나자 기세풍이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서민호의 대중당으로 이동하였다. 그리하여 1968년 재보궐선거가 치러졌는데, 이 때는 대중당 기세풍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이후 신민당에서 전라남도지부 부위원장, 원내부총무 등을 역임하였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불출마를 선언하고 미국에 유학갔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에 전라남도 화순군-곡성군-담양군 선거구로 공천을 신청하였으나 고재청에 밀려 탈락하였다.
[1] 학포공파 25세손 회(會) 항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