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뮤 전쟁

 

영어: '''Emu War''' / '''Great Emu War'''
한국어: '''에뮤 전쟁''' / '''대 에뮤 전쟁'''
'''에뮤 전쟁'''
호주군의 에뮤 소탕 군사작전
[image]
참전한 호주군이 사살된 에뮤의 사체를 들고 있는 모습
'''날짜'''
1932년 11월 1일[1][2] ~ 1932년 11월 9일
'''장소'''
호주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
'''교전 세력'''
<^|1>[image] 호주군
<^|1> 에뮤
'''지휘관'''
<^|1>[image] 조지 피어스
[image] G.P.W. 메레디스
<^|1> 에뮤
'''결과'''
'''호주군의 패배'''
'''영향'''
에뮤의 개체수 지속
호주 서부 농경지의 황폐화
호주 정부가 에뮤의 권리를 인정[3]
'''병력'''
[image] 호주군
• 육군 병력 1개 분대
루이스 경기관총 2정
트럭 1대
에뮤
• 에뮤 2만 마리
'''피해규모'''
[image] 호주군
• 탄약 10,000발 낭비
• 트럭 1대 파손
에뮤
• 12~986마리 추산

이 영상에선 에뮤들을 enemy, 즉 적으로 지칭하고 있다.

한글자막 있음.
In 1932, Australia Declared War On Emus—And Lost
[image]
1. 개요
2. 전개
3. 여담
4.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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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32년 호주에서 호주군이 전개한 에뮤 소탕 작전으로, 세상에서 가장 황당한 전쟁(?)으로 손꼽히는 군사작전.
많은 수의 에뮤를 사살했지만 그 효과가 매우 미미한데다 여론의 반대로 인해 호주 정부는 패배를 인정하였고 작전은 실패로 끝났다.

2. 전개


1932년,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얼마 되지 않은 호주에는 딱히 배운 기술이 없는 퇴역군인 다수가 농부로 활동하고 있었다. 문제는 서부 지역의 벌판에 농경지를 넓히기 시작하면서 토착 조류인 에뮤와의 갈등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작은 야생동물을 막기 위한 울타리를 에뮤 군단은 그 특유의 커다란 덩치를 이용해서 깨부수며 농경지에 침입하였고, 밀밭을 황폐화하는 것으로 농부들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그 해 9월은 기록적인 가뭄이 있었기에 식량이 부족했던 에뮤 군단[4]은 농경지에 지속적으로 침입해서 밀밭을 헤집어놓기 시작한다. 문제는 에뮤 군단의 수가 2만 마리가 넘는다는 것. 이렇게 많은 수의 에뮤 군단을 본 농부들은 처음에는 관공서 전화기에다 불을 내며 도움을 요청했지만 이미 에뮤의 수는 관공서가 해결할 수준이 아니었고, 1차 대전 참전 경력이 있던 농부들이 기관총은 사람을 잘 잡으니까 에뮤도 잘 잡을 거라고 생각해서 군의 파병을 요청하여 당시 호주 국방장관이던 조지 피어스가 대민봉사 겸 훈련으로 루이스 경기관총 2정과 1만여 발의 탄약을 대동한 병력을 파병하는 것을 허락했다. 이것이 1932년 11월 1일[5][6]부터 11월 9일까지 약 일주일 동안 호주 서부에서 에뮤와 인간 사이에서 벌어진 '대전쟁'의 시작이었다.
[image]
요즘에야 새 때문에 전쟁을 선포한다는 게 웃긴 일이지만, 당시에는 가뭄 때문에 식량난도 심각했기에 신문 1면에 에뮤와의 전쟁이 대서특필될 정도의 사건이었다. 물론 영연방 문화 특유의 과장하는 습성으로 '에뮤 대전쟁(Great Emu War)'이라는 명칭을 붙였을 수도 있다. [7]
처음에는 기관총이 있으니까 만 마리 정도의 조류는 바람 앞의 깃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에뮤는 워낙 속도가 빨라서 야지에서는 군용 트럭으로도 쫓아가기 힘든데다가 맷집도 생각보다 튼튼해서 쉽게 죽지 않아 군이 오히려 고전을 했다. 그도 그럴 게 기관총을 사람끼리 전쟁하듯 원거리에서 사격해보니 에뮤는 시속 60km에 달하는 속도로 질주할 수 있기에 쉽게 맞히기 힘들고, 치명타를 줄 수 있는 부분인 머리와 다리는 가늘어서 총에 잘 맞지도 않았으며, 기관총 소리에 놀라지도 않았다.[8][9]
전술의 수정이 필요했던 호주군은 이윽고 트럭에 루이스 경기관총을 설치한 테크니컬을 만들어[10] 기동사격으로 섬멸할 작전을 짜게 된다. 당시 기준으로 고급 무기였던 루이스 경기관총으로 무장한 기갑장비를 대동한 호주군은 에뮤 군단을 상대로 무서울 것이 없었다. 아니 없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전쟁은 항상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기 마련. 기세 좋게 루이스 경기관총을 설치한 트럭이 이윽고 출격하자 어떤 용맹한 에뮤 한 마리의 육탄돌격을 정면으로 맞고 망가져버려 최신식 기갑장비는 너무나도 쉽게 무력화되고 만다.
상황은 더욱 심각해져 에뮤 군단은 게릴라 작전을 펼치며 호주군을 농락하기 시작한다. 에뮤 군단이 소규모로 갈라져 곳곳의 농작물을 먹기 시작한 것이다. 더욱 골치아픈 것은 그 중에 가장 키가 큰 에뮤가 소대장이 되어 호주군의 진격을 감시하고 경계하기까지 했다. 한 무리의 에뮤가 인간의 공격을 받으면 다른 무리의 에뮤가 다른 곳의 활짝 열린 밀밭을 유린하였고 이런 과정이 반복되자 호주군은 전의를 잃기 시작했다.
호주군은 지원받은 탄약 1만 발을 거의 다 썼으나 후하게 산정해도 몇백 마리 정도밖에 안 되는 실적을 남겼다. 당시 동물권 단체 또한 이 전쟁에 지속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었으며 결국 11월 8일 의회가 전쟁의 지속에 대해 난색을 표하였고 다음날인 11월 9일 사실상의 항복을 선언하며 전쟁이 종료되었다. 당시 군 지휘관은 전차보다도 상대하기 힘든 적이라고 심토했다.
사실 말이 전쟁이지, 트럭 1대에 기관총 2정만을 갖춘 한 개 분대의 병사만이 동원된 동물 소탕전에 불과했다. 그것도 대부분의 병사들은 공격을 하는 게 아니라 무기를 손질하고 에뮤들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역할이었다. 당연하지만 전쟁이 거의 없는 호주군이라도 야생동물 잡겠다고 만 단위의 병력을 투입할 이유는 없어서 소규모만 보내 에뮤를 몰살시키는게 아닌 농경지에서 몰아내는 것이 목적이었다. 인간과 다른 병법(?)을 기용하는 에뮤들의 움직임은 역대 인류 역사 상의 군사학으로는 분석이 불가능했고, 때문에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에뮤들을 확실하게 파악해야 했기 때문. 다만 엄연히 군대에 기관총까지 투입하고도 적군이 아닌 야생동물 무리 따위를 몰아내지 못했다는 것이 충격적이고, 워낙 에뮤들이 잘 맞서 싸워서 두고두고 회자되는 것이다. 정말 호주군이 윤리나 자연과의 공존, 비용 같은 건 고려하지 않고 미친 척하고 사단 급의 병력을 투입해 진짜 전쟁을 치렀다면 에뮤들을 몰살시키고도 남았을 것이다. 사실 제대로 된 전쟁이라 할 만한 건 아래 나오는 토끼와의 전쟁이다.

3. 여담


전쟁(?) 이후 농부들은 아예 에뮤 전용 높은 울타리를 거금을 들여 설치하는 등 대응책을 마련했지만 에뮤는 그런 인간의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가뭄이 들 때마다 울타리를 넘어왔고 호주군도 그때마다 불려나와 에뮤 무리와 술래잡기를 반복했는데 이 부분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image]
요즘은 에뮤가 가축화되어서 잡아서 스테이크로 구워먹기도 한다.
현재는 야생 에뮤들도 사람과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으며 독특한 외형 때문에 관광자원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호주군은 과거에도 동물과 전쟁을 선포한 적이 있다. 대상은 토끼. 1850년대 영국 식민지 시절 사냥용으로 들여온 유럽산 굴토끼들의 개체수가 무한 증식하여 초지가 황폐화하여 정작 키우는 소와 양이 뜯어먹을 풀이 없어 굶어죽을 지경에 이르자 시행한 것. 호주에 토끼의 포식자가 없었다고 전해지는 경우가 많은데, 딩고나 뱀, 수리 등이 열심히 토끼를 잡아먹긴 했었다. 다만 이들의 포식량이 토끼의 번식량에 한참 못 미쳤기에 개체수를 줄이지는 못했다.
에뮤의 경우 다 자라면 천적이 거의 없고 수명도 토끼의 몇 배는 되지만 이상증식을 한 것도 아니었고 토착종이 살던 구역에 인간이 진입하여 충돌이 벌어진 것이라 생태계에 문제가 갈 정도는 아니었다. 반면 토끼는 유럽에서 도래한 외래종이고 그 때부터 호주의 식물생태계를 파괴하고 있었다. 토끼들과의 전투에서 2백만 마리 이상의 토끼를 궤멸하고 많은 수를 포로(?)로 사로잡았지만, 이 때 호주에서 생물재해를 일으키던 토끼들은 이미 억 단위로 늘어나고 있었다. 결국 호주는 토끼와의 전쟁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당시 호주군 병사들의 증언들이 꽤나 섬짓한데, '''토끼 수만마리가 일시에 자신들을 향해 돌격을 감행하자[11] 볼트액션 소총 리-엔필드로 무장한 호주군들은 후퇴할 수 밖에 없었고, 모두 죽지는 않았지만 몇 마리가 달려들어서 다리를 미친 듯이 물어뜯어댔다고 한다.''' 어느 중년의 호주군 하사는 회색 털을 가진 굴토끼들을 보고 마치 '''독일군'''과 싸우고 있는 느낌이었다고 말하였다. 총으로도 죽이고, 천적인 여우도 풀어보고, 고기와 가죽을 발라내서 아득바득 먹고 쓰다 군량으로도 만들고, 헐값에 수출도 하고, 그마저도 지쳐서 그냥 시체를 파묻고 태우는 등 별별 짓을 하다가 결국 1950년대에 토끼전염병인 점액종증을 도입하여 수를 줄이는 시도까지 했으나, 이마저도 살아남은 소수의 토끼들에 면역이 생기며 무산되었다. 첫해에는 99%의 치사율을 보이며 토끼 절멸을 달성하나 했으나, 토끼는 면역을 갖추고 바이러스는 숙주를 덜 죽이고 그만큼 더 퍼지는 방향으로 상호 진화되면서 1년만에 치사율이 24%까지 추락, 여기에 살아남은 토끼들의 놀라운 번식력으로 개체수가 순식간에 회복되어 버리면서 바이러스를 이용한 토끼 절멸은 실패로 돌아간다.
인터넷, 특히 4chan에선 동물과의 전쟁에서 호주인들이 항상 호구가 된다고 깐다. 실제로 에뮤는 호주 입장에서는 그냥 귀찮은 놈 수준이었지만 토끼는 토끼 '''역병'''이라 불릴 정도로 심각해 국가적 차원으로 앞에 말했듯 세균전 시도까지 할 정도로 에뮤보다는 진지하게 전쟁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임했지만, 에뮤와는 달리 억단위로 죽어나갔는데도[12] 아직도 호주의 골칫거리로 남아있다. 게다가 에뮤들은 그나마 호주 서부에서만 깔짝거리지 토끼는 호주 전지역에서 활개친다는게 더 큰 문제.
이후 2020년에는 2019-2020 호주 산불과 맞물려서 낙타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MBC 뉴스 영상)낙타 또한 토끼와 마찬가지로 사육용으로 들여온게 야생으로 퍼진 것인데, 호주에는 사실상 낙타의 천적이 없는 상태라서 낙타의 수가 어마어마하게 불어났다. 하지만 이 전쟁 역시 기간은 겨우 5일이었고, 100만 마리 중 1만 마리를 사살하는 정도에 그쳐서, 이번에도 사실상 호주의 참패. 사실 낙타도 토끼 못지않게 호주에서 꽤 말썽인 동물인지라, 가망도 없는 전쟁을 반복해야만 하는 호주의 운명이 그저 안쓰러울 뿐이다.낙타와 토끼 모두 조상들이 들여온 동물이라는 점도 똑같고, 개체수가 급격하게 불어난 점도 똑같다. 이 정도면 정말 동물과의 전쟁을 반복해야만 하는 호주의 운명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문명의 시대 2에서 Great Emu war라는 이름으로 호주 영토로 한정된 정식 시나리오로 출시되었다. 플레이 가능 국가는 호주와 에뮤로 에뮤는 군주제 국가이다. 웃기는 건 '''에뮤 측이 호주보다 기술수준이 높다.'''

4. 외부 링크


영문판 위키백과 Emu War


[1] 왕립 포병 분대가 10월 말 출정했으나 10월 31일, 갑작스런 폭우에 개전이 미루어졌다.[2] 다만 위키백과에서는 11월 2일부터 시작되었다고 서술한다.[3] 에뮤가 장악한 농경지는 포기해버렸다.[4] 실제로 당시 신문에서는 에뮤 군단이라고 기술하였다. 그리고 당시 에뮤와 맞서 싸운 농부들과 군인들은 '''이 표현이 웃기거나 유머러스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5] 왕립 포병 분대가 10월 말 출정했으나 10월 31일, 갑작스런 폭우에 개전이 미루어졌다.[6] 다만 위키백과에서는 11월 2일부터 시작되었다고 서술한다.[7] 사실 호주는 현대에도 동물원 코끼리가 탈주한 얘기가 일간지 1면에 실릴 정도로 별다른 사건사고가 없는 날이 많다.[8] 기관총 소리에 놀라지 않은 건 에뮤가 달리거나 울부짖을 때 소리를 직접 들어 보면 이해가 간다.[9] 몇 겹의 깃털들이 기관총 탄환들을 막아주는 천연 방탄복 역할을 한다는 설은 6.25 전쟁 당시의 M1 카빈의 악평과 비슷한 맥락의 낭설일 것이다.[10] 결과적으로는 이게 패착이었다. 일반 트럭은 군용차량만큼 견고하고 튼튼하지 못하여 길이 없는 곳으로 다니기 힘들고, 결국 길이 없는 곳으로 도망다니는 에뮤를 포위하기 어렵게 되었다.[11] 실제로 토끼, 생쥐 같은 소형 초식동물들은 수의 우세가 분명하게 확보되면 덤벼들기를 서슴지 않는다. 포식자가 자신들이 있는 곳에 왔다는 것은 활동반경이 겹친다는 뜻이고, 그렇다면 도망치는 것보다는 겁을 줘서 쫒아내 다시는 올 엄두조차 못 내게 만드는 게 이득이기 때문이다. 죽어도 숫자가 압도적이니 상관없고.[12] 앞에 말한 200만은 세균전 이전이고 세균전 때에는 무려 수억마리의 토끼가 죽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