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

 


1. 療養
2. 중국 랴오닝 성의 도시
3. 후진의 추존 황제 (姚襄)
3.1. 둘러보기(계보)


1. 療養


신체, 정신의 기능에 문제가 있어 휴식을 통해 몸에 여력을 쌓고 상태를 호전하기 위해 쉬는 것. 단순히 휴식을 취하는 것 뿐만이 아닌 적극적인 치료를 동반하는 행위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산재보험 등에서 정의하는 '요양급여'라 함은 치료비용을 뜻하는 말이다. 병원, 요양병원, 요양보호사 등을 참고하자.
당연히 충분한 영양 섭취와 휴식, 가능하다면 적절한 운동이 병행되어야 하며, 요양원은 심신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시골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지만 도시에 위치하는 경우도 늘어나는 추세이다.

2. 중국 랴오닝 성의 도시


랴오양 문서로

3. 후진의 추존 황제 (姚襄)



'''요진 추존 군주
魏武王 | 위무왕
'''
'''묘호'''
없음
'''시호'''
위무왕(魏武王)
''''''
요(姚)
''''''
양(襄)
''''''
경국(景國)
'''생몰 기간'''
331년 ~ 357년
'''재위 기간'''
352년 ~ 357년
'''부친'''
요익중(姚弋仲)
5호 16국 시대 관중 지방에 세워진 나라인 후진의 건국 군주인 요장의 형. 아버지 요익중(姚弋仲)은 강족(羌族)의 족장이었는데, 후조염민(冉閔)에게 멸망하자 하북에서 거병하였고 후조의 후계자인 석지 (石祗) 휘하에 가담, 염위에 맞섰다. 요익중은 석지에게 친조왕(親趙王)으로 봉해졌고 요양 역시 신창공(新昌公)으로 봉해져 예주 자사가 되었다. 하지만 351년에 요익장은 염위에 패하였고 그와중에 석지가 살해되었다.
이후 요익장과 요양은 동진에 투항하여 각각 고릉군공(高陵郡公)과 평향현공(平鄉縣公)이 되었다. 요익장은 352년에 사망하여 요양이 강족의 수장이 되었는데, 전진과 맞섰으나 패하여 다시 동진에 의탁하였다. 하지만 동진의 장군 은호(殷浩)는 요양을 경계하였고 결국 353년에 회수를 건너 강족을 공격하였는데, 요양은 그를 격파하고 오히려 회남(淮南)을 점령하였다.
요양은 354년에 형식상으로 동진의 신하가 되었으나 사실상 독립적으로 움직였고, 355년에 허창을 점령하고 356년에 낙양을 공격하기도 했다. 날로 강성해지는 요양을 경계한 동진은 환온(桓溫)을 보내었고, 요양은 그가 이끄는 북벌군에 패하여 평양(平陽, 린펀)으로 도주하였다. 이후 요양과 강족은 화북 대신 관중(關中)을 목표로 하여 여러 성을 공격하였다. 이는 전진의 2대 군주 부생(苻生)의 어그로를 끌었고, 셴양 인근에서 맞붙었다. (357년)
요양은 부생의 매복에 빠져 삼원(三原)에서 전사하였고, 그의 뒤를 이은 동생 요장(姚萇)은 강족을 이끌고 전진에 투항하며 강족의 1차 국가 건설 노력은 살패로 귀결되었다. 부생은 요장에게 요양의 제사를 후히 치르도록 하였으며, 훗날 요장이 후진을 건국하자 요양은 위무왕(魏武王)으로 추존되었다.

3.1. 둘러보기(계보)


'''후진의 역대 황제'''
시조 경원제 요익중

'''위무왕 요양'''

1대 태조 무소제 요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