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랜드 와이번

 



1. 제원
2. 개발, 이색적인 설계의 시작
3. 성능
4. 실전
5. 생산 모델
6. 기타
7. 대중매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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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stland Wyvern'''

1. 제원


제원
승무원: 1명
전장: 12.88m
전폭: 13.41m(날개를 접으면 6m)
전고: 4.80m(날개를 접으면 6m)
공허중량: 7,076kg
최대 이륙 중량: 9,616kg
최고 속력: 612km/h[1]
항속거리: 1,465km
최대 상승 고도: 8,534m
무장: 주익에 히스파노 기관포 Mk.V 4정
폭장: 최대 3,000 파운드 폭장 또는 RP-3 로켓 16개 또는 항공어뢰
출력원: 암스트롱-시들리 파이선 터보프롭 엔진(3,560 마력)


2. 개발, 이색적인 설계의 시작



웨스트랜드 와이번은 원래 신형 함재 전투기 개발사업으로 시작한 기체였다.[2] '''3,500마력'''의 출력을 낼 수 있는 24기통 수냉식 엔진인 롤스로이스 이글(Eagle)을 장착하고 P-39 에어라코브라처럼 엔진을 동체 후방에 두고 샤프트를 이용해서 회전시킬려고 했다. 이렇게 설계한 이유는 바로 엔진이 너무 크고 무거워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단 이때까지만 해도 평범한(?) 레시프로 전투기였다. 이러한 이색적인 설계는 높으신 분들에게 큰 화제가 되었고 마침 새롭게 연구되는 터보프롭 엔진을 장착할 수 있을지 웨스트랜드사에 요구하기도 했으며 영국 공군에서도 차세대 전투기로서의 가능성이 있다고 봐서 호커 사의 P.1027[3] 와 경쟁하기도 했다. 하지만 1944년, 영국에서 글로스터 미티어라는 제트기가 탄생했다. 영국은 이제 다양한 프로펠러기는 의미가 없다고 보고 당장 신형 함재기로 블랙번 파이어브랜드호커 시퓨리로 끝내고 이후 모든 함재기를 '''제트기'''로 개발한다는 방침이 내려왔다. 신형 함재 전투기 사업이 잘되는 중, 웨스트랜드사에게는 청천벽력같은 이야기였다. 특히 웨스트랜드사는 이전 웨스트랜드 훨윈드로 물먹어 본적이 있기 때문에 이대로 개발사업이 물거품이 되는건 사양이었다.

하지만 웨스트랜드 사는 거의 설계를 완성한 기체를 쉽게 포기할 수는 없었다. 다시 엔진을 전방에 두고 강력한 엔진에서 발생하는 토크로 인한 이착륙을 함상(艦上)에서도 운용하기 쉽게 이중반전프로펠러(Contra-rotating propellers)를 달게 되었다. 20mm 히스파노 Mk.V 4정에 저익단엽, 테일노즈식 랜딩기어를 달고있는 정석적인 설계에 페어리사의 진보된 플랩인 페이리 영맨 플랩(Fairey Youngman flaps)을 장착해서 요구사항을 만족했다. 1946년, 와이번의 첫 시제가가 처녀비행에 성공했다. 그렇지만 전후 영국이 왕복엔진에 대한 투자가 줄어 롤스로이스 이글 엔진의 양산을 취소했다. 운이 좋게도 마침 이때 터보프롭이라는 새로운 엔진을 롤스로이스와 암스트롱-시들리사에서 개발했고, 와이번 시제기에 달자는 아이디어가 나와 시제기에 터보프롭 엔진을 장착하면서 해당 기종을 와이번 TF.2로 명명했다. 이과정에서 더이상 프로펠러 전투기는 제트 전투기에게 밀릴 것이 뻔했기 때문에 다목적 전투기가 아닌 뇌장과 폭장을 중점으로 둔 함재 전폭기로 용도변경되었다.
설계적으로는 에어브레이크를 설치하고 롤스로이스 사와 암스트롱-시들리사의 엔진을 각각 달아서 시험해보기로 했다. 먼저 롤스로이스의 클라이드(Clyde)[4] 엔진을 장착했지만 클라이드 엔진을 장착한 시제기에서 이륙 직후 연료가 새서 조종석에 가스가 차는 상황이 벌어졌다. 결국 클라이드 엔진을 장착한 뒤 50시간도 비행하지 못하고 롤스로이스가 설계문제 때문에 클라이드 엔진의 장착을 포기하면서 와이번에 암스트롱-시들리사의 파이선(Python) 엔진을 장착하게 되었다. 파이선 엔진을 단 시제기는 1949년에 처녀비행에 성공했으며 이 과정에서 영국이 막 개발한 사출좌석 실험도 할겸 사출좌석도 달아보기도 했다. 와이번은 엔진을 교체하고 비행한 뒤 전후 심각한 경기침체때문에 적은 개발예산을 받으면서 수많은 보수 및 설계 개량을 해야 했으며 특히 처음 장착해보는 터보프롭의 강력한 엔진힘에 미세한 출력조절에 어려움을 겪어서 프로펠러 피치각 조절 등 다양한 개량을 해야 했다.[5] 결과적으로 1952년, 와이번 TF.4까지 개량되며 모든 문제를 해결했지만, 당시 영국 해군이 예산부족을 이유로 채택을 망설였고 결국 1953년 기존의 블랙번 파이어브랜드페어리 바라쿠다를 퇴역시키면서 와이번이 채택되어 드디어 와이번의 험난한 여정이 끝이 났다.[6]

3. 성능


와이번하고 비교할 수 있는 기체라면 역시 미국의 A-1 스카이레이더일 것이다. 폭장은 스카이레이더가 2배쯤 많고 항속거리도 600km 더 길며 상승률도 3m/s정도 좋다. 반면 와이번은 좀더 항공모함 운용에 초점을 두었다. 강력한 토크로 이륙시 거의 묘기를 보여줘야했던 스카이레이더와 다르게 이중반전프롭의 이점으로 좀더 편하게 날 수 있었다. 거기에 700마력가량의 엔진힘의 차이로 최고속력도 100km/h 빨랐으며 해수면 비행시에도 속력감소도 적었다. 미국도 터보프롭 엔진과 이중반전 프로펠러에 흥미를 가지고 더글라스사가 A2D 스카이샤크를 개발했지만 영국과 다르게 진동문제와 같은 자잘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서 양산되지 못했다.[7]

4. 실전


함재기로 개발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좀 우습지만, 와이번이 함상에서 운용해 본 것은 1950년이었다. 영국의 정규항공모함 HMS 일러스트리어스에서 시제기 실험을 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1953년 현역 기체가 되었음에도 항공모함 운용이 불투명해졌다가 1954년에 겨우 항공모함 위에 배치 되었다. 이때 센토어급 항공모함 HMS 알비온에 배치되어 캐터펄트로 사출될 때 엄청난 G가 걸린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원인은 당연히 엔진의 강력한 출력이었다. 영국은 제트 함재기 운영을 위해서라도 문제를 해결할려고 했고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와이번이 손실되었지만, 1955년에 겨우 문제를 해결했다. 다행히 사출좌석 덕분에 사망자는 2명이었다고 한다.[8]
당시 영국이 보유한 유일한 함재 뇌격/폭격기로 오데이셔스급 항공모함 HMS 이글에 배치되어 수에즈 전쟁 때 유일한 실전을 겪어보았다. 2대가 이집트군의 대공포화로 격추되었지만, 사망자는 없었다. 총 79소티였으며 이후 1958년에 와이번을 몰았던 비행단이 해체되면서 같이 퇴역했다. 와이번 퇴역 이후 그 자리는 대잠기인 페어리 가넷이 대신 자리잡았다. 성능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모든 버전을 다 합쳐도 고작 127대만 생산된 기체였고, 특히 홀로 터보프롭 엔진을 사용하다보니 정비보급 문제 때문에 빠르게 퇴역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5. 생산 모델


  • W.34 와이번: 이글 엔진을 장착한 시제기. 1946년에 비행에 성공했다.
  • W.34 와이번 TF.1: 이글 엔진을 장착한 양산기. 총 6대 생산되었다.
  • W.35 와이번 TF.2: 터보프롭 엔진을 장착한 모델. 1946년에 시제기 3대가 생산되었고 1947년에 20대를 주문했지만, 9대만 완성되었고 나머지 11대는 TF.4로 개량해서 생산했다.
  • W.38 와이번 T.3: 복좌형 훈련기. 양산되지 않았다.
  • W.35 와이번 TF.4: 최종적으로 설계가 완성된 와이번. 사실상 와이번의 양산 모델이라고 봐도 좋다. 98대 생산되었다. 나중에 영국이 전투뇌격기라는 없애면서 공격기로 재분류되었고 와이번 S.4로 명명되었다.
와이번은 총 127대 생산되었다.

6. 기타


와이번은 웨스트랜드사가 만든 최후의 비행기로 이후 헬리콥터 사업에 열중하게 되었다.

7. 대중매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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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워 썬더 - 터보프롭 엔진을 장착한 S.4 사양이 4랭크 프리미엄 기체로 등장한다. 굉장히 빠른 속도와 훌륭한 폭장량을 지녔지만, 기동성과 고고도 성능이 나쁘다. 사실상 전투기보다는 지상공격기에 가까운 기체다. 터보프롭 특유의 굉음의 웅웅거리는 소리 때문에 해외에서는 청소기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 월드 오브 워쉽 - 영국 10티어 항공모함 오데이셔스의 최종 함재기로 피스톤 엔진을 탑재한 시제기가 등장한다. 특이하게도 공격기와 뇌격기, 폭격기 역할을 모두 맡았다.
  • 모바일 게임 Naval Creed:Warships - 터보 프롭 버전이 10티어 최종 뇌격/폭격기로 등장한다.
  • 모바일 게임 벽람항로 - 세이렌 작전에서 획득가능한 재료들을 모아 연구의 '장비 연구' 메뉴에서 제조 가능한, 뇌격기로서는 최초이자 유일한 6성 장비로써 실장되었다. 파이어 브랜드-파이어 크레스트-와이번 순으로 제조해야하다보니 요구하는 재료의 수도 다양할뿐더러 시간 역시 상당히 오래 걸린다. 세이렌 작전이 열린 후 꽤 시간이 지난 현재는 다른 재료는 문제가 안 되지만 그놈의 무딱 설계도가 발목을 잡는다. 전단계 유닛으로 필요한 파이어 크레스트의 제조에도 빈말로도 넉넉하다고 하기 힘든 금딱 설계도가 들어가기 때문에 이래저래 고생길이 훤한 장비.

[1] 1만 피트(3,048m)에서, 해수면에서는 616km/h로 더 빠르다.[2] 마찬가지로 블랙번 파이어브랜드도 함재 전투기로 시작했다.[3] 나중에 호커 템페스트라는 이름으로 채택된다.[4] 롤스로이스의 다른 제트엔진처럼 영국의 강 이름에서 따왔다.[5] 이점은 웨스트랜드 사가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회사다 보니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예산은 개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었다.[6] 당시 영국 해군은 군축의 영향을 제대로 받고 있었고 영국 해군 항공대는 특히 예산을 못받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러다보니 40년대 말에서 50년대 초 영국 해군은 항공모함도, 제트 함재기도 운용을 못하는 웃지못할 일이 생겼다.[7] 애초에 엔진 하나로 고출력을 내는 영국과 다르게 미국은 엔진 2개로 프로펠러 하나에 출력을 넣는 구조였기 때문에 설계적으로 매우 복잡했다.[8] 재미있게도 이후 와이번은 결코 알비온에서 운영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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