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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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腰斬刑
사형의 하나.
참수형이 목을 자른다면 요참형은 허리를 댕강 날려 버리는 형벌이다. 판관 포청천에 나오는 작두 시리즈가 실은 목을 자르는 게 아니라 허리를 자른다는 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
요참형 이후 대개는 즉사하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바로 숨지지 않는다. 참수의 경우 양쪽 경동맥(Carotid Artery)의 절단으로 출혈 속도가 빠르고, 이에 따라 뇌로 가야할 피가 급격히 줄어들기 때문에 사망에 이르는 시간이 비교적 짧다. 반면 허리는 절단됐을때 복부 대동맥(Abdominal Aorta)이 절단되는데 물론 이것도 사망에 이르는 중상임은 맞지만 경동맥에 비해 혈압이 낮아[1] 출혈 속도가 느리고 결정적으로 뇌혈류량의 감소 속도가 빠르지 않기 때문에 실혈로 인한 쇼크를 일으키는 시간이 참수보다 훨씬 오래 걸린다.
허리가 잘리고도 오래는 아니지만 얼마 간은 살아 있던 사례는 많다. 지뢰 폭발로 허리 아래가 모두 날아간 군인이 몇 십초간 의식을 유지한 채 생존해 있었다는 실화[2] 도 있고, 가끔 LiveLeak과 같은 쇼크 사이트에 허리가 잘린 채 살아서 꿈틀대는 교통사고 희생자들의 사진이나 영상이 심심치 않게 올라오기도 하며, 실제 사례로 청나라 옹정제 시절 정 1품 과거 시험관 유홍도의 사례도 있다.[3]
외국의 모 방송사에서 의사가 나와 인체와 흡사하게 만든 모형을 가지고 실험한 결과, 깔끔하게 한 번에 잘리지도 않았다. 처형이 진행되는 동안 의식이 남아 있다면...
베트남의 한 축제에선 전통적으로 돼지에게 요참형을 집행한다. 몇 번을 내리친 끝에야 두 토막이 나고 잠시 몸부림치며 살아있기까지 하는데, 아무리 고문에 상한 사람이라지만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4]
중국의 역사가 사마천이 이 형벌을 당할 뻔했는데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반드시 사서를 써야 했던 사마천은 '''궁형을 고르고''' 살아남은 뒤 사마천은 《사기》를 저술했다. 당시 이런 형벌을 받게 되는 사람은 다음과 같이 대우받는다.
- 돈 왕창 내고 형벌 면하기의 경우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화폐 가치로 따진다면 1조 원 상당의 돈을 내야 하는데, 그런 사람이 얼마나 될까? 당장 현대 한국에도 전 재산 1조 원 이상인 사람은 28명에 불과하다.
- 요참형을 택하면 그때 사람들에게는 용자로 대우받으며 장례식도 아주 융숭하게 치러줬다.
- 반면, 궁형당하는 쪽을 택하면 비굴하게 목숨을 유지했다고 손가락질당했다. 거기다가 성기가 잘린 자리가 썩어 들어가 냄새가 무진장하게 나서[5] 가족들한테도 버림받는다고. 사마천은 말년에 이런 치욕과 호르몬 변화 탓에 죽을 때까지 고생하다가 갔다. 그래도 남자의 상징을 몇 천년을 갈 역사서와 바꾼 그의 용기는 칭송할 만하다.
2. 요참형 당한 인물
2.1. 실제 인물
- 두영
- 위장공주(衛長公主)[6]
- 유굴리
- 이사
- 필현보 - 서경 출신의 고려 역적으로 홍복원과 함께 봉기했다가 최우의 사병 3천명에게 진압당하자 홍복원은 몽골로 재빨리 달아났지만 본인은 붙잡힌 뒤 요참형에 처해졌다고 한다. 그리고 이때 홍복원이 갖다 바친 귀주를 비롯한 40여 성은 몽골의 심양로에 편입되었다.
- 하후현
2.2. 가상 인물
- 어떤 과학의 초전자포 - 프렌다 세이베른
- 삼국지연의 - 진식#s-1.2: 삼국지연의 한정이다. 정사에서는 무도, 음평을 함락하는 전공을 세운 걸 마지막으로 더는 등장하지 않기에 언제 어떻게 사망했는지 불분명하다.
- 죠죠의 기묘한 모험 - 윌 A. 체펠리
[1] 경동맥은 좌심실이 짜내는 혈류가 직통으로 올라올 뿐더러, 복부 대동맥에 비해 혈관 직경이 매우 가늘다.[2] 모가디슈 전투에서 RPG공격 탓에 허리 아래가 날아간 병사도 꽤 오래 살아남았지만 결국 야전병원에서 사망했다.[3] 그의 첩이 몰래 과거 답안지를 유출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남편 유홍도가 유출죄로 요참형을 선고 받은 것으로 당시 옹정제는 유교적인 군주로 과거 시험의 정답이 유출된 죄를 범히 물었다. 결국 첩을 잘못 둬 요참형에 처해진 그는 허리가 잘려도 죽지 못한 채 자신의 피를 적셔 慘(참혹할 참)을 7번 쓰고서야 죽는데, 후에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고. 반역자도 아닌데 요참형으로 사형시키는 것을 잔혹하다고 생각한 옹정제는 요참형을 폐지한다.[4] 아주 당연하게도 동물학대라며 전세계에서 엄청난 비판과 비난을 받고 있다.[5] 음경은 보존하게 하고 고환만을 자르는 한반도의 예와 달리 중국에서는 궁형(또는 환관이 되려는 자) 집행 시 남성의 성기 전체를 잘라냈다. 이 때문에 고통과 합병증으로 사망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6] 한무제와 무사황후 위씨(위자부) 사이의 장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