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주의

 



Eurasia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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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기는 유라시아주의의 대표적인 학자이자 선구자인 알렉산드르 두긴이 창당한 유라시아당의 당기이다. 거의 유라시아주의를 대표하는 기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
1. 개요
2. 관련 문서


1. 개요


유라시아 중심의 범국민주의 및 지역주의 사상이다. 대러시아와는 유사하면서도 다르다. 대러시아가 구 러시아 제국 권역 회복에 대한 지정학 중심의 사상이고, 범슬라브주의가 슬라브 중심의 민족주의라면 유라시아주의는 상대적으로 지역중심주의의 성향이 강하다. 그래서 동유럽이나 슬라브에만 집중하던 과거 러시아의 민족주의에 비해 아시아에도 상당한 비중을 할애한다. 이는 유라시아라는 거대한 권역을 하나로 묶으려는 의도에 의한 것이다.
그로 인해 역사관도 기존의 러시아 민족주의 사관과는 큰 차이가 있다. 기존의 러시아 민족주의자들은 몽골의 러시아 지배를 '타타르의 멍에'라고 부르며 치욕으로 취급했었다. 반면, 유라시아주의 학자들은 오히려 몽골 제국에 상당히 호의적이다. 다만, 대단히 반서방, 반유대주의, 팽창주의, 패권주의 성향이 강하다는 것은 여타 국가주의나 민족주의 사상과 별 다를 것이 없다.
유라시아주의의 본격적인 기원은 20세기로부터 시작한다. 러시아 혁명 이후 해외로 망명한 러시아 지식인들이 유라시아주의의 모태가 되었다. 그들은 새로운 대안 이념이 필요했다. 기존의 범슬라브주의는 러시아 제국과 함께 붕괴했고, 소련식 공산주의는 그들이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유라시아주의에는 러시아가 서유럽에 가지고 있었던 문화적 열등감을 해소하고 러시아의 독자성을 강조하려는 경향이 있다. 유라시아주의자들은 러시아가 맹목적으로 유럽(서구문명)을 따를 것이 아니라 유라시아 지역의 맹주가 되어 독자노선을 걸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소련 시절에는 유라시아주의가 받아들여질 수 없었다. 유라시아 권역을 제패한 소련의 중심 사상은 스탈린주의를 필두로 한 현실사회주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유라시아주의를 부정하였던 소련은 유라시아주의와 굉장히 유사한 대외 정책을 수립하였다. 이는 스탈린부터가 공산주의자임에도 동시에 대단히 강력한 러시아 민족주의자였기 때문이다.
유라시아주의가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러시아 연방 수립 이후부터이다. 특히, 강력한 러시아 민족주의자이자 보수주의자인 블라디미르 푸틴은 국가의 지배적 이념으로서 유라시아주의를 강력하게 밀어주고 있다. 그래서 러시아에서는 이른 바 신유라시아주의가 국가 철학으로서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다. 알렉산드르 두긴이 대표적인 신유라시아주의 학자이다. 고전적 유라시아주의와 비교하면, 국가연합을 통한 유라시아 권역의 통합을 추구하는 면모와 러시아 정교회를 중심으로 한 종교적인 색채가 강해졌다. 이러한 신유라시아주의를 명분으로 러시아에서는 온갖 우경화 정책, 역사 왜곡, 호전적 대외 정책이 실행되고 있다. 이는 러시아 제국과 소련을 아울렀던 영토를 다시 정복하고자 하는 러시아 집권층과 국민들의 의지에 따른 것이다.
단, 오직 러시아만이 유라시아주의를 내세우는 것은 아니고 일부 친러 성향 국가들도 이에 찬동하는 모습을 보인다. 대표적으로,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시절에 유라시아주의를 공식적으로 천명한 카자흐스탄이 있다. 러시아, 카자흐스탄 외에도 터키, 우즈베키스탄, 헝가리, 투르크메니스탄, 중국 등 유라시아 대륙의 국가들도 이러한 사상 및 비슷한 사상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터키가 전파하는 범투란주의는 헝가리와 많은 중앙아시아인들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중국은 당나라 제국 시절의 실크로드 무역을 독점한 경험을 되살려 시진핑 집권 이후 150년을 목표로 일대일로 정책을 진행하고있다. 범투란주의 외에 '투르크 평의회'라고 터키와 구 소련권 및 구 동구권의 국가들이 운영하는 국제 기구가 있다. 이 쪽은 범튀르크주의에 더 가깝다. 그리스, 루마니아에도 유라시아주의자들이 있다.

2. 관련 문서