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흥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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具興南
1914년 5월 20일 ~ 1966년 12월 27일
대한민국의 전 교육자, 정치인이다. 본관은 능성 구씨(綾城 具氏) 시랑중파(侍郞中派)[1]다. 관선 전라남도지사와 국회의원을 지낸 구용상은 그의 5촌 조카이다.
1914년 지금의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석고리###에서 태어났다. 평양부 숭실중학교(현 서울 숭실고등학교), 일본 와세다대학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일제강점기 말기부터 교육자로 활동하였다. 서울공립농업학교 교사, 교통부(현 국토교통부) 총무과장, 서울대학교 예과 강사, 한국통운(현 CJ대한통운) 사장 등을 역임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전라남도 화순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국회의원인 민주국민당 박민기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1956년 대한민국 국회 부흥위원회(현 국토교통위원회) 위원장에 선출되었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 박민기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1년 3.15 부정선거 가담을 이유로 반민주행위자공민권제한법에 의해 공민권이 제한되었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전라남도 화순군-곡성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정당 양회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민주공화당 중앙위원을 역임하다 사업 실패로 생활고에 시달리자 자살하였다.

[1] 항렬자를 쓰지 않았으나 본래는 30세 교(敎), 재(在)자 항렬이다. 1세 구존유(具存裕), 2세 구민첨(具民瞻), 3세 구연(具珚), 4세 구천용(具天容), 5세 구식(具軾), 6세 구록(具祿), 7세 구영량(具英良), 8세 구인미(具仁美), 9세 구득전(具得全), 10세 구효장(具孝長), 11세 구정여(具定如), 12세 구중절(具中節), 13세 구환(具桓), 14세 구영록(具英祿) 15세 구흥의(具興義), 16세 구충(具冲), 17세 구종학(具從學), 18세 구인정(具仁貞), 19세 구사민(具士敏), 20세 구응두(具應斗), 21세 구신업(具信業), 22세 구이기(具爾起), 23세 구천수(具天壽), 24세 구윤장(具潤章), 25세 구양욱(具陽旭), 26세 구정직(具廷稷), 27세 구항록(具恒祿), 28세 구본신(具本愼), 29세 구삼모(具三謨), 30세 구흥남(具興南) 순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