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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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이야깃거리
3. 관련 문서


1. 개요



의 발바닥. 예로부터 중화권과 관련 문화권의 왕후장상의 음식이자 진미로 유명했다. 그래서 고급스럽고 유명한 재료에 가깝다. 팔진 문서에도 나와 있지만, 웅장이 진미로 꼽힌 이유 중 하나는 야생동물의 기가 모이는 곳이니 귀중하다는 것[1]이고, 다른 하나는 야생 곰을 잡아서 그 발바닥으로 요리를 만드는 것이 대단히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흔치 않은 식재료인지라 숙련되기 쉽지 않은데다 워낙 두꺼워서 잘 익지 않기 때문이다. 아래에 나오는 초성왕 관련 일화가 대표적 사례이다. 심지어 맹자조차도 먹고 싶어한 요릿감이다.
지금도 중국 부자들이 좋아하는 진미 중 하나다. 다만 예전과는 달리 현재는 곰이 보호종이 되었는지라 합법적으로는 먹을 수가 없고, 그래서 러시아 등지에서 밀수하거나 동남아시아일본으로 여행을 가서 몰래 먹는다고 한다. # 사실 고기 정도면 양반이고, 살아있는 곰의 앞발을 잘라 을 담그기도 한다고 한다. #
근래에는 돼지고기, 닭고기 등을 이용한 인조웅장이나 가짜 웅장이 대세로 떠오르고 있다. 곰 발바닥 모양은 호불호가 갈리기는 하지만, 맛 자체는 그럭저럭 나쁘지는 않은 듯 하다. 진짜 곰고기가 아닌 만큼 특별하고 참신한 맛은 별로 기대하지 못한다. 참고로 실제로 웅장을 먹어 본 사람들에 따르면 돼지비계와 비슷한 맛이 난다고 한다. 실제로 체성분의 구성을 고려하면 족발보다 맛있기 어려운 재료이다.

2. 이야깃거리


  • 중국 춘추시대 초나라 성왕태자를 교체하려다가 오히려 아들선수를 치는 바람에 사로잡히는 신세가 되었다. 이 때 마지막 소원이라고 한 말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웅장을 먹고 죽고 싶구나." 성왕의 속내는 며칠씩 삶아야 하는 웅장의 특성을 이용해서 지방의 진압군이 달려올 때까지 시간을 벌려는 것이었는데, 태자가 바보도 아니고서야 바로 그 뜻을 알아챘고, "곰 발바닥은 익히기가 힘들지 않소!"라는 말로 대응했다. 결국 버틸 수 없게 된 성왕은 흰 비단으로 목을 매어 자살했다.
  • 중국 춘추시대 진나라 영공은 성격파탄자로 악명이 높았는데, 어느 날 그의 요리사가 약간 덜 익혀진 웅장을 수랏상에 올렸다. 이에 영공은 요리사를 죽여 그 시체를 바구니에 담아 요리사의 아내가 궁궐 밖으로 지고 나가도록 했는데,[2] 마침 당시 진나라의 집정이었던 조둔[3]이 입궐하다가 웬 아낙이 이고 가는 바구니 밖으로 사람의 손이 튀어나온 것을 보고 기겁해 영공에게 달려가 앞으로 이런 포악한 짓을 그만두라고 했고, 영공은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여기서 끝났으면 당연히 이야기가 되지 않고 영공은 오히려 잔소리하는 조둔을 죽이려 들었다. 하지만 영공이 파견한 암살자는 조둔이 바른 사람인 줄 알고 차마 죽이지 못하고 자살했다. 훗날 영공은 술자리에서 조둔을 죽이려 했지만 조둔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 있어서 필사적으로 호위한 덕에 가까스로 탈출했고, 이 사실을 듣고 분노한 조둔의 사촌동생은 진영공을 살해한다.
  • 금병매에도 주인공 서문경이 정력 강화를 위해 먹는 음식으로도 언급되었다.[4]
  • 맹자도 웅장을 언급한 적이 있다.
>孟子曰 魚我所欲也 態掌 亦我所欲也 二者 不可得兼 舍魚而取態掌者也 生亦我所欲也 義亦我所欲也 二者 不可得兼 舍生而取義者也
>맹자가 말하기를, 물고기는 내가 바라는 것이고, 곰발바닥도 역시 내가 바라는 것이다. 둘 다 가질 수 없다면 물고기를 버리고 곰발바닥을 취하겠다. 생명 역시 내가 바라는 것이고, 의로움 또 한 내가 바라는 것이다. 둘 모두를 얻을 수 없다면, 생명을 버리고 의로움을 취하겠다.
>-맹자 고자편
  • "물고기도 먹고 싶고 웅장도 먹고 싶으나 둘 다 먹을 수 없다면 웅장을 먹겠다."라고 했다. 물론 맹자가 먹방을 찍으려고 한 말이나, 물고기가 생명을 의미하고, 곰발바닥이 의로움을 비유하는 것이 아니라, 위 인용문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댓구 맞추려고 적은 글이다.[5] 물론 맹자의 개인적인 음식 취향은 알 수 있는 것이지만. 나중에 허균은 이 말을 그냥 직역해서 "맹자도 웅장만은 탐했음 식욕은 정상적임"이라며 자기 식탐을 변호했다.
  • 조선시대 양반가 밥상의 요리법을 모은 음식디미방에 요리법이 실려 있다. 당시 곰 발바닥 요리는 귀하고 특이한 별식이었지만 양반가에서는 이를 조리해 먹을 기회가 있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 김정일샥스핀과 함께 매우 좋아한 음식으로 알려져 있으며 북한을 방문한 고위 인사들을 대접하는 자리에도 곰발바닥 요리가 오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한다.
  • 한국에서도 90년대에 특급호텔 중식당을 중심으로 곰발바닥요리가 판매된 적 있다. 이 당시에 식용 곰사육이 합법이었던 시절이라 가능한 얘기였는데 엄청난 고가였음에도 재벌총수를 위시한 부유층들 사이에선 엄청난 인기였다.[6]

3. 관련 문서



[1] 곰이 겨울잠을 자면서 왼쪽 발만 핥으면서 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왼쪽 앞발이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런 형이상학적인 이유라서 표범 태반이나 매미 배 같은 것이 같은 진미 취급을 받았다. 물론 이런 이유를 납득 못 하는 현대인들은 '곰이 꿀을 먹을 때 앞발로 먹으니까' 같은 이유를 창조해서 붙였다.[2] 이 부분에서 우리는 단순히 요리사의 목을 쳤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목을 치는 것도 나름 형을 집행하는 것이기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집행하고 뒷처리도 같이 해야 정상이다.[3] 조둔은 영공의 아버지 진 양공 때부터 집정이었다. 아직 어리던 영공을 군주로 세운 것도 이 사람이다. 그러니까 아버지뻘 되는 사람을 죽이려 든 것이다.[4] 웅장타제(熊掌駝蹄)라고 해서 낙타 발굽 요리와 함께 등장한다. 낙타 발굽 요리 역시 춘추전국시대 팔진중 하나로, 꼽힌 이유는 곰 발바닥과 동일하다. 사막을 걸어가는 낙타의 에너지가 모이는 것을 발굽으로 봤다. 동시에 귀하게 여겨진 것이 등 위에 있으면서 모양이 무너지지 않는 것이 신기하다는 이유로 낙타 혹이다.[5] 굳이 의미를 부여하자면 물고기와 웅장의 대비를 통해 둘 다 가질 수 없다면 (덜 값진 것을 버리고) 더 값진 것을 가져버려라는 가르침을 설명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웅장은 춘추전국시대 당시에도 대표적인 고급 식재료였기에 '물고기와 웅장 둘 다 맛있지만 둘 중 하나만 먹을 수 있으면 (값지고 귀한) 웅장을 먹지 않겠느냐?'라는 비유는 당대인 대부분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의로움에 대해서도 이처럼 누구나 죽기 싫어하고 자신의 목숨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 당연하지만 의로움이 더 값진 것이니 목숨과 의로움을 둘 다 얻을 수 없으면 (덜 값진 생명을 버리고) 더 값진 의로움을 택해야 한다고 가르친 것이다.[6] 이 시기 동남아에선 곰발바닥, 웅담, 뱀, 호랑이뼈등의 보양식을 찾아다니는 한국인들이 극성이었고 국제적으로도 지탄을 받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