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 베나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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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스라엘 출신의 前 축구선수. 포지션은 미드필더.
클럽 경력만 본다면 과거의 빅4 팀 중 3개 팀을 거친 월드클래스 미드필더이다. 이와 비슷한 케이스는 저니맨으로 매우 유명한 니콜라 아넬카가 있으며 베나윤과 마찬가지로 맨유를 제외한 빅4에서 모두 뛰었다. 또한 2010년도의 빅6팀으로 확장하면 맨시티에서도 뛰었기에 빅6팀 중 4개의 팀을 거친 것이다.
2. 클럽 경력
15세 때 아약스 유소년팀에서 뛰었으나, 가족들이 암스테르담 생활에 익숙해지지 못해 고국으로 돌아왔다.
17세 때 이스라엘 프로리그의 하포엘 텔아비브 FC에 입단, 25경기 15골이라는 경이로운 성적을 거두었으나, 팀의 강등을 막지 못하고 마카비 하이파 FC로 옮겨 활약했다. 4시즌 동안 팀의 에이스로 군림하여 활약하다 2002년 스페인 라싱 산탄데르로 이적, 하위권을 맴돌던 라싱을 먹여살렸다.[1] 이후 2005년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FC의 러브콜을 받아 이적하여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데뷔했다.
처음에는 피지컬 등의 문제로 적응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컸으나 그런 예상을 뒤집고 좋은 활약을 보이며 2시즌 동안 활약했고, 결국 2007년에 리버풀 FC로 이적했다. 이때부터 국내 축구팬 사이에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사실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시절에도 유명하기는 했다. 왜냐하면 베나윤이 활약했던 시절 웨스트햄은 하비에르 마스체라노, 카를로스 테베즈 등 뛰어난 선수들을 영입하여 '하위권 팀이 탑클래스급 선수를 데리고 있다'는 이유로 피파 온라인 등 게임 유저들에게 인기를 얻었기 때문이다(...). 물론 얼마 안가 다 잃어버렸지만.
리버풀에서는 그야말로 '''슈퍼 서브'''로써 이름을 알렸다. 비록 첫 시즌에는 조금 버벅거리는 면이 없지 않았으나 그 다음 시즌인 08/09 시즌부터는 리버풀의 제라드-토레스 라인이 부진하거나 양쪽 윙 포워드들이 부진할 시에 투입되어 경기의 양상을 뒤집는 사실상 크랙의 역할을 맡았으며, 08/09 시즌에 번리와의 경기에서 아시아인으로서는 최초로 프리미어 리그 해트트릭을 기록한다.
덕분에 리버풀 팬들에게 평이 굉장히 좋았다. 그러나 라파엘 베니테스 감독은 베나윤을 로테이션 멤버로만 돌렸으며, 결국 베나윤은 2010년 베니테스를 마구 디스하고 첼시로 옮겼다.[2]
그러나 첼시에서는 몇 경기 뛰다가 거의 시즌 아웃에 가까운 부상을 당했다. 조 콜에 돈까지 얹어서 데려온 첼시 입장에서는 눈에서 피가 나올 정도였다. [3]
2011-12 시즌에는 아스널로 잠시 임대를 갔다. 아스널에서는 리버풀 시절과 마찬가지로 수퍼 서브로 활약했다. 주로 후반에 출전해 볼 소유권을 확보하고 경기에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하고 있다. 때때로 터지는 중요한 득점은 덤이다. 얼마나 잘했냐면, 당시 활약으로 벵거 재임 기간 중 최고의 선수로 베나윤을 꼽을 정도이다. 11/12 시즌에 베나윤 & 로시츠키는 공수에서 활발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반 페르시와 송, 아르테타말고 비전이 없는 선수단에 큰 보탬이 되어주었다.
사실 아스널 팬들은 이전부터 베나윤에 대해 어느 정도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05/06 시즌 리그 마지막 라운드에서 베나윤의 두 골로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FC가 4위 토트넘 핫스퍼을 격파, 5위를 기록 중이던 아스널이 4위로 뛰어올라 다음 시즌 챔피언스 리그 티켓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몇몇 아스널 팬들은 '나윤신'이라고 칭송하며 평생까방권을 부여하고 있다.
왠지 모르게 비실비실해보이고 가끔 보면 병에 걸린 사람으로 착각할만한 외모를 지녔으나 피지컬이 나쁘지 않고 활동량도 괜찮다. 외모와 실력의 갭이 상당히 큰 선수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만 입단하면 리버풀이 부진한 편이지만 빅4에 입단하는 기록이 생긴다. 그런데 2012-13 시즌은 첼시를 떠나 풀럼 FC 입단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결국 친정인 웨스트햄으로 임대되었으나 11월 부상으로 6경기만 출장했다. 2012년 12월을 끝으로 다시 첼시로 돌아왔다. 그런데 돌아오니 감독이 라파엘 베니테즈. 그래도 첼시에서 로테이션으로 간간히 나오고 있다. FA컵 미들스브로전에서 12-13 시즌 첼시 소속 첫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12-13 시즌이 끝나자마자 플로랑 말루다와 함께 자유계약 대상자로 방출. 하지만 9월 2일 이적시장 종료까지 아직도 소속팀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2013년 12월 2부리그인 챔피언십 소속인 퀸즈 파크 레인저스와 단기계약을 맺었다. 뭐 퀸즈파크가 2부리그 2위로서 승격 가능성이 있는 점도 있었을 듯 하다.
2014년 6월 7일 마카비 하이파 FC로 이적하면서 고국 이스라엘 클럽으로 돌아갔고, 이후 줄곧 고국 이스라엘 1부리그인 이스라엘 리갓 하알리그의 여러팀을 전전하다가, 2019년 4월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리버풀 홈페이지에 올라온 그의 은퇴기사
3. 국가대표 경력
당연히 이스라엘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맹활약을 하고 있지만 중하위권 수준인 이스라엘로서는 월드컵이나 유로에서 번번히 막히기에 국제대회에서는 활약상을 보기 어려울듯 싶다.
현재 이스라엘 국가대표 A매치 최다 출전 기록을 보유 중이며, 이스라엘의 유일한 센추리 클럽에 가입한 선수이다.
4. 플레이 스타일
리버풀 시절 경기를 뒤집을 만한 크랙으로 평가받았다. 화려한 테크닉을 바탕으로 한 드리블링과 뛰어난 창조성으로 경기를 만들어나간다.
라싱에서 플레이메이커로 뛰었으나, 프리미어리그로 이적한 뒤 중앙에서 오른쪽 측면으로 자리를 옮겨 뛰고 있다. 공간이 생기면 바로 드리블링으로 파고들며 중앙으로 치고 들어와 빠른 타이밍으로 슈팅을 날려 전세를 뒤집는 경우가 자주 있다.
5. 여담
- 2014년 7월에 트위터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의 비인도적 측면을 비판하던 조이 바튼의 트윗에 이스라엘인으로서 나름대로의 반박을 했지만 바튼의 논리정연한 재반박에 데꿀멍당했다. 기사 그래도 옛 동료라서 그런지 마지막에는 "우정에는 변함이 없다."라는 바튼의 글에 수긍하며 마무리했다.
- 그런데 위의 일이 일어나고 며칠 뒤, 마카비 하이파 소속으로 LOSC 릴과의 연습 경기에 출전했는데 후반 막판, 팔레스타인 국가를 들고 경기장에 난입한 일부 팔레스타인 지지자들에게 공격을 받았다. 마카비 하이파가 이스라엘 리그의 팀이라 그런듯 보이는데 이 사람들은 베나윤 등 이스라엘 국적의 선수들에게 다가가 물리적 충돌을 일으켰다. 당시 베나윤 말고도 다른 선수와 지지자들이 서로를 발로차서 넘어뜨리고 주먹을 휘두르는 등 전체적으로 험악한 분위기였다고 한다.
- 모국 이스라엘이 징병제[4] 다 보니 해군 체육부대에서 스포츠 조교같은 보직으로 대체복무를 했다고 한다.
[1] 04/05 시즌에는 데포르티보 전에서 멋진 해트트릭을 포함하여 커리어 사상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베나윤의 라싱 시절 성적은 99경기 20골.[2] 08/09 시즌 베나윤은 첼시 소속의 라이트백인 조제 보싱와에게 등을 걷어차이는 수모를 당한 적이 있었다. 이 사건은 '킥복싱와 사건'으로 알려졌으며, 리버풀 팬들은 첼시를 디스할 때마다 이 사건을 들먹였다. 그런데 피해자인 베나윤이 첼시로 가버렸다. 그것도 가해자(?) 보싱와가 건재한 상태의 첼시에(...). 이러한 황당한 이적에 축구팬들은 엄청난 아이러니함을 느꼈다.[3] 장난삼아 이렇게 이야기 하고는 하는데 베나윤은 어디까지나 이적료만 주고 첼시가 데려온 선수이다. 조 콜은 프리로 풀린 것을 리버풀이 따로 영입한 것.[4] 남녀 모두 입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