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카베 도시야
1. 개요
일본의 자위관.
2. 생애
1959년 후쿠오카에서 태어났다. 1977년 방위대학교 25기(육군사관학교 37기)로 입학했다. 1981년 졸업하여 육상자위대에 입대했고 3등육위로 임관했다. 1984년 제1공정단 부임 직후 이듬해 발생한 일본항공 123편 추락사고의 구조활동에 소대장으로 출동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후 1등육좌(대령) 시절에 육상막료감부 방위부 운용과장, 운용지원/정보부 운용지원과장을 지냈다. 처음 부임받은 부대가 공정보통과군(공수보병부대)이었다. 즉 병과는 보병이다. 대한민국의 육군사관학교와 비교하면 37기와 동기급이다.[1]
2006년에 육장보로 진급했는데 이는 임관 후에 진급에서 한 번도 떨어지지 않아야 하는 수준.[2] 이다. 중앙즉응집단 산하의 공수부대인 제1공정단장을 지냈고 2008년 서부방면대 총감부 막료부장으로 재직했다.[3] 2010년에는 도쿄로 돌아가 육상막료감부 교육훈련부장을 지냈다. 2012년에 방위대학교 25기(육사 37기, 해사 35기, 공사 29기) 중엔 처음으로 중장급에 진출했다.[4] 최저복무기간인 4년은 금방 채웠지만 선배들의 인사적체로 인해 6년이나 소모된 것으로 추정. 육장 진급 후 제6사단장, 방위대학교 간사[5] 를 지내고 2014년 8월 인사 때 통합막료부장으로 이동했다. 2014년 10월에 통합막료장이 이와사키 시게루(공자)에서 가와노 가쓰토시(해자)로 변경됨에 따라 러닝메이트가 바뀌었다.[6]
2015년 방대 23기(육사 35기) 출신의 이와타 기요후미가 육상막료장에서 물러날 것으로 보이는데 기수 차이로 볼 때 오카베 육장이 적절하기는 하다. 현재 방대 24기(육사 36기) 출신의 육상막료장(육군참모총장)은 이소베 고이치 동부방면총감, 다나베 기시로 북부방면총감, 반조 고이치로 서부방면총감(이상 2011년 육장 진급자), 다케우치 세이이치 육상자위대후지학교장, 마쓰오 유키히로 육상자위대연구본부장(2012년 육장 진급자)이 있다. 2012년에 육자대에서 방대25기(육사 37기)가 한 명 밖에 중장 진급을 못한 것은 방대 출신이 아닌 동기급 일반간부후보생 2명이 중장을 달았기 때문이었다. 도쿄대학 출신인 마쓰무라 고로[7] 와 다구치 요시노리[8] 가 방대25기의 다른 육자 장교들을 제치고 2012년에 오카베 도시야와 중장을 달았다. 하지만 방대 24기에서 아직 대장이 나오지 않은 관계로 좀 애매하다. 2015년 기준으로 이와타 육막장과 사이토 하루카즈(방대22기) 공막장이 임기가 각각 8월 27일과 8월 22일에 끝나는데 사이토 공막장의 후임자로는 거의 방대 24기(육사 36기)가 확실해 보인다. 8월 22일에 사이토 공막장의 후임자로 공자대의 방대 24기급[9] 이 올라가고 5일 뒤에 육자대의 방대25기급[10] 이 올라가는 구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와타의 재임기간이 1년 가까이 연장되어 2016년 7월이 되어서야 방대 25기(육사 37기) 출신의 오카베로 교체되었다. 사이토 공막장 역시 4개월을 더 재임하고 24기인 스기야마 요시유키에게 이임하였다.
오카베 본인은 방면대 총감을 맡아본 적이 없어서 올라가기는 힘들 듯. 이는 동기급인 학사사관(도쿄학예대 출신) 다구치 육장도 마찬가지이다. 학사사관(도쿄대학) 출신인 마쓰무라 고로의 경우 총감 경력은 있으나 1990년대 이후로 OCS한테 육막장 자리를 준 적이 없어서. 그래서 그냥 24기가 진급할 가능성도 있다.
2015년 3월 북부방면대 총감으로 이동했다. 육상막료장으로 올리기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결국 2016년 7월 1일에 이와타 육막장의 뒤를 이어 육상막료장으로 영전하였다.
2017년 8월 7일에 PKO 문서 은폐 문제로 인해 퇴임했다.
일본 정부에서 가와노 가쓰토시의 다음 통합막료장으로 점찍어둔 인사였단 얘기가 있다.[11] 그 때문에 그가 1년 반에서 2년 정도 육상막료장 자리를 지내고 통합막료장으로 올라갈 수 있는 시점을 맞춰주려고 가와노 통막장의 임기를 계속 연장했다는 설이 있다. 정부에서 이렇게 적극적으로 밀어줬는데도[12] 트롤짓해서 본인이 퇴역[13] 하고 방대 27기 출신들에게 예상보다 1년 빨리 대장 진급 기회를 주고 26기들은 1명의 대장도 배출하지 못 하고 나가게 할 가능성을 높게 만들어 주는 등... 여러모로 자위대 역사에서 회자될 인물이다.
[1] 육사37기로 대장까지 오른 인물은 김영식, 엄기학, 박찬주가 있다.[2] 자위대의 경우 위관급 장교에서 약 9.5년(졸업 직후 바로 임관이 아니라 간부후보생학교에서 반 년 이상 교육을 받고 소위가 된다. 그래서 기간이 애매.), 영관급 장교에서 약 15년을 지내야 장성급 장교로 진출할 수 있다.[3] 총감부는 부총감이 없이 총감, 막료장, 막료부장의 순이다.[4] 육자대에선 혼자였다. 방위대학교 25기 가운데 해자대는 3명, 공자대는 2명이 이 해에 처음 중장급 진출.[5] 방위대학교의 부교장격인 자리다. 민간인이 임명되는 교장1인과 부교장2인을 제외한 제복군인이 맡는 가장 높은 자리.[6] 미국은 합참의장과 합참차장이 같이 갈 때가 많지만 대장이 많은 미국과 달리 대장 자리가 4곳 밖에 없는 일본은 인사적체가 심각해 대장들이 2년 간신히 채우는 게 고작이라 이런 식의 인사는 이뤄지지 않는다.[7] 공교롭게도 오카베 도시야 이전에 통합막료부장을 지냈고 동북방면총감 역임.[8] 도쿄학예대를 나오고 육상자위대보급통제본부장 역임.[9] 1980년 입대자[10] 1981년 입대자[11] 통합막료장 자리는 2007년 신설된 후로 육(맛사키 하지메)-해(사이토 다카시)-육(오리키 료이치)-공(이와사키 시게루)-해(가와노 가쓰토시) 순이라 육자대에서 6대가 나올 거라고 거의들 예측했다.[12] 중장 시절에 어떻게든 군단장급 직책인 방면대 총감 경험을 쌓게 해주려고 통합막료부장에 임명된지 7개월만에 방면대 총감 자리로 옮겨줬다.[13] 퇴역도 멘탈이 나갔는지 감봉 조치가 내려오자마자 바로 나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