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대공국

 



'''오스트리아 대공국'''
'''외스터라이히 대공국, Erzherzogtum Österreich'''

[image]
[image]
'''국기'''
'''국장'''
'''1453년 ~ 1806년'''
[image]
'''위치'''
중동부 유럽 오스트리아
'''수도'''

'''정치 체제'''
군주제
'''국가 원수'''
대공
'''국화'''
에델바이스
'''공용어'''
독일어
'''역사'''
1453년 성립
1806년 오스트리아 제국의 종주국으로 승격 및 상,하 오스트리아 대공국으로 분리
'''통화'''
굴덴
'''성립 이전'''
오스트리아 공국
'''해체 이후'''
상오스트리아 대공국
하오스트리아 대공국
[image]
1. 개요
2. 역사
3. 여담


1. 개요


독일어: Erzherzogtum Österreich
바이에른어: Erzherzogdum Östareich
1453년부터 1804년 오스트리아 제국이 세워질 때까지 존재했던 대공국이다. 대공국으로 승격되었을 시기의 인구는 2,000,000명정도였지만 엄청난 영토 확장으로 인구가 크게 증가했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의 본거지기도 하다. 수도는 현재와 같이 이었는데 오스트리아가 대공국으로 승격되었을 때는 인구가 이미 수만 명이었던 주요 도시였고 1683년에는 인구 110,000명, 1804년에는 인구 230,000명으로 급격하게 성장해 당시까지도 여전히 인구 수만 명에 머물렀던 다른 주요 도시에 비해 독보적이었다.

2. 역사


합스부르크 왕가는 혼인 정책으로 부르고뉴 공국의 대부분을 합병하였으며 스페인, 이탈리아 남부, 헝가리, 보헤미아까지 다스리게 되었고 1452년부터는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를 독점하기에 이른다. 헝가리 왕국, 보헤미아 왕국 등은 오스트리아 대공국과 동군 연합 관계지만 이렇게 영지들을 하나로 통합한 것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이고 이것들이 오스트리아 대공국의 영토는 아니다. 1521년에는 스페인의 압스부르고 왕조와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조로 분할 계승되었다. 1683년에는 과거 헝가리 왕국의 영토를 회복하였다.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에서 해외 진출을 포기하였고, 네덜란드 남부와 사르데냐를 얻었다. 이후 사르데냐-시칠리아 교환으로 사보이 왕가에게 사르데냐 섬을 주고, 시칠리아를 얻었다. 폴란드 왕위 계승 전쟁의 결과로 파르마를 얻고, 스페인 부르봉의 방계에게 주었다.
아들이 없던 카를 6세는 딸에게도 상속을 가능하게 하는 국사 조칙을 발표하지만 마리아 테레지아가 그가 죽고 오스트리아의 여대공, 헝가리 여왕, 보헤미아의 여왕, 파르마의 여공 등이 되려 하자 프랑스 왕국, 바이에른, 프로이센 등이 이의를 제기해서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이 일어난다. 결국 슐레지엔을 프로이센에게 내주는 대신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의 모든 영지를 상속받을 수 있었다. 나폴레옹이 프랑스 제1제국의 황제가 되면서 오스트리아의 지위가 위태로워지기 시작하였으며 프랑스에 대항하던 여러 국가들이 프란츠 2세를 오스트리아 황제로 추대해서 오스트리아 제국이 선포되고 오스트리아 대공국은 엔스강을 기준으로 상오스트리아 대공국하오스트리아 대공국라는 두 개의 대공국으로 나뉘게 된다.

3. 여담


오스트리아가 신성로마제국의 일원으로 대공국이였을 시절이 오스트리아 제국시절보다 더 넓은 영토를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되지만 사실 헝가리 왕국, 보헤미아 왕국 등은 오스트리아 대공국과 동군연합 관계이지 오스트리아 대공국 영토는 아니다. 즉, 합스부르크 가문의 오스트리아 대공이 헝가리의 국왕이자 보헤미아의 국왕, 네덜란드의 군주이자 여러 공국의 공작, 신성 로마 황제인 셈. 이런 동군연합 관계에 있는 영지들을 하나로 통합한게 오스트리아 제국이다. 엄밀히 말하면 오스트리아 대공국 시절 합스부르크의 영지가 오스트리아 제국 시절보다 넓다가 맞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