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image] '''대한민국 국보 제285호'''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蔚州 大谷里 盤龜臺 岩刻畫


'''소재지'''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반구대안길 285 (대곡리)
'''분류'''
유물 / 일반조각 / 암벽조각 / 암각화
'''수량/시설'''
1기
'''지정연도'''
1995년 6월 23일
'''제작시기'''
신석기시대
1. 개요
2. 내용
3. 의의
4. 보존 관련 수위 논란
5. 기타
6. 관람

[clearfix]

1. 개요


[image]
[image]
멀리서 본 사진과 확대한 모습.
[image]
[image]
음영 강조 사진과 탁본.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의 대곡천 중류의 암벽에 새겨진 암각화이다.
선사시대에 만들어진 것은 분명하나 그중 어느 시대 구분에 속하는지는 지금도 논란 중에 있다. 2017년 반구대암각화 국제학술대회에서 프랑스 국립발전연구원(French National Institute for Development)의 조파리 드 쉘뤼(Geoffroy de Saulieu)는 신석기 시대로 추정하며, 그 이유는 포식경제와 정주적 공동체 사회의 시기이고 청동기 시대의 연속성을 암시하는 거석문화와 건축이 암각화의 유산이라 보았다.
1971년 문명대 교수를 중심으로 한 동국대학교 탐사에 의해 발견되었으며 1995년 6월 23일 대한민국의 국보 제285호로 지정되었다. 울주 천전리 암각화도 바로 옆은 아니지만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둘을 세트로 묶어서 같이 보는 경우가 많다.
반구대라는 명칭은 인근의 누각 이름이다. 고려시대부터 존재했으며 경치가 좋고 포은 정몽주가 유배생활을 했던 곳이기에 조선시대 선비들이 성지순례를 올 정도로 유명한 곳이라, 훗날 선사시대 암각화가 발견된 뒤 그곳의 이름을 따서 반구대 암각화라고 이름지었는데, 21세기 현재는 반구대 암각화가 너무 유명해지는 바람에 정작 이름의 유래인 반구대는 암각화 보러 가는 길에 지나치는 듣보가 되어버렸다.

2. 내용


'''수렵 생활'''과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다. 소나 호랑이, 표범, 사슴 등 육지 생물들의 모습도 보이지만 가장 많이 보이는 것은 해양 생물, 특히 '''고래'''다. 원시적 벽화임에도 고래에 대한 묘사가 매우 세밀한 편인데, 종류별로 새끼를 등에 올려놓은 고래(귀신고래)[1], 앞뒤의 색이 다른 고래(범고래), 수많은 세로줄 무늬가 있는 유별나게 큰 고래(흰긴수염고래) 등이 그려져 있다. 또, 고래 사냥에 대한 내용으로 미끼, 그물, 작살을 맞은 고래, 그 고래를 잡기위해 해양으로 나가는 배 등이 그려져 있는데, 10명 이상이 긴 나무배에 타 고래에게 작살을 던지고 잡은 고래를 끌고 가서 살을 발라내는 일을 하는 내용이 아주 자세히 묘사되었다. 그래서 학계에서는 이 암각화가 문자가 없었던 석기~청동기시대에 포경 교육을 목적으로 그려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그림들을 잘 살펴보면 선만 새긴 것과 면을 채워 새긴 것들로 나눌 수 있는데, 이 둘이 겹쳐진 부분에서 면을 채운 것이 더 깊게 파였기 때문에 이것들이 더 먼저 그려졌다고 추정하고 있다. 면을 채운 것들은 대부분 고래 잡는 내용이고 선만 새긴 것들은 육지동물과 관련된 내용이 대부분인데, 이를 통해 학자들은 이 지역이 예전에는 고래가 진입할 수 있는 해안 지대였으나 훗날 지형이 바뀌어 내륙 지대가 되었고[2]여태껏 고래를 잡던 사람들은 가축을 기르게 되었다는 설을 내놓았다.
이 암각화에는 사람도 그려져 있는데, 깃털 등을 온몸에 장식하고 굿을 하는 사람(포경선 선장의 아내로 추정), 그 곁에서 기도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있다. 여기 그려진 남자들은 성기가 크게 묘사돼 있는데 자손 번성을 기원하기 위해서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3. 의의


한국의 몇 안 되는 '''포경 생활사'''의 시초를 담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사실 특이하다면 특이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 한국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가끔 고래들이 지나다니는 곳 근처[3]에 있는 나라임에도 포경의 역사가 짧고 기록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선사 시대의 문화와 포경 역사를 모두 담고 있는 반구대 암각화는 꽤 높이 평가받는다.
또한 세계사적으로도 의미가 있는데 이 암각화가 원시 포경의 모습이 그려진 최초의 기록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암각화는 세계 학술적으로도 유명한 편이며 영문 위키백과의 포경 항목에도 인류의 포경 역사의 시작 부분에서 맨 처음 언급된다.

4. 보존 관련 수위 논란


한 나라의 국보임에도 수몰될 위기에 수십년 째 처해 있다.
[image]
보다시피 비가 오거나 바닷물의 흐름으로 인해 수위가 급격히 높아지면 암각화의 일부가 물에 잠겨 침식될 수 있는데 아무런 조치를 취하고 있지 않아서 논란이 일었다. 이러한 관리 실태 때문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하려다 실패했다는 풍문이 있다.
[image]
결국 수위를 낮추어 침식을 막을 수 있도록 이렇게 이동식 댐을 설치하는 계획이 나왔다. 구조상 댐 안쪽에 무빙워크 비슷한 장치도 있어 가만히 플랫폼 위에 서서 암각화를 감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물막이 댐의 최종 모형 실험 결과, 투명 물막이판 모형의 연결 부분에 누수가 발생하여 실험이 실패했다. 이를 두고 울산대학교 조홍제 교수는 '실패가 예견된 방안' 이라고 밝혔다. 해당 기사 실험 비용은 28억이 들었다고 한다.
2016. 7. 24. 결국 백지화 되었다. 울산시는 지난 21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건축분과 회의에서 임시 물막이 안건을 심의해 사업을 중단하기로 했다고 24일 밝혔다.
현지 시민들은 이것 떄문에 식수조달이 어렵다고 차라리 마모되어 없어져 버렸으면 하는 의견이 강한 듯하다.
2020.11.18 한국수자원공사울산시가 반구대 암각화 보존을 위해 업무 협약을 맺어 앞으로 암각화를 보존하면서 훼손돼지 않게 방안을 내세울것으로 보인다.

5. 기타


워낙 반구대 암각화로 유명한 곳이라 암각화만 있는 동네로 생각하기 쉽지만 원래 '반구대(盤龜臺)'는 비경으로 신라 때부터 알려졌던 곳으로 고려시대, 조선시대까지 정몽주 등 많은 역사적 인물이 여기서 시를 남기기도 하는 등 암각화로 알려지기 전에도 경치가 좋다고 소문난 지역 명소였다. 포은대(圃隱臺)에는 삼현의 행적을 기록한 유허비와 포은대영모비가 세워져 있고, 또 맞은편에는 중창한 반구서원이 있다.
영어 표기로 Bangudae를 쓰는 곳이 있는데 이렇게 하면 '반구대'(Ban gu dae)로 읽는 건지 ''''방우대''''(Bang-udae/Bang-u-dae)로 읽는 건지 알 수가 없어 로마자 사용자 측에서는 혼돈의 카오스가 일어날 수 있다. 그래서 로마자 표기 시 Ban-gu dae라고 하이픈(-)[4]으로 음절이 구분되게 표기하고 있다.
2013년에는 암각화 근처 암반에서 공룡 발자국 화석 81점이 확인됐다. 초식공룡인 용각류, 조각류와 함께 육식공룡인 수각류 발자국이 함께 확인된 점이 특징이며 특히 길이 9cm, 폭 5.4cm의 작은 수각류 공룡 발자국은 지금까지 경상도 지역에서 발견된 육식공룡 발자국 화석과 다른 종류라고 한다. 근처에 있다뿐이지 본문의 암각화와는 별 관련이 없다. 덤으로 근처 천전리 암각화에도 공룡 발자국 화석이 존재한다.[5] 2020년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공룡은 아니고 도마뱀과 가까운 파충류 '코리스토데라(Choristodera)' 종류의 발자국이라고 밝혀졌으며, '노바페스 울산엔시스(Novapes ulsanensis)'로 명명되었다.#

6. 관람


울산광역시에서도 상당히 외진 곳에 위치.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348번 버스를 이용하면 갈 수 있는데 계곡 안쪽에 있어 자가용을 이용하든 대중교통을 이용하든 어느 정도는 걸어야 한다. 근처에 있는 울주 천전리 암각화와 달리 실물 바로 앞에서 볼 수는 없어서 뭐가 새겨져 있는지는 육안으로는 거의 안 보인다. 대신 실물 크기의 모조품이 울산박물관 등에 전시돼 있고, 울산역 내부의 자투리 공간에도 암각화 일부를 부조로 조각해 놓은 곳이 있다.
근처에 울산암각화박물관이 있다. 반구대 암각화로 오는 버스를 타고 내리는 곳이기도 한데,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암각화를 비롯 국내외의 암각화에 대한 박물관이다.

[1] 오랫동안 새끼를 밴 고래로 추정되었으나, 새끼를 '밴' 게 아니라 '업은' 모습인 걸로 밝혀졌다고 한다. 이는 귀신고래의 습성이다.[2] 해빙기 시점부터 해수면이 점차 지금 수준까지 높아졌기 때문에 당시 해안에는 퇴적 지형이 크게 생성되지 않았다. 울산만과 태화강도 지금보다 훨씬 위쪽까지 올라와 있었을 것이다. [3] 지금도 매우 드물게나마 방사형 그물에 엉켜 죽거나 죽은 채 떠밀려온 고래가 발견된다. 주로 돌고래류(이빨고래류), 밍크고래이며, 한국의 경우 합법적으로 판매하기 위해서는 신고를 한 뒤 허가를 받고 해체하여 경매 등으로 판매해야 한다.[4] 사실 하이픈은 음절 분리가 아니라 두 단어를 하나로 엮어놓는 역할을 한다. 음절 분리 표시는 하이픈이 아닌 어포스트로피가 국제적으로 통용되며(예:San'in, Xi'an 등) 어포스트로피를 쓰는 게 바람직할 수 있으나 국내의 로마자표기법에 의해 붙임요를 쓰고 있다(쓰지 않거나 붙임표 사용 선택).[5] 이 쪽은 발견된 지 꽤 되었는데 1997년에 이미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