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리아노 기론
1. 소개
전 롯데 자이언츠, 한화 이글스에서 뛰었던 야구 선수.'''경기는 삼성 쪽으로 기울고... 롯데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는 심정으로 기론을 다시 투입한다.'''
- 롯기도문
2. 선수 시절
신시내티 레즈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는데 마이너리그에서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는 등 준수한 성적을 올렸지만 메이저리그로 올라오지는 못했고, 이후 독립리그#s-3.1에서 뛰었다. 1998년 덜루스 슈페리어에서 주로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여 43경기 3승 2패 18세이브 ERA 1.27을 기록하였다.
1999년,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 롯데 자이언츠에 4순위로 지명되었다. 이후 2순위로 지명되어 롯데 자이언츠와 계약한 마이클 길포일의 대체 선수를 물색하던 롯데는 기론을 입국시킨 후, 경북고등학교의 야구장에서 5월 13일과 14일에 김명성 감독의 앞에서 입단 테스트를 한 후 합격시켰다.[1]
롯데 입단 당시에는 펠릭스 호세의 말동무용으로 데리고 온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기도 했는데, 실제로 최고구속이 140km/h를 간신히 넘는 기론에게 구단이나 팬들 모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중간계투와 패전처리를 맡았으며, 기록도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기론에게는 당시 국내 타자들에게 생소한 구질인 서클 체인지업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있었고, 양상문 코치가 투구폼을 수정한 후 구속과 체인지업이 더욱 좋아졌다. 게다가 어머니가 방문하여 아들에게 도움을 주었다.이후 8월 14일과 15일 청주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7이닝 5피안타 1실점으로 가능성을 보였다. 이어 18일 사직 야구장에서 열린 현대 유니콘스와의 경기에서 정민태와의 선발 대결에서 8탈삼진 3피안타 2비자책점으로 2:3 완투승을 기록하였다. 정규시즌 24경기에 전천후로 등판해 5승 1패 2세이브 평균자책점 3.30이라는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친다.
하지만 기론은 포스트시즌에서 더 놀라운 활약을 펼치는데, 선발과 구원을 가리지 않고 전천후로 등판하며 '''8경기 29.1이닝 평균자책점 0.92'''라는 무시무시한 투구를 선보이며 롯데의 한국시리즈 진출에 크게 공헌한다. 펠릭스 호세가 자신을 향한 오물투척에 격분하여 대구구장을 진호세무쌍 전장으로 만들고 박정태 주장이 선수단 철수까지 주장했을 정도로 급박했던 그 경기의 롯기도문에 등장하기도 한다. 당시 시도때도 없이 올라와 이닝을 먹는 모습 덕에 '고무팔'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렇게 힘겹게 올라간 1999년 한국시리즈에서 롯데는 PO에서 힘을 다 써버린 탓에 뭐 하나 해보지 못하고 1대 4로 우승을 놓치지만, 기론은 이 때 롯데가 유일하게 이긴 경기의 승리투수였다. 즉, '''롯데의 마지막 한국시리즈 승리투수'''라는 것.
전 시즌의 활약을 바탕으로 재계약에 성공했지만, 혹사 여파가 있었는지 한국리그 2년차인 2000 시즌에는 제법 고전했다. 이 해 김동주에게 잠실 야구장 역사상 최초의 '''장외 홈런'''을 맞기도 했다. 그래도 전년도에 비해 이 해에는 주로 선발로 고정되는 등 169이닝을 소화하면서 10승을 찍었으며, 평균자책점은 5.01. 참고로 이 시즌이 끝난 후 롯데는 10승 외국인 투수를 다시 얻기 위해 무려 10년의 세월을 기다려야 했다(...).[2] 지금 다시 보면 2년차는 이닝소화도 그저 그렇고, ERA도 Whip도 전혀 아니올시다인 성적이라 이 성적으로 재계약을 한 게 말도 안 되게 느껴질 수 있는데, 시절은 20세기, 선수 퍼포먼스는 투승타타이던 시절이라 방어율은 좀 높지만 10승 투수였던 기론은 재계약에 성공할 수 있었다.
어쨌든 다시 재계약에 성공하긴 했지만, 기론의 구위는 2년간 전천후로 굴려진 탓에 예전보다 많이 떨어져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무리하게 구속을 끌어올리려다가 팔꿈치 부상을 당했고, 결국 2001시즌 4승 2패 평균자책점 5.48의 부진한 성적을 거두며 시즌 중이었던 7월 퇴출당한다.
이후 2년 뒤인 2003년 7월 로베르토 메히아의 대체 용병으로 입단 테스트를 거쳐 한화 이글스에 합류하며 다시 한국 무대에 복귀하는데, 15경기 3승 3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4.58로 썩 인상적인 성적을 남기지는 못했고 시즌 후 재계약에 실패, 한국 무대를 떠나게 된다.
이후 대만으로 무대를 옮겨서 2년동안 중신 웨일스에서 뛰며 13승 6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2.12의 훌륭한 성적을 거뒀고, 이후 2007년 멕시칸리그에서 뛴 것을 끝으로 은퇴한 것으로 보인다.
3. 은퇴 후
은퇴 이후 타이어 사업을 대박치며 잘 지내고 있다고 한다. 2018년 3월 2일 라디오볼에 중계될 방송에 따르면, 2018년 6월경 국내에 입국하여 사도스키 코치와 함께 상대 해외선수 전력분석 및 트리플A 더블A 스카우터로 부임할 예정이란 이야기가 나왔으나, 2019년까지 아무 소식도 없는 것을 보니 헛소문 인 듯. 아직도 타이어 사업을 하며 지내고 있다고 한다.
4. 연도별 성적
5. 이야기거리
실제로 고국인 도미니카 공화국에 살고 있는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야구를 해왔다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고, 낡고 볼품없는 야구장비들을 가지고 다닌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팬들을 안타깝게 했다.
동생인 로베르토 기론이 2003년 11월 13일에 입국하여 롯데 자이언츠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았으나 합격하지 못하였다.[4]
6. 관련 문서
[1] 2013년 MBC SPORTS+에서 방영된 불멸의 명승부에서 양상문 해설위원이 합격시킨 이후 묵은 숙소에서 만난 자리에서 짬뽕을 주문했는데 기론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다 먹었다고 밝힌 바가 있었다.[2] 사실 이는 롯데가 타자 위주로 외국인 선수를 구해왔던 이유도 있다. 물론 카림 가르시아 이후로는 대세에 따라 투수 외국인 선수들을 데려왔지만. 또한 롯데의 고질병인 마무리 부재로 인해 가뭄에 콩나듯 데려왔던 외국인 투수도 마무리 투수인 경우가 많았다. 호세 카브레라와 존 애킨스가 그 경우.[3] KBO에서의 성적만 기입[4] 입단 테스트를 통과했다면 형에 이어서 롯데에서 뛸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