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1 카빈

 


'''M1 Carbine'''
''United States Carbine, Caliber .30, M1
M1 카빈''

[image]
표준형 / M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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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철식 개머리판 장착형 / M1A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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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발사형 / M2
[image]
적외선 조준경 장착형 / M3
'''종류'''
반자동소총
자동소총(M2)
'''원산지'''
[image] 미국
【펼치기 · 접기】
'''이력'''
'''사용역사'''
1942년~1973년(미국 기준)
'''개발'''
프레드릭 L. 흉스턴
월리엄 C. 뢰머
데이비드 M. 월리엄스
'''개발년도'''
1938년~1941년
'''생산'''
윈체스터 리피팅 암즈
인랜드[42]
그 외 각종 회사들[43]
'''생산년도'''
1941년~1945년
'''생산수'''
6,121,309정
'''단가'''
45달러(제2차 세계대전 당시)[44]
'''사용국'''
[image] 미국
[image] 캐나다
[image] 대한민국
[image] 중화민국
'''사용된 전쟁'''
제2차 세계대전
- 서부전선
- 태평양 전쟁
중일전쟁[45]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말레이시아 위기
베트남 전쟁
6.25 전쟁
수에즈 전쟁
쿠바 혁명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
북아일랜드 분쟁
캄보디아 내전
앙골라 내전
'''기종'''
'''원형'''
윈체스터 M2
'''파생형'''
M1A1
M1A3
M2
M3
호와 M300
'''제원'''
'''탄약'''
.30 카빈
'''급탄'''
15, 20, 30발들이 상자형 탄창
'''작동방식'''
쇼트 스트로크 가스 피스톤
회전 노리쇠 방식
'''총열길이'''
460mm
'''전장'''
904mm
'''중량'''
2.4kg(탄창 미포함)
2.6kg(15발 들이 탄창 포함)
'''발사속도'''
750RPM(M2)
'''탄속'''
607m/s
'''유효사거리'''
270m

1. 개요
2. 상세
2.1. 활약상
2.2. 현대
3. 파생형
3.1. M1A1
3.1.1. M1A3
3.2. M2
3.3. M3
3.5. 그 외
4. 대한민국과 M1 카빈
4.1. 예비군 사용기
5. 기타
6.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6.1. 게임
6.2. 영화
6.3. 드라마
7. 에어소프트건
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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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hickok45의 리뷰 영상.

1943년에 배포된 교육용 동영상
M1 Carbine. 풀네임은 '''United States Carbine, Caliber .30, M1'''. 대한민국 예비군의 옛 동반자. 통칭은 '''칼빈'''이다.[2]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이 사용한 반자동소총. 제식명이 M1이지만, 당시 제식 소총으로 쓰던 M1 개런드 소총의 카빈 버전이 아니라 독자적으로 설계된 카빈인데다, 사용 탄종도 다르다.[3][4]
애초부터 일반적인 보병용이 아니라 후방 부대나 운전병, 전차병, 조종사 등의 호신용 무기[5]로 개발된 총으로 현대의 FN P90같은 PDW의 조상격 개념으로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처음에는 이런 사람들의 무장을 M1911이나 톰슨 기관단총으로 하려 했으나, 1911은 권총의 한계로 본격적인 전투가 벌어지면 도저히 소총을 상대할 수가 없었고, 톰슨은 너무 크고 무거운 데다, 결정적으로 비싼 단가 때문에 M1 카빈이 서둘러 설계, 제작 되었다.[6]

2. 상세


1938년 미 육군 병기과(Ordnance Department)에서는 지난 제1차 세계 대전에서의 전훈을 바탕으로 일반 소총과 기관총 사이에 위치한 경량 소총(Light Rifle) 도입 사업을 제안한 것을 시작으로 제2차 세계 대전에서의 대규모 수요가 발생함에 따라 1940년 9월에 윈체스터 사가 .32 WSL를 기반으로 탄약(.30 카빈)을 개발하고, 9개 업체에서 총기 개발에 참여하였다.
  • 상용화된 .32 WSL과 유사한 7.62×33mm 규격의 .30 카빈 탄약을 사용할 것
  • 총 중량은 5lb(약 2.27kg) 내외일 것
  • 반동을 최대한 줄일 것
  • 300야드(약 270m)에서도 명중할 것
  • 사수가 1분당 15발의 속도로 150발을 쏠 때까지 심각한 고장이 발생해서는 안됨
  • 상자형 탄창을 사용해야 함
1941년 5월에 윈체스터로부터 탄약 개발이 완성되자 상술된 조건을 만족하는 참여 기종들의 성능을 비교하는 1차 테스트를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2개 업체가 탈락하고 오토 오드넌스, 새비지, 벤딕스, 콜트, 해링턴&리처드슨, 스프링필드 조병창, 우드헐 등 7개 업체만 남아 테스트를 받았다. 이 당시까지만 해도 스프링필드 조병창의 개런드 카빈이 가장 유력했었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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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마셜 윌리엄스

Forgotten Weapons의 콜트 M1929 리뷰 영상

Forgotten Weapons의 윈체스터 G30 리뷰 영상

Forgotten Weapons의 윈체스터 G30M 리뷰 영상

Forgotten Weapons의 윈체스터 M2 리뷰 영상
한편 윈체스터 사에서는 존 브라우닝의 이복동생인 조나단 에드먼드 브라우닝(Jonathan Edmund Browning, 통칭 에드 브라우닝)이 미 육군 제식 반자동소총 사업에 제출했다가 탈락한 콜트 M1929를 작동 방식을 반동 이용식에서 튜브형 가스 피스톤 방식으로 변경하는 등 재설계를 거친 G30을 개발했다. 에드 브라우닝 사후, 뒤를 이어 고용된 데이비드 마셜 윌리엄스(David Marshall Williams)가 G30의 설계안을 기반으로 기존의 튜브형 가스 피스톤을 쇼트 스트로크 가스 피스톤 방식으로 변경한 개량형 G30M을 개발하여 미 해병대 제식 반자동소총 사업에 제출했으나, 이물질 유입에 약한 데다 신뢰성이 떨어지는 단점으로 인해 개런드에 패배했다.[8] 이후 노리쇠 작동 방식을 기존의 틸팅 볼트에서 개런드식 회전 노리쇠로 변경한 M2를 개발했다.
같은 해 9월에 시행된 2차 테스트에 탄약을 개발한 윈체스터 사도 참여 결정을 내리면서 이 개량형 M2를 기반으로 한 카빈 시제품을 제출했고, 15일 간의 심사를 거쳐 스프링필드 조병창, 터너 사, 라이징 사의 경쟁 기종들을 모두 제치고 M1 카빈의 제식명을 획득하였다.
뿐만 아니라 동년 12월 진주만 공습을 당하기 직전 미 해군, 미 해병대에서도 약 350,000정의 계약이 맺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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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은 1942년에는 공수부대의 요청을 받아 개머리판이 철제 접이식으로 바뀌어 휴대성이 높아진 M1A1과 함께 다양한 업체에서 대량 생산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944년에는 자동발사 기능을 추가하려는 시도가 이어지면서 GM 산하의 인랜드 사의 프레드릭 샘슨(Fredrick Sampson)와 폴 해미쉬(Paul Hamish)가 개발한 T17 자동발사 부품을 적용시킨 T4가 동년 10월에 M2 카빈, 야간투시경 부착형 M3 카빈의 제식명을 받아 일본 오키나와 전역에서 운용되었다.
1945년 9월 2일 종전 선언과 함께 생산이 곧바로 중단되었으며, 기존 M1, M1A1 분량들은 30발 탄창 호환, 자동발사 기능 등이 추가되는 등의 오버홀 과정을 거쳤는데 1950년에 발발한 한국전쟁에서 분당 750발이라는 빠른 발사속도(현대전에서는 보통의 발사속도이지만)와 복잡한 부품으로 인한 신뢰성 부족을 경험하면서 제기된 신형 제식소총으로 개발된 M14 소총에게 대체되면서 대부분은 예비 물자로 전환되거나 폐기되는 수순을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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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1960년 초반에 개시된 민간인 사격술 사업(Civilian Marksmanship Program)의 일환으로 약 250,000정이 민수용으로 풀리면서 다양한 업체에서의 복제품들이 쏟아지거나 영화 등에서 대거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고 1970년에 이르기까지 미군에서의 공식 퇴역은 이루어지지 않고 베트남 전쟁은 물론, 그 이후의 미 공군 경비대 등에서의 운용이 계속 이어지기도 했다.

2.1. 활약상


총 자체가 당대의 기관단총보다 '''훨씬''' 가벼울 정도로 엄청나게 가볍고[9] 21세기가 된 지금도 M1 카빈보다 가벼운 기관단총은 몇 개 없다. 카빈이 약 2.5kg 남짓인데 반해 톰슨 기관단총M1 개런드는 그 두 배에 가까운 무게였고 MP5보다도 수백 그램 정도 가벼우며, 기관단총 중에서 가벼운 축에 드는 UMP와 무게가 비슷하다. 나무와 쇠로 만든 구시대적인 디자인에 총열 길이마저 지금 기준으로는 긴 편인 18인치나 되는데도 이렇게 가볍다는 건 특기할 만하다.[10] 또 장탄수도 많으며 반자동 사격이 되고 고장도 매우 적었다. 원래 설계가 자동 사격을 전제로 한 것이었으므로 방아쇠를 빠르게 당기면 자동소총 못지 않은 빠른 발사 속도도 낼 수 있었다. M2 카빈은 실제로 자동 사격이 가능해 비싼 톰슨 기관단총을 일부 대체하기도 하였다.[11] 때문에 공수부대나 일반 보병들에게도 인기가 높았다. 거기에다 제작비도 85달러나 드는 M1 개런드보다 40달러 더 저렴해서, 약 540만 정을 생산한 개런드보다 50만 정 더 많이 생산되었다.
카빈을 위해 개발된 탄환 ".30 US Carbine"은 M1 개런드와 구경은 같으나 형태는 소총탄보다는 권총탄에 가깝고 발사시 특성도 권총탄과 소총탄의 중간 정도다. 원래 코요테나 여우 정도의 소형동물 수렵용 탄인 .32 Winchester Self-Loading를 림리스화하고 생산성 향상을 위해 개런드와 구경을 같게 했을 뿐인 것이다. 실제 위력도 중소형 사냥감 정도를 잡는데 적당하며, 사슴 사냥용으로는 간당간당한 수준이다. 당시에는 반자동/자동소총으로 불렀다. 그렇다고 무시할 만한 화력은 아닌데 총구에너지만으로는 AK-74의 5.45mm 탄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탄속이 훨씬 느리고 탄두 형상이 뭉툭해서 결국 기관단총과 자동소총 사이의 애매한 총이 되었는데 설계시 약간만 욕심을 더 부렸더라면 돌격소총의 시초가 되었을 수도 있었다.
처음에는 아예 착검 장치가 없어 카빈으로 총검술을 연습하는 일이 없었고, 후대에 예비군용은 아예 착검 창치를 떼어버린 경우도 있었다.[12] 대신 지금보다 체구가 작은 2차 대전 당시 미군, 90년대 이전 한국 예비군에게는 딱 맞는 사이즈였다.
사용하는 탄이 7.62mm라고 하니까 AK-47 등의 AKM 계열 돌격소총과 같은 카트리지를 쓰는 것으로 오해받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카빈의 카트리지는 7.62x33mm로 아담한 총탄이고[13] AK의 카트리지는 7.62x39mm로 이보다 훨씬 크다.[14]
제2차 세계대전에서 널리 쓰였고 이래저래 명성이 높은 총기지만, 한국에서는 못 믿을 총 취급받기도 했다. 한국전쟁 당시엔 도망가는 중공군이 이불(바리에이션으로 방한복도 있다.)을 뒤집어 쓰고 도망가는 걸 사격했으나 그냥 계속 도망갔다는 전설도 있다. 미군 병사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는 중공군의 방한복(방탄복이 아니다)조차도 원거리에서는 뚫지 못하는 것 같다는 의견이 많이 접수될 정도였다. 소총 등의 제대로 된 보병용 화기가 미군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던 중공군이 그냥 소총 사격을 무릅쓰고 접근해 수류탄을 던지는데 이걸 M2 카빈으로 저지할 수가 없다는 것.
물론 이는 사실이 아니었으며, 실제로는 .30 카빈탄이 겨울옷을 못 뚫는 게 아니었다. 여기에는 이견이 몇가지 있는데, 일단 첫째로 카빈탄이 약해서 적군이 맞고도 도망갔다는 소문의 근원지가 장진호의 해병대원들이 아니다. 주로 후방 근무 하는 병과에서 이런 소문이 퍼졌다고 하며, 실제 장진호를 경험한 병사들은 혹한으로 인해 카빈 카트리지와 카빈이 제대로 작동을 안한 것 같다는 의견을 냈다고 한다. 또한 자동사격으로 제압(Suppress) 효과를 보려면 상대가 총에 맞을까봐 두려워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중공군도 국공내전에서 실전을 수도없이 경험한 베테랑 출신들이라 전혀 멈추지를 않았다. 또한 여기에는 해병대원들이 난생 처음 겪는 혹한의 추위에 보급품도 떨어지고 식량도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동상 환자와 이질 환자가 속출하며 다 죽어가는 와중에 힘겹게 중공군에게 총을 쐈다는 점도 반영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즉 자기들이 제정신이 아닌 상태라 제대로 못맞춘건데, 쐈는데 못맞췄다고 하기는 뭐하니까 "총이 고장난 거 같아요", 또는 "맞았는데 도망갔어요"라고 변명 했다는 것.
물론 45~65m 정도의 거리라면 M2 카빈의 연사로도 어느 정도 명중률이 나오지만, 척탄병은 대충 50야드(45m) 이내로만 접근하면 수류탄을 던져넣을 수 있는 개싸움의 영역이니 팔자 좋게 사격전이나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것을 중공군이 카빈탄을 맞고도 버티는 것이라 오인한 미군은 좀더 강력한 카트리지를 사용하는 전투소총을 개발하게 되고, 이것이 비운의 제식소총인 M14 소총이다.
하지만 근거리에서는 얘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명중률이 확보되는 180m(200yd) 이내[15]의 근거리에서 적과 조우할 경우 초당 12~13발(분당 750발)의 연사속도 덕분에 압도적인 위력을 발휘한다. 특히 야간 정찰에서 수색대가 장비하는 M3 카빈이 대활약했는데, M3 카빈은 M2 카빈에다가 적외선 스코프를 증설한 물건으로 어둠을 틈타 중공군에게 접근한 후 연사로 일망타진하는 작전이 큰 효과가 있었다. 물론 오늘날 미군이 사용하는 야시경은 당시엔 꿈도 꿀 수 없는 물건이었기에, 분대 중 한명은 자동차 전조등만한 크기의 적외선 램프가 달린 M3를, 나머지는 길다란 망원경처럼 생긴 적외선 스코프가 달린 M3를 소지하는 방식으로 운용했다. M3는 겨우 2,000여정밖에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오늘날에도 이어지는 미군의 야간 작전의 기틀을 마련한 소총이다.
다만 전설적인 장진호 전투 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애초에 추운 데서 쓰려고 만든 총이 아니였던 이유가 컸는지, 카빈이 죄다 맛이 가서 병사들이 카빈을 내다버리고 어떻게든 개런드를 손에 넣으려고 했는데, 장약량이 적어 작동 동력이 비교적 약한데다가 일단은 소총인지라 찬바람에 계속 노출되다보니 총을 격발하더라도 제대로 화약이 전부 타오르질 않고 불완전 연소하여 작동을 위한 가스압을 제대로 못 만들었기 때문. 개런드 같은 30-06 소총탄을 쓴 무기들이야 어떻게든 딱 한발만이라도 발사하고 나면 화약이 워낙 많으니 최소한 차탄을 쏠 만큼의 가스를 만들 수 있었고 총기도 좀 데워지므로 몇 발 쏘다 보면 적어도 전투 중에 맛이 가는 일은 적었는데, 이놈의 카빈은 정상적인 작동을 할 정도로 총을 데우기 위해 필요탄 격발수가 많았고 겨우 데워도 금방 식어버리면 또 그짓을 반복해야했다. 뭐 장진호 전투는 영하 20-30도의 혹한이라 기관단총도 사이좋게 맛이 가는 경우가 많았고 기관총이나 소총도 가끔 가다 몇 발 쏴서 데워줘야 했을 정도로 막장이였으니 이해 할 만 하지만, 그건 딴 사람들 이야기지 전투 당사자인 보병들 입장에선 자신의 생명을 지켜줘야 할 소총이 중요할 때 맛이 갔으니 치명적이었다. 그걸 본 미군들은 악평을 쏟아낼 수밖에 없었고, 그 때문에 미 육군이 M16의 채용에 거부감을 표하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 작은 탄환은 극한 상황에선 쓸모 없다는 이미지가 생겨버린 것이다.[16] 문제는 그 이후론 미군이 추운데서 싸운 적이 ...
남한의 빨치산에서도 카빈은 약하다고 해서[17] 주력 전투병들에겐 개런드를, 여성 같은 후방 인원에게 카빈을 지급했다고.[18] 이 때 찍힌 이미지는 한국군에서 쉽게 없어지지 않아서, (M16을 사용하기 시작한) 베트남전 때까지도 병사들이 카빈보다 M1 개런드를 더 선호하는 경우가 있었다.[19] 물론 권총탄 중에서 손꼽게 강력한 탄인 .357 매그넘보다 1.5배 이상의 운동에너지를 가진 탄이므로 무시하는 것도 곤란하다. 5.45mm와 운동에너지가 동급이라, 유효 사거리 내에서는 대인용으로는 충분하다. 다만 탄두 형상이 권총탄과 같은 라운드 팁(Round Tip) 형상이라, 관통력과 이에 따른 저지력이 차이가 날 수도 있다.

2.2. 현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한동안 생산되었고 M16 소총이 보급되기 전, 베트남 전쟁 초반의 미 군사고문단 요원들은 무거운 M14 소총보다는 도리어 카빈을 더 즐겨 가지고 다녔다. 의외로 M16 보급 이후에도 들고 다닌 사람이 많은데, M16보다도 훨씬 작고 가볍기 때문에 총기류의 선택권을 가진 사람들이 종종 썼다. 게다가 이보다 더 작고 가볍게 마개조한 단축형 물건도 있는데, 총열을 거의 잘라내다시피 하고, 개머리판도 접철식으로 달아서 거의 팔뚝만한 길이로 줄인 경우도 있다. 장거리 정찰 임무를 맡은 특수부대등이 썼다. 걸프전쟁 당시 다국적군 사령관이었던 미 육군대장 노먼 슈워츠코프 장군이 베트남 전쟁 때 들고 다니던 카빈의 사진을 보면 거의 권총(...) 수준으로 잘라내 마개조 한 것을 볼 수 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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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 당시 취향껏 커스터마이징한 카빈의 모습.
기본형과 개머리판만 줄인 경우, 앞뒤를 다 잘라낸 다양한 형태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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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도 1972년부터 2년간 강도살인 행각을 벌인 구로동 카빈 강도사건의 두 범인이 훔친 M1 카빈을 이렇게 잘라서 사용했다. 위쪽 덮개까지 떼어 버리고 점퍼 속에 감추고 다녔다고.
대한민국 국군한국전쟁 이후로도 베트남전 종전 때까지 꾸준히 사용되었고, 2014년까지 예비군, 특히 지역예비군(구 향토)의 주력 소총이었다.[20] 또한 북파공작원이 신뢰성과 휴대성이 좋다는 이유로 M1 카빈을 들고 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64식, 89식 소총등을 만든 호와 공업이라는 회사가 이 M1 카빈을 라이선스 생산하다가 1960년에 M1 카빈을 모델로 호와 M300이라는 자국산 민수용 엽총을 개발했다. 탄창총포도검류 소지단속법 때문에 5발들이 탄창을 끼워팔지만 M1 카빈과는 같은 .30 US Carbine 탄을 사용하기 때문에 탄약 호환은 물론, '''불법이지만''' 카빈용 15발, 30발 탄창도 호환된다.
미국에서도 2차 대전 당시의 명총이라는 이미지와 .30 카빈 탄의 저반동 덕에 민수용 화기로 수요가 있는 편이다. 거기에 구조상 법적으로 문제될 것이라곤 후기형의 착검 장치 정도뿐이라 민수용으로 지금도 생산되는 것은 물론 카빈용 레일마운트와 폴리머 스톡 같은 옵션도 볼 수 있을 정도이다.
간결한 구조에 확실한 신뢰성, 가벼운 무게, 오염에 강한 점 등으로 인해 민간 시장에서도 큰 인기를 얻어 지금도 팬이 많은 총. 이 때문에 공여 기간이 끝나 대한민국에서 회수된 카빈 중 상당수가 미국 일반 총기 시장에 풀렸고 지금도 한국 예비군 번호표가 붙은 카빈을 중고 총기 시장에서 곧잘 볼 수 있다. 참고로 이건 M1 개런드도 마찬가지다.
2010년에는 우리나라에서 미국으로 골동품으로 재수출하려던 M1 개런드와 카빈의 재수출이 미국 의회에 의해 제동이 걸렸다.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0790525 개런드가 7만여 정, 카빈이 77만 정[21] 이상 있는데, 이를 재수출하면 정당 5~10만원만 받아도 큰 돈이 되는 것이었는데, 물량이 엄청나다보니 "범죄에 이용된다"고 미 의회가 제동을 걸었다. 실은 그건 핑계고, 전쟁 중 공짜로 받은 걸 돈 받고 판다는 것부터 말이 안 되고, 미국 내 총기업자들을 보호하려고 딴죽을 건 것이다.
여차여차해서 결국은 헐값에라도 수출하는 쪽으로 결정이 났고, 2010년대에도 미국으로 많은 양이 돌아간 것으로 알려졌다. 예비군용중고총기사례 미국 총기 사이트에서는 예비군 동대 마크가 개머리판에 찍힌 카빈 사진이 올라오고 있고, 가격도 59달러 99센트라는 헐값으로 올라오고 있다. 처음엔 "거의 사용 안 한 치장 물품이 포함되어 있다"라는 소식에 미국 총덕들이 흥분해 있었으나, 실제로 온 것들은 거의 다 현역-예비역을 거쳐 수십 년간 굴려 전부 너덜너덜하게 낡은 총들이었다. 한국군의 "서류상"으로만 미사용 신품이었던 것. 하여간 위력이 사냥용로는 충분히 사용할수 있으며, 반자동 단발, 용량 작은 탄창, 권총손잡이가 분리되지 않은 개머리판 등 모든 조건이 스포츠/호신용 소총에서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기존 미국의 M1 카빈처럼 구입에 제약이 없어 잘 팔리고 있다 한다.

3. 파생형



3.1. M1A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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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otten Weapons의 리뷰 영상
공수부대[22]으로, 접철식 개머리판을 장착한 모델.
기존 M1 카빈과 상당수 부품이 호환되기 때문에, M1A1 카빈의 총열과 내부 부품을 M2 카빈의 총열과 자동 사격 부품으로 교체하여 마개조를 해서 사용하는 양덕후들도 있다. 레일을 붙이는 건 덤. 후술할 마개조형태 만큼은 아니라도 나름 기본형에 가까운 파생형 중 가장 가볍다. 참고로 접이식 개머리판의 중간 부분의 쇳판(?) 비스무리한 것은 칙패드가 아니라 탄창 2개를 보관 가능한 파우치 부착용 고정대다.
M1A2 카빈이란 것도 있는데, 사실 별 다른 건 없고 M1A1 카빈에다 영점조절 가늠자[23]와 착검장치를 단 게 다다. 후기형 M1 카빈과 개선사항이 동일하며, 그래서인지 기존 M1A1 카빈과 동일 취급하기도 한다.

3.1.1. M1A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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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1 카빈에 아래로 접히는 접철식 개머리판[24]을 탑재한 시제품으로, M1A1 카빈을 대체하기 위해 개발되었으나 사장되었다.

3.2. M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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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otten Weapons의 리뷰 영상

1945년에 제작된 M2 카빈 교육용 동영상
자동발사 기능과 대검 장착 기능이 추가된 모델.[25] 탄피 방출구 부분의 조그만 연발/단발 레버와 총열 아래 부분의 착검 장치 외에는 다른 점이 없다.
1944년 5월 인랜드 사에서 개발을 시작했으며 같은 해 9월 M2의 시제형 격인 T4를 500정 생산했다. 몇가지 시험을 거친 후 750RPM이나 되는 빠른 발사속도 때문에 반동을 제어하기 힘들다는 의견이 나온 것[26] 외에는 별 불만 없이 쓸만하다는 평을 받았다.
탄약이 제식 소총탄 보다는 가볍고 권총탄 보다는 세고 자동사격도 되는데다 총 자체도 가볍고(물론 자동발사 기능이 있으니 M2 카빈이 M1 카빈보다 무겁긴 하지만) 대인저지력도 평균 이상이라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군은 톰슨 M1A1 기관단총이나 M3 기관단총을 비롯한 대부분의 기관단총을 M2로 교체하게 된다.
총 약 60만정이 생산되었으며, 1945년 1월부터 생산되었다. 2차대전 후반기에 유럽 전선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고 일본군을 상대로 소수가 사용되었다. 이후 대부분의 M2 생산분은 6.25 전쟁에 쓰였는데, 6.25 전쟁에서 사용된 사례는 이후 미군의 M14 소총M16 소총의 개발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국군에서는 빠르면 한국전쟁 이전, 늦어도 한국전쟁 도중에 미군에게 공여받아 사용하였으며, 한국전쟁 전후 베트남전에서 많은 양을 사용하게 된다. 당시 공여량이 많아서 2014년까지 쓰던 예비군용 카빈 중에도 간혹 섞여있다.[27]

3.3. M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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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otten Weapons의 리뷰 영상
미군은 M2 카빈[28] 중 상태가 좋은 물건을 골라 M1 적외선 조준기와 전방 손잡이를 장착하여 시제품 T3를 만들었다.
오키나와 상륙 당시 소수의 장비가 야간 경계조에 지급되어 기대 이상의 효과를 보게 된다.
가시거리는 70피트(약 21미터) 가량으로 짧고 흐릿했지만 없는것에 비하면 천지차이였다. 이후 100피트 가량으로 개량된 M2 조준기가 장착되어 추가 생산되었고, 한국전에서는 M1 조준기의 2배에 가까운 130피트(약 39미터)까지 볼 수 있는 M3 조준기가 장착되었다.

3.4. 호와 M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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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무기제조 기업인 호와 공업에서 M1 카빈을 개량, 재설계하여 1960년에 개발한 반자동 사냥용 라이플. 군용 소총인 카빈을 개량한 것 때문에 민간 총기에 비해 강한 화력으로 1960년대 일본을 뒤흔든 몇몇 대형 범죄사건에 쓰여서 악명이 높다.

3.5. 그 외


  • M1 Enforcer, Defender
[image]
[image]

권총형으로 개조된 M1 카빈으로, 권총 손잡이를 장착하고 개머리판을 제거하고 총열을 줄인 버전이다.
마를린 사에서 제작한 .22 Long Rifle 탄을 사용하는 모델도 있다.#

4. 대한민국과 M1 카빈


해방 직후 미군정이 폭동진압 및 치안유지 목적으로 경찰에 M1 카빈을 지급한 것이 한국군 및 한국 경찰의 M1 카빈 보유 시초다. 그런데 정작 국방경비대 및 그 후신인 대한민국 국군은 카빈보다는 M1 개런드의 지급이 더 순조로웠는데, 단적으로 대한민국 육군 보병 연대의 총기 인가량은 M1 개런드 약 1,300정에 M1 카빈이 1,200정으로 거의 대등했으나 실제 보유량은 대부분의 연대에서 M1 개런드가 그나마 더 많고 카빈은 인가량보다 600정 이상 부족한 경우가 많았다. 물론 일정치는 않아서 어떤 연대는 M1 카빈이 더 많고 어떤 연대는 M1 개런드가 더 많은 등 들쭉날쭉이었지만, 전반적으로는 M1 카빈이 더 부족했다. 이는 특히 한국 육군의 연대 및 사단이 미군의 동급 부대에 비해 지원부대가 1/3 이하인 등 빈약한 부대였던 탓이 컸다.
그러다가 6.25 전쟁 발발 이후 부족분은 대부분 미군의 군사원조를 통해 충족되었고, 급격한 확장을 거치면서 최종적으로는 거의 50만 정에 달하는 M1 카빈이 한국군에 공급되었다. 특히 M1 카빈은 하사관 및 장교용 개인화기, 그리고 각종 지원화기 운용병력의 개인화기로서 지급되었기 때문에 미군식의 묵직한 편제로 군이 대폭 확장된 1952년 이후가 되면 '''M1 개런드보다도 더 많은 숫자가 공급되어''' 실질적으로 한국군 및 민간인에게는 가장 익숙한 소총이 되었다.
이후 베트남 전쟁 파병을 거쳐 M16 소총이 대량 도입되면서 M1 개런드와 M1918 브라우닝은 단시간에 국군의 일선에서 퇴출되었으나, M1 카빈 및 M2 카빈은 가벼운 무게와 높은 휴대성으로 말미암아 약간 더 오랫동안, 주로 특수부대 및 각급 지원부대를 중심으로 해서 운용되었으며, 이마저도 M16으로 교체된 이후에도 사실상 대체 직후 곧바로 치장장비가 되어 창고에 처박힌 채 썩어간 M1 개런드와는 달리 후방 향토사단 및 향토예비군의 주력 소총으로서 '''2014년까지''' 지속적으로 운용이 되었다. 이 때문에 M1 개런드용 탄약 및 각종 소모품은 1970년대에 이미 생산이 정지되나, M1 카빈용 소모품과 탄약은 1990년대 후반까지도 지속적으로 생산이 유지되었다.
또한 경찰은 1980년대까지 M1 카빈이 주력 소총이었다가 1990년대부터 K2 소총 및 M16 소총으로 카빈을 신속히 대체해서 이제는 M1 카빈을 운용하지 않는다. 특히 1996년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때 강원지방경찰청의 보유 소총은 대부분 카빈이었는데, 사태가 급박해 경찰청에서 강원청 산하 카빈들을 M16을 건너뛰고 한방에 K2들로 교체하며 카빈이 굉장히 빨리 사라졌다. 현재 경찰이 보유하고 있던 M1 카빈은 본래 육군의 M1 카빈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군사원조품목이었기 때문에 최종적으로는 군의 재고와 통합해서 향토예비군 장비로 편입되었다.

4.1. 예비군 사용기


대한뉴스 제886호-유비무환
1969년 경기도 양주 무장간첩 체포 작전 당시 M1 카빈을 든 예비군.
#1 #2 1970년 6월 동작구 국립묘지(국립현충원) 공비 침입사건 당시에 동원되어 M1 카빈을 들고 공비 수색에 참여한 예비군들의 모습.
한국군은 M1 카빈을 수십만 정 수준으로 보유하고 있어, '''예비군 창설 초창기부터''' 2014년까지 이를 주로 예비군의 개인화기로 사용하고 있었다. 보통은 향토예비군 분대 단위에서 분대지원화기로 M16(...)을, 나머지 기본화기로 M1 카빈[29]을 사용하는 방식. 보통은 예비군 4~5년차로 향토예비군에 편입되면서 사용하게 되나, 거주지역에 따라서는 최초 동원예비군 훈련 때부터 향토예비군으로 편입되면서 M1 카빈을 사용하게 되거나 동원미지정훈련 때 사격 훈련용으로 쓰는 경우도 있다.
일단 예비군 사용자들의 경험에 따르면, K2나 M16에 비해서 훨씬 가벼워서 들고 다니긴 편하지만[30], 탄창 지급이 잘 안 되어서 한 발씩 장전해서 쏘는 일도 있다고 한다. 모 예비군 훈련 교관 말에 의하면, 탄창이 너무 낡다 보니 스프링이 다 삭아서 탄을 밀어올리지 못하므로 장전이 안 된다나 뭐라나. 지급받은 카빈의 노리쇠 뭉치와 총몸 간의 유격이 너무 커서 탄창이 탄을 밀어올려도 장전이 안 되어, 사격훈련을 받는 예비군이 탄창을 왼손으로 받치고 사격 조교가 장전손잡이로 장전해주는 아름다운 2인 1조의 하모니로 사격 훈련을 했다는 말도 있다. 아니, 20개 사로 중 1/3 이상이 이런 상황. 1발 쏘고 장전손잡이 당기고, 쏘고 당기고 하는 경우는 저것보다 훨씬 더 흔하다. 또 사격 훈련 시 단발인데 연발로 나가는 일이 종종 있다. 부품(단발자)이 마모되어 일어나는 현상이다. 총열 위 덮개 나무가 떨어져 나가는 건 다반사. 사격 시 화려하게 튀어올라가는 것을 직접 목격한 사례가 굉장히 많다. 덤으로 좀 험하게 굴린 물건들의 경우 목재 부품들의 코팅 등이 벗겨지고 나뭇결이 거칠게 일어난 경우도 있어서 별 생각 없이 만졌다가 손에 가시가 박히는 경우도 가끔 있었다. 크게 다치는 건 아니지만 상당히 기분 나쁜 경험이라고(...)
위력이 약하긴 약한 지 25미터 사격장을 정리하다 보면 종종 탄두가 발견되곤 했다. 타이어로 막아둔 후방 진지를 뚫고 나가지 못했던 모양.
다만 이러한 경험은 예비군 훈련 시 지급되는 카빈이 훈련용으로 막 굴려지는 물건들이라 그렇다. 예비군들에게 총 나눠줘봐야 땅에 끌고 다니고, 발로 차고, 깔고 앉고, 총구에 담배꽁초 틀어막고 등등 해대는지라 상태가 엉망인 게 당연할 수밖에. 반대로 예비군 훈련에 지급하지 않고 치장물자로 진공포장되어 관리되는 카빈들은 상태가 깨끗하며, 심지어 스크래치 하나 없이 공장에서 막 출고된 마냥 깨끗한 카빈들도 간혹 있다. 2018년 기준으로 군지사 폐기장 무더기를 잘 뒤져보면 상태가 매우 좋고 깨끗한 M1 카빈 탄알집이 한가득 있다...
쏘아 보면 반동은 M16이나 K2에 비해서 약간 적은 편이지만, 권총손잡이가 없고[31], 왼손 쪽도 파지하기 어설퍼서 발사 시 총기가 제대로 고정되지 않고 튀는 느낌이다[32]. 그런데 비해서 탄착점은 잘 모이는 편. 성과제 조기 퇴소제가 적용된 현재, 지름 9cm의 원 내에 탄착군을 다 모으는 사람이 과반일 정도. 육군이나 해병대 병장 전역한 예비역이면 이 정도 사격 실력은 당연한 거지만, 명심하자. '''이 총은 2차 대전, 6.25 때 굴러먹다가 예비군 물자로 질질 끌고 다니던, 단발식 소총 이하의 연사력을 지닌 골동품이다.''' 최대 문제는 '''환갑이 넘은''' 노후한 조준 기구들 때문에 겨냥이 제멋대로인 점이다.
카빈용 소모품은 1992년까지는 생산이 되었으나 그 이후로는 생산되지 않은 것이 거의 확실하다. 현재까지 한국 국내에서 꾸준히 생산되는 카빈용 소모품은 탄약뿐이며, 그나마 탄약을 군용으로 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제조사의 해외 수출용 스포츠 탄약을 재포장해서 군에 납품하는 것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예비군에서도 카빈은 퇴출 되었다. 이미 생산한 탄 재고는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카빈은 신뢰성 높고 고장이 적을 뿐, 전시에는 향토예비군도 현역용과 탄환이 호환되는 M16이나 K2를 받을 것이다. 동원예비군은 전시에 부대로 복귀하니 당연 K2, K1을 쓰게 된다. 동원훈련 시즌이 끝나고 나면 몇 정씩 부숴서 나무 부분은 그냥 타는 쓰레기로 버리고 금속 부분은 분해해서 부품용으로 쓴다.[33]
실제로는 가볍고 다루기 쉽고 신뢰성 있고 잘 맞기까지 하는 명총이지만,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접하는 카빈은 이렇게 골골대는 노인이나 다름없는 오래된 카빈만 예비군 훈련장에서 접하게 되는 통에 그저 고물로만 인식하고 있다. 사실 몇 십 년간 써먹은, 최소한도로 잡아도 20대 중반 이상인 사용자들의 아버지들보다 나이가 많을지도 모르는 총이 정비도 제대로 받지 못했는데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만 해도 무진장 대단한 거다.(...)
2차대전 당시 미국의 전시동원령에 따라 많은 회사가 카빈을 생산했는데, 잘 보면 각 제조 회사별로 나무 부품 모양이나 장전손잡이의 모양이 조금씩 다르다. 물론 호환은 거의 된다.

현재 M1 카빈은 도태장비로 분류되어 예비군 향방기본훈련에서도 M16A1을 사용한다.[34] 2014년 중반에도 예비군이 여전히 카빈을 쓴다고 까는 기사가 난 이후 국방부에서 공식적인 교체 계획을 발표했는데, 이 당시에 예비군 훈련 지원임무를 담당하는 지역방위(구 향토)사단 보병대대에 현역병으로 복무하고 있던 사람들은 부대 무기고에 있던 카빈들을 모조리 꺼내 망치로 직접 작살내는 전량폐기 작업에 동원되었다고 한다.[35] 현역들에게 풀리는 K2C1 소총으로 M16A1을 예비군으로 밀어내기 해서, 2017년 즈음에는 M1 카빈은 예비군에서도 전량 퇴역하고 예비군용 소총은 전량 M16A1 혹은 K2로 대체될 예정이다.

5. 기타


  • 이 총의 개발자 중 한 사람인 데이빗 마셜 윌리엄스는 이 총의 개발 당시 죄를 짓고 감옥에 수감 중이었는데, 이 총의 개발로 명성을 얻고 가석방까지 되었다는 루머가 있다. 그러나, 실제로 데이빗 M. 윌리엄스는 20세 때인 1921년 보안관을 살해하고 2급 살인죄로 수감, 1931년에 석방되었다. 이 기간 중 데이빗 윌리엄스는 노동교도소에서 복역하면서 권총 및 기관총 설계 특허를 몇 가지 냈었는데, 이게 와전된 것.

    이후 그의 기술을 적용해서 윈체스터 사의 총기 개발자 에드 브라우닝[36]이 훗날 M1 카빈의 원형이 되는 .30-06구경 M2 소총을 설계하던 중 이 총의 설계를 마치지 못하고 사망했다. 그러자 윈체스터 사는 위의 데이빗 M. 윌리엄스를 채용해서 소총의 설계를 마무리하게 했다. 이 과정에서 탄약의 변경과 육군의 신형 카빈 채택이 이뤄진 것이다.

    요약하자면 데이빗 윌리엄스가 카빈의 개발로 명성을 얻은 것은 사실이나, 그 덕분에 석방된 것은 아니다. 이런 소문이 돈 것은 데이빗 윌리엄스의 인간승리 스토리가 1952년에 적당히 각색되어 영화화[37] 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탓이다.
  •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전시동원령에 따라 여러 회사들이 카빈을 생산했다. GM(제너럴모터스)의 비자동차 사업부인 Inland Division을 비롯해, 쓰레기통 깡통 만들던 Rock Ola라는 회사도 있다. 제조회사명은 가늠자 근처 상단에 음각으로 새겨져 있는데, 예비군 훈련 때 총신에 쓰여 있는 각인을 잘 보면 의외의 상표명이 가끔 보인다. 바로 IBM. 2차대전 당시에는 컴퓨터 회사가 아니라 International Business Machine이라는 풀네임 그대로 사무기기, 즉 타자기같은 것을 만들던 회사였고, 총기 제조와 공통점이 많은 그 생산 라인을 개조하며 총기를 공급한 것이다.[38] 이런 회사들의 카빈은 대부분 소수만 생산되었고, 가장 많이 생산한 회사는 원 개발사인 윈체스터 리피팅 암즈, 그리고 제너럴 모터스의 비자동차 사업부인 인랜드(Inland) 디비전이다. 참고로 인랜드의 생산량은 윈체스터보다 훨씬 많다. 그 이유는 당시 윈체스터는 스프링필드 조병창의 M1 개런드 생산도 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1972년~1974년 사이 활동했던 구로동 카빈 강도사건의 두 범인이 예비군 무기고에서 카빈 3정을 탈취해 범행에 사용하였고, 최단기간내 다량학살 용의자 우범곤이 탈취해 사용한 총기가 카빈이었다. 사실 범행에 사용한 모델은 M1은 아니고 M2 카빈, 물론 조정간이 존재하지 않는 모델이다. 그 이외에도 양구 다방 인질극 사건을 비롯, 군경의 카빈을 탈취하여 범죄를 저지른 사례가 여럿 있다.
  • M1 카빈이 처음 보급되었을 때 당시 별명은 '아기 개런드'였다. 물론 실제로는 전혀 다른 총이다.
  • 전기형 M1 카빈과 후기형 M1 카빈은 차이점이 있는데 전기형 카빈들은 총검 장착을 위한 총검돌기가 없으며, 목재 부품의 색도 진한 색이고, 가늠자가 조정이 불가능한 ㄴ자 형태이고, 슬링고리가 없다.
  • 2019년 2월 Korean 서브레딧에 한국에서 수입된 M1 카빈의 스트랩에 달린 "익숙한 국방부 마크"와 한국어 문구의 뜻을 묻는 포스트가 올라온 것으로 보아, M1 개런드가 그랬듯 미국으로 소량씩 역수출되는 중인듯.

6.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M1 개런드, 톰슨 M1A1, M1918 BAR과 함께 2차대전의 미군이 등장하는 매체에서는 거의 모두 등장한다. 비전투병과용 무기라 대부분 의무병이나 전차병이 들고 다닌다.

6.1. 게임




'''M1 카빈'''
'''M2 카빈'''
주로 총탄이 약하단 이유로 리볼버보다 약하게 나오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357 매그넘의 1.5배 가량의 위력을 가지고 있다.
북북이(M3 그리스건)와 더불어 안 좋은 의미로 최강의 총 중 하나. 사격 딜레이가 적어 마우스를 클릭하는 족족 발사가되며 적은 반동으로 컨트롤이 용이하다. 하지만 데미지가 안습하여 1:1 상황에서도 자주 밀리는 모습을 보인다. 사격 딜레이가 적은 것을 이용하여 키 옵션으로 즉석 M2 카빈으로 마개조가 가능하다. 사격키 1, 2번을 마우스 휠 업 버튼과 마우스 휠 다운 버튼으로 각각 설정해준후 마우스 휠을 위아래로 마구 굴리면 톰슨에 비견할 정도의 연사속도를 보여준다.
바주카병의 부무장으로 등장. 성능은 전작이랑 비슷한 느낌이지만 일반 보병의 부무장처럼 권총이 아니고 엄연히 소총인 관계로 부무장 치고는 상당히 좋은 편에 속한다. 부무장이라 지급탄수는 좀 모자르지만... 반대로 아예 바주카를 부무장으로 하고 보급병옆에 바짝붙어서 지속적으로 탄을 보급받아 카빈으로만 적을 상대하는 굇수들도 존재한다.
장교와 통신병의 주무장으로 등장. 저지력이 낮지만 반동도 적다. 그리고 무게가 가벼워서 부무장이나 수류탄을 추가로 들 수 있다. 공수부대가 등장하는 맵에선 공수부대용 M1A1도 동시에 등장한다.
일부 병과의 반자동소총으로 등장한다. 빠른 연사력 덕에 근거리나 중거리에서 좋은 화력을 발휘할 수 있다.
여러 팩션의 여러 병과의 반자동 및 자동소총으로 등장한다.
M1 카빈의 경우 월맹군과 베트콩의 새퍼나 지휘관이 AKM 대신 들 수 있는 화기로 나온다. 같은 반자동소총인 SKS-45보다 데미지는 낮지만 저지력이 더 좋고 반동도 더욱 적은 편이다.
M2 카빈은 미 육군이나 미 해병대, ANZAC, 그리고 ARVN의 여러 병과[39]들이 들 수 있는 화기이다. M16A1처럼 화력은 뛰어나지만 자동으로 사격할 시 반동 제어가 어려워 탄 퍼짐이 심해 중거리 이상에서 완전자동으로 사격할 시 명중률이 영 좋지 않다. 따라서 보통은 근거리 교전에서만 자동으로 갈겨버리고 중거리(50m 정도) 이상부터는 반자동에 맞추어 놓고 사격한다.
위의 스코프와 야간투시경이 장착된 M3 버전이 'M1S 스누퍼' 라는 이름의 저격소총으로 등장하는데, 저격소총답게 강력하고, 소음기도 장착되어 있고, 야간투시 기능까지 있어 매우 유용하게 쓰인다. 다만 탄이 많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속칭 '살금살금' 미션이나 미션 7-1 처럼 야간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경우에 주로 사용하게 된다. 그 외의 장거리 교전 상황에는 탄 넉넉하고 강력한 마우저나 근접전에서도 좋고 힘 좋은 FG42가 있는지라 잘 쓰지 않는다. 그런 경우에 쓰기엔 정말 어지간히 급한 경우가 아니면 총알이 아깝기도 하고..
미래 시점인데도 등장한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핑크 공업사에서 만들어낸 짝퉁으로 추정된다.
M1A1 카빈이 카빈이란 이름으로 등장.
공수부대용 M1A1이 돌격병 무기로 등장, 유저 사이에서 1티어 무기로 분류될 정도로 사기다. 모델링은 딱딱선의 M1A1을 우려먹은 듯한 모양새다.
M2 또한 업데이트 되었다. 냉각용 구멍이 송송 뚫린 상부 총열 덮개 및 하단 수직손잡이가 추가된 형태로 등장. 낮은 데미지가 흠이지만, 저반동 고연사 라는 특징 덕에 배필의 유구한 전통인 저반동고연사=대세무기 반열에 입성했다.
또한 마지막 업데이트로 M3 적외선 스코프 모델이 나왔다.
공수부대용 M1A1 카빈이 6지역 한정 3성 전술인형으로 등장. 자세한 건 M1A1(소녀전선) 항목 참조.
반군의 반자동소총으로 등장한다. 2차 대전 때 무기라 도트 사이트 등이 달린 모습을 보면 뭔가 기묘하다.
실총처럼 가볍고, 연사력이 매우 높으며[40] 또한 반자동 소총이라는 점때문에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공격력이 높은 편으로 꽤나 인기가 많다. 우스운 것은 M1 Carbine을 전자동으로 개선한 M2 Carbine보다 늦게 추가된 총기이기 때문에 M2 Carbine보다 오히려 비싸다. M1 Carbine은 35000KP, M2 Carbine 33000KP 이다.
후방부대원(공병 포지션)들이 사용하는데 성능은 뭐......다만 제압사격 기능을 사용하면 적들이 몇 초 만에 제압된다.

공수부대용 M1A1이 미군 무기로 등장한다. 데미지도 높고 장탄수도 많지만 탄 수급이 어렵다.
미군 무기로 등장한다. 반자동 소총 중 장탄수가 가장 많지만 데미지가 가장 낮다.
M1 카빈이 M1A1 카빈이라는 이름으로 등장. 멀티에서 최종 언락되는 무기로 데미지도 적당하고 연사력도 빠르고 반동도 적고 장탄수도 많아서[41] 반자동 소총 중 가장 많다. OP무기 중 하나.
Rezurrection DLC로 추가되는 월드 앳 워의 4개의 좀비맵에 등장. 성능은 월드 앳 워의 그것과 동일.
M1 카빈이 M1A1 카빈으로 등장. 서플라이 드롭 바리에이션 중 실제 M1A1 카빈도 있다.
업데이트로 전자동 버전인 M2 카빈도 추가되었는데 모델링은 M1A1 카빈에다 조정간과 방열판을 단 모양새다. 서플라이 드롭 바리에이션 중 원형 M2 카빈도 존재한다. 밸런스 때문인지 연사력이 실총보다 훨씬 느리다.
M1 카빈이 미군의 공수부대원과 전차병의 무기로, M2 카빈이 M1/M2 카빈이란 이름으로 미군 보병의 라이플 약장 마지막에 언락 가능한 괴악한 조건의 무기로 등장한다.
M1 카빈은 M2가 추가되기 전에는 데미지가 약 35로 몸통에 3발만 맞춰도 골로 갔는데 웃기게도 M2가 추가되면서 25 수준으로 떨어졌다. 즉, 반자동인데도 불구하고 몸통에 4발이나 맞춰야 간신히 죽인다.. 아쉽게도 탄약을 업그레이드해도 여전히 4방컷.
M2 카빈은 최소 데미지가 권총보다 낮지만, 악랄한 1004RPM의 연사력으로 이를 커버하며 근거리의 적들을 삭제할 수 있다. 그리고 게임 내의 자동소총 중 유일하게 영점 조절이 가능한 총기이다. 그리고 너프 먹고 반동이 산으로 가서 코 앞에 엎어놓고 쓰는 돌격전 병기로 그 위세가 크게 하락했다. 후에 연사력이 666RPM으로 너프되고 반동도 같이 줄었다.
Y-Build에서 M1A1 카빈이 추가되었다. 외관만 다르지 성능은 기존 공수부대원, 전차병의 M1 카빈에서 무게 1칸 줄어든 것 외에는 그대로다.
M2 카빈이 등장. 현대전임에도 현금으로 주고 사야하는 총기지만 능력치나 성능은 잉여다. 현재는 판매종료되었다.
이후 기존의 M2의 단점들을 보완하여 220레드티켓으로 판매중이다. 기존의 단점들을 보완하여 출시를 하였는데.. 여전히 쓰기 힘들다는 평가가 많다.

6.2. 영화


제101공수사단 대원 중 일부가 접철식 개머리판이 달린 M1A1 카빈을 사용한다. 공수부대용이니...
호바스 중사가 사용하며, 그 외에도 제101공수사단 소속 대원들이 공수부대용 M1A1 카빈을 사용한다.
남베트남군 병사 일부가 들고 다닌다.
나바호족 통신병 벤 야지와 찰리 화이트호스가 주로 사용했다.
초반부 미군으로 위장한 소련군 병사들이 M2 카빈을 사용한다.
여러 미군 병사들이 사용한다.
잭 글로버 대위, 맨빌 중위, 의무병인 어브 셱터를 포함해서 미군 장교, 무전병과 몇몇 병사들이 사용한다.
1과 2 모두 반군 지도자인 페일러가 사용한다.

6.3. 드라마



7. 에어소프트건


  • 에어코킹건
중국 시마社에서 제작을 하였으며 저렴한 가격을 생각하면 준수한 외관의 제품이다. 토이스타에서 수입, 판매중이다. 토이스타에서 박스형 탄창과 멜빵끈을 추가로 제작, 판매한다.가격은 인터넷 기준으로 11만원 정도.
  • 가스건
마루신에서 6mm, 8mm로서 두가지 버전을 출시했으나 마루신 특유의 고가&소량생산&낮은 신뢰성으로 인해 구하기도, 설사 구해도 쓰기 난감한 수집용 아이템이였지만 킹 암즈에서 일반 가스&CO2작동 버전으로 발매하며 해당 총기형태의 모델을 구하기도, 게임에 사용하기에도 수월해졌다.
2019년 스프링필드 병기창에서 실총과 거의 비슷한 구조와 작동방식을 가진 CO2 가스건을 발매했다.
블로우백 방식으로 다른 버전들과 다르게 발사할때 장전손잡이가 뒤로 끝까지 당겨진다.
스프링필드 레플리카 에어건 리뷰:

  • 전동건

보이즈 기박을 사용한 전동건이 존재하는데...기어박스를 이식하기 위해서 실총보다 뚱뚱한 모습으로 변했다.

8. 둘러보기




























[1] 전차병과 공수부대원을 위해 개발된 모델.[2] 왜 카빈이 아니고 칼빈이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아무도 카빈이라고 부르지 않고 군이든 사회든 가리지 않고 모두 칼빈이라고 불렀다. 위 영상의 hickok45 할배의 발음을 들어보면 알겠지만 미국에서는 '''r'''이 묵음이 아니라서 카얼빈 혹은 카ㄹ빈 비슷하게 들린다. 때문에 맞춤법 표준안이 보편적으로 사용되기 이전에는 다들 칼빈이라고 불렀고 실제로 적을 때도 대개 칼빈이라고 적었다. 따로 문서가 개설된 구로동 카빈 강도사건만 해도 당시에는 전부 '''칼빈 강도사건''' 혹은 '''칼빈총 강도사건'''이라고 불렀다. 실제로 예전 드라마 수사반장에서도 저 사건을 모티브로 만든 에피소드 제목이 '''칼빈총 강도'''였다. 때문에 M1 카빈을 직접 만져본 연령대의 경우 밀덕이 아닌 이상 지금도 칼빈이라고 해야 알아듣지 카빈이라고 하면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다. 제식명인 M1 또한 마찬가지인데 M1은 과거 M1 개런드를 부르던 통칭이고 M1 카빈은 '''칼빈총''' 또는 그냥 '''칼빈'''이라고 불렀다. M1 카빈에 M1, M2 등의 제식 번호가 붙는다는 사실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M16도 /엠심뉵/이 아니라, /에무심뉵/이라고 발음하는 옛날 세대도 있다.[3] 비슷한 사례로는 제식명이 M1으로 같은 톰슨 기관단총이 있는데, 이쪽은 개런드가 개발에 들어가기도 전인 1차대전부터 개발되기 시작했다.[4] 사실 개런드도 카빈화되어 카빈 사업에 후보로 들어왔으나 M1 카빈에 탈락했고, 그 이후에도 T26 등 M1 개런드를 카빈화하려는 시도가 있긴 했으나 무산되었다.[5] 장교의 권총을 대체하기 위하여 개발되었다는 설이 있다.[6] 또한 이로 인해 후속 기관단총으로 M2 기관단총M3 기관단총이 개발되었다.[7] 개런드 카빈은 성능이 뛰어났으나 상부에서 급탄한다는 단점이 있어 하부 급탄 방식으로 개량했지만, 이 과정에서 중량이 무거워졌고 신뢰성이 감소되었다.[8] 이후 M1 카빈이 제식화되자, M1 카빈의 설계를 반영한 개량형인 G30R이 개발되었고, 이를 기반으로 한 자동소총형인 WAR(Winchester Automatic Rifle)이 개발되었으나 종전으로 인해 채택되지 못했다.[9] 그래서 예비군들이 좋아했다.[10] 물론 이렇게 가볍게 만들기 위해서 총열을 상당히 얇게 만들었다. 원래 용도대로 중근거리 반자동 사격할 때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자동 사격이나 중장거리 사격에는 총열의 내열성이나 집탄성 면에서 불리하단 평을 받았다.[11] 톰슨 기관단총이 구조를 최대한 간략화 한 결과 생산비가 225달러에서 45달러까지 떨어졌지만, M2 카빈은 처음부터 생산비가 45달러였고, 톰슨보다 위력이 좋고 사거리도 더 길고 가벼웠다.[12] 물론 2차 대전 중 일선의 요구로 착검 장치가 추가되고 전용 대검인 M4가 지급되는데, 이 M4 대검의 디자인은 M16 소총에 착검하던 M7 대검까지 거의 그대로 이어지고 이 디자인은 지금까지도 대인 전투용(인명 살상용)으론 매우 효과적이란 평을 받는다.[13] 권총탄인 .357 매그넘(9×33mmR)보다 조금 가는 정도.[14] 7.62x33은 생긴것도 매그넘 권총탄과 비슷한 반면, 7.62x39는 탄피에 테이퍼각까지 들어간 두툼한 소총탄이다. 운동에너지 차이는 약 1.5배.[15] 제원상 유효 사거리는 270m(300yd)이지만, 180m를 넘어가면 명중률이 낮아져서 실질적인 유효 사거리는 180m라고 봐야 한다.[16] 그래도 M1 카빈의 희생(?)으로 얻은 전훈 덕분에 한반도의 극심한 연교차를 대비해서 K2 소총에는 가스조절기가 채용되었다. 자주 분실해 본 사람은 그냥 M16처럼 고정식으로 만들면 안 되나 싶겠지만, 안타깝게도 M16은 장진호 전투처럼 극한기 전투에서는 기관 고장을 일으킬 가능성이 비교적 더 높다.[17] 물론 카빈이 평범한 상황에선 사람을 죽이는데는 별 문제 없었지만 산악전 특성상 엄폐물 뒤에 숨은 적을 쏘아야 할 일이 많았는데, 권총탄과 다를 바 없는 카빈은 엄폐물 관통은 불가능하다시피 했고 나뭇가지 몇번 관통하면 살상력이 대폭 떨어질 수도 있었다.[18] 빨치산이 여성 대원에게 카빈을 지급한건 꼭 전투력이 떨어져서만은 아니고, 신체 조건을 고려한 면도 있다. 소설이긴 하지만 태백산맥(조정래)에서는 여성 대원의 체구가 작기 때문에 일부러 작고 가벼운 카빈을 구해다 주는 장면이 잠깐 나온다. 당시 한국 여성 평균 신장으로는 개런드를 메고 숲속을 다니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 이 외에도 실제로 군 복무 경험자 중 신장이 작은 경우 카빈이 더 편했다고 평가하는 경우가 꽤 있다.[19] 물론 미군보다 체구가 작은 국군에선 개런드가 너무 크고 불편한데다 장탄량도 적고 연사도 느리다고 카빈을 더 선호한 경우가 많다. 개런드는 1980년대 즈음엔 예비군에서도 퇴역했지만 카빈은 2010년대까지 쓰인 것을 보면 알 수 있다.[20] 서울에서는 일찍 M16으로 교체됐지만, 지방에서는 무척 오랫동안 사용되었다.[21] 개런드 수량이 적은 이유는 90년대에 수십만 정을 수출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카빈은 예비군/경찰용으로 남겨 뒀고.[22] 공수부대 뿐만 아니라 전차 승무원을 위해서도 만들어졌다.[23] M1 카빈은 가늠자가 2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영점 조절이 가능한 가늠자고, 다른 하나는 M16 소총에서도 보았을 만한 ㄴ자형 가늠자이다.[24] 스털링 기관단총의 개머리판이 이런 식이다.[25] 사실 대검 장착 기능은 후기형 M1 카빈에서도 추가되었다.[26] 애시당초 .30 카빈 탄은 반동이 약한 편이다. 근데 .30 카빈 탄보다 반동이 더 강한 5.56×45mm NATO 탄을 사용하는 M16 소총은 발사속도가 700~900RPM 정도인데도 불구하고 설계한 의도대로 자동사격시에도 반동을 제어할 수 있다. M2 카빈이 반동이 큰 것은 가벼운 무게, 권총손잡이의 부재, 그리고 총열과 일직선을 이루지 않은 개머리판 축선으로 인한 총구들림으로 인한 것으로 사료된다.[27] 단, 예비군용 M2 카빈은 조정간 레버는 붙어 있지만 내부 부품이 달라서 자동발사는 안 된다. 단발자 부품이 낡아서 그냥 자동발사되는 건 꽤 많았다.[28] [image]
M1 카빈을 기반으로 한 것도 있다. 위 사진은 조정간이 없는 것과 15발들이 탄창을 달고 있는 것으로 보아 M1 카빈을 기반으로 한 것을 알 수 있다.
[29] 간혹 M2 카빈이 섞여 있기도 한데, 우리 군이 보유한 M1 카빈도 대부분 연발 개수를 받았으므로 구분법은 총번을 보는 수밖에 없다. 애초 자동화기로 생산된 M2 카빈은 M2라고 적혀 있다.[30] 사격훈련이 아예 없는 향방작계 훈련 같은 경우 괜히 무거운 M16에 비해 들고 다니기 가벼운 카빈이 훨씬 선호받는다.[31] 하지만 생각 외로 파지감이 나쁘지는 않아 사격에 큰 불편함은 없다.[32] 하지만 K2와 M16을 다 써본 예비역의 말에 의하면 K2보다는 불편해도 오히려 M16보다는 편하다고. 물론 해당 예비역이 현역 시절 K2를 썼으니 판단은 알아서.[33] 향토사단의 정비부대 같은경우 이런 총들을 일부 모아 부품을 구해서 정비한다. 당연히 부속이 없어서 보급되지 않기 때문이다.[34] 여전히 예비군 4년차까진 M16A1을 사용 하지만 5~6년차는 이제 갈 놈이라 생각하는지 잘못 쓰면 가는 카빈을 지급한다.[35] 병력감축에 대응한 예비군 전력 강화를 위해 필요했는데 마침 기사도 뜨고 해서 그런 감이 있다.[36] '상세' 문단에도 서술했듯 존 브라우닝의 이복동생이다.[37] 당시 데이빗 윌리엄스 역을 맡은 배우는 미 공군의 전쟁영웅이자 유명한 영화배우였던 제임스 스튜어트였다.[38] 2차대전은 총력전이라 이런 사례가 많다. 다른 예로, 타이어로 잘 알려진 굿이어가 전투기를 만들었다.[39] 소총수, 포인트맨, 통신병, 지휘관.[40] 100이다! 이것은 PPSh-41와 같은 수치이다.[41] SVT-40/G43과 데미지, 연사력은 같은데 장탄수가 15발로(확장탄창 부착시 30발)가장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