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재필

 

'''이름'''
오재필(吳梓馝 / Jae-pil Oh)
'''생년월일'''
1982년 6월 7일 (42세)
'''출신지'''
충청남도 공주시
'''학력'''
공주중동초 - 공주중 - 공주고 - 한양대
'''포지션'''
외야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1년 한화 이글스 2차 12순위(전체 93순위) 지명
'''소속팀'''
한화 이글스 (2005~2013)
'''한화 이글스 등번호 8번'''
조효상

'''오승택(2005)'''

조윤채
서정(2007)

'''오승택(2008)'''

윤재국(2009)
정원석(2010~2012)

'''오재필(2013)'''

정근우(2014~2019)
'''한화 이글스 등번호 61번'''
유혜정

'''오승택(2006)'''

김주(2008~2010)
'''한화 이글스 등번호 36번'''
신민기

'''오승택(2007)'''

김동영
'''한화 이글스 등번호 2번'''
서정(2009~2010)

'''오재필(2011~2012)'''

박노민(2013~2016)
1. 소개
2. 한화 이글스 시절
3. 은퇴 이후
4. 연도별 성적
5. 관련 문서


1. 소개


한화 이글스 소속의 외야수. 개명 전 이름은 오승택(吳承澤)[1]이며, 공익근무 복무가 끝난 후 개명했다.
고교 시절, 천안북일고에는 4번타자 김태균이 있었다면 공주고에는 4번타자 오재필이 있었다는 식으로 나름대로 라이벌 관계였다고는 하지만 공주고북일고에 비해 그다지 네임드 있는 학교가 아니라서 철저히 묻혀졌고, 2001년 신인 지명에서도 김태균이 1차 지명을 받은 반면, 오재필은 제일 말번인 2차 12순위 지명을 받고 프로가 아닌 대학을 선택해야 했다.
지명을 받았지만 너무 후순위였고, 오재필은 한양대학교에 진학하게 된다. 대학 졸업 후 한화 이글스에 입단했다.

2. 한화 이글스 시절


입단 후 차세대 외야수로 주목받았으나 당시 감독이 항상 베테랑만 선호하는 그 분이셨던데다 전신마취 7회라는 부상의 늪에 빠지는 바람에 거의 기회를 받지 못했다.
2008년에는 주로 백업 요원에 그쳤지만, '''50경기'''라는 기회를 받긴 했다(...).
여하튼 기대만큼 기회를 받지 못한 채 시즌을 마친 후 공익근무로 병역을 마친후, 2011 시즌에 복귀하였다. 정현석이 병역을 위해 경찰 야구단으로 떠났고, 강동우가 수비에서의 노쇠화가 심해지고 '''//''' 삼인방이 모두 좌타라 우타 외야가 심각히 부족했던 한화 이글스의 사정과 부합하여 야왕님에게 많은 기대를 받았다. 하지만 1군에서의 적응 실패(?)로 이렇다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며(?) 2군행[2][3], 2군에서 '''4할''' 언저리를 오가며 대활약하면서 감독에게 시위하고 계신다?[4]
코너뿐만 아니라 중견수도 가능하며 수비에서도 다른 한화 이글스 외야수들에 비하면 매우 준수한 편이고 타격 능력도 출중하기에 기회가 충분히 주어지고 본인이 1군에서 적응만 잘한다면 충분히 성공 가능성이 있는 선수로 보이긴 한다. 스윙 궤적도 좋고 자기 스윙 가져가는 것도 수준급이라고 하나, 역시나 선구안이 문제로써 BB/K가 극악의 수준이다. 팀 내 김회성이나 LG 시절의 박병호 등과 같이 2군 리그는 평정하면서도 정작 1군에서는 죽쑤는 예라 하겠다.
2011년 5월 21일 KIA전에서 시즌 첫 홈런을 쳤다.
2011년 9월 확대 엔트리로 1군에 돌아와서 9월 10일 SK전에서는 3안타 3타점으로 혼자 야구하면서 수훈선수로 선정되었고, 9월 13일 KIA전에서는 윤석민에게서 3타점 3루타를 뽑아내기도 하며 대활약 중이다.
2011년 10월 1일 넥센전에서는 시즌 두 번째 홈런을 만루홈런으로 장식. 점수는 6:5에서 순식간에 10:5가 되었다. 비록 경기는 내용면에서 누가누가 못하나의 대결이었지만 승리하여 수훈 선수로 선정되었다.
2013년 6월 27일 부로 강철민과 함께 한화에서 방출되어,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잔부상이 결국 선수 생활의 발목을 잡았다. 하지만 알려진 것과 다르게 한화 구단에서는 선수 생활을 지속할 것을 권했으나, 본인 스스로 현역 은퇴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비록 본인의 의사에 따라 은퇴를 선언하고 팀에서 나왔지만, 잦은 부상은 그에게서 선수 생활의 의지를 빼앗아 버렸다. 결국 충분한 포텐을 가지고 있었지만 늘 주저앉아야 했던 비운의 선수로 남았다.

3. 은퇴 이후


현역 은퇴를 선언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했고, 그 때 몇몇 에이전트들을 보면서 자신의 관심 분야 중 하나였던 에이전트 업무에 뛰어들기로 한 상태. "RA 매니지먼트"라는 에이전시를 차렸다고 한다.

4.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출장 경기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사구
삼진
출루율
장타율
2005
한화
1군 기록 없음
2006
3
.000
0
0
0
0
0
0
0
0
0
0
.000
.000
2007
1군 기록 없음
2008
50
.228
13
2
0
0
2
8
1
2
1
23
.267
.263
2009
군복무(공익근무요원)
2010
2011
54
.221
19
3
1
2
14
14
8
6
3
36
.295
.349
2012
46
.214
15
1
0
1
5
10
6
9
1
26
.313
.271
2013
9
.125
2
0
0
0
0
0
0
0
1
10
.177
.125
<color=#373a3c> '''KBO 통산'''
(8시즌)
162
.210
49
6
1
3
21
32
15
17
6
95
.281
.283

5. 관련 문서


[1] 현재 SK 와이번스 소속으로 뛰고 있는 오태곤 선수의 개명 전 이름인 오승택과 한자까지 같은 동명이인이었다. [2] 당시 군 복무 중이던 정현석의 빈자리를 채울 좌투용 스페셜리스트로는 적합하지 않아서 그럴지도 모른다. 좌투수 상대로 15타수 1안타. '''6푼 7리'''[3] 경쟁자인 이양기의 성적도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지만 52타수 12안타 '''.231'''로 나름(?) 괜찮은 셈[4] 사실 그 전부터 타격능력은 알아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