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스 리드
1. 개요
패트릭 유잉 이전의 뉴욕 닉스의 심장이자 영혼이었던 선수로, 뉴욕 닉스의 2번 뿐인 우승을 이뤄낸 선수이자, 뉴욕 닉스 역사상 유일하게 NBA 정규시즌 및 파이널 MVP를 수상한 선수. 별명은 'The Captain'.
2. 선수 경력
1942년 루이지애나 주 버니스에서 태어나 릴리의 웨스트 사이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당시 NAIA 소속의 흑인대학 그램블링 주립대학교[1] 에 진학하여 프레드 홉디(1923~1998) 감독의 지도를 받으며 4년간 도합 2,280점에 평균 26.6 득점, 21.3리바를 각각 기록해 NBA 스카우터들을 사로잡았다.
1964년 뉴욕 닉스에 드래프트 된 이후, 지금도 뉴욕 닉스의 영구결번의 대다수인 70년대 전성기 멤버들과 강력한 수비농구의 멤버가 되었다.
다만 이 시기, 보스턴은 빌 러셀을 필두로 리그를 평정하고 있었고, 또 인간을 넘어선 괴수 윌트 체임벌린도 있었기 때문에 60년대에 우승을 넘보기는 어려웠다.
1970년, NBA 파이널에서 보스턴에게 계속 당하며 우승이 간절했던 LA 레이커스의 제리 웨스트, 엘진 베일러, 윌트 체임벌린과 맞붙게 되었다. 게임은 7차전까지 가는 접전이었고, 리드는 파이널에서 부상을 당하며 7차전 출전이 어려웠고, 닉스팬들은 절망하고 있었다.
그러나 7차전이 시작하자 놀랍게도 리드는 코트로 나섰고, 체임벌린과의 경쟁에서 공을 따낸 후, 팀의 첫 4득점을 올리고 코트를 내려갔다. 닉스는 리드의 투혼에 하나가 되면서 7차전을 이기며 우승했다.
이후 1973년 한 번 더 LA 레이커스를 상대로 우승을 추가한 이후, 무릎부상으로 리드는 생각보다 빨리 선수 커리어를 마감하고 말았다.
뉴욕 닉스는 리드의 은퇴 10년 후 패트릭 유잉이라는 또다른 기둥을 얻지만, 유잉과 90년대의 닉스 멤버들은 2번의 파이널 진출에서 모두 준우승하며 닉스를 우승시키지는 못했다.
리드의 등번호 19번은 1976년 뉴욕 닉스 구단 최초로 영구결번되었다.
3. 지도자/프런트 경력
은퇴 이후 뉴욕 닉스와 크레이튼대, 뉴저지 네츠에서 감독을 지냈으나, 성적은 선수 시절에 못 미쳤다. 1989년부터 뉴저지 네츠 부사장 겸 단장을 7년간 맡아 케니 앤더슨, 드라젠 페트로비치, 제이슨 윌리엄스, 데릭 콜먼 등을 영입해 1990년대 초반의 부흥기를 형성한 바 있었고, 2003년까지 선수 육성/스카우트담당 수석부사장도 지내며 캐년 마틴, 케리 키틀스, 키스 밴 혼, 리처드 제퍼슨 등을 발굴했다. 2003년에 뉴욕 닉스 고문으로 위촉됐다가 2004년부터 3년간 뉴올리언스 호네츠 운영부사장으로 일했다.
4. 기타
1982년에는 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에, 1997년에는 NBA 50주년 기념 '위대한 선수 50인'에 선정되었다.
왼손잡이였는데 뉴욕사람들이 사랑한 왼손잡이 선수들 명단에는 꼭 들어간다.
[1] 현재는 NCAA 디비전 1 사우스웨스턴 애슬레틱 컨퍼런스 소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