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천 전곡리 유적

 


[image] '''대한민국의 사적''' '''제268호'''
<color=#fff> '''연천 전곡리 유적'''
漣川 全谷里 遺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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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15288><colcolor=#fff> '''소재지'''
<colbgcolor=#fff><colcolor=#222>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 전곡리 178-1번지
'''분류'''
유적건조물 / 유물산포지유적산포지 / 육상유물산포지 / 선사유물
'''면적'''
799\,055 m²
'''지정연도'''
1979년 10월 2일
'''제작시기'''
석기시대
'''위치'''


[image]
이 유적지를 발견한 전설적인 인물 그렉 보웬.
[image]
'''이게 바로 주먹도끼이다.'''
공식홈페이지
1. 개요
2. 우연한 발견
3. 왜 중요한가
4. 과연 30만 년 전 것인가?
5. 그렉 보웬에 관해
6. 여담
7. 파급효과(?)
8. 바깥고리
9. 사적 제268호


1. 개요


'''연천 전곡리 유적(漣川全谷里遺蹟)'''은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 전곡리에 있는 사적 제268호로, 대한민국에서 발견된 구석기 시대 유적지 중에서도 오래된 곳이다.

2. 우연한 발견


1977년 그렉 보웬(Greg Bowen, 1950~2009)이라는 주한미군 공군 상병[1]이 동두천 군부대의 가수이던 한국인 애인 이상미(1954년생. 현 아내)와 1월에 한탄강에서 데이트하던 중에, 커피를 마시려고 코펠에 물을 끓이기 위해 주변에서 돌을 모았다. 그때 이상미 씨가 지나가다 주워 온 ''''이상한 돌''''을 보고 뭔가를 알아차린 보웬은 그 돌을 챙겨와 프랑스의 고고학 권위자에게 편지를 보냈다. 프랑스 교수의 소개를 통해 서울대 교수에게 유물을 보내어 조사를 요청했는데, 그 돌이 약 30만 년 전 것이라고 추정된 전기 구석기시대의 유물인 '전곡리 주먹도끼'로 밝혀진 것이다. # 관련 글 이것으로 서울대학교박물관은 전곡리 일대에서 유물 4500여 점을 획득하였다.
우연히 나간 데이트 장소가 구석기 유적지였다는 것과, 데이트를 하던 중 여자친구가 수많은 돌 중에 주먹도끼를 주워왔는데, 때마침 같이 있던 남자친구가 고고학 전공자라는 점이라는 점에서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2]

3. 왜 중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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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발견은 당시 고고학 학계를 완전히 뒤엎은 대사건이었다. 그 이전까지 동아시아에서는 아슐리안형 뗀석기[3]가 발견되지 않아, 모비우스(Movius) 등으로 대표되는 학자들이 '구석기 문화 이원론'을 주장하던 때였다. '모비우스 라인'이라는 가상의 선으로 아슐리안 석기가 발견되는 지역과 발견되지 않는 지역을 나누어, 인류의 이동노선을 추측한 가설적 이론이었다. 한동안은 인도 동부에서부터 아슐리안 석기가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이 이론에 따라 인류 중 일부가 아슐리안 석기가 개발되기 전에 동아시아로 진출했고, 개발된 후에 인류가 유럽으로 들어갔다고 추정했다.[4]
그런데 '''전기''' 구석기 유적인 전곡리 선사유적지에서 '''아슐리안식 석기'''가 발견됨으로써, 이전까지 정설로 인정받던 모비우스 학설이 '''한순간에 뒤집어져버린 것.''' 이 일은 세계를 놀라게 했고, 데즈먼드 모리스 같은 세계적인 학자들까지 한국에 와서 석기들을 감정하고 진품임을 인정했다.[5] 사실 한반도에는 중기 구석기의 함북 웅기 굴포리(1960년), 전기~후기 구석기 공주 석장리(1964년), 전기 구석기 유적인 평남 상원 검은모루 동굴(1966년)등 곳곳에 전곡리로부터 10여 년 전에 발견된 60, 70년대 구석기 유적이 이미 널려 있었다. 전곡리는 모비우스 학설을 뒤집는 아슐리안 석기가 발견되어 임팩트가 컸던 것이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아슐리안형 석기보다 이전의 원시적인 석기를 올도완(Oldowan) 석기라고 부르는데 아프리카에서 260만 년 전부터 발견된다. 그런데 아프리카로부터 호모 에렉투스가 약 190만 년 전쯤 아프리카를 나와서 아시아 쪽으로 진출했는데 이때 조악한 올도완 석기기술을 가지고 나온 것이다. 그 이후 160만 년 전쯤 아프리카에 남아 있던 고인류가 보다 발전된 방식의 석기를 만드는데 이를 아슐리안형 석기라고 부른다. 따라서 중국 및 인도네시아의 오래된 호모 에렉투스 유적에서는 당연히 올도완 석기만이 발견된다. 위에 나온 모비우스 라인은 이런 증거를 잘 설명하는 이론이라 오랫동안 고인류학자들은 정설로 받아들였다. 아슐리안 석기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1979년 전곡리에서 아슐리안 석기와 상당히 닮은 손도끼가 발견되어서 학계의 논란이 된 것. 그리고 이를 계기로 연이어 중국과 유럽에서도 아슐리안형 석기가 발견되면서 모비우스학설은 폐기되었다.

4. 과연 30만 년 전 것인가?


그런데 이 30만 년 전이라는 수치는 아직 확실한 연대로 보기 힘들다. 사실 전곡리 유적은 한양대 배기동 교수와 서울대 이선복 교수의 연대관이 나눠져 30만 년인지 10만 년도 안 되는지 논쟁이 많았고 확실한 연대측정 자료를 얻을 수 있는 게 없었다.[6] 그나마 2009년도 연천 전곡리 중2-5호 도로 공사 구제발굴현장에서 채취한 샘플로 OSL연대측정 결과는 12~6만 년이라는 결과가 나왔고 2010년 이선복 교수는 전곡리 선사유적지 토층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용암이 삼킨 나무>의 탄화목의 시료를 채취해서 미국, 뉴질랜드 등등의 AMS연대측정 기관에 의뢰하여 맡긴 결과 4만 년이라는 지질-지형학 입장에서도 상당히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즉 중기구석기 유적이 아닐 수도 있다. 사실 구석기 연대측정의 경우 한국만이 아니라 어느 나라도 제대로 신뢰할 만한 값을 얻기가 매우 힘들다. 일단 시료의 제한과 더불어 재퇴적 등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아 신뢰할 만한 연대를 추정할 만한 유적은 극히 일부다.
그럼 어째서 이처럼 연대차이가 커졌을까? 이는 현무암 기반암과 AT화산재 사이의 구석기 문화층이 지질학적으로 빠른 시간에 쌓인 것인지 아니면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쌓여서 형성된 것인지 확신을 못하기 때문이다.
즉 현무암 기반암은 포타슘/아르곤(K/Ar) 연대 측정법으로 측정해서 어느 정도 연대가 나왔고, 문화층 상부에서 발견된 AT(아이라-탄자와) 화산재 연대를 통해 구석기 문화층의 상한과 하한은 결정되었다. 그 외에도 뢰스, 즉 풍성층 연대 등도 보조적인 증거가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시간적 사이에 지질 형성이 얼마나 걸렸냐 하는 점이다. 1990년대 들어서 이선복 교수는 용암댐이 형성되면서 급격해 퇴적되어 현재의 지층이 생겼다고 주장했다. 즉 가장 큰 문제는 이 용암댐이라는 것이 실제로 어떤 작용을 했는지 확실히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 이 문제는 단순히 구석기 고고학의 문제만이 아니라 한반도에서 가장 특이한 지질형성 과정을 보여주는 추가령 구조곡의 질학적 문제도 얽혀있기 때문에 쉽게 결론나기 힘들다.
또한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호모 에렉투스가 약 200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진화한 후에 아시아와 유럽으로 퍼져나갔다는 것이 현재의 학설이다. 다만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인간의 직계 선조는 아프리카에서 약 30만 년 전에 진화된 현생인류,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이다. 대략 7만 년 ~ 6만 년 전 무렵 어떤 계기로 현생인류 중 일부가 아프리카를 떠나 중동지역을 거쳐 유라시아 전지역으로 퍼져나갔다. 그들 중 일부가 대략 4만 년 전쯤에 한반도에 도착했다고 추측한다.
다만 전곡리 유적은 아슐리안형으로 보이는 석기만 발굴되었고, 여기서 생활했을 인류의 유골은 확인되지 않았다. 석기만으로 정확한 연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것에는 한계가 있고, 현생인류의 경우에도 비슷하게 돌의 양면을 깨서 쓴 석기가 있으므로 유적의 시대를 정확히 단정짓기는 어려운 부분도 있다.

5. 그렉 보웬에 관해




6. 여담


석기시대 유물 중 양날주먹도끼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출토된 게 한반도이기 때문에 한반도 사람들의 DNA가 온순하다는 평화의 민족설에 대한 반박 자료로 쓰이기도 한다(…). 물론 이건 농담에 가깝고, 주먹도끼 같은 양면가공석기는 한반도 말고도 남중국의 백색 유적에서도 상당히 많이 발견되었고, 몽골지역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전곡리에서 발견된 이후 동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주먹도끼와 같은 양면가공석기가 발견되었던 것이다.
참고로 주먹도끼의 큰 특징은 양날이 아니라 양면으로 가공했다는 것이다. 양날은 이미 훨씬 구식인 찍개에서도 양날찍개가 존재한다.

7. 파급효과(?)


[7]과 율무, 콩[8] 같은 작물 빼고는 볼 것도 없던 동네 연천은 구석기를 컨셉으로 여러 가지 사업을 전개하기 시작했으며 그 일환으로 수많은 공공시설에 원시인 캐릭터와 리얼한 원시인 모형을 박아넣게 되었다. 당장 연천군 마스코트구석기인이고 청산면의 초성리에서 전곡읍으로 진입하는 3번 국도 구간에 크고 아름다운 장식을 해 놓았다[9]. 행사라고는 거의 아무것도 없는 연천군이지만, 연천 전곡리 구석기축제는 지자체의 지원 속에 큰 규모를 자랑하며 연천 군민이라면 동네에서 연예인을 볼 수 있는 정말 드문 기회이다.
시행 초기만 해도 허접한 수준이라 공무원들이 원시인 코스프레하고 불피우던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어엿하게 알바를 고용하고 있다. 일 년 중 유일하게 연천에 사람이 붐비는 시기라고 봐도 좋다.
그리고 2011년 4월 25일 이 유적지에 전곡선사박물관이 개관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화석인골모형을 전시해놓은 박물관이며 연천에 간다면 한탄강 위에 지렁이(…)같이 생긴 은빛 구조물이 보일 텐데 그것이 바로 이 박물관. 개관 초기에는 밤에는 주변과 전혀 어울리지 않게(…)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걸 볼 수 있었는데 2015년 기준으론 밝히지 않는 듯. 내부 컨셉은 동굴인데 프랑스의 유명한 디자이너 니콜라스 데마르지에르가 설계했다고 한다. 근처 학교 학생들이 주말마다 청소년 문화해설사로도 활동한다고 하니 여기 들르는 일이 있다면 꼭 한번 가보자. 노란 조끼를 입은 안내인이 바로 이들이다.
참고로 전곡선사박물관은 2017년 9월 이후로 무료 개장이다.
이 선사유적지 때문인지 육군은 놀고 있는(?) 대전차방호벽에다가 선사시대 원시인, 매머드 입상 따위를 올려서 장식해두었다.# 그리고 그 방호벽은 미 육군 전차 시뮬레이터 CCTT가 맵을 업그레이드하면서 그대로 고증되었다(....) # 링크의 미 육군 트위터는 아예 대놓고 "님들이 여기 와봤다면 이게 어딘지 알 수 있을 걸?"이라고 유머스럽게 표현했다.

8. 바깥고리



9. 사적 제268호


한탄강변에 있는 구석기시대 유적이다. 한탄강·임진강 줄기를 따라 구석기시대 유적이 많이 있는데, 그 가운데 전곡리 유적이 규모가 가장 크고 넓은 지역에 걸쳐 있다.

1978년 처음 발견되어 1979년부터 현재까지 여러 차례 발굴조사를 하였다. 그 결과 주먹도끼, 사냥돌, 주먹찌르개, 긁개, 홍날, 찌르개 등 다양한 종류의 석기를 발견하였다. 그 중 유럽과 아프리카 지방의 아슐리안 석기 형태를 갖춘 주먹도끼와 박편도끼가 동북아시아에서 처음 발견되어 주목을 받고 있다.

전곡리 선사 유적은 구석기시대 사람들의 생활모습을 밝혀 줄 중요한 자료일 뿐만 아니라 한국과 동북아시아 지역의 구석기 문화연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전곡리선사유적지 → 연천 전곡리 유적)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


[1] 보직은 기상관측.[2] 다만 이 기사에서는 평소에도 고고학 전공자로서 관심을 두고 지켜보던 장소였다는 이야기도 있다.[3] 흔히 '양면핵석기'라 부름.[4] 물론 이 석기에 맞는 재료의 부족이나, 유행 때문에 바뀌었을 수도 있다.[5] 다만 모비우스 라인 자체는 아직 완벽하게 깨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동아시아의 주먹도끼가 아슐리안이라고 보기에는 두께도 두껍고, 재타격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으며 가공도가 너무 낮아서이다. 이는 플린트와 달리 매우 단단한 규암과 석영, 석영맥암을 석재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에 배기동 교수는 전곡리안으로, 유용욱 교수는 비아슐리안으로 따로 분류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동아시아계 주먹도끼를 아슐리안으로 보는 시각은 크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비우스 라인 자체가 맞다고 하기는 뭐한 것이 일명 모비우스 라인 서쪽 지역도 전체를 아슐리안으로 분류하기에는 모호하기 때문이다.[6] 참고로 두 사람은 삼불 김원룡 선생의 제자로 배기동 교수가 한참 선배다. 하지만 연대관 문제로 가장 큰 라이벌이기도 하다.[7] 접경지역인 백학면에 펼쳐진 평야에서 생산하는 백학쌀이 유명하다. 듣보잡이라 그렇지 맛은 여주시 같은 유명한 동네보다도 맛있다. 물론 바로 옆동네인 철원 오대쌀의 포스에는 약간 못미치지만.[8] 비무장 지대 근처의 장단콩으로 유명하지만 정작 이 콩으로 벌어먹는 곳은 옆동네 파주로, 콩 축제도 파주가 챙겨갔다. 파주에서 열리는 주제에 정작 쓰는 건 죄다 연천산 콩이다![9] 이 구간은 경원선 철도와 병주하는 구간이라 열차 안에서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