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태

 



'''정민태의 틀'''
[ 펼치기 · 접기 ]

'''정민태의 수상 경력 / 보유 기록'''
[ 펼치기 · 접기 ]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1998'''
'''2000'''
'''2003'''
'''2004'''

'''올림픽 야구종목 메달'''
'''2000'''





'''KBO 한국시리즈'''
'''1998, 2003 한국시리즈 MVP'''

'''KBO 포스트시즌'''
'''2000 플레이오프 MVP'''


'''1999, 2000, 2003 한국프로야구 다승왕'''


'''2003 한국프로야구 승률왕'''

보유 기록
10승
포스트시즌 통산 최다 승
115⅓이닝
포스트시즌 통산 최다 이닝
73⅔이닝
한국시리즈 통산 최다 이닝


'''정민태의 역대 등번호'''
[ 펼치기 · 접기 ]

'''태평양 돌핀스 등번호 20번'''
정은배(1985~1991)

'''정민태(1992~1995)'''

팀 해체
'''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20번'''
팀 창단

'''정민태(1996~2000)'''

결번
결번

'''정민태(2003~2007)'''

팀 해체
'''KIA 타이거즈 등번호 64번'''
이성준(2006~2007)

'''정민태(2008)'''

유휘봉(2009~2010)
'''서울 / 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77번'''
이광환(2008)

'''정민태(2009~2012)'''

강병식(2013~ )
<color=#373a3c>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74번'''
조원우(2011~2012)

'''정민태(2013~2014)'''

서한규(2015)
<color=#373a3c> '''한화 이글스 등번호 76번'''
김종모(2013~2014)

'''정민태(2015~2020)'''

송구홍(2021~)




[image]
'''이름'''
'''정민태(鄭珉台 / Min-tae Jung)'''
'''생년월일'''
1970년 3월 1일[1] (54세)
'''출신지'''
인천광역시
'''학력'''
숭의초 - 동산중 - 동산고 - 한양대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2년 1차 지명 (태평양)
'''소속팀'''
'''태평양 돌핀스-현대 유니콘스 (1992~2000)'''
요미우리 자이언츠 (2001~2002)
'''현대 유니콘스 (2003~2007)
'''KIA 타이거즈 (2008)
'''지도자'''
넥센 히어로즈 1군 투수코치 (2009~2012)
롯데 자이언츠 1군 투수코치 (2013~2014)
롯데 자이언츠 3군 투수코치 (2014)
한화 이글스 2군 투수코치 (2015~2016)
한화 이글스 1군 투수코치 (2016)
한화 이글스 1군 불펜코치 (2016~2017)
한화 이글스 1군 투수코치 (2017)
한화 이글스 육성군 투수코치 (2017)
한화 이글스 2군 투수코치 (2018~2019)
한화 이글스 1군 투수코치 (2019[2]~2020)
한화 이글스 육성군 투수코치 (2020)[3]
1. 개요
3. 플레이 스타일
4. 지도자 경력
4.3.1. 2018시즌 이전
4.3.2. 2018시즌
4.3.3. 2019시즌
4.3.4. 2020시즌
4.4. 평가
5. 기타
6. 연도별 성적
7.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현대가 없어진 날, 내 야구 인생도 끝났다."'''[4]

태평양 돌핀스, 현대 유니콘스, KIA 타이거즈 소속의 우완투수이자 현 한화 이글스의 투수코치.

2. 선수 경력




3. 플레이 스타일


[image][5]
당대의 에이스가 갖춰야 할 모든 것을 갖췄던 투수로 최고 구속 '''152km/h'''의 강속구(프로기준)와 '''80km/h'''대의 정신나간 슬로우 커브[6], 130km/h대의 슬라이더와 당시 반포크볼로 불리던 스플리터, 체인지업, OK체인지업이라 불리던 서클체인지업, 슬러브, 투심 등 당시 유행한 모든 구종을 모두 주무기로 던졌으며, 그 특유의 이닝 소화 능력을 바탕으로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유일하게 5년 연속[7] 200이닝 이상을 던지며 두 자릿수 승수를 기록한 투수이다.[8] 당연히 역대 최강 우완 논쟁 에 항상 끼는 대투수이다. 이미지와는 달리 단순히 힘으로 누르는 파워 피처가 아니라 힘과 기예를 갖춘 당대의 에이스 오브 에이스. 투구폼이 상당히 큰 편이고 던진 후의 반작용으로 오른팔이 크게 올라오는 모습이 유독 돋보인다. 다만 투구폼이 큰 오른손 투수임에도 주자를 묶는 견제 능력이 상당히 좋은 편에 속해 도루 허용 확률은 다른 투수보다 높지 않다.
왼발의 하이키킹을 통해 하체로 던지는 전형적인 투구폼으로 정민태가 부진했던 경기에서는 키킹에서 오는 특유의 텐션이 잘 보이지 않는다.[9] 선수 커리어 후반에 허벅지 부상이 오래간 까닭도 투구폼에서 기인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인천 올드팬들에게는 장명부를 연상시키는 특유의 헛견제[10]로 상당한 재미를 선사했다.[11]

4. 지도자 경력



4.1. 넥센 히어로즈 시절


넥센 히어로즈 No.77
정민태(鄭珉台)
[image]
자신의 전성기 시절 무기가 스플리터와 슬로우 커브였기 때문에 초창기(팀 창단 2008년 ~ 2012년대의) 히어로즈의 선수들은 이 두 구질을 상당히 많이 구사하며, 특히 스플리터의 경우 , 송신영, 이보근[12], 이현승[13]과 같은 선수들이 연마하였다. 고원준의 경우 정민태에게 직접 전수를 받아 슬로우 커브를 쓰면서 한때 주목받기도 했다.
또한 구위를 중시하는 스타일이기도 하다. 2011시즌 히어로즈로 트레이드된 기교파투수였던 심수창을 파워피처로 개조하기도 했고 어린 선수들의 구위를 향상시키는데도 관심을 두었다. 때문에 히어로즈 소속의 투수들은 대부분 구위는 좋은 편이다.

은퇴하자마자 해외연수 등을 거치지 않고 바로 투수코치로 왔기 때문에[14] 처음부터 비판을 받았고 , 투수코치로도 별 실적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10, 11시즌에는 얇은 선수층에도 불구하고 젊은 선수들이 괜찮은 활약을 보이며 덜 까이나 싶었다. 하지만 2012시즌 부터 다시 영 좋지 못했다. 우선 용병 선발 두 명을 제외하고는 선발진은 여전히 작년과 같은 상황이며 불펜은 오히려 더 안 좋아졌다! 선발이 이렇게 심각하니 불펜은 버틸수가 없고, 사사구는 여전히 8개 구단 중 제일 많아서[15] 최악의 제구력을 보여주고 있다. 마운드가 이런 상황을 볼 때 정민태 코치의 투수조련 능력에 팬들이 의문을 표시하는 것은 당연하다. 거기다 이런 비판은 정민태가[* 정민태는 김정준 전 SK 전력 분석원이 지적한 것처럼 투수들의 폼에 손을 많이 대는 편이다. ~~ 투구폼을 손본 심수창, 윤지웅, 손승락[16]의 제구력과 변화구가 큰 편으로 하락하면서 더욱 심해진 편.
게다가 김시진 감독이 정민태를 은퇴 직후 바로 1군 투코로 쓰면서 오히려 선배인 정명원2군투코로 보내버린 사실이 계속 비판받았다[17]. 특히 11시즌 직후 두산 베어스 김진욱 신임감독의 영입제안을 받고 고심하던 정명원이 1군승격 요청을 하자 김시진 감독이 '''두산 가서 잘해'''라는 발언으로 보내버린 사실이 알려지면서 팬덤에서는 더더욱 까이게 되었다 문제는 정규시즌 초반만 해도 넥센이 두산과 상위권으로 있었으나, 그놈의 팀 뎁스 때문에 결국, 7월 올스타전 이후 선수들 전부 성적이 DTD하며 김시진이 짤리는 계기가 되었다. 반대로 두산은 전년도 시즌 가을야구에 아쉽게 못올라간 분풀이를 했으나 왠 갈매기에게 털린다. 대체로 김시진 감독이 자신의 직계 제자인 정민태만 싸고 돌다가 검증된 투수코치 정명원을 내치게 되었다는 평. [18]
이상은 좋은데 현실은 시궁창인 코치이기도 하다.
2012년 9월 17일 김시진 감독이 경질되기 전에 구단에 사퇴 의사를 밝혔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올 시즌 끝나면 관두겠다 구단 측에서는 잔류를 설득 중이라고 한다. 일단 2012년 시즌이 끝날 때까지는 코치로 계속 뛰게 되었다. 뜬금없이 정민태 감독 승격설이 나와서 넥센팬들을 식겁하게 만들기도 했다. [19]

4.2. 롯데 자이언츠 시절


롯데 자이언츠 No.74
정민태(鄭珉台)
[image]
염경엽 감독이 새로 부임하면서 투수코치를 새로 찾게 된다는 말로 보아 2013년에는 맡지 않을 듯하며, 연수를 하러 떠난다는 말이 있었지만 롯데의 1군 투수코치로 계약을 체결했음이 발표되었다.[20]
하지만 롯데에서의 평은 넥센보다 더더욱 박한 편이다. 2013년 '''선발 유망주''' 들의 단체 볼질 로 좋지 못했다. 덤으로 경기 중 최기문 배터리코치와 말다툼하자, 김시진 감독이 이걸 보고서 시즌 끝나고 최기문 배터리코치를 내치면서 평가가 더 박해졌다.
거기다가 2014년에는 2011~2013년 리그 상급이던 '''불펜진'''마저 집단 볼질과 방화를 일삼으며 팬들의 현기증을 유발하고 있다. 선발진이야 좋아졌지만 그냥 장원준이 제대한 거다(...).[21] 2013 시즌 좌우놀이김승회 굴리기 등으로 인해 신나게 세트로 까였지만 2014 시즌 투수 운용이 그나마 정상화(!)되고 전반기 4위를 확정함으로써 정민태의 까임지분이 줄어들며 평가가 좋아졌다.
허나 후반기에 접어들며 롯데 투수진이 단체로 붕괴하고 특히 불펜진이 혹사에 시달리다가 결국 필승조 요원들이 모조리 2군에 내려가고 4위 싸움이 급급한 이 때 신인들을 올려서 쓰는 상황까지 추락하자, 김시진 감독과 함께 엄청난 욕을 먹고 있다. 항명 사태로 퇴진한 권두조 수석코치의 평이 갑자기 좋아진건 덤. 일부 롯데 팬들은 김시진 감독과 함께 거의 범죄자 취급하는 판이다.
결국 2014년 8월 21일 팀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육성군(3군)[22]으로 내려갔다. 대신 주형광 1군 불펜코치가 1군 투수코치가 되었고 이용호[23]가 재활군에서 1군 불펜코치로 올라왔다. 이는 김시진을 경질하겠다는 롯데 프런트의 뜻으로 파악된다.[24]
이제는 아예 기사로 '정민태 코치의 지도 방식이 매끄럽지 않다는 지적이 많았다. 야구인들 사이에선 스타 출신 정민태 코치가 선수들을 강하게 몰아붙였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일부 선수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했다는 얘기도 돌았다.'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이후 후속기사 등을 종합해 보면 '''10년 이상 근무한 A코치가''' 투수 파트에 간섭해서 불화가 있었고, 구단에 쓴소리를 하는가 하면, 선수 성적 쉴드치는 등 구단에 밉보였던 것이 좌천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10월 26일 계약 만료로 롯데 자이언츠를 떠나게 되었다.
'2014년 10월 28일 롯데 선수단의 프론트 규탄 사태와 맞물려서 공필성 "선수들 프로 맞나? 해도 너무 한다"라는 기사가 나왔는데' 기사 내용을 볼 때 정민태와 불화가 있었다는 위의 A코치는 공필성으로 보인다.

4.3. 한화 이글스 시절


한화 이글스 No.76
정민태(鄭珉台)

4.3.1. 2018시즌 이전


김성근 한화 이글스 감독의 요청으로 한화의 투수코치[25]맡게 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정민철 코치가 자진 사임함에 따라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해 영입했다고 하는데... 롯데에서의 만행을 생각하면 한화 팬들 입장에선 거품 물 일.(...)
2015년 당시 쉐인 유먼을 정민태가 추천했다고 한다. 이 말이 사실이면, 2015년의 유먼의 성적을 놓고 봤을 때, 이 선택은 2015년의 한화 선발 로테이션이나 경기 양상에 차질을 줬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한화에서는 2군 투수코치로 재직 중인 듯하다. 유망주들의 투구 폼에 크게 손을 대기 시작했다는 카더라 통신으로 인해 한화 팬들이 슬슬 불안감에 떨고 있다.
참고로 5월 시점에서 한화의 2군 상황은 투타 가리지 않고 매우 안 좋다. 김성근 감독 특유의 '''혹사를 하지만 일부는 관리도 하고 그 사이 육성도 된다'''는 공식이 성립하려면 2군이 받쳐줘야 하는데, 2군에 정민태가 버티고 있다는 점은 한화 팬들의 걱정거리지만 2군 투수진이 부진한 원인은 '''김성근 감독이 2군 투수들에게 휴식기간을 허용하지 않고 1군에 동행시키며 배팅볼 투수로 마구잡이 혹사를 시켰기 때문이라는것이 대세'''로 정민태는 오명을 벗을 수 있었다.
그러나 오명을 벗었다고 보기에는 여전히 평가가 안 좋다. 반 김성근 성향인 2군 경기를 보러 다니는 팬들 사이에서도 김성근 야구 특성상 2군, 육성군 투수코치의 권한은 매우 제한적이지만 그 제한적인 권한 내에서도 팀에 마이너스가 되는 코치라는 이야기가 파다했다. 특히 위에 언급했고 넥센, 롯데 시절에도 그랬듯이 투구폼에 크게 손을 대는 것과 제구는 못 잡아주는 주제에 볼넷 내주면 윽박지르는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 팬들의 주요 까임 대상.
1군 투수코치로 내정되었으나, 권한이 거의 없는 것으로 보여서 넥센, 롯데 시절만큼 욕을 먹을 것 같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김성근 감독의 건강 문제가 발생해서 욕을 먹을 가능성도 약간 생겼다.
그리고 위의 우려대로 김성근 감독이 입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입원 전과 투수운용이 전혀 달라지지 않는 것을 보고 김성근 감독에게 못된 것만 배운 것인지, 아니면 애초부터 정민태가 범인이었는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일단 살려조의 혹사는 여전한데 심수창, 로저스 땡겨쓰기, 마에스트리의 불펜기용과 같은 만행은 김성근 감독의 병중지시 없이는 힘들 거라는 의견이 중론이기는 하다. 그러나 아무튼 김광수 감독대행과 손잡고 김성근 감독 데리고 나가라는 반응이 압도적이다. [26]
그리고 원격지시설을 뒷받침하는 기사가 뜨면서 또 약간의 오명을 벗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욕을 먹지 말아야 할 이유도 없다(...) 아무리 김성근 감독이 전권을 휘두르고 전횡을 일삼고 있더라도 허수아비 정민태 투수코치 또한 투수 혹사를 방관하는 공범 중 한 명인 것은 명백하기 때문.
그리고, 기어이 박정진까지 선발을 올렸다(...) 것도 '''청주 쿠어스 필드에서!!!'''
2017년에는 1군 불펜코치를 하게 됐다. 그러나 김성근의 퇴진으로 1군 투수코치 이상군이 감독 대행이 되자 김해님에게 불펜코치를 넘기고 1군 투수코치로 올라갔으나, 얼마 후 윤학길과 자리를 맞바꿔 육성군행. 그런데 윤학길도 코치로는 평가가 매우 안 좋은 사람인지라....
이후 2군/3군에서도 투구폼에 관여해 어린 선수들의 멘탈을 박살냈다는 카더라성 추측글이 한화 이글스 관련 문서 토론글마다 돌아다녔다.
그런데 코치진 22명 중 신경현, 전대영 등 팀 프랜차이즈 스타들마저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는 와중에[27] 1군 윤학길 투코와 함께 살아남아 팬들은 어리둥절해하고 있다. 대신 정민태는 2군으로, 윤학길은 육성군으로 보직 변경.

4.3.2. 2018시즌


2018년 2군 스프링캠프에서 송은범에게 투심을 가르쳤다고 한다.[28]
'''"이대로는 안된다. 네가 가진 좋은 공이 더 이상 1군에서 통하지 않으면 너의 야구가 끝난 것 아니냐. 새로운 마음으로 변화를 주자. 이것(포심→투심)만 제대로 되면 1군 가서 선발로 나서면 10승도 할 수 있다. 더 이상 상처받지말고 다시 시작하자."'''(정 코치)
또한 2군에 갔다오는 투수들 마다 구속이 늘어서 1군에 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어색함 보다는 140km대 후반을 찍는 직구에 대한 강한 믿음이 남아 있었다. 정 코치는 "굳이 그 공(투심)을 던지지 않아도 될거라 판단한 것 같다. 2군 스프링캠프가 변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송은범의 투심은 두 가지다. 실밥을 좁게 잡으면 끝이 살짝 떨어지지만 140km대 중반의 빠른 스피드를 낸다. 실밥을 넓게 잡으면 140km대 초반 스피드에 낙폭이 좀더 커진다. 매번 스피드와 떨어지는 폭에 변화를 줘가며 던진다.
정 코치는 '''"송은범은 기본적으로 제구가 되는 투수여서 투심으로 스트라이크를 잡을 수 있다.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갈수록 볼배합이 중요해질 것이다. 아무리 좋은 볼이라도 그것만 던지면 맞을 수 밖에 없다. 좋은 슬라이더와 커브를 지닌 것은 큰 장점"'''이라고 덧붙였다.
또 "시즌 초반이지만 구원승을 올리고 있는 것은 큰 동기부여가 될 것이다. 은범이에게는 더 필요하다. 지금까지 성적이 좋지 않고 잘 던져도 승운이 따르지 않았다. 지금처럼 하다보면 점점 자신감이 붙을 것이다. 여유도 찾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송은범은 18시즌 7승 4패 1세이브 10홀드를 기록하며 단 두 개의 피홈런만 허용하는등 한화의 11년만의 가을야구 진출에 큰 기여를 했다.

4.3.3. 2019시즌


6월 24일, 2군으로 내려간 송진우, 김해님 코치의 반대급부로 마일영 코치와 함께 1군에 올라왔다. 보직은 1군 투수코치.

4.3.4. 2020시즌


5월 15일 기준으로 한화 선발투수가 10경기에서 7번의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하며 한화가 오랜만에 선발 부문 선두를 기록하자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심지어 채드 벨이 팔꿈치 통증으로 빠진 상황에서 기록한 것이라 더더욱 의미있는 기록. 국내선발진 4명이 5번의 QS를 기록했다.[29] 그리고 임준섭을 제외하곤 모두 5이닝 이상을 소화했다. 하지만 5월 종료 시점에서 서폴드, 정우람을 빼면 투수진이 전반적으로 망가지면서 다시 비판받고 있다. 결국 6월 6일 1군에서 말소되며 2군 코치로 돌아갔다.
결국 시즌 끝나고 한화를 떠나기로 결정하였다.

4.4. 평가


넥센 시절 10, 11시즌에는 이장석의 파이어세일에도 불구하고 넥센 마운드가 선전하여 그나마 평가가 괜찮았다. 특히 특급 신인으로 떠오른 고원준은 정민태의 현역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슬로우 커브로 제대로 팬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하지만 12시즌 슬슬 정민태 특유의 '''볼넷''' 오오라가 발동하며(...) 평가가 급락했다.
사실 10,11시즌[30]의 공도 따지고 보면 정명원 2군 투수코치가 끊임없이 새로운 투수들을 키워서 올려준 것이고[31] 정민태는 숟가락만 얹은 거란 평가가 많다. 그리고 2011시즌을 마치고 정명원이 팀을 떠나자 2012시즌 정민태의 본실력이 드러난 것이다. 2012년 정민태는 투수코치로 육성과 운영 양쪽에서 모두 낙제수준이었다. 키우질 못하면 있는 투수라도 잘 활용해야 하는데, 당시 자기가 찍은 몇명 에만 집착해서 2군에서 호투하고 있던 전유수, 임창민, 이태양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결국 이들은 넥센을 떠나자마자 모두 1군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정명원 코치가 kt로 넘어가서 kt 투수진을 부흥시켰다면 정민태는 김시진과 더불어 쓸놈쓸로 NC 좋은 일을 해서 신생팀 돌풍에 간접적으로 기여했다고 보면 된다. 전유수도 SK에서 마당쇠로 준수한 활약을 했지만 임창민은 아예 NC의 주전 마무리가 되었고 유망주였던 이태양은 토종 선발 자리를 당당히 꿰차버렸다(...) [33]
물론 정명원-정민태 코치의 공과 과를 직접적으로 따지기 어렵지 않냐는 반론이 있겠지만 이후 두산, kt 투수진을 맡아 거의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다시피한 정명원 코치와 롯데-한화를 말아먹은 정민태 코치의 행보를 대조해보면 누가 능력자인지는 자명할듯. 결국 넥센은 정민태 코치가 떠나고 한참 뒤 2015년에 손혁 코치를 영입하고 나서야 투수진을 재건해나가기 시작한다.
13~14시즌 롯데에서는 사실상 바닥으로 추락했다. 육성과 투수 관리, 교체 타이밍 모두 최악이라는 평가[34]. 물론 감독이 스승인 김시진이기에 어디에서 어디까지 권한을 가지고 있는지는 애매하지만 롯팬들에게는 그냥 묶여서 까인다.
투수들의 투구폼에 크게 손을 대는 코치로도 유명하다. 아무래도 현역 시절 명투수로서의 자신감에 선수들에 대한 높은 기대치가 겹쳐 이런 일이 발생하는듯. 문제는 그 크게 뜯어고친 결과물이 대체로 좋지 않다는 것(...)[35] 오랜기간 하위권을 전전하면서 많은 상위권 투수 유망주들을 수집했고, 상당한 숫자의 파이어볼러를 보유했던 히어로즈 이지만[36] 정민태 투수코치 밑에서 제대로 성장해서 팀의 기둥이 된 투수는 '''단 한 명도 없다.''' 5년동안 1군 투수코치로 있으면서 단 한명의 1군급 선수도 키우지 못했고, 기존 투수진만 갉아먹다가 팀을 떠났다.[37]
애초에 신인 드래프트가 오랫동안 흉년이었던 롯데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투수진의 향상은 커녕 기존의 투수진조차 망가뜨린다는 게 롯데에 와서 검증된 셈...... 선발 유망주들은 다 망했고 양승호 감독 시절 구축되었던 최강 불펜진마저 2년만에 혹사와 제구력 저하 디버프를 병행하여 그냥 잿더미로 만들어버렸다(...) 기존의 투수진은 그렇다 치더라도 가끔씩 발굴되는 2군 유망주들도 1군에 올라와서 몇 경기 잘던지다 정민태가 손을 대면 귀신같이 망하기 때문에 평가가 더더욱 안좋다. 사실상 양상문 시즌2 확정이다. 한국 야구의 거목 김성근 감독이 총애한다는 점까지 정말 완벽한 데자뷰를 이룬다(...)[38]
그가 떠난 넥센이 그가 남겨둔 대패조(...)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조상우와 한현희를 발굴해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면서 더 까인다. 그와 함께 김시진 사단에 속한 박흥식 코치가 성과만큼 주목받지 못하는 것이 박흥식 코치가 타선을 살려놓으면 그가 투수진을 말아먹어서 성적이 오르지 않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존재할 정도이다.[39] 그의 스승인 김시진이 투수코치로는 호불호가 갈려도 분명한 성과를 냈고, 감독으로는 삽질의 연속이지만 환경이 나빠도 너무 나빴다는 옹호론이 있는 것과 달리 그다지 쉴드를 쳐줄 여지도 없다.
박동희는 2015시즌 전 스프링캠프에 참가한 김정훈기사를 다루면서 "상무 입대전 김정훈의 부상은 투구폼 변경 때문", "제대 후 만난 넥센 코치진(염경엽-손혁-박승민)은 김정훈이 기다려왔던 바로 그런 코치진이다" 라고 하면서 김시진-정민태를 쌍으로 디스했다(...) 손혁 역시 한화에서 투수 인스트럭터로 평가가 그다지 좋지 못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정민태...
2015시즌 투구폼을 크게 뜯어고치는 도박수를 던진 심수창이 부활 조짐 을 보이자 정민태가 떠나서 그렇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롯데 팬들의 평가는 박하다. 넥센 팬들도 12시즌 이후로 유입된 팬들은 대부분 떠나서 고마운 코치(...) 쯤으로 여기는듯.
2018시즌 기준으로는 그동안 구속 향상을 위한 일괄적으로 폼을 수정했던 방향이 아닌 선수들의 고유의 폼에서 미세조정 하는 식으로 방향을 정하고 교정하는데 구속과 제구가 동시에 올라가면서 한용덕 감독과 선수들 모두가 만족하고 있다. 가히 서산재활공장장급...
특이한 점은 나쁜 경기 내용에 대하여 투수가 아니라 포수를 질책하는 경우가 종종 보인다는 것이다. 롯데 자이언츠 투수코치 시절에도 포수 김준태를 질책하다가[40] 당시 배터리 코치이던 최기문이 반발하여 최기문이 팀을 떠난 예가 있고 한화 이글스 투수코치로 재임하고 있는 2016년에도 마운드 위에서 포수 조인성과 말다툼을 하는 장면이 중계 카메라에 포착되기도 했다. 자신의 코칭 방법과 코칭한 선수에게는 문제가 없고 오직 포수의 문제라고 여기고 있기 때문에 나오는 행동일 가능성이 크다.
2020시즌 기어이 한화 투수진을 모두 말아먹으면서 결국 육성군으로 쫓겨났다.

5. 기타


위에 서술된 대로 구대성과는 한양대학교 선후배 사이인데(좌대성-우민태), 재미있는 사실은 정민태가 1년 선배지만 빠른 1970년생이라 88학번인데, 구대성은 1969년생이지만 학교를 1년 유급한 탓에 89학번으로 들어온 것. 정민태가 그 당시 창궐하던 한양대학교 야구부의 폭력을 근절시켰기 때문에 존경의 의미를 담아서 구대성은 정민태에게 사석에서 '''형'''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2007년 4월 21일 사직 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이대호에게 장외 홈런을 헌납했다. 이 장외홈런은 '''사직 야구장 개장 이래 최초'''. 뭐 이미 전성기가 한참 떨어진 상태라 뛸 수 있는 몸도 아니었다. '''0승 6패 방어율 12.82...''' 한때는 에이스였지만…. 먹튀라고 봐도 손색이 없다. 몇년 후 시상식에서 "너(이대호)때문에 은퇴했다"라고 한 언행을 이대호가 한 다큐멘터리에서 밝혔다.
여담이지만 선수 시절 부상 때문에 아직도 고생하고 있는 듯하다. 2010년 10월 30일에 있었던 KIA 타이거즈김동재 코치를 위한 천하무적 야구단vs일구회 올스타 자선시합이 방송을 탔을 때 정민태가 방송에 나왔는데, 부상이 있어 경기에는 나오지 못한다고 한다.
넥센 히어로즈의 투수코치로 있으면서 제 역할을 못 하는 투수들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한 건지 겨우 40대 초반의 나이에 벌써 흰머리가 보이고 있다.
넥센 히어로즈에서 등번호 20번은 창단 이후 그 누구도 달지 않고 영구결번 비슷하게 유지되었지만 2013년부터 장효훈이 달게 되었다.[* 이일로 장효훈은 9개 구단 팬 전부에게서 비난을 받았다. 사실 정민태 뿐만 아니라 히어로즈에서는 레전드들의 번호가 이상하게 이어지는 경향이 있는데 김수경의 30번도 조중근에게 갔다가 다른 중고신인 듣보잡 애가 달았으며 의외로 묻힌 사실이지만 '''전준호'''의 1번이 2010년 갓 제대하여 1군에 복귀한 손승락에게 갔고 손승락이 롯데로 이적한 후에는 어느 독수리 집에서 데려온 가 손승락이 거인댁으로 출가 후 달고 있다. 그것도 프랜차이즈 선수가 아닌 이적생들이 달았다. 그 외에도 이숭용의 10번이 문성현[41]에게 가기도 했다. 2020년 정민태의 20번은 젊은 에이스로 거듭나는 최원태가, 김수경의 30번은 패전조로 나서는 조덕길, 전준호의 1번은 최연소 홀드왕 한현희[42] 2013시즌 이후로는 장시환(장효훈)은 31번으로 바꿨고 20번은 그나마 암흑기 시절 김성태가 달게 되다가 은퇴 후에 현재는 팀 최다 신인 계약금 받은 루키가 달고 있다.
현대 유니콘스서울특별시로 연고지 이전을 시도하던 당시 인천 출신의 모 유격수와 함께 "서울로 연고지를 옮기면 더 좋잖아요."라는 말로 인천 야구팬들의 속을 뒤집었다는 카더라가 있다. 진실 여부는 불확실. 해당 항목 참조.[43]
아들인 정선호가 2014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SK 와이번스의 지명을 받았으나, 입단하지 않고 연세대학교에 입학했다. 포지션은 외야수. [44]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중반까지를 대표하는 우완투수 이기에 '정민태 vs 정민철' 키배가 상당하다. 서로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도 많아 양 팀 팬이 아니라면 누가 낫다고 단정하기 힘든 비교. 2014년 10월에 김성근 감독이 한화 이글스로 오면서 정민철은 코치직에서 사임하고, 그 자리를 대신해서 정민태가 들어왔으니 이젠 코치로서의 자질까지 비교되게 생겼다. 이후 공교롭게 2019 시즌 후 정민철이 단장으로 오면서 직장상사가 되어버렸다.
여담으로 야구게임 슬러거에서는 특유의 투구 폼으로 사기적인 투수로 자리잡고 있다.
[45]

6.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WHIP
1992
태평양
7
26
1
3
0
0
3.81
21
13
54
1.31
1993
5
9⅓
0
0
0
0
6.75
11
4
7
1.61
1994
25
145⅓
8
9
0
0
3.72
159
40
91
1.36
1995
28
188
8
'''14'''
(1위)
0
0
3.69
'''187'''
(1위)
62
115
1.30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WHIP
1996
현대
30
'''210⅓'''
(4위)
15
9
0
0
'''2.44'''
(5위)
'''180'''
(5위)
48
127
1.07
1997
31
'''219'''
(1위)
13
'''13'''
(1위)
0
0
3.33
'''189'''
(1위)
58
'''159'''
(2위)
'''1.10'''
(4위)
1998
28
'''200⅔'''
(1위)
'''17'''
(2위)
9
0
0
2.83
'''184'''
(2위)
51
'''159'''
(5위)
1.16
1999
33
'''230⅔'''
(1위)
'''20'''
(1위)
7
3
0
'''2.54'''
(2위)
'''208'''
(1위)
67
'''178'''
(2위)
'''1.18'''
(5위)
2000
29
'''207'''
(2위)
'''18'''
(1위)
6
0
0
3.48
'''192'''
(2위)
67
'''153'''
(4위)
1.25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WHIP
2001
요미우리
10
19
2
0
0
0
6.16
21
4
14
1.26
2002
17
19⅔
0
1
0
0
6.41
24
8
14
1.58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WHIP
2003
현대
29
'''177'''
(4위)
'''17'''
(1위)
2
0
0
'''3.31'''
(3위)
'''179'''
(4위)
47
'''122'''
(3위)
'''1.25'''
(2위)
2004
28
165⅔
7
'''14'''
(2위)
0
0
5.00
'''193'''
(2위)
50
123
1.42
2005
8
26⅔
0
3
0
0
4.73
34
7
13
1.50
2006
1
2
0
0
0
0
4.5
2
1
1
1.50
2007
7
19⅔
0
6
0
0
12.81
35
12
6
2.34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WHIP
2008
KIA
1
3⅔
0
1
0
0
14.73
5
3
3
1.91
<color=#373a3c><colbgcolor=#ffff88> '''KBO 통산'''
(15시즌)
290
1831
124
96
3
0
3.48
1779
547
1278
1.24
<color=#373a3c> '''NPB 통산'''
(2시즌)
27
38⅔
2
1
0
0
6.28
45
13
28
1.42

7. 관련 문서


[1] 음력 1970년 1월 24일, 즉 빠른 생일이다.[2] 기존의 1군 투수코치였던 송진우와 6월 24일 자리를 맞바꿨다.[3] 6월 8일부터.[4] 그의 말대로, 그의 전성기가 곧 현대의 전성기였다. 실제로 그가 좋은 성적을 올렸던 해에는 1999년 팀 시즌을 제외하고는 현대의 성적도 매우 좋았고, 반대로 그가 죽을 쒔던 해에는 2004년과 2006년 시즌을 빼고는 현대의 성적도 좋지 못했다. 2004년은 정민태의 마지막 승리를 거둔 해이며, 2006년은 정작 중간계투로 1경기 출장이 전부이다. 그리고 2007년 제대로 몰락하는데...[5] 사진은 한때 임시 연고지로 사용하던 수원 야구장이며, 2000년도 이다. 타자는 롯데 자이언츠김응국.[6] 일명 아리랑볼이라고도 한다. 100km/h 전후로 던져서 타자도 주심도 벙찌게 웃게 하는 정민태의 특기중 하나.[7] 1996~2000년[8] 5년 연속 200이닝 이상 던진 선수로는 정민태 외에 최동원이 있지만, 최동원은 데뷔 첫시즌이었던 1983년 9승에 그치고 이후 4년간 200이닝 투구, 두자릿수 승수를 기록했다.[9] 2000 시드니 올림픽, 일본프로야구 시절[10] 주자가 3루와 1루에 출루한 상황에서 3루 쪽으로 견제구를 던지려다 뒤로 돌아 1루로 견제하는 포즈. 그러나 야구 룰이 바뀌면서 앞으로는 볼 수 없는 장면이 됐다. 3루 쪽으로 발을 내디딘 상황에서 3루로는 송구하지 않고 1루 쪽을 향해 공을 던지면 보크가 된다.[11] 사실 장명부 이후 삼청태현에서 20승 투수는 정민태 한 사람 밖에 없었다.[12] 포크볼과 별차이가 없다는 지적이 있지만 히어로즈의 투수들의 스플리터는 낙폭차가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편이다. 이것은 히어로즈 감독이었던 김시진 감독이 부상위험이 큰 포크볼을 기피하는 대표적인 인물이였기 때문이다. 이런 견해차는 포크볼을 결정구로 가르치는 정명원 투수코치와 김시진 감독간의 불화를 불러온 요인 중에 하나이기도 했다.[13] 히어로즈시절 이현승은 슬라이더와 커터, 스플리터와 빠른공으로 승부하는 정통파 투수였다. 두산에서 구속이 확 줄면서 스타일이 바뀐 것이다.[14] 이에 대해서 '선진야구를 접해보지 못한 선수라면 해외연수가 의미있지만, 자신은 일본 요미우리에서도 뛰어 봤기 때문에 코치연수는 필요없다'는 이야기를 했다.[15] 10개 구단 체제로 나가는 2015년도 까지 이래왔다. 2016년도에도 변함없이 간다면 이건 정말로 정민태의 코치 업적 중 흑역사로 남을 것이다.[16] 앞의 투수들은 정민태가 손을 대기 전과 후의 투구폼 차이가 큰 편에 속하는 투수들이다. 다만 심수창을 빼면 둘 다 투구폼을 바꿀 필요는 있었다.[17] 정명원 코치는 2006년까지 조규제와 현대 2군 메인코치였으며, 유망주투수들을 잘키워내서 명코치로 유명했다. 김시진 1군투코가 현대 유니콘스 감독이되자, 1군코치가 되었으며, 이광환 체제에서도 1군코치였었다. 그런데 김시진이 히어로즈 감독으로 돌아오자, 당연히, 2군행..... 그런데 히어로즈 사정상 2군인 강진은 교통이 험하고 버스도 많이 오지 않는 시골이다. 할 수 있는게 야구와 야구장에서 뛰는 것 밖에 그래서 많은 선수들의 멘탈이 금이 갔으며 특히 코칭스태프들도 많이 힘들어 하였다.[18] 근데, 최상덕은 정명원이랑 관계가 없다. 있더라면 1994년-95년 태평양 돌핀스 현역시절 사제관계로 있었지 이후에는 박재홍의 트레이드 상대가 되어 팀에 대한 정은 아예 접점도 없었고 그가 코치로 뛰게 된건 김시진이 경질 되고 나서 3대 감독으로 취임한 염경엽 시절 이다[19] 면접까지 봐가면서 뽑은 사람이 염경엽 감독. 이런 절차를 감안하면 염경엽 감독이 없었다고 정민태가 내부승격했을 가능성은 낮아보인다. [20] 김시진 감독의 러브콜로 온 것이라고 아는사람들이 많은데 롯데 구단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정민태 코치는 김시진 감독 계약 이전에 계약을 체결한 것이라고 한다. 김시진 감독의 영입을 추진 중이었고, 그래서 그냥 일괄적으로 발표한 것. [21] 굳이 덧붙이자면 쉐인 유먼의 무릎도 회복되고 있다고 한다.[22] 롯데에서는 3군을 "드림팀"으로 부른다.[23] 전 두산 출신 투수. 1970년생으로 1993년 OB에 입단, 2002년 LG에서 은퇴.[24] 김시진과 정민태는 한양대학교 선후배, 태평양-현대 시절 사제지간으로 사실상 세트메뉴다. 실제로 김시진을 따라 롯데로 넘어오기도 했고...[25] 이전에 영입된 박상열 코치가 1군 투수코치인데, 정민태와 같이 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민태는 다른 보직을 맡는지 기사마다 말이 다르다.(...) 일단 2군으로 내려간 듯. 여담으로 정민태는 김성근 감독과 큰 인연은 없지만, 김성근이 일전에 선수로서의 정민태를 높게 평가하여 쌍방울 감독을 맡고 있을 때 현대 소속이었던 정민태를 따로 불러 원 포인트 레슨을 해주곤 했고 또한 SK 감독 시절에도 히어로즈와 계약하지 못하고 자유계약 공시된 정민태를 데려오려고 했던 적도 있다.[26] 사실 넥센에서는 현역 시절 덕에 실드가, 롯데에서는 김시진, 최하진과 당시 좋지 못했던 투수자원 덕에 실드가 있기는 하다만 어디까지나 금지어를 겨우 면할 수준이지 3개 구단에서 모두 실패한 투수코치인 것은 명백하다. 물론 혀갤과 롯갤에서는 금지어다.[27] 말이 재계약 불가 통보지 사실상 해고다.[28] 그래서 2018년 짧게 불펜에서 힘이 되었지만 이후 리타이어...[29] 장시환 2, 장민재 1, 김민우 1, 김이환 1[30] 투수진으로 7위와 8위를 기록했다. 당시에 홈런을 칠 만한 타자들이 없던 시기[31] 사실 정명원은 2000년 한국시리즈 우승 직후 2001년 개막식때 은퇴식을 치르고 후 연수도 하며, 돌아와 현대 2군 시절 투수코치로 일을 했다. 1군에서는 김시진이 메인으로 있으니 그나마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2군 메인 투수코치 또는 1군 불펜 코치가 그게 다다. 하지만, 김시진이 내부승격으로 감독이 되며, 그 공석에는 현대 마지막 시절 1년간 1군 코치를 했으나 성과는 없었다. 이유는 구단의 지원도 미비했고 투수들이란 투수들은 죄다 군대로 보내고 수술을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처음으로 잘 만든게 '''조용훈''' 이라는 원석을 만들었지만, 상무 시절 온갖 '''체벌'''을 당하며 부상이 발견되어 재기를 못해 은퇴한 것이 가장 안타까운 예이다.[32] 유일하게 싸융짱문오 중 2010년대 들어서 우승반지 한번 껴 본 사람이다. 그러나, 2018년 부터 갑자기 맛탱이가 가더니 결국 SK로 쫒겨났으며, 다시 망했다.[33] 최근 들어 '''전유수소폭탄'''이라는 말로 부진하고 있는 전유수를 제외하고, 이태양과 임창민의 경우를 보자면, 정말 정민태가 최악의 투수코치였다는 증거. 그렇게 정명원이 키우던 투수들은 거들떠도 안 보고, 자기 욕심에 제구레기들만 더 제구레기로 만들어놔 폐급으로 아작을 내버렸다는 것이 정민태가 가장 까이는 이유. 거기다 '''오재영의 경우는 '한 때는 신인왕(2004년)'이였다!!!''' 최소한 그 투수들이 자기가 있는 동안은 최악의 제구레기를 벗어날 수가 없게 한 건 기정사실. 그 후유증은 지금도 개선되지 않았고, 투수코치가 손핵으로 바뀌고 난 이후, 싸융짱문오의 싸를 맡고 있던 김세현 만이 그 후유증에서 유일하게 벗어났다.[32] 장시환kt wiz로 가면서, 마무리로 보직을 변경한 이후, 겨우 겨우 살아남고 있는 걸 보면...[34] 특히, 가장 많이 까인게 좌우놀이 짓을 많이 했다.[35] 대표적인 예로 2012시즌 '''심수창'''을 들 수 있다. 애초에 140 중후의 구속과 포크, 커브, 체인지업 위주의 기교파 투수였던 심수창을 2011시즌 직후 구위형 투수로 개조한답시고 '''팔각도를 대폭 올리고 투구폼을 전면 수정하였다.''' 그 결과 2012시즌 들어서 속구 최고구속은 145km까지 찍었지만 타자를 압도할 정도는 아니었고, 대신 변화구 제구가 맛탱이가 가버리면서 배팅볼 투수로 전락해서 완벽하게 1군에서 멸망, 2군에서 페드로 놀이를 했다. 그리고 정민태의 마수에서 벗어나자마자 2015시즌 정민태가 한화로 떠나고 2차 드래프트로 롯데로 건너가 짧게나마 다시 부활했다. 하지만,,, 또다시 정민태와 만나 맛탱이 갔더니 LG로 가서 은퇴를 한다.[36] 정민태가 투수코치로 부임 시기에는 넥센 히어로즈 시절이 였으나 현재는 키움 히어로즈로 메인 스폰이 바껴 본 팀의 이름인 히어로즈로 생략.[37] 가장 비교되는게 현, 2020년 NC 다이노스 1군 코치인 현대시절 한솥밭을 먹던 후배 수경언니와는 대조적으로 보인다.[38] 몇몇 팬들은 김성근 감독을 제갈량에 비유하며 이들을 투수코치계의 마속이라 부른다. 그런데 양상문은 투수코치로는 실패했어도 감독으로는 꽤나 성공했다는 것이 함정(...). [39] 넥센에서는 그래도 그가 손댄 타자들이 워낙 잘 되어서 유명세를 좀 탔지만 롯데 와서도 자잘한 성과가 많은데 DTD에 다 묻혔다. [40] 어이없는 건 그 경기(2013년 10월 1일 롯데:삼성전)는 김준태의 '''1군 데뷔 첫 경기'''였다! 1군에 처음 올라온 신인한테 격려나 조언은 커녕 갈구기만 했으니 당연히 까여도 할 말이 없다.[41] 애초에 문성현은 등번호에 관심이 없었다.[42] 한현희와 최원태 모두 1라운더이며 히어로즈 수뇌진들이 프랜차이즈 선수로 점 찍은지 오래되었다. 조성운의 경우 성적이 좋으면 살아 남겠지만 문제는 그놈의 똥볼러 및 방어율만 보면 언제 방출 될지 모르는 선수이다. 그래도 히어로즈에 데뷔 했으니 성적만 좋다면 원 클럽 맨으로 남는건 손색이 없다. 이숭용의 10번은 신재영이 달고 있다.[43] 그러나, 고향으로 돌아간 이 사람이 극구부인을 했다. 애초에 연고지 팜 선수였고 이전하는것 보다 남아서 야구를 하고 싶었다고[44] 애초에 서울대 야구부 상대로 한 경기에서 1타석 뛴게 3년간의 유일한 공식 경기였다. 야구선수로서는 지명받았을 때 안 간 게 최악의 선택인 셈.[45] 사실 헨리 오 함마는 낚시용 가공의 인물이다. 항목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