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인물/1940년대
1. 1940년
1940년 5월 10일 수상에 취임한후 영국 본토 항공전등을 지휘하였고 독일에게 뼈아픈 패배를 안겨주었으며, 전시 내각의 수반으로 대독 항쟁의 상징적인 인물이었기에 올해의 인물로 선정.
2. 1941년
1941년 12월 7일, 진주만 공습을 당하자 일본에 대한 선전포고를 선언, 미국은 국가가 전시태세로 전환되면서 제2차 세계대전에 본격적으로 개입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올해의 인물에 선정.
사실, 이때 진주만 폭격등으로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올해의 인물로는 모스크바를 지켜내며 동부전선을 막아낸 이오시프 스탈린이 선정될 확률이 높았다.
3. 1942년
동부전선에서 독일의 대대적인 공격을 막아내고, 오히려 소련군의 대대적인 반격으로 동부전선을 지켜내자 3년 전의 비아냥을 뒤집고 칭찬의 의미로 올해의 인물로 선정.
4. 1943년
조지 마셜은 이후 한번 더 선정이 되나 이때 선정을 했던 당시엔 국무장관이 아닌 육군참모총장직에 있었다. 전쟁을 수행함에 있어서 가장 큰 역할을 담당했기에 올해의 인물로 선정.
5.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마친 연합군 최고사령관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선정. 더군다나 12월엔 별이 다섯개로 진급까지 했기에 전쟁영웅으로 언급되기 적절한 시기였다.
6. 1945년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급사 이후 미국 부통령이었던 해리 S. 트루먼은 독일의 항복을 받아내고 일본의 항복을 위해 원자폭탄 사용을 허가하는 등 정확하고 중요한 결정을 내려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냈기 때문에 올해의 인물로 선정.
7. 1946년
전쟁이 종식되고 미국과 소련간의 냉전의 분위기가 감돌기 시작했던 1946년에 국무장관으로 있던 번스는 대소련 강경책을 강력하게 주장했었고 독일에게 과도한 제제보다는 빠른 시일내에 재건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을 높게 평가받아 올해의 인물로 선정.
8. 1947년
흔히 아는 마셜 플랜을 제안, 유럽의 전후복구를 도모해 소련의 서진을 막아야 된다는 제안을 한 조지 마셜이 올해의 인물을 수상.
9. 1948년
대통령 선거에서 떡실신 당할 것으로 생각된 트루먼[1] 이 여론조사 결과를 뒤집고 승리하면서 올해의 인물로 선정.
10. 1949년
올해의 인물이자 반세기의 인물로 선정. 공산주의 확산을 막기 위해 노력한 공로로 선정되었다. 철의 장막이란 말도 이때 처칠이 유행시켰다
[1] 이때 일찌감치 포기하고 선거 결과 보고도 안 기다리고 그냥 자버렸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참고로 이날 시카고 일보는 공화당 후보 토머스 E. 듀이가 이겼다는 역사적인 오보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